릴로

천뢰(天雷)의 붉은 궤적이 밤하늘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대지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찰나, 사위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무릎을 꿇은 위지량이 각혈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가락은 부러진 채 검자루를 겨우 지탱하고 있었고, 입술 사이로 흘러내린 선혈이 흙먼지 덮인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그는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눈앞의 혁련무를 바라보았다.

"연진…… 그자가 범인이다! 갈운태가 보낸 진짜 밀작(密作)인 연진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 객주의 근원 지반을 노려왔다! 놈이 기둥 밑바닥에 심어둔 사악한 가루가 지맥을 썩히고 있었단 말이다!"

위지량의 처절한 폭로가 천둥소리를 뚫고 혁련무의 귓전을 때렸다.

과거의 배신으로 심신에 깊은 낙인이 찍힌 혁련무는 타인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위지량의 형안에 서린 비장함과 절망은 거짓을 담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멸문지화의 벼랑 끝에 몰려 가문을 구하기 위해 무림맹의 사냥개 노릇을 자처했던 청년의 눈에는, 오직 혈육을 살리겠다는 일념과 자신을 도구로 부려먹은 자들을 향한 뼈에 사무친 증오만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혁련무의 눈동자에 황금빛 인과 장부의 글씨가 어지럽게 명멸했다. 장부의 책장이 허공에서 소리 없이 넘어가며 붉은 낙인이 찍힌 위지 가문의 인과율을 비추었다.

위지량이 품속에서 피에 젖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무림맹 직속 사장대(司掌隊)의 극비 통신문이었다.

"이것이…… 사장대의 추악한 민낯이다. 갈운태의 배후에 무림맹 고위층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서신이지. 정파의 탈을 쓴 위선적인 맹주 무리가 우리 위지 가문을 멸문으로 몰고 가며 이 객주의 기연을 독식하려 했다!"

위지량이 내민 가죽 서신을 받아 쥐는 혁련무의 손가락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서신에 스민 사장대의 붉은 인장과 갈운태의 마성 어린 필체가 인과의 고리와 얽혀들며, 혁련무의 하단전에 차가운 분노를 각인했다. 천하를 수호한다는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뒤에서는 기연을 찬탈하기 위해 한 가문의 명맥을 끊고 은거한 무인을 도살하려 획책했다는 사실이, 객주의 썩어가는 나무 냄새와 함께 코끝을 찔렀다. 이 서신을 천하에 공개하는 순간, 무림맹이 쌓아 올린 위선의 탑은 일순간에 붕괴할 터였다.

그러나 분노를 삭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쿠구구구궁!

지반을 타고 올라오는 기분 나쁜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온몸으로 전해졌다. 갈운태의 심복 연진이 객주의 목조 지지 기둥 밑바닥에 오랫동안 침투시켜 두었던 특수한 흑황(黑黃) 가루가 마침내 기문 방어막의 근본을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객주를 수호하던 신비로운 도가의 기운이 밑바닥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며, 대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늪처럼 출렁거렸다.

"혁련무, 지반이 무너지면 이 객주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저 천뢰의 밥이 된다!"

백서진이 술병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낙천적인 유희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백서진의 시선이 혁련무의 전신을 훑었다.

"내 말을 잊지 마라! 천수결(天手決)의 역천 구절, '천도역행, 이뢰제마'는 단순히 벼락을 피하는 편법이 아니다. 전신의 기하를 역류시켜 저 하늘의 진노를 네 육신으로 고스란히 받아낸 뒤, 갈운태와 사장대 놈들의 목구멍에 되돌려주는 전치(轉置)의 비법이다! 지금 지반이 무너지기 전에 저 무도한 공성을 막아내야 한다!"

혁련무는 깊은 호흡을 들이쉬었다.

그는 평생 고립을 원했다. 타인과의 인연은 오직 상처와 배신만을 남길 뿐이라 여기며, 이 벽향객주의 주방 구석에서 조용히 늙어 죽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 그의 등 뒤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숙적 위지량이 있었고, 문밖에는 그를 믿고 따뜻한 누룽지탕을 끓여 나르던 설아란이 있었다. 그들의 생명이 이 먼지 나는 객주의 명운과 함께 실시간으로 지워져 가고 있었다.

"위지량, 일어서라."

혁련무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으나, 그 안에는 거부할 수 없는 패도의 기상이 깃들어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가문을 지키려 했다면, 이깟 흙먼지 속에서 무릎을 꿇고 울부짖는 일 따위는 하지 마라. 검을 잡아라. 사장대의 공세를 막아내고 객주의 잔여 내벽을 강화한다."

위지량이 이빨을 악물며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 내력이 뿜어져 나왔으나, 이미 내상이 깊어 기운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혁련무는 지반의 붕괴를 지연시키기 위해 자신의 손바닥을 객주의 중심 대들보에 대었다.

스스스스!

황금빛으로 빛나는 인과 장부의 기류가 대들보를 타고 흘러내려 사방의 벽으로 뻗어 나갔다. 위지량 역시 잔여 내력을 쥐어짜 내어 객주의 외벽에 무림맹 특유의 방어 결계를 덧씌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내력이 객주의 나무 벽 안에서 기묘하게 얽히며, 사장대의 외부 공성에 맞설 임시 방어벽이 형성되었다.

외부에서 사장대 무인들이 발사한 거대한 강철 쇠뇌와 화약 화살들이 객주의 외벽을 때렸다.

쾅! 쿠웅!

내벽이 거칠게 들썩였으나, 혁련무가 주입한 천일선단의 신비로운 영기와 위지량의 필사적인 가문 전승 내력이 결합하여 간신히 폭발의 충격을 흡수해 냈다. 그러나 지반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황색의 독풍은 여전히 객주의 기둥들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 순간, 혁련무의 가슴팍에서 지독한 열기가 치솟았다.

'끄으윽……!'

천계의 인과 장부가 지닌 가혹한 제약이 발동한 것이다. 장부에 기록된 선인들의 고통이 혁련무의 뇌리를 강타했다. 과거 가문의 배신으로 오장육부가 뒤틀려 죽어갔던 어느 등선인의 비극적인 말로가 고스란히 그의 감각에 전이되었다. 영혼이 타오르는 듯한 극통에 혁련무의 신형이 굳어지고, 하단전의 기류가 사정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입안 가득 비린 피 내음이 고였다. 마음을 닫고 세속의 인연을 거부하려 할 때마다 찾아오는 심마의 범박(凡縛)이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바로 그때, 등 뒤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전해졌다.

설아란이었다.

그녀는 무너지는 기와와 들보 파편 사이를 뚫고 다가와, 혁련무의 떨리는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무 아저씨…… 피하지 마세요. 혼자서 그 슬픔을 다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

설아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동자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목에 걸고 있던 파손된 옥패가 백색의 찬란한 광휘를 뿜어내며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스아아아아!

그것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다.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인의 독특한 무공인 '무상신공(無上神功)'의 공명 유산이 그 옥패 안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설아란의 순수한 영혼과 옥패의 백색 광휘가 혁련무의 전신을 감싸 안는 순간, 혁련무의 체내를 잠식하던 심마의 타오르는 불길이 기적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옥패의 공명은 혁련무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천계의 장부를 자극했다. 장부에 기록된 태허무상(太虛無上)의 기운이 일정한 파장을 그리며 고동치기 시작하더니, 혁련무의 하단전이 그 어떤 속성도 지니지 않은 찬란한 무색(無色)의 공허 무공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원한과 인과를 무(無)로 돌려보내는, 태극의 근원에 닿아 있는 신비로운 힘이었다.

"이것은……."

혁련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무색의 정기는 그에게 이 세상의 모든 무공의 흐름을 투명하게 간파할 수 있는 신안(神眼)을 선사했다.

옆에서 절망적인 표정으로 부러진 대검을 쥐고 있던 위지량이 보였다. 위지량의 검끝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가문의 명맥을 이을 무공인 '백양검결'의 핵심 구결이 실전되어, 그는 무림맹의 압박 속에서 제 위력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문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극도의 불안감이 청년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혁련무는 한 걸음 내딛으며 위지량의 곁으로 다가갔다.

"위지 가문의 검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

"무슨……!"

위지량이 놀라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혁련무의 손가락이 위지량의 연질 대검 검신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스으으으읍!

혁련무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찬란한 무색의 무상 정기(無上精氣)가 연질 대검의 검신으로 스며들었다. 그 기운은 위지량의 체내에 흐르는 백양검결의 불완전한 내력과 공명하며, 멸실되었던 진짜 가문의 검맥 비술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복원해 내기 시작했다.

검신이 가늘게 떨리며 청아한 검명(劍鳴)을 울렸다. 연질 대검의 주위로 백색의 양기가 한 자루 거대한 거인의 검처럼 피어올랐다. 그것은 위지 가문의 시조가 펼쳤다던 전설 속의 '백양태극검'의 현신이었다.

위지량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크게 떠졌다. 자신의 몸 안에서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가문의 잃어버린 진정한 검맥이 완벽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그 어떤 천재도 복원해 내지 못했던 가문의 비술을, 이 은거고수는 단 한 번의 접촉과 정기 주입만으로 완벽하게 완성해 낸 것이다.

"이것이…… 우리 가문의 진짜 검이란 말인가……!"

위지량의 목소리가 경외감으로 젖어 들었다. 혁련무가 보여준 장인의 경지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신선의 영역에 닿아 있었다.

"검을 뻗어라. 네 가문의 이름을 더럽힌 자들의 면전에 그 검을 꽂아 넣어라."

혁련무의 단호한 일갈에 위지량은 붉어진 눈시울을 훔치며 대검을 치켜들었다.

백색의 찬란한 양강지기가 객주의 무너진 벽 너머로 뻗어 나가며, 습격해 오던 사장대 무인들의 살기를 단숨에 압도했다. 위지량의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백양태극의 검풍이 객주 전면을 포위하고 있던 사장대 무인들의 대형을 처참하게 깨뜨렸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수십 명의 무인이 뒤로 자빠지며 피를 토했다. 가문의 비술을 되찾은 위지량의 반격은 그야말로 신위(神威)에 가까웠다.

폭풍 같은 반격 속에서, 영원할 것 같던 승기가 객주 측으로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인과의 그물망은 그리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스스스……

갑자기 객주 바닥 깊은 곳에서부터 뼈를 깎아내는 듯한 음습한 부식 소리가 들려왔다. 연진이 묻어둔 흑황 가루와 지맥의 독기가 천뢰의 붉은 에너지와 완전히 결합하여 최악의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어지럽게 흔들리던 대들보와 기둥들, 그리고 객주 전체를 감돌며 방어벽을 형성하고 있던 금백색의 보호 결계 기류가 일순간 멈춰 섰다.

그리고.

파스스스슥!

모든 온기가 순식간에 탈취당하듯, 따뜻하게 흐르던 결계의 기류가 시퍼런 급랭(急冷)의 냉기 속으로 빠져들며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기둥 표면에 하얀 서리가 차갑게 돋아났고, 객주의 공기가 얼어붙어 호흡할 때마다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다고 믿었던 객주의 방어막이, 가장 어두운 밑바닥에서부터 차갑게 동결되며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의 운명이 걸린 벽향객주가 차가운 얼음의 무덤으로 변해가는 기괴한 소리만이 사위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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