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벽향객주(碧香客酒)의 잔해를 격파하자마자 하늘의 먹구름이 웅성거리더니, 한낮임에도 칠흑같이 긴 강한 영적 번개가 객주 상공에 직접 조준된다.
천지가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태양의 빛을 삼켜버린 먹구름은 단순한 자연의 조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과를 거스르고 천계의 영약을 탐닉한 자들을 징벌하려는 우주의 거대한 안광과도 같았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흙먼지 속에서 비린내가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지독한 유황과 타버린 뼈의 냄새였다.
쿠구구구구!
대지가 울리는 소리는 땅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일찍이 갈운태의 부하가 밤그늘을 틈타 객주의 목조 지지 기둥 밑바닥에 은밀히 침투시켰던 기괴한 흑황 가루가 마침내 온전한 파괴의 마력을 발휘한 탓이었다. 벽향객주를 수백 년간 지탱해 오던 신비한 기문방어막의 원천적 지반이 내부에서부터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반석이라 믿었던 땅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며, 객주의 주춧돌들이 굉음과 함께 주저앉았다.
“이,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무릎을 꿇은 위지량의 눈망울에 절망의 빛이 서렸다. 가문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이곳까지 찾아와 혁련무의 기연을 탐했으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필멸의 무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지반을 타고 흐르는 검푸른 뇌전의 잔향이 그의 검끝을 타고 올라와 손아귀를 마비시켰다.
그 아수라장의 중심에서, 설아란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
짧은 비명과 함께 그녀의 가슴팍에 걸려 있던 파손된 옥패가 별안간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게 물들었다. 청아하던 백색의 광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음산한 원념의 핏빛 사슬들이 흘러나와 그녀의 가야금 줄처럼 고운 손목과 발목을 옥죄었다. 그것은 갈운태가 심어둔 피의 계약이자, 과거 선인이 남긴 유산에 기생하던 악랄한 저주였다.
갈라진 대지의 심연 속에서, 갈운태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이명처럼 혁련무의 고막을 찔렀다.
“혁련무! 하늘의 뇌겁을 받아내며 그 계율의 무게에 짓눌려 죽어라! 그 계율을 깨뜨리지 않는 한, 너는 저 계집의 혼백이 구천을 떠도는 것을 지켜볼 뿐이리라!”
설아란의 동공이 초점을 잃고 흐려졌다. 그녀의 몸이 허공에 뜬 채로, 갈라진 대지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끌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혁련무의 가슴속에서 우주의 무게를 담은 인과 장부의 책장이 미친 듯이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전신 48혈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선인들이 겪었던 배신과 종말의 고통이 그의 영혼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타인과의 인연을 거부하고 홀로 고요히 은거하려 했던 그의 냉소적인 결함이, 심마의 범박(凡縛)이 되어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마음을 닫는 자, 스스로 파멸하리라.’
장부의 붉은 글씨가 허공에 쓰여 불타올랐다. 혁련무는 이빨을 악물었다. 입술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거부감과 오한을 억누르며,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타인과의 연결을 극도로 혐오하는 그의 병증이 비명을 질렀으나, 눈앞에서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설아란의 얼굴이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매일 아침 그의 문 앞에 놓여 있던, 따뜻한 온기가 서린 누룽지탕의 기억이 얼어붙은 심장을 녹여내렸다.
“……가까이 오지 말라 그리 일렀거늘.”
혁련무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신형이 찰나의 순간에 허공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파앗!
그는 사슬에 묶여 심연으로 떨어지던 설아란의 허리를 강하게 낚아챘다.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바짝 밀착시켰다. 단단하게 맞닿은 살결을 통해 그녀의 가냘픈 숨결과 차갑게 식어가는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설아란의 목에 걸려 있던 파손된 옥패가 혁련무의 가슴에 닿자마자, 격렬하게 진동하며 백색의 신비로운 광휘를 뿜어냈다. 그것은 평범한 장신구가 아니었다. 과거 무상신공(無相神功)을 대성했던 고대 선인이 후대를 위해 남겨둔 독특한 공명 유산의 일종이었다. 혁련무가 지닌 천일선단의 내공과 천수결의 기운이 옥패의 공명과 맞물리자, 전신의 뒤틀렸던 기혈이 무서운 속도로 재정렬되기 시작했다.
웅-!
맑고 고요한 음파가 객주의 잔해를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설아란을 묶고 있던 붉은 사슬들이 그 청아한 백색의 진동에 견디지 못하고 유리처럼 깨어져 나갔다. 혼미해지던 설아란의 눈에 서서히 생기가 돌아왔다.
“소, 소협…….”
“꽉 잡아라. 놓치면 둘 다 재가 된다.”
혁련무의 어조는 평소처럼 무뚝뚝했으나, 설아란의 옷자락을 쥔 그의 손가락에는 뼈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의 힘이 들어가 있었다. 영혼의 깊은 접촉이 이루어지자, 그를 괴롭히던 심마의 범박이 연기처럼 흩어지며 전신의 내력이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그러나 천계의 분노는 이제 시작이었다.
쿠르릉! 쾅!
하늘의 구름이 황금빛과 백색의 기운으로 뒤엉키며 소용돌이쳤다. 천리에 어긋나는 인과의 강제적 유도와 갈운태의 마성이 얽힌 이 비정상적인 공간을 정화하기 위해, 천계의 뇌겁(雷劫)이 거대한 용의 형상을 하며 내리꽂혔다. 지붕을 뚫고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백색의 천뢰는 주위의 모든 사물을 분자 단위로 분해할 듯한 기세였다.
그 가공할 파멸의 빛을 보며, 혁련무는 머릿속으로 백서진이 전했던 천수결(天手決)의 역천 구절을 떠올렸다.
‘역류하는 강물은 바다를 뒤엎고, 하늘의 벌을 빌려 마를 멸한다.’
그것은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방책이 아니었다. 하늘이 내린 벼락마저 자신의 기경팔맥으로 받아들여, 전신의 기하를 역류시켜 적에게 전치시키는 가장 위험천만하고도 비장한 파멸의 비법이었다.
“미친 짓이군.”
혁련무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지금이다! 혁련무의 기맥이 천뢰를 막느라 분산되었다! 참수하라!”
무너진 담벼락 뒤, 그림자 속에서 세 명의 노인이 전광석화처럼 튀어 올랐다. 무림맹 직속 사장대(司掌隊)의 최고 원로관들이었다. 그들은 혁련무가 하늘의 번개를 막아내느라 온 힘을 쏟아붓고 있는 지금이 그의 목을 벨 유일한 기회라 판단한 것이다. 그들이 휘두르는 장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퍼런 검강이 허공을 찢으며 혁련무의 목덜미를 조준했다.
위지량이 소리쳤다.
“비겁하다! 무림맹의 원로라는 자들이 이리도 야비한 짓을 한단 말이냐!”
그러나 사장대의 원로관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혁련무가 가진 천계의 영약과 비급, 그리고 그것을 빼앗아 가문의 안위를 보장받겠다는 탐욕만이 번득이고 있었다.
“기연의 노예가 된 자여, 천수(天壽)를 다했구나! 죽어라!”
세 갈래의 검강이 혁련무의 이마와 가슴, 그리고 단전을 향해 동시에 쇄도했다. 피할 길은 없었다. 등 뒤에는 설아란이 밀착해 있었고, 머리 위에서는 천계의 백색 뇌겁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혁련무가 하늘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스으으읍-!
하늘에서 내리꽂히던 백색 천뢰의 절반이 그의 왼손바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전신의 살점이 타들어 가고 뼈가 바스러지는 극통이 고스란히 뇌리를 강타했다. 선인들이 천겁의 벼락을 맞으며 소멸해 가던 비극적인 말로가 그의 영혼에 각인되었다. 고통의 비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혁련무는 이를 악물고 그 뇌전의 에너지를 전신으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이 사장대 원로관들을 향해 회전했다.
천수결 역천의 전치(轉置).
“돌려주마.”
낮게 가라앉은 혁련무의 목소리와 함께, 그의 오른손 끝에서 한 번도 세상에 나타난 적 없는 백색의 파동 검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내력이 아니었다. 하늘의 분노인 천뢰의 위력에 무상신공의 조화가 더해진, 순수한 파멸의 격류였다.
콰아아앙!
백색의 파동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원로관들의 대열을 직타했다.
“어, 어찌 이런……!”
사장대 최고 원로관들의 눈에 처음으로 극도의 공포가 서렸다. 그들이 자랑하던 시퍼런 검강은 백색의 파동 앞에 마치 햇볕 아래의 눈처럼 허무하게 녹아내렸다. 뇌전의 마력을 품은 백색 검기는 그들의 장검을 순식간에 기화시키고, 그들의 신형을 가차 없이 관통했다.
“끄아아아악!”
비명은 길지 않았다. 무림맹에서 일세를 풍미했던 세 명의 고수들은 단 한 번의 격돌 끝에 사방으로 튀는 백색 불꽃 속에서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그들이 서 있던 자리는 형체도 없이 움푹 패어 거대한 구덩이로 변해 버렸다.
일격에 사장대의 최고 원로들을 소멸시킨 전무후무한 신위였다.
위지량은 넋을 잃은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검을 쥔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것은 무공의 경지를 넘어선, 하늘의 대리자가 내리는 신벌과도 같았다.
그러나 승리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천수결의 역천 비법으로 천뢰의 절반을 방출했으나, 여전히 남은 절반의 위력이 혁련무의 전신 기맥을 사정없이 유린하고 있었다. 천계의 뇌겁은 그의 육체를 숙주 삼아 날뛰며 온몸의 혈도를 파괴하려 들었다.
“윽……!”
혁련무의 두 안광이 별안간 핏빛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의 전신에서 검붉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천계의 인과 장부에 누적된 선인들의 한(恨)과 원념이 폭주하는 징표였다.
[경고: 천뢰의 위력이 영혼 계율을 침범하다. 인과의 채무가 한계를 초과하여 주화입마(走火入魔)의 형벌이 집행되리라.]
붉은 연기가 혁련무의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다. 그의 기혈이 완전히 역류하며, 심장 소리가 터질 듯이 고막을 때렸다.
“소협! 정신 차리세요! 소협!”
등 뒤에서 설아란이 울부짖으며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으나, 혁련무의 의식은 서서히 붉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주화입마의 칠흑 같은 어둠이 그의 영혼을 통째로 집어삼키기 위해 이빨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그의 안구에 맺힌 핏방울이 밤하늘의 흉성처럼 붉게 타올랐다. 이조(異兆)는 단지 신체의 파괴에 그치지 아니하고, 영혼의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치는 선인들의 원념으로 이어졌다.
학을 타고 등선하던 백양선사가 동도(同道)의 배신으로 단전이 찢기며 추락하던 절규가 귓전을 때렸다. 천겁을 넘기지 못하고 구천의 뇌전에 온몸이 불타 재가 되면서도 법보(法寶)를 움켜쥐고 울부짖던 이름 모를 선인의 단말마가 그의 골수를 파고들었다. 인과 장부에 기록된 채무의 무게는 필멸의 육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초과하여, 그의 전신 기맥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커헉……!”
혁련무의 입에서 쏟아진 선혈이 설아란의 하얀 어깨를 붉게 적셨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마기는 마치 탐욕스러운 맹수처럼 주위의 생명력을 흡수하려 들었다. 타인과 닿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던 그의 심마가, 이제는 역설적으로 그녀의 온기를 탐해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광기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밀쳐내려 했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함으로써 타인을 지키고, 마침내 도달하고자 했던 영적 고요의 안식처를 더럽히지 않으려는 마지막 이성이었다.
“물러…… 서라. 내 몸에 닿는 자는 모두 멸하리라.”
그러나 설아란은 그 가냘픈 팔에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혁련무의 얼어붙은 이성을 녹이듯, 자신의 가슴을 그의 등에 더 깊이 묻었다.
웅-!
그녀의 목에 걸린 파손된 옥패가 다시 한번 청량한 백색의 공명음을 내뿜었다. 무상신공의 잔향이 혁련무의 이성을 한 가닥 팽팽한 실처럼 붙잡아 두었다. 설아란의 눈에서 흘러내린 맑은 눈물이 혁련무의 붉게 물든 뺨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차가운 살기 속에 스며드는 지극한 연민과 온기. 그것은 인과 장부의 제약인 범박(凡縛)을 느슨하게 만드는 유일한 열쇠였다.
“소협의 고통을 혼자 짊어지게 두지 않겠습니다. 설령 이 혼백이 바스러질지라도, 저는 소협의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비록 가늘었으나, 그 안에 담긴 의지는 태산보다 무거웠다. 그 진심 어린 인연의 수용이 혁련무의 폭주하는 심장으로 흘러들어 가자, 핏빛으로 물들었던 안광에 미세한 푸른 기운이 깃들기 시작했다. 주화입마의 급격한 파도가 잠시 주춤하는 찰나였다.
쿠구구구구!
그러나 운명은 그들에게 단 한 순간의 안식도 허락지 않았다.
무너진 벽향객주의 지반 밑바닥, 사장대 원로들이 소멸한 구덩이 깊은 곳에서 검푸른 독안개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자독이 아니었다. 갈운태가 평생을 바쳐 연성한, 천계의 기운마저 부식시키는 천하제일의 기독(奇毒)이자 기문진식을 무너뜨리는 이독(夷毒)의 정수였다.
“흐흐흐…… 멍청한 것들. 사장대의 늙은이들은 단지 너의 힘을 빼놓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다.”
독무 속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음영이 솟구쳐 올랐다. 갈운태의 마성 어린 투영이었다. 그의 진짜 본체는 다른 곳에 숨어 있을지언정, 이곳에 심어둔 주술적 진핵은 혁련무가 천뢰를 받아내고 주화입마에 빠진 이 순간을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독안개는 솟구치는 백색의 뇌전마저 검게 오염시키며, 객주의 잔해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위지량은 이미 이독의 기운에 기혈이 막혀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천수결로 받아들인 천뢰의 위력은 아직 혁련무의 단전 속에서 정제되지 않은 채 요동치고 있었고, 밖에서는 갈운태의 마성 어린 독무가 그들의 숨통을 죄어왔다. 설아란의 온기 덕에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으나, 혁련무의 육체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 일촉즉발의 붕괴 직전에 놓여 있었다.
그때, 혁련무의 뇌리 속에 백서진이 남겼던 천수결의 마지막 구절이 섬전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늘의 벌을 스스로의 명(命)과 바꾸어 전치할 때, 비로소 만마(萬魔)가 소멸하리라.’
그것은 자신의 생명력을 완전히 전소시켜 천뢰의 위력을 폭발시키는, 동귀어진의 금기 초식이었다. 이를 전개한다면 갈운태의 독무와 사천 혈도인들의 잔당을 단숨에 소멸시킬 수 있겠으나, 혁련무 자신 또한 영혼마저 타버려 공(空)으로 돌아갈 터였다.
그가 마지막 결단을 내리려는 순간, 먹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 위에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쩌어어어억!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지듯 가공할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칠흑 같던 먹구름이 황금빛의 기운에 밀려 사방으로 찢겨 나갔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 사이로, 거대한 백색의 눈동자를 닮은 천계의 문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인과의 흐름을 어지럽힌 필멸자들을 모조리 말살하려는 우주적 법칙의 실체화였다.
동시에, 혁련무의 품에 안겨 있던 설아란의 신형이 별안간 강한 인력에 이끌려 하늘을 향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걸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백색 광채가 천계의 눈동자와 공명하며, 그녀를 하늘의 제물로 소환하려는 듯한 기이한 기류가 온 마당을 휘감았다.
“아란……!”
혁련무의 핏빛 안광이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허공으로 끌려 올라가는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 피투성이가 된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손끝이 그녀의 손가락에 닿기 직전, 갈라진 대지의 심연 속에서 솟구친 검은 사슬들이 그의 온몸을 휘감아 땅 밑으로 사정없이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상공에서는 천계의 안광이 설아란을 조준하고, 지상에서는 갈운태의 마성이 혁련무의 심장을 향해 쇄도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과연 혁련무는 전신의 기혈을 역류시키는 천수결의 금기를 전개하여 그녀를 구원할 것인가, 아니면 인과의 장부가 내린 가혹한 채무의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 파멸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