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보초병이 토해 낸 가쁜 숨소리가 어두운 동굴 벽을 타고 거칠게 흩어졌다. 방금 전까지 은은한 우윳빛 크리스탈 광맥이 내뿜던 달콤하고 정갈한 미열이 순식간에 매서운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다. 카일런의 단단한 눈매가 밤하늘의 날카로운 초승달처럼 좁아졌다. 그의 큼직하고 듬직한 손이 엘리시아의 보들보들하고 가냘픈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로웰 공작가의 징벌단이라니, 벌써 국경 방벽 앞까지 도달했단 말인가."

카일런의 나직한 목소리가 묵직한 가죽처럼 동굴 안을 채웠다. 엘리시아는 품속에 든 동그랗고 차가우며 미약하게 콩닥거리는 푸른 씨앗의 매끄러운 질감을 손가락 끝으로 가만히 느꼈다. 머리맡에서 맴돌던 보레아스가 그녀의 귓가에 보들보들한 솜털 같은 바람을 불어넣으며 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새콤하고 불쾌한 냄새가 나. 쇠비린내와 썩은 이끼 같은 부정한 마나의 냄새가 서쪽 계곡에서부터 밀려오고 있어, 엘리."

엘리시아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맑고 투명한 청홍빛 눈동자가 광산 입구를 향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공작가의 가주는 결코 유예를 두는 법이 없었다. 도망친 도구를 회수하기 위해서라면, 이 하얗고 아늑한 일리리아 영지 전체를 잿더미로 만드는 것쯤은 사소한 일로 여길 터였다.

"지금 바로 국경 방벽으로 가야 해요."

엘리시아는 보들보들한 양털 망토의 깃을 여미며 단호하게 말했다. 카일런은 그녀의 가냘픈 뺨에 가득 피어오른 뽀얀 서리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곧장 광산을 벗어나 가파른 눈길을 달렸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은 마치 검푸른 잉크를 쏟아놓은 듯 탁하고 어두웠다. 하지만 엘리시아의 눈에는 자연의 미세한 흐름이 투명한 실타래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카일런, 곧 하늘에서 아주 차갑고 무거운 함박눈이 쏟아질 거예요. 바람의 정령들이 서쪽 하늘에서 차가운 북풍의 꼬리를 당겨오고 있어요."

엘리시아가 조그만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일리리아 국경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인 '좁은 은빛 협로'였다. 양옆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솟아 있어, 한 번에 대규모 병력이 통과하기 어려운 험난한 지형이었다.

카일런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기습 폭설인가. 그렇다면 저 좁은 길목이 징벌단의 무덤이 되겠군. 우리 기사들에게 솜사탕처럼 하얗고 두터운 눈더미 뒤로 매복하라고 지시하겠다. 그들이 눈보라에 눈이 멀어 허둥댈 때, 협로 아래에 미리 설치해 둔 마법 덫을 작동시키면 적들의 발을 완벽하게 묶을 수 있어."

"네, 그리고 보레아스의 바람을 이용해 협로의 좁은 틈새로 몰아치는 역풍을 더 매섭게 부풀릴게요. 아무리 단단한 철갑을 입은 기사들이라도, 한 걸음조차 앞으로 내딛지 못할 정도로요."

두 사람은 신속하게 작전을 구상했다. 카일런은 즉시 기사단을 소집하여 좁은 협로 곳곳에 눈부시게 하얀 눈을 덮어 위장한 덫을 정교하게 배치하도록 명령했다. 영지민 기사들은 엘리시아가 정화해 준 크리스탈의 따뜻한 온기를 기억하며, 흐트러짐 없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은빛 절벽 위와 협로 구석구석에 몸을 숨겼다.

방벽 바로 뒤, 세찬 바람이 울부짖는 초소 안에서 카일런은 엘리시아와 단둘이 마주 섰다. 밖에서는 웅장하고 거친 바람 소리가 마치 거대한 괴물의 울음소리처럼 덜컹거렸지만, 초소 안은 노르스름한 등불 빛 덕분에 아늑하고 차분했다.

카일런은 품속에서 은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조그만 금속 배지를 꺼냈다. 그것은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붉은 불꽃 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진 고대 기사의 유산이었다. 배지 표면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따뜻하고 달콤한 열기가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일런은 엘리시아의 작고 하얀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겨, 그 따사로운 배지를 쥐여주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얼어붙은 손가락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이건 내 가문의 유일한 유산이자, 내 마나의 순수한 불씨가 깃든 물건이야. 네가 조율을 할 때 체온을 잃고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왔어."

카일런의 목소리는 잔잔하게 흐르는 밤강의 물결처럼 부드러웠다. 엘리시아는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찌릿하고 뜨거운 온기가 자신의 차가운 핏줄 속으로 향긋하게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이 배지를 품에 지니고 있어 줘. 네가 아무리 깊은 서리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해도, 내가 반드시 내 모든 온기를 다해 너를 찾아낼 테니까. 일리리아의 그 어떤 악귀도, 저 포악한 로웰 공작가도 결코 네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어. 이건 내 목숨을 건 맹세야, 엘리시아."

카일런의 진실하고 뜨거운 눈빛이 엘리시아의 마음 깊은 곳에 몽글몽글한 울림을 남겼다. 엘리시아는 배지를 품에 소중히 안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온전히 보호받고 있다는 달콤한 안도감을 느꼈다.

"고마워요, 카일런. 꼭 무사히 돌아가요."

그녀의 속삭임과 동시에, 방벽 너머에서 웅장하고 무거운 구두 굽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대지를 짓누르며 다가왔다. 로웰 공작가의 선발 징벌단이 마침내 은빛 협로로 진입한 것이었다.

그들은 푸른빛의 정교한 마력 갑옷을 입고, 정령들을 강제로 포획해 채워 넣은 검은 포집기를 등에 멘 채 오만하게 걸어 들어왔다. 선발 기사단의 단장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채찍을 휘둘렀다.

"이 비천하고 척박한 땅에 숨어든 도망자 녀석들! 공작가의 위대한 힘 앞에 무릎을 꿇어라!"

그러나 그들의 오만한 외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늘에서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하얀 함박눈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눈송이였으나, 순식간에 시야를 가로막는 혹독한 장벽으로 변했다.

"응? 갑자기 웬 눈보라가 이렇게 세차게……!"

당황한 기사들이 주춤하는 순간, 엘리시아는 방벽 위에서 보레아스의 조그만 손을 잡았다.

"보레아스, 바람의 목소리를 뒤틀어줘. 저들의 마나를 흩뜨려뜨려."

보레아스가 맑고 투명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슈우우우웅-!

협로의 좁은 틈새를 따라, 칼날처럼 날카롭고 매서운 역풍이 가문의 군대를 향해 정면으로 몰아쳤다. 그 바람은 단순한 자연의 바람이 아니었다. 엘리시아의 조율을 거쳐 타락한 마나의 흐름을 역추적해 부수어버리는 정밀한 법도의 바람이었다.

기사들이 메고 있던 검은 정령 포집기 안에서 흘러나오던 불안정한 마나가 역풍을 맞고 사정없이 뒤흔들렸다.

콰아아앙! 콰앙!

"으악! 마나가 역류한다! 포집기가 통제 불능이야!"

"말들이 날뛴다! 눈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사방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보라에 눈이 먼 기사들은 발밑에 숨겨져 있던 마법 덫을 밟고 차례로 넘어졌다. 덫이 작동할 때마다 투명하고 맑은 얼음 사슬이 그들의 다리를 단단하게 옭아맸다.

오만하던 공작가의 정예 기사단은 싸워보지도 못한 채, 지형과 날씨, 그리고 바람의 완벽한 조화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들이 자랑하던 정교한 마력 갑옷은 차가운 눈더미 속에서 무거운 쇠무덤으로 변해버렸다.

방벽 위에서 이 장엄한 광경을 지켜보던 일리리아의 영지민들과 기사들은 터져 나오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오! 공녀님께서 바람을 다스리신다!"

"공작가의 그 무시무시한 군대를 손쉽게 무찌르셨어!"

영지민들의 눈에는 엘리시아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은빛의 구원자처럼 보였다. 가문의 핍박 속에서 늘 숨죽여 울어야 했던 작은 아이가, 이제는 거대한 침략자들을 한 손으로 조율하여 영지를 수호하는 당당한 주인으로 우뚝 선 것이었다.

엘리시아는 멈추지 않았다. 이번 전투의 승리에 쐐기를 박고, 영지민들이 더 이상 공작가의 위협에 떨지 않도록 완전한 아늑함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녀는 품속에서 카일런의 배지를 꽉 쥔 채, 온 힘을 다해 영혼의 조율관 능력을 끌어올렸다.

"보레아스, 이 땅의 중심까지…… 우리의 맑고 깨끗한 숨결을 넓게 펼치자."

그녀의 목소리가 투명한 파동이 되어 일리리아의 넓은 대지로 퍼져나갔다.

스아아아아-.

검붉고 칙칙하게 오염되어 있던 영지의 중심부 땅들이 눈부시게 하얗고 푸르스름한 정화의 막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정령들의 축복이 담긴 달콤하고 싱그러운 정화의 보호막이 영지 전체를 감싸 안으며, 침입자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단단한 은빛 방패를 완성해 냈다.

마침내 일리리아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완벽하게 정화된 그들만의 따스한 보금자리로 거듭난 것이었다.

"우와아아아아!"

"일리리아 만세! 공녀님 만세! 카일런 님 만세!"

대지가 살아나고 적들이 패퇴하자, 영지민들의 뜨겁고 향긋한 환호성이 은빛 고원 전체를 가득 메웠다. 카일런 역시 벅찬 감동이 서린 눈빛으로 엘리시아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다가가려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찬란한 승전의 환성 속에서, 엘리시아의 작은 어깨가 가볍게 들썩였다.

"하아……."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려 했으나, 이내 허파 깊숙한 곳에서부터 딱딱하고 차가운 얼음이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다. 은빛 대지를 너무 넓게 정화한 탓에, 정령과의 동화율이 한계를 넘어 치솟아 버린 것이었다.

두근. 두근.

그녀의 귓가를 맴돌던 심장의 고동 소리가 기괴할 정도로 느려지더니, 이내 뚝 멈추어 버렸다.

"……엘리시아?"

카일런의 다급한 외침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엘리시아의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 위로, 가차 없고 차디찬 성에가 순식간에 꽃망울을 터뜨리듯 뒤덮였다. 그녀의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푸른 서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을 꽁꽁 얼려가기 시작했다.

스르륵, 힘없이 감기는 그녀의 시야 너머로 경악으로 물든 카일런의 붉은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비쳤다. 엘리시아는 차갑고 깊은 어둠 속으로, 정령의 잠이라는 가혹한 나락 속으로 속절없이 추락해 갔다.

"엘리시아!"

카일런의 갈라진 비명이 은빛 협곡의 매끄러운 절벽에 부딪혀 서글프게 부서졌다. 비틀거리는 그녀의 가냘픈 몸이 차가운 땅에 닿기 바로 직전, 카일런의 단단하고 듬직한 팔이 벼락처럼 뻗어 나와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그의 가슴에 닿은 엘리시아의 몸은 마치 갓 피어난 하얗고 가녀린 얼음꽃처럼 차갑고 투명했다. 뺨에 내리앉은 뽀얀 서리는 그녀의 고결한 이목구비를 더욱 시리도록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안 돼, 절대 안 된다. 제발 정신을 차려다오, 엘리시아!"

카일런은 가죽 장갑을 거칠게 벗어던지고, 자신의 온기가 가득한 두 손으로 그녀의 차가운 뺨을 소중하게 감싸 쥐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묵직하고 따스한 불씨의 마나가 그녀의 얼어붙은 살결 속으로 부드럽게 흘러들었지만, 이번 가사 상태의 깊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했다.

"삐이이이-!"

엘리시아의 머리맡을 맴돌던 태초의 바람 정령 보레아스가 슬픈 비명을 지르며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 주변에 모여들던 아기 바람 정령들도 저마다 작은 날개를 파르르 떨며, 엘리시아의 차가운 손가락끝에 자신들의 몽글몽글하고 깨끗한 숨결을 불어넣으려 애썼다. 그러나 정화의 범위가 너무나도 광활했던 탓인지, 그녀의 몸을 휘감은 파란 서리는 카일런의 뜨거운 온기마저 하얗게 잠식해 버릴 듯한 기세로 번져나갔다.

그의 단단한 손등 위로도 파르스름한 얼음 결정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살을 에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카일런은 오히려 그녀를 더욱 품에 세차게 끌어안으며 자신의 뜨거운 심장을 그녀의 가슴팍에 밀착시켰다.

"내 온기를 가져가라, 엘리시아. 제발, 나를 두고 혼자 어둠 속에 잠들지 마라."

그의 애절한 외침에 반응하듯, 엘리시아의 품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금이 가고 차갑게 얼어붙은 푸른 씨앗이 갑자기 기이한 반응을 보였다. 카일런의 뜨겁고 순수한 온기와 엘리시아의 차가운 정령 마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씨앗의 갈라진 틈새 사이로 달콤하고 영롱한 인디고 빛깔의 빛무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온 것이다.

그것은 마치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고 마침내 움트는 봄의 첫 숨결처럼 신비롭고 향긋한 기운이었다. 그 미약한 빛 한 줄기가 서서히 엘리시아의 얼어붙은 심장 부근을 따스하게 감싸 안으며, 그녀의 동화율이 더 이상 치솟지 않도록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하지만 기적 같은 온기도 잠시였다.

쿠구구구구-!

멀리 국경 방벽 너머, 은빛 고원의 끝자락에서 대지를 찢어발기는 듯한 불길하고 무거운 진동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방금 전 선발대를 무너뜨렸던 평화로운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저 멀리서 밀려오는 어둠은 차원이 다른 거대한 절망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카, 카일런 님! 저곳을 보십시오!"

방벽 위에서 경계를 서던 부단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서쪽 지평선을 가리켰다.

눈보라가 걷힌 검푸른 하늘 아래로, 수십 마리의 거대한 흑마가 이끄는 칠흑 같은 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마차 위에는 기괴하게 꼬인 검은 덩굴 모양의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 얹혀 있었다. 그것은 정령들의 맑은 숨결을 강제로 흡수하여 타락시키는 로웰 가문의 금단 유물, '정령 한계 수집기'의 본체였다.

그리고 그 마차의 정중앙, 오만하고 냉혹한 기운을 풍기며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로웰 공작가주, 레오나르도 로웰이었다.

"도망친 도구 녀석이 제법 영악한 짓을 해놓았군."

레오나르도의 차갑고 잔인한 목소리가 마법으로 증폭되어 온 영지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검은 수집기가 기분 나쁜 기계음을 내며 붉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 전 엘리시아가 온 힘을 다해 넓혀놓았던 영지의 푸르고 싱그러운 정화의 보호막이, 마치 찢겨 나가는 비단처럼 맥없이 흔들리며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안 돼…… 공녀님이 목숨을 걸고 만드신 보호막이……!"

영지민들이 절망적인 비명을 질렀다.

보금자리를 지키던 정갈한 마나가 순식간에 메말라가자, 품에 안긴 엘리시아의 입술 끝에서 푸르스름한 핏기가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녀의 영혼과 연결된 대지가 상처 입을 때마다, 그녀의 가사 상태는 더욱 깊고 치명적인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었다.

카일런은 얼어붙어 가는 엘리시아를 품에 안은 채,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국경의 방벽과 저 멀리 다가오는 가문의 거대한 군세를 바라보았다. 그의 뜨거운 눈동자에 전례 없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결연한 의지가 동시에 타올랐다.

지켜내야 할 영지와, 지금 당장 온기를 불어넣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단 하나의 소중한 존재.

사상 최악의 위기 속에서, 카일런의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기이할 정도로 뜨겁고 붉은 마나의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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