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전하! 사직의 도리를 지키소서! 이진을 처참하소서!”

연무장 바닥을 두드리는 대간들의 이마가 돌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수십 명의 사대부들이 일제히 엎드려 울부짖는 통곡 소리가 갓 발사된 화포의 잔향을 지워 버렸다. 붉은 천에 싸인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치켜든 김상헌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타협을 모르는 성리학적 원리주의자의 서슬 퍼런 살기가 서려 있었다.

광해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방금 전까지 화포의 가공할 위력에 취해 파안대소하던 왕의 얼굴에서 온기가 급격히 빠져나갔다. 신하들이 조정을 통째로 비우겠다는 협박. 이는 왕권을 뿌리째 흔드는 사대부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실리를 탐하면서도 언제나 제 목숨과 왕위를 먼저 계산하는 광해군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이진은 귀밑으로 흘러내려 턱 끝에 맺히는 붉은 피를 손등으로 훔쳐냈다. 방금 전 화포 주조의 한계를 계산하느라 머릿속 가상 시뮬레이터를 극한으로 가동한 대가였다. 고열로 달아오른 귓가에 웅웅거리는 이명이 가득했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흔들리는 광해군의 눈빛에 고정되어 있었다.

‘권력자는 이익보다 공포에 더 빠르게 반응한다.’

이진의 머릿속 연산 장치는 이미 김상헌의 도덕적 공세를 인간의 감정이 아닌, 정치적 자원의 손실률로 계산하고 있었다. 저들의 집단 사퇴는 광해군에게 행정 마비라는 실질적 공포를 준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 공포를 압도할 더 거대하고 구체적인 법리적 파멸의 공포를 왕의 손에 쥐여주어야 했다.

이진은 무릎을 꿇은 백관들의 틈을 지나 천천히 광해군을 향해 걸어갔다. 사대부들의 따가운 눈총과 욕설이 빗발쳤으나 그의 걸음걸이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전하.”

이진의 건조하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연무장의 통곡 소리를 뚫고 울렸다.

“사간원과 삼사의 신료들이 이토록 분개하는 것은, 소신의 미천한 기술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국가의 기강을 염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신 역시 조선의 신민으로서 법도를 어지럽히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참형에 처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옵니다.”

김상헌이 고개를 번쩍 들며 이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 간악한 놈이 감히 전하 앞에서 궤변을 늘어놓는구나! 네놈이 사대부의 사유지를 침탈하고 국가의 전매권을 독점하려 획책한 것이 법도를 어지럽히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이진은 김상헌의 분노를 완전히 무시한 채, 광해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전하, 소신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사옵니다. 다만 천하의 대법(大法)인 대명률(大明律)과 우리 조정의 헌장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엄격함을 믿을 뿐입니다. 대명률 형서(刑書) 병율(兵律) 편에 명시된 법조를 상기해 주시옵소서.”

‘대명률’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엎드려 있던 정인홍과 이이첨의 눈썹이 동시에 꿈틀했다.

이진은 낭독하듯 율법의 조문을 읊조렸다.

“‘국가의 허가 없이 사사로이 군기(軍器)를 주조하거나, 철광과 초석을 불법으로 사장(私藏)하여 유통하는 자는 모반(謀叛)에 준하여 다스린다’ 하였습니다. 또한 공율(工律)의 규정에 따르면, ‘조정의 병장기를 제조하는 가마 외에 사적인 가마를 세워 야철을 행하고 이를 군기시의 규격과 다르게 개주(改鑄)하는 자는 장(杖) 일백에 처하고 그 가산을 몰수한다’고 명시되어 있사옵니다.”

광해군의 눈빛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해졌다. 신경증적인 왕의 두뇌가 이진이 던진 율법의 칼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이진, 네가 지금 대명률을 들어 조정의 신료들을 겁박하는 것이냐?”

광해군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겁박이 아니옵니다, 전하. 소신은 오직 법문의 명백함을 아뢸 뿐입니다. 만일 조정의 신료들 중 이 대명률의 엄한 법조를 어기고, 뒤로는 사사로운 가마를 지어 무기를 만들며, 군기시에 조잡한 동철을 납품하여 폭리를 취한 자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나라를 망치는 진정한 패륜이 아니겠습니까?”

이진의 시선이 슬그머니 이이첨의 수하이자 도접장인 길준, 그리고 대북 세력의 영수 정인홍의 가신들을 향했다. 그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가는 것을 이진은 놓치지 않았다.

“전하! 이 간신이 지금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조정의 기강을 흔들고 있사옵니다!”

김상헌이 다시 한번 목청을 높였으나, 광해군은 이미 손을 들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왕의 눈에 서린 탐욕과 의심의 빛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번뜩였다.

“그만하라.”

광해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선은 이진의 귀에서 흘러내린 피와, 그가 제시한 대명률의 칼날 위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의 화포 시연은 이것으로 마치겠다. 이진이 제기한 대명률의 조문과 백관들의 상소는 편전에서 엄히 따져 물을 것이다. 사흘 뒤, 편전에서 친국(親鞫)을 열어 진실을 가릴 것이니 백관들은 준비하라.”

왕의 어가가 연무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사대부들은 이진을 향해 저주 어린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이진은 그들의 눈빛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사흘 뒤에 벌어질 법리적 암투의 체스판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

야심한 밤, 군기시 야철 가마터는 사방이 고요했다. 낮의 소란함은 가라앉았지만, 가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석탄 연기와 붉은 열기는 여전히 가마터의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이진은 가마터 한편에 마련된 허름한 서재에서 책상 위에 서태린의 아비가 남긴 낡은 일지를 펼쳐 들고 있었다. 책장 곳곳에 검붉은 쇳물 자국과 기름때가 묻은 그 일지는 조선 야철의 한계와 절망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었다.

이진은 일지의 특정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평안도 영변의 철은 강도가 높으나 불에 달구면 유리처럼 깨져 나가니, 이는 필시 마귀가 씐 탓이다. 아무리 백탄을 더하고 가마를 높여도 쇳물은 똥철이 되어 굳어버릴 뿐이다. 영변의 철광은 저주받은 땅이다…]

“마귀가 아니라 유황(S)이다.”

이진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앞에 가상 시뮬레이터의 녹색 반투명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영변 철광석의 성분 분석표가 뇌리 속에서 실시간으로 스크롤되었다.

[철(Fe): 62.4%] [황(S): 3.8% - 한계치 초과] [인(P): 1.5%] [규소(Si): 2.1%]

조선의 야장들은 온도를 올리는 데만 급급해 탈황 공정의 원리를 알지 못했다. 온도가 올라갈수록 철 속의 황은 더욱 단단히 결합하여 무쇠를 극도로 취약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영변 철광이 버려진 진짜 이유였다.

‘해법은 간단하다.’

이진은 머릿속에서 화학 반응식을 도출해 냈다.

[FeS + CaO -> FeO + CaS]

황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슬래그를 형성해 황을 흡수할 강한 염기성 물질이 필요했다. 조선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염기성 물질은 바로 소석회(水酸化石灰), 즉 석회석을 구워 만든 가루였다. 쇳물이 녹아 흐르는 고온의 가마 안에 적정 비율의 소석회를 투입하면, 황은 칼슘과 결합하여 가벼운 석고 성분의 슬래그가 되어 쇳물 위로 떠오르게 된다. 그것을 걷어내기만 하면 영변의 불량 무쇠는 순식간에 불순물이 제거된 고순도의 강철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간단한 공식 하나를 몰라 수많은 야장들이 목숨을 잃고 귀양을 갔군.”

이진이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순간, 서재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이진 나리!”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서태린이 숨을 헐떡이며 들어섰다. 그녀의 품에는 붉은 비단으로 감싼 두꺼운 서책과 몇 장의 두루마리가 안겨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극도의 흥분과 긴장으로 빛나고 있었다.

“가져왔습니다. 나리가 말씀하신 대로 정인홍의 가신들이 은밀히 운영하던 사가 가마터의 비밀 장부와 장인들의 명부입니다.”

이진은 일지를 덮고 서태린이 건넨 서책을 받아 들었다. 서책을 펼치자, 사적으로 유통된 사강(私鋼)의 양과 이를 통해 주조된 무기들의 규격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어떻게 구했지?”

“아버지를 따르던 가마터 장인들 중에 정인홍의 사가 가마로 끌려갔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야반도주하며 챙겨온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군기시의 장인들을 돈으로 매수해 데려가고, 조정의 백탄을 빼돌려 사사로이 조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서태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이진의 손을 잡으며 간절하게 말했다.

“이것이면 정인홍과 그 일파들을 단숨에 역모로 엮어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사지로 몰았던 그 자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줄 수 있어요.”

이진은 서태린의 떨리는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손은 야철 작업으로 인해 굳은살이 박이고 잔상처가 가득했다. 이진의 인지 구조에는 인간의 감정을 공유하는 회로가 결여되어 있었지만, 이 순간 서태린이 보여준 헌신과 신뢰가 자신에게 가장 유용한 가치를 지닌 부품이라는 사실만큼은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잘했다, 서태린. 이것으로 사흘 뒤 편전에서 쓰일 사냥개의 이빨이 완성되었다.”

이진의 차가운 음성에 서태린은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단순한 동료애를 넘어선, 가혹한 생존의 전장에서 맺어진 완벽한 신뢰가 흐르고 있었다.

***

서태린이 나간 후, 이진은 홀로 남아 본격적인 연산에 들어갔다.

그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머릿속의 가상 주조 시뮬레이터가 급격히 구동되기 시작했다.

‘정인홍 일파가 사사로이 만든 사강(私鋼) 조총의 구조를 분석한다.’

뇌세포가 급격히 활성화되며 체온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듯이 꿈틀거렸고, 귓가에서 다시 한번 붉은 피가 배어나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혈(耳血)의 고통이 엄습했으나 이진은 연산을 멈추지 않았다.

가상 공간 속에서 정인홍 일파의 사가 조총이 3차원 입체 도면으로 해체되었다.

‘그들이 사용한 철은 영변의 무쇠가 아니다. 황 성분은 적으나, 제련 온도가 1,100도에 머물러 탄소 함유량이 극도로 높은 선철(Cast Iron)이다. 탄소량이 3.5%를 초과하여 경도는 높으나 충격에 극도로 취약하다. 이 철로 소총을 만들 경우, 탄환을 밀어내는 화약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약실이 파열된다.’

이진은 이이첨의 자금줄인 도접장 길준이 군기시에 납품했던 부실 동철 장부(4화 복선)와 정인홍 일파의 사강 조총 제조 방식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도접장 길준은 군기시에 납품할 고품질의 동과 철을 빼돌려 정인홍의 사가 가마로 보냈고, 그 대가로 정인홍 일파는 군기시의 야철 기술과 인력을 제공받았다. 그리고 군기시에는 황과 인이 가득한 영변의 쓰레기 철을 대신 채워 넣었다. 이들은 국가의 군기(軍器)를 고의로 망가뜨리고 사적으로 군사력을 축적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비리가 아니었다. 대명률의 잣대를 들이대면 명백한 ‘역모’이자 ‘군기 위조 대죄’였다.

이진은 머릿속에서 법리적 그물을 촘촘하게 짜 내려갔다.

사대부들은 성리학적 명분과 예법을 무기로 자신을 탄핵하려 하지만, 이진은 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중국의 대법인 ‘대명률’의 조문을 칼날로 삼아 그들의 목을 벨 것이다.

‘온도와 성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법전의 문구 역시 타협하지 않는다.’

이진은 밤새도록 시뮬레이터를 돌려 사강 조총의 결함 분석 데이터와 대명률의 적용 경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렬해 냈다. 동이 터 올 무렵, 그의 귀에서 흐르던 피는 검붉게 굳어 있었고,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고 맑게 빛나고 있었다. 사대부들이 준비한 ‘붉은 뗏목’을 통째로 불살라 버릴 거대한 함정이 완성된 것이다.

***

사흘 뒤.

창경궁 명정전(明政殿)의 거대한 문이 활짝 열렸다.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조정 마당에는 삼사의 대간들과 대북 세력의 백관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도열해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오늘 반드시 이진을 처단하고 왕실의 전매권 기도를 꺾어놓겠다는 결사적인 의지가 서려 있었다.

편전 안, 높은 어좌에 앉은 광해군의 얼굴은 수척해 보였으나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왕의 좌우로는 영수 정인홍과 이이첨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서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김상헌이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 있었다.

“사간원 사간 김상헌은 앞으로 나오라.”

광해군의 엄한 목소리가 편전의 침묵을 깨뜨렸다.

김상헌이 한 걸음 걸어 나와 홀을 쥐고 허리를 숙였다.

“전하, 오늘 이 자리에서 간신 이진의 죄상을 명백히 밝히고, 사직의 기강을 바로잡으셔야 하옵니다. 이진은 요망한 사술로 전하의 눈을 가리고, 사대부들의 정당한 권리를 강탈하려 하였으며, 조선의 도리를 저버린 패륜을 저질렀사옵니다.”

“패륜이라…”

광해군이 턱을 괴며 이진을 바라보았다.

이진은 편전 중앙에 서서 태연하게 상소문 뭉치와 서태린이 가져온 비밀 서책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과 귀밑의 굳은 핏자국은 편전의 긴장감을 더해주었다.

“이진, 너는 김상헌의 탄핵에 대해 스스로 변명할 말이 있느냐?”

이진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발소리가 대리석 바닥에 규칙적으로 울렸다.

“전하, 소신은 변명하지 않사옵니다. 다만, 오늘 이 자리에서 조선의 법도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자 할 뿐입니다.”

이진은 품에서 서책을 꺼내 들어 올렸다.

“여기, 사대부의 예법과 도리를 그토록 부르짖는 대북 세력의 영수 정인홍 대감의 가신들과, 이이첨 대감의 수하들이 뒤로 저지른 참혹한 대죄의 증좌가 있사옵니다.”

그 순간, 편전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정인홍과 이이첨의 안색이 일시에 굳어졌고, 대간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진의 냉혹한 시선이 백관들을 훑었다. 수백 년간 성리학적 명분 아래 숨어 자신들의 이권을 탐하던 사대부들의 심장을 향해, 이진은 준비한 대명률의 올가미를 던질 준비를 마쳤다.

어전의 문이 무겁게 닫히며, 피의 친국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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