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간원 대사간 김상헌의 주도로 작성된 백관들의 연명 상소는 이틀 만에 도성 안의 모든 사림을 뒤흔들며 어전으로 들어찼다. 상소문의 골자는 명백했다. 이진이 군기시를 사사로이 장악하여 야철의 이권을 왕실로 귀속시킨 행위가 사대부의 사유재산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성리학적 도덕률을 파탄 내는 잡술에 불과하다는 규탄이었다.
“군기시 판관 이진의 목을 베어 저잣거리에 내걸고, 사악한 가마터를 당장 철폐하소서!”
편전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 내관의 날카로운 낭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좌에 앉은 광해군의 눈빛은 극도로 예민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왕권을 위협하는 신하들의 세력 다툼 속에서, 그는 이진이라는 기괴한 기술관료의 쓰임새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백관이 한목소리로 궐기하는 상황은 군주에게도 거대한 정치적 압박으로 다가왔다.
“피고 이진은 앞으로 나오라.”
광해군의 서늘한 어명이 떨어지자, 편전 한가운데로 이진이 걸어 나왔다. 그의 귀밑동에는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붉은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어젯밤 내내 머릿속의 가상 주조 시뮬레이터를 가동하여 평안도 철광석의 조제 배합비를 수백만 번 연산한 대가였다. 뇌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짓눌렀으나, 그의 안색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
“이진, 네가 감히 주상의 총명을 가리고, 법전의 자구를 왜곡하여 사대부들의 광산과 은광을 강탈하려 하였느냐!”
김상헌이 먼저 호통을 치며 한 걸음 나섰다. 그의 푸른 관복 자락이 격렬한 기세로 흔들렸다.
“무릇 나라는 인의(仁義)로 다스리는 법이거늘, 너는 오직 쇠붙이와 구리의 이익만을 논하며 조정의 재정을 장사꾼의 셈법으로 더럽혔다. 어찌 이 가증한 패륜을 묵과할 수 있겠는가!”
조정 대간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진의 뒷덜미에 꽂혔다. 그러나 이진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지도 않은 채, 품 안에서 두꺼운 지리 서판과 누런 한지 꾸러미를 꺼내 들었다. 사대부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도덕적 훈계에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눈빛이었다.
“사간원 대사간께서는 인의를 논하시나, 소신은 오직 군기시의 수치와 병참의 실태만을 논하고자 합니다.”
건조하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편전의 대리석 바닥을 긁었다.
이진은 머릿속 시뮬레이터가 도출해 낸 평안도 영변 일대의 광물 분포도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서판을 바닥에 펼쳐 놓았다. 그 모습은 가마터 구석에서 서태린의 아비, 고(故) 서병덕이 남긴 낡은 일지를 발견했을 때 확신했던 단서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있었다.
당시 서병덕의 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절망적인 기록이 서려 있었다. ['평안도 영변의 무쇠는 불 속에 들어가면 유황의 독기가 살을 파고들듯 퍼지나니, 아무리 탄을 더하고 메질을 한들 쇳물이 식으면 유리처럼 바스러지니라. 이 독을 빼지 못하면 조선의 쇠는 영원히 똥철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조선의 전통 야철 장인들은 그것을 ‘유황의 독기’라 부르며 하늘의 저주로 여겼다. 하지만 이진에게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단순한 화학적 불순물, 즉 황(S)과 인(P)의 과다 함유에 따른 적열취성(Hot-shortness) 현상에 불과했다.
“이 서판을 보시옵소서, 전하.”
이진이 광해군을 향해 서판을 가리켰다.
“평안도 영변과 경원에 매장된 철광석은 그 양이 수백만 근에 달하오나, 조정은 지난 삼십 년간 이곳의 철을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쇳물에 섞인 황의 농도가 1.2푼을 초과하여, 열을 가하면 조총의 총열이 먼저 터지고 화포의 포신이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대간들께서 그토록 신성시하는 사대부들의 사적 야철지에서 생산된 무쇠의 구할이 바로 이 불량 무쇠입니다.”
“무슨 해괴한 소리냐! 야철의 성패는 하늘의 기운과 장인의 정성에 달린 것이거늘, 감히 요사스러운 수치로 조정을 현혹하려 드느냐!”
동부승지 한 사람이 삿대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진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하늘의 기운이 아니라 화학의 법칙입니다. 영변의 무쇠가 부스러지는 것은 장인의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마 내부의 온도가 고작 천일백 도에 머물러 황을 분리해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태린의 아비가 남긴 실패 기록을 추적했고, 마침내 그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이진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소석회(消石灰), 즉 수산화칼슘을 고온의 가마에 투입하여 슬래그(Slag)를 형성시키는 법입니다. 화력을 천삼백 도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벽돌 송풍 가마를 건설하고, 쇳물의 산성도를 조절하면 유황 성분은 석회와 결합하여 찌꺼기로 분리되어 떠오릅니다. 그리하면 영변의 똥철은 대명(大明)의 상등 철에도 뒤지지 않는 고강도 연철로 거듭나게 됩니다.”
편전 안이 일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대간들은 ‘소석회’니 ‘슬래그’니 하는 생전 처음 듣는 이질적인 어휘의 나열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김상헌이 이마를 찌푸리며 엄하게 물었다.
“네가 말하는 그 잡술이 참이라 한들, 그것이 사대부의 광산을 강탈하여 왕실의 전매로 묶어야 할 명분이 되지는 않는다! 사유재산을 강탈하는 것은 폭정의 시작이다!”
“강탈이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입니다.”
이진이 김상헌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는 인간적인 감정이 배제된, 마치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 같은 냉혹함만이 서려 있었다.
“현재 조선의 백탄(숯) 가격은 임진년 이전에 비해 다섯 배가 올랐습니다. 사대부들이 사적으로 은광과 철광을 개발하며 인근 산림을 무분별하게 벌채한 탓입니다. 철 한 근을 얻기 위해 백탄 열 근을 태우는 비효율적인 생산 방식으로는, 수년 뒤 국경을 넘어올 후금의 기갑 군단을 막아낼 조총 수만 자루를 절대 양산할 수 없습니다. 황을 제거하는 기술과 석탄, 철광석의 조달권을 국가가 독점 통제하지 않는다면, 조선은 무기를 만들기도 전에 스스로 땔감이 부족해 망할 것입니다.”
“이, 이 오만한 기술쟁이 놈이 감히 국가의 대계를 논하다니!”
김상헌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도덕과 명분, 의리만을 숭상하던 사대부들에게 이진이 던진 구체적인 수치와 경제적 인과관계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대한 지적 폭력과 같았다. 은광과 철광을 소유한 대북 세력의 부패한 이권망이 이진의 건조한 보고서 앞에서 낱낱이 발가벗겨지고 있었다.
광해군은 보좌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입가에 묘한 흥미를 담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사대부들의 이권을 뜯어내고 강인한 친위 군권을 쥐고자 했던 그의 갈망에 이진의 제안은 완벽한 해결책이었다.
“과연 그 황을 제거한 강철이 네 말대로 단단하단 말이냐?”
왕의 날카로운 질문에 이진이 고개를 들었다.
“이미 군기시 외곽에서 영변의 철광석을 소석회 공법으로 정련하여 주조한 시험포를 완성하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 편전 밖 훈련원 연무장에서 사격 준비를 마치고 전하의 윤허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 편전 문밖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군기시 장인들의 신호가 전해졌다. 서태린이 편전 밖에서 이진이 건네받은 야철 결과물을 실시간 시험포로 장착하여 사격 시험 준비를 완수했다는 신호였다.
“허면 당장 검증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광해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관들은 모두 연무장으로 향하라. 이진의 기술이 사술인지, 아니면 조선을 구할 신기술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다.”
왕의 어명에 대간들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웅성거리며 편전을 나섰다. 김상헌은 주먹을 움켜쥔 채 이진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사대부의 도덕적 권위가 단지 ‘철의 성분’과 ‘수치’라는 잡술에 밀려 숨을 죽여야 하는 현실에 참담한 분노가 치밀었다.
훈련원 연무장 한가운데에는 둔중한 검은빛을 뿜어내는 신형 화포 한 문이 거치되어 있었다. 전통적인 조선의 동포(銅砲)와 달리, 이진이 내화 벽돌 가마에서 정련된 연철로 주조한 고압 저항식 화포였다. 포신 표면에는 거친 기포나 균열 흔적이 전혀 없이 매끄러운 규격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포신 뒤편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 있던 서태린이 이진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녀의 단단한 눈빛은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장전하라.”
이진의 나지막한 명령에 장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규격화된 약포(藥包)가 포구로 밀려 들어갔고, 뒤이어 주철로 정밀하게 깎아낸 원형 포탄이 장전되었다.
대간들은 멀찍이 물러서서 냉소적인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영변의 똥철로 만든 포라니, 불을 붙이는 순간 포신이 사방으로 찢겨 나갈 것이다.”
“기술쟁이의 건방진 목숨이 오늘로 끝나는구나.”
그러나 이진은 그들의 수군거림을 무시한 채, 머릿속 시뮬레이터로 포신의 응력 분포와 화약의 팽창 압력을 최종적으로 재계산했다. 귓가에서 다시 한번 삐 소리가 나며 약한 통증이 스쳤으나, 계산 값은 완벽한 녹색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방포(放砲)!”
서태린이 횃불을 도화선에 갖다 댔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불꽃이 빨려 들어간 순간, 하늘을 뒤흔드는 폭음이 연무장을 강타했다.
쾅──!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포구에서 붉은 화염과 자욱한 백색 연기가 유성처럼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오백 보 밖에 세워진 두꺼운 철갑 표적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연무장 바닥에 박살이 났다.
포신은 터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동을 이겨내고 제자리에 굳건히 서서, 붉은 열기만을 아지랑이처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연무장에 모인 백관의 안색이 일제히 흙빛으로 변했다. 조총의 몇 배에 달하는 화약 압력을 견뎌낸 것은 진정 영변의 불량 무쇠로 만든 포가 맞단 말인가. 압도적인 물리적 힘의 격차 앞에서, 그들이 평생 쌓아 올린 주자학적 명분론은 한순간에 초라한 껍데기로 전락했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광해군이 파안대소하며 손뼉을 쳤다.
“과인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 이진의 야철 공법은 사술이 아니라 조선의 사직을 지킬 보배다. 이제 평안도 일대의 철광과 초석의 유통을 왕실 전매로 지정하고, 이진에게 그 전권을 위임하…”
“아니 되옵니다, 전하!”
왕의 교지가 채 끝나기도 전에, 김상헌이 연무장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비장하게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분노를 넘어선, 목숨을 건 결사적인 의지가 서려 있었다.
“이진의 기술이 비록 뛰어나다 한들, 그 수단이 사대부의 이권을 강탈하고 나라의 도리를 저버리는 패륜이라면 이는 나라가 망하는 길입니다! 전하께서 이 간신의 말에 현혹되어 전매권을 허락하신다면, 소신을 비롯한 삼사의 백관과 팔도의 유생들은 조정의 모든 직을 내려놓고 낙향할 것입니다!”
김상헌이 품 속에서 붉은 천으로 감싼 상소문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것은 이진을 처단하지 않으면 조선의 모든 사림이 조정 출사를 거부하겠다는, 조정 마비를 볼모로 잡은 ‘붉은 뗏목 상소(지부상소)’였다.
연무장의 대간들이 일제히 김상헌의 뒤를 이어 무릎을 꿇으며 통곡어린 외침을 더했다.
“전하! 사직의 도리를 지키소서! 이진을 처참하소서!”
갓 주조된 화포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조선의 지배 사상 전체가 이진의 목을 겨냥하며 거대한 장벽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광해군의 눈빛이 다시 한번 차갑게 굳어갔고, 이진은 피가 흐르는 귀를 훔치며 자신을 둘러싼 성리학의 거대한 파도를 무표정하게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