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이이첨의 가죽신 아래로 밟힌 잿가루가 바스러지며 서늘한 파열음을 냈다. 그의 손아귀는 가마터의 열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턱뼈를 죄어오는 힘은 뼈마디를 부러뜨릴 기세로 완강했다.

이진은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혈(耳血)의 비린 맛을 혀끝으로 느꼈다. 뇌 속의 연산 장치가 방금 전 주조 공정을 제어하느라 과열되어 관자놀이가 터질 듯이 박동하고 있었다. 시야가 붉게 번졌으나, 그의 영혼은 기묘할 정도로 정적에 싸여 있었다. 인지적 공감 능력이 결여된 그의 뇌는 공포 대신 눈앞에 선 권신(權臣)의 안면근육 수축 정도와 맥박의 빠르기를 관찰하고 있었다.

"제법 비방을 조정에 헌납하라 하셨습니까."

목구멍을 타고 기침과 함께 핏방울이 섞여 나왔으나, 이진의 어조는 기괴할 정도로 차분했다.

"대감께서 말씀하시는 '조정'이란, 주상전하를 뜻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대북(大北)의 사가(私家)를 뜻하는 것입니까?"

"이놈이 끝내 제 목숨줄을 모르는구나!"

이이첨의 뒤에 서 있던 도접장 길준이 칼자루를 반쯤 뽑아 들며 포효했다. 사병들의 철릭자락이 성난 파도처럼 일렁였다. 가마터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던 서태린이 침을 삼키며 이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이진의 시선은 이이첨의 미간에 고정되어 있었다.

"대명률(大明律) 형률(刑律) 직제조(職制條)에 이르기를, ‘조정의 병기 수급을 사사로이 가로채거나 그 제법을 사가에 은닉하는 자는 단형(斬刑)에 처한다’ 하였습니다. 또한 경국대전(經國大典) 병전(兵典)에는 군기시의 야철 기술은 오직 어명에 의해서만 관장된다 명시되어 있지요."

이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대감께서 지금 저에게 제법을 넘기라 협박하시는 것은, 주상전하의 군권을 대북의 영수이신 대감의 가문 아래 두겠다는 역모의 다짐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네놈이 세바닥을 놀려 내 목을 치려 드는구나. 내 당장 이곳을 역당의 소굴로 쓸어버려도 주상께서는 나를 탓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이첨의 눈빛이 살기로 번뜩였다. 그는 참으로 그럴 수 있는 자였다. 광해군의 왕위를 지탱하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바로 자신이었으므로.

"과연 그러실까요."

이진이 턱을 죄어오는 이이첨의 손목을 천천히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끝이 향한 곳은 가마터 서편, 백탄을 쌓아둔 어두운 창고의 그림자 속이었다.

"저기 짚더미 뒤, 썩은 가마가 무너진 틈새에 숨어 숨죽이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대감께서는 정녕 모르십니까? 귀총(耳聰)이 밝은 장인들은 이미 한 시진 전부터 저 그림자의 호흡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이이첨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진의 머릿속 시뮬레이터가 군기시 내부의 음향 반사 경로를 격자 모양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가마터의 높은 천장과 흙벽은 소리를 증폭시키는 천연의 공명통이었다. 백탄 창고 구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호흡음, 그리고 은밀하게 가죽을 비비는 소리. 그것은 조선 최고의 첩보 조직이자 왕의 친위대인 금위영(禁衛營) 무사가 착용하는 전립과 군화의 마찰음이었다.

"주상전하께서는 참으로 의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이진이 낮게 속삭였다.

"대감께서 군기시의 야철 가마를 사사로이 접수하려 하신다는 보고가 저 밀사의 입을 통해 과연 전하의 귀에 어떻게 들어갈 것 같습니까? '이이첨이 신형 총열의 주조법을 독점하여 사병을 기르려 한다'—이 한 문장이면, 전하의 광증(狂症)이 누구를 향해 폭발할지 대감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이첨의 손아귀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진의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의 참화 속에서 세자로서 분조를 이끌며 뼈저린 교훈을 얻은 군주였다. 대신들의 사적 군사력과 은밀한 무기 주조는 그가 가장 극도로 혐오하고 경계하는 역모의 징후였다. 만약 이이첨이 이진의 기술을 강탈하는 장면이 왕의 밀사에게 목격된다면, 그것은 대북 세력 전체의 몰락을 재촉하는 도화선이 될 터였다.

"네놈이... 감히 나를 덫에 걸었구나."

이이첨이 이를 갈며 손을 거두었다. 그의 소매 깃에 이진의 귀에서 묻어난 붉은 피가 얼룩져 있었다.

그때였다. 어두운 백탄 창고의 그림자가 갈라지며,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허리춤에는 왕실의 인장이 찍힌 마패와 금위영의 밀부(密符)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내는 이이첨을 향해 예의를 갖추어 고개를 숙였으나, 그 눈빛만큼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이판 대감, 주상전하의 밀칙(密勅)을 받드시오."

밀사가 품속에서 붉은 비단으로 감싼 서찰을 꺼내 들었다. 가마터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이첨 역시 옷자락을 정돈하며 엄숙하게 엎드렸다. 오직 이진만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핏물이 흐르는 귀를 훔치며 밀사의 서찰을 응시했다.

밀사가 낭독하는 왕의 교지는 잔인할 정도로 명료했다.

[군기시의 신형 야철 공방은 과인이 친히 관장할 것이니, 이조판서 이이첨은 군기시의 야철 행정에 관여하지 말라. 또한, 가마터를 지휘하는 기술 장인 이진과 그 수하들을 내수사(內需司)의 특별 보호 아래 두며, 사사로이 이들을 겁박하거나 기술을 유출하려 드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명률의 '장오죄(贓污罪)'와 '사무기주조죄(私武器鑄造罪)'를 물어 처단할 것이다.]

"전하..."

이이첨의 등덜미가 눈에 띄게 떨렸다. 그는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 분루를 삼켰다. 왕은 이미 이진이라는 사냥개의 목줄을 쥐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군기시를 장악하려던 대북의 계책이, 일개 기술쟁이의 법리적 그물과 기민한 정세 판단에 의해 완벽하게 분쇄당하는 순간이었다.

"신 이이첨, 성은이 망극하옵어 주상의 명을 받드나이다."

이이첨은 억지로 목소리를 짜내어 답했다. 그는 천천히 일어서며 이진을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 눈빛에는 당장이라도 이진의 사지를 찢어발기겠다는 극독(極毒)의 원한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법과 왕의 밀사라는 명분 앞에, 당대 최고의 권신조차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철수하라."

이이첨의 나지막한 명령에 도접장 길준과 보부상 사병들이 썰물처럼 가마터를 빠져나갔다. 가마터를 짓누르던 무거운 침묵이 걷히고, 오직 타오르는 화덕의 불꽃 소리만이 가마 안을 채웠다.

서태린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이진에게 다가왔다.

"살았습니다... 진 정랑, 우리가 살았습니다."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진의 표정에는 안도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굳어가는 것을 손끝으로 만지며 소리 없이 읊조렸다.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이제 겨우 판이 짜였을 뿐이다."

이진은 왕의 밀사에게 다가가 품속에서 미리 작성해 둔 두꺼운 상소문을 건넸다. 그것은 성리학적 도리학이나 군신의 의리를 논하는 일반적인 상소문이 아니었다. 표지에는 정갈한 글씨로 '군기 제강 및 광산 전매 수지서(軍器製鋼及鑛山專賣收支書)'라 적혀 있었다.

"이것을 전하께 전해주십시오. 전하께서 갈망하시는 절대적인 군권의 열쇠가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밀사는 묵묵히 서찰을 받아 품에 넣고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 * *

경복궁 편전(便殿)의 밤은 차디찬 정적에 잠겨 있었다.

광해군은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이진이 올린 상소문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있었다. 그의 신경질적인 손가락이 종이의 모서리를 거칠게 문질렀다.

상소문의 내용은 파격적인 것을 넘어 가히 혁명적이었다.

[...조선의 병기가 무력한 것은 군사들의 용맹이 부족해서가 아니요, 무기의 규격(規格)이 통일되지 않아 군량과 화약의 소모가 사사로이 낭비되기 때문입니다. 사대부들이 사적으로 소유한 야철 가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철물은 황(S)과 인(P)의 독성에 오염되어 십 발 중 세 발이 폭발하는 똥철에 불과하옵니다.

소신이 제안하옵는바, 평안도 영변의 철광과 삼남의 초석(硝石) 수급권을 오직 왕실의 '전매(專賣)'로 귀속시키소서. 사대부들의 사적 이권망을 차단하고, 규격화된 강철 총열과 화차를 양산하여 친위 영문(營門)을 재건하신다면, 후금의 철기병 십만이 몰려온다 한들 도성의 성벽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규격화... 그리고 전매권이라."

광해군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실소가 새어 나왔다.

이진의 상소문에는 유가(儒家)의 도덕이나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애민의 수사학이 단 한 구절도 없었다. 오직 철의 강도를 높이는 물리적 공식, 석탄과 목탄의 열량 대비 경제성 분석, 그리고 이를 통해 왕실이 독점할 수 있는 재정적 이익의 수치만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철저하게 차갑고, 소름 끼치도록 실용적인 서신이었다.

"사람을 부품으로 보고, 나라의 치안을 장사치처럼 계산하는구나. 참으로 패륜적이고도 유용한 놈이로다."

광해군은 이진이 지닌 인지적 결함—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채 오직 수치와 결과만을 도출해내는 그 공리주의적 광기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을 부르짖는 사대부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 삼전도의 치욕과 같은 미래의 전란을 막아낼 강력한 물리적 폭력, 즉 규격화된 신형 군대였다.

"이진을 내수사 야철 도제조(冶鐵都提調)로 임명하고, 영변 철광의 관리권을 그에게 독점 부여하라."

광해군이 어둠을 향해 낮게 명령했다.

"그가 내놓는 무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만약 쓸모가 다하거나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다면, 그때는 역모의 죄를 물어 사지를 찢으면 그만이니."

왕의 잔인한 독백이 편전의 문틈을 넘어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 * *

사흘 뒤, 평안도 영변 철광의 전매권과 군기시 야철 공방의 독점적 제강 권한이 이진에게 하사되었다는 어명이 조정에 선포되었다.

이는 조정의 권력 지형을 뒤흔드는 대격변이었다. 사대부들이 대대로 가문의 사노비들을 동원해 사사로이 운영하며 부를 축적해 오던 은광과 철광산의 이권이, 단 하룻밤 사이에 '왕실 전매'라는 이름 하에 몰수당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즉각 성리학적 명분과 예법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서인(西人)의 영수, 사간원 대사간 김상헌의 귀에 들어갔다.

김상헌의 사랑방에는 이미 수십 명의 대간(臺諫)들과 성균관 유생들이 모여 격앙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것은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도리학의 파탄입니다!"

한 젊은 사간원 정언이 바닥을 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근본도 모르는 기술쟁이 놈이 감히 법전을 들먹이며 주상의 눈을 가리고, 사사로운 잡술과 이익을 논하며 조정의 재정을 사유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맹자께서 이르시기를 '왕이 어찌 이익을 말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 하셨거늘, 이진이라는 자는 나라를 장사판으로 만들고 있사옵니다!"

김상헌은 묵묵히 차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굳게 다문 입술과 서리 맞은 듯한 눈빛에는 타협을 모르는 강직함이 서려 있었다.

"이진... 그자가 주조해 낸 신형 조총의 성능이 참으로 대단하다 들었다."

김상헌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방 안이 일순 조용해졌다.

"성능이 뛰어난 무기는 나라를 지킬 수 있을지언정, 도덕이 무너진 나라는 스스로 멸망하는 법이네. 임진년에 나라를 구한 것은 화포의 위력이 아니라, 대명(大明)에 대한 의리와 삼강오륜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의병들의 충절이었느니라."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수묵색 도포 자락이 매서운 바람에 휘날리듯 펄럭였다.

"잡술로 군주를 현혹하여 사대부의 이권을 빼앗고, 온 나라의 철을 독점하여 사사로운 병기를 만들려는 자는 간신(奸臣) 중의 간신이요, 묵가(墨家)의 사악한 무리다. 내 목이 날아갈지언정, 이 패륜적인 기술쟁이가 조선의 조정을 더럽히는 꼴은 눈뜨고 볼 수 없다."

김상헌이 붓을 들어 백지에 먹을 듬뿍 묻혔다. 그의 손끝에서 서슬 퍼런 글씨들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간원 대사간 김상헌 외 백관 연명 상소(百官聯名上疏)]

이진의 목을 베어 저잣거리에 내걸고, 그가 세운 사악한 가마터를 당장 철폐하라는 성리학자들의 피 끓는 격문이었다.

성리학적 의리와 명분을 앞세운 백관들의 거대한 연명 상소가 마침내 광해군의 어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진이 세운 규격화의 탑이, 조선을 지배하는 거대한 사상적 요새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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