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우우웅-!
가마 내부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진동은 단순한 노성(爐聲)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야수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질 때 내지르는 비명에 가까웠다.
붉게 달아오른 황토 벽돌의 틈새마다 퍼런 불꽃이 침을 뱉듯 뿜어져 나왔다. 가마를 단단히 죄고 있던 철제 띠가 팽팽하게 늘어나며 찌르르, 금속성의 파열음을 냈다.
"물러서라! 가마가 터진다!"
노련한 야철 장인 하나가 쇠가래를 내던지며 비명을 질렀다. 가마터에 모여 있던 인부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천삼백 도의 초고온에 도달한 쇳물과 고압의 가스가 분출되는 순간, 이 가마터는 사방 백 보 안의 모든 생명체를 태워 죽이는 화산이 될 터였다.
하지만 이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동공 속에서 가마 관측창의 백열광이 기괴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경고: 가마 내 산소 분압 급증. 백탄의 급격한 산화로 인한 내부 압력 4.5기압 돌파.] [구조적 붕괴 임계치까지 남은 시간: 28초.] [원인 분석: 하단 숯 통풍구의 배기 밸브(풍구) 미세 균열로 인한 대기 강제 유입. 환원 분위기 상실 및 CO 가스 급격 팽창.]
머릿속 시뮬레이터가 경보음을 울리며 뇌세포를 난도질했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이진의 오른쪽 콧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이어서 양쪽 귀에서 뜨거운 액체가 고막을 타고 뺨으로 번졌다. 이혈(耳血)이었다. 인간의 뇌 용량을 초과한 초고속 연산의 대가가 그의 육체를 사정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이진! 피해라! 가마 벽이 무너지고 있다!"
저 멀리서 서태린이 소리치며 달려오려 했으나, 가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풍이 그녀의 접근을 차단했다.
이진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처럼 가마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시야는 이미 붉은 피로 얼룩져 흐릿했지만, 시뮬레이터가 제시한 3차원 응력 분포도는 선명하게 눈앞에 떠 있었다.
'도망치면 끝이다.'
여기서 가마가 터지면 나흘 뒤 주상 앞에서 치러질 재시연은 불가능하다. 불량 조총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군기시 판관의 칼날에 목이 날아갈 것이다. 살아남아 후금의 기병대에 맞설 무기 공장을 세우겠다는 계획도, 조선의 기술을 혁명하겠다는 야망도 모두 이 가압 가마의 잔해 속에 묻히게 된다.
이진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나뒹구는 진흙 반죽 덩어리를 움켜쥐었다. 수분율을 극도로 낮추어 점성을 확보한 황토 점토였다.
"서태린! 하단 3번 송풍구의 우측 배기공을 보아라!"
이진이 쇠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기가 유입되고 있다! 저곳을 막지 않으면 환원 반응이 깨지고 가마는 폭발한다!"
"미쳤어? 그 앞은 지금 열기가 천 도가 넘어! 살이 삼화(三化)되어 문드러질 거다!"
"비율을 계산했다. 내화 장갑을 끼고 3초 이내에 차단하면 2도 화상 수준에서 끝난다. 움직여라!"
이진의 목소리에는 인간적인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오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냉혹한 수식만이 존재했다. 그는 스스로 앞장서서 가마 하단, 붉은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풍구 앞으로 몸을 던졌다.
화끈한 열기가 얼굴 가죽을 그슬렸다. 눈썹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젖은 점토를 풍구의 균열 부위에 사정없이 밀어 넣었다.
치이이익!
구운 벽돌과 젖은 점토가 만나며 자욱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이진의 손등 가죽이 순식간에 붉게 부풀어 오르며 진물이 터졌으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체중을 실어 점토를 다져 넣었다.
[배기공 차단율 70%... 85%... 100%.] [가마 내 압력 강하 시작. 4.1기압... 3.5기압. 구조적 안정성 회복.]
가마를 감싸고 있던 비명 지르던 철제 띠가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퍼런 가스의 분출이 멈추고, 가마 내부의 소음은 다시 묵직하고 일정한 울림으로 돌아왔다.
사투가 끝난 순간, 이진은 무릎을 꿇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귀와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가마터의 붉은 흙바닥을 적셨다.
"이 바보 같은 인간아!"
바람 같은 기척과 함께 서태린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부축했다. 그녀는 품에서 거친 무명 수건을 꺼내 이진의 얼굴에 엉겨 붙은 피와 땀을 거칠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은 투박했으나 묘한 떨림이 서려 있었다.
"사람 목숨이 쇳물보다 가볍단 말이냐? 어찌 그리 제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든단 말인가!"
이진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 서태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분노와 함께, 기이할 정도로 차가운 이 사내에 대한 연민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었다.
인간을 오직 병기 제조의 소모품이자 수식의 일부로만 여기는 이진의 냉정함. 그 철저한 공리주의적 태도가 오히려 서태린에게는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자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비쳤던 것이다.
"손실률을 계산했을 뿐이다."
이진이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죽거나 불구가 될 확률은 4.2%. 하지만 가마가 폭발하여 재시연에 실패하고 참수당할 확률은 100%다. 어떤 선택이 더 합리적인지는 자명하다."
"수식... 그놈의 수식 소리 좀 그만해라! 당신 눈에는 사람의 목숨도 가마에 들어가는 백탄 한 줌으로 보이는가?"
"그렇다."
이진의 대답은 단호했다.
"조선이라는 거대한 가마가 무너지기 직전이다. 수년 뒤 북방의 철기군이 압록강을 넘어오면, 이 나라의 백성 수십만이 백탄처럼 타서 사라질 것이다. 그것을 막으려면 지금 우리 스스로가 가마 속의 탄환이 되어야 한다."
서태린은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그의 말은 지독할 정도로 비인간적이었으나,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무겁고 가혹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수건을 꽉 쥐었다가, 이진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마저 닦아주었다.
"가마가 안정되었다. 이제 출탕(出湯)이다."
이진이 몸을 일으키며 가마의 출탕구를 가리켰다.
가마터 한편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군기시 판관 김자겸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이번 야철 시연이 실패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진이 실패해야만 불량 조총의 모든 책임을 그에게 덮어씌우고, 대북(大北) 세력의 거두인 이이첨과 결탁하여 빼돌린 백탄과 양질의 동철 횡령 건을 영원히 묻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판관 나리, 어찌합니까? 가마가... 터지지 않았습니다."
수하 관리가 기겁하며 속삭였다. 김자겸은 이를 갈았다.
"기다려라. 가마가 터지지 않았다 한들, 평안도 영변의 똥철로 만든 쇳물이다. 황(S)과 인(P)이 가득한 쇳물로 총열을 주조해 봐야 식으면서 사정없이 갈라질 터. 결국 무기로 쓸 수 없는 쓰레기가 나올 뿐이다."
그의 말은 조선 야철의 상식이었다. 영변 철광석은 유황 성분이 너무 높아, 아무리 가열해도 잘 깨지는 무쇠(선철)밖에 얻을 수 없었다. 주조 과정에서 식을 때 발생하는 균열인 수축공을 해결하지 못하면 총열은 사격 시 폭발하는 흉기가 될 뿐이었다.
그러나 이진의 머릿속 시뮬레이터는 이미 화학적 기적을 완성하고 있었다.
[가마 내부 온도 1,320도 유지 완료.] [투입된 소석회(산화칼슘)와 유황의 반응 완료: CaS(황화칼슘) 고체 슬래그 형성.] [강제 환원 분위기를 통한 탄소 함량 1.2% 수준 조절 성공.] [현재 용융액 내 유황(S) 농도: 0.024% (무결함 조총강 기준 만족).]
"출탕하라!"
이진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인들이 가마 하단의 출탕구를 정으로 쳐서 뚫었다.
화아악!
순간 가마터 전체가 은백색의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찼다.
보통의 조선 가마에서 나오던 탁하고 불그스름한, 똥물이 섞인 듯한 쇳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의 은하수를 그대로 녹여 내린 듯, 극도의 점도를 유지한 채 눈부신 백열의 빛을 발하는 순수한 액체 철(液鐵)이었다.
"어... 어찌 쇳물의 빛깔이 저리 고운가?"
장인들이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불순물이 타버려 슬래그가 완벽히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이진이 냉정하게 설명했다.
쇳물은 이진이 미리 설계해 둔 고압 점토 형틀로 매끄럽게 흘러 들어갔다. 가마 내부의 고압을 견디기 위해 곱게 빻은 모래와 내화 점토를 최적의 비율로 배합해 구운 형틀이었다. 쇳물이 형틀을 채우며 뿜어내는 열기가 가마터를 가득 채웠다.
시간이 흐르고, 형틀이 서서히 식어갔다.
"물을 뿌려라."
장인들이 조심스럽게 냉수를 끼얹자, 치이익 소리와 함께 자욱한 백색 증기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서태린이 정과 망치를 들고 다가가 형틀의 겉면을 조심스럽게 깨뜨렸다.
바스락거리며 점토 형틀이 떨어져 나간 자리.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은백색의 차가운 광택을 뿜어내는 네 자 길이의 조총 총열이었다.
가마터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보통의 방식으로 주조된 총열은 표면이 거칠고, 식는 과정에서 가스가 빠져나가지 못해 곰보 자국 같은 기포(氣泡)가 숭숭 뚫려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진이 뽑아낸 총열은 마치 거울처럼 매끄럽고 단단한 단면을 자랑하고 있었다. 미세한 균열(Crack)은커녕, 작은 기포 하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김자겸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것이 진정 영변의 무쇠로 만든 것이란 말이냐? 주조한 철이 어찌 이리 매끄러울 수 있어!"
이진은 대답 대신 바닥에 놓인 대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장인들을 향해 턱끝을 까딱였다.
"내리쳐라."
"예? 판관 나리, 아직 완전히 식지 않아 메질을 하면..."
"내리치라고 했다. 이 철이 너희가 알던 똥철인지, 아니면 상국의 정련강을 능가하는 강철인지 직접 확인해라."
장인이 침을 삼키며 거대한 대망치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총열의 중간 부분을 내리쳤다.
깡-!
맑고 청아한 금속성이 가마터 전체를 울렸다.
보통의 선철 총열이었다면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났을 터였다. 그러나 망치가 때린 자리에는 미세한 흠집만이 남았을 뿐, 총열은 휘어지지도, 부러지지도 않은 채 고고한 은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늙은 야철 장인이 망치를 떨어뜨렸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총열의 표면을 어루만졌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럽다... 망치의 충격을 철이 스스로 머금고 튕겨냈어! 이것은 무쇠가 아니라... 신철(神鐵)입니다! 명나라에서 수입하는 수철(水鐵)보다도 백 배는 더 단단합니다!"
장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악을 넘어선 경외심이 깃들어 있었다. 조선의 기술로는 수백 번을 두드려도 만들 수 없었던 무결함의 정련강이, 단 한 번의 주조 공정으로 완벽하게 구현된 것이다.
이진은 김자겸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판관 나리."
"어, 어찌..."
"나흘 뒤 주상 전하께서 보실 재시연의 무기는 이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영변의 철광석과 조선의 흙으로 만든, 단 한 번의 사격으로도 터지지 않는 무결함의 조총입니다."
김자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진이 완벽한 조총을 만들어낸 이상, 그의 목을 날리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부실한 백탄을 납품하고 동철을 횡령해 사리사욕을 채우던 자신과 이이첨 일파의 비리가 조정의 도마 위에 오를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놈... 감히 요술을 부려 조정을 기만하려 드는구나!"
김자겸이 발악하듯 소리쳤으나, 이미 기세는 완전히 이진에게 넘어간 뒤였다. 가마터의 장인들과 군졸들의 눈빛은 이미 이진을 군기시의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사이다 같은 쾌감이 가마터의 무거운 공기를 관통하는 순간이었다.
이진은 차갑게 식어가는 총열을 들어 올리며 내심 시뮬레이터의 결과를 확인했다.
[조총용 정련강 규격 생산 성공.] [연산 오차율 0.01% 이하. 양산 체제 구축을 위한 1단계 완료.]
이제 이 기술을 바탕으로 조정의 공식 승인을 얻고, 평안도 야철지에 대한 전매권을 획득하는 일만 남았다. 이이첨과 정인홍 등 대북 세력의 견제를 뚫고 왕실의 사냥개가 되어 그들의 이권을 뜯어내기 위한 첫걸음이 마침내 내디뎌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군기시 제1포구의 거친 목조 정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쿵쿵거리는 둔중한 발소리가 가마터를 뒤흔들었다.
"정지하라! 군기시 내부의 모든 야철 활동을 중단한다!"
거친 고함과 함께 가마터 안으로 들이닥친 무리는 군기시의 군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검은 가죽 흉갑을 덧대어 입고, 손에는 관군이 쓰는 환도 대신 묵직한 철편과 몽둥이를 든 험악한 형색의 장정들이었다. 그들의 옷자락에는 팔도 보부상단을 상징하는 붉은 표식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보부상...?"
서태린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들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었다. 조정의 실권자이자 대북의 거두인 이이첨이 사적으로 거느리는 해결사 집단인 '도접장 길준'의 수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서, 비단 도포를 걸친 비대한 체구의 사내가 탐욕스러운 안광을 빛내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이첨의 자금줄이자, 군기시에 기준 미달의 동철을 납품하며 폭리를 취하던 도접장 길준 바로 그 자였다.
길준은 이진이 손에 쥐고 있는 은백색의 총열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응시하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주상의 명을 사칭하여 군기시에서 사사로이 요술을 부리는 자가 있다 하더니, 과연 여기 있었구나. 그 기이한 쇠붙이와 주조 도면을 모두 압수하겠다."
수십 명의 보부상 사병들이 몽둥이와 병장기를 치켜들며 이진과 서태린, 그리고 가마터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갓 완성된 기적의 무기를 눈앞에 둔 순간, 이이첨 일파의 노골적인 무력 탈취가 시작된 것이었다. 가마터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또 다른 피의 폭풍이 이진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