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참모들을 전부 소집해라."

아드리안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학생회장실의 웅장한 무대 뒤편에서 대기하던 참모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음성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기계 장치처럼 차가웠다. 도서관 감시단이 보내온 보고서는 이미 아드리안의 책상 위에서 붉은 마력 잉크로 재해석되고 있었다.

"그가 던진 세 개의 좌표가 의미하는 바를 수학적으로 완전히 분석한다. 감히 내 질서의 영역을 침범하려 한 대가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지."

그로부터 사흘 뒤.

헬리오스 황립 마법 아카데미의 중앙 광장과 맞닿은 야외 동아리 정원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일 년 중 가장 시끄럽고 무질서한 행사인 '신입생 환영 및 동아리 홍보전'이 개최된 탓이었다.

"자, 들어오라! 불과 대지의 마법을 극한으로 연마하는 '적염의 손길' 동아리다!" "고대 룬어 해석에 관심 있는 신입생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선배들의 친절한 1대1 과외가 기다립니다!"

여기저기서 확성 마법을 부여한 '마령 마이크'가 웅웅거리며 기분 나쁜 고주파 소음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공기 중에는 온갖 속성의 조잡한 마력 파동이 뒤엉켜 찌릿찌릿한 정전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무질서의 한복판에, 영혼이 반쯤 가출한 표정의 엘리엇 드 벨레로폰이 서 있었다.

‘귀가 찢어질 것 같다…….’

엘리엇은 이마를 짚었다. 극심한 마력 과민증을 앓고 있는 그에게, 격렬하게 충돌하는 싸구려 마력 파동과 마령 마이크의 소음은 뇌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선사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세상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하루에 16시간 이상 게으르게 자며 완벽한 은퇴 생활을 누리는 것.

하지만 아카데미의 강제적인 야외 활동 규정 때문에 억지로 끌려 나와 이 소음 공해를 견뎌야 하는 처지였다.

엘리엇은 목에 걸린 싸구려 구리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마나 전도를 저하시켜 경제 붕괴를 막아주는 유일한 안전장치였지만, 지금의 두통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어떻게든 이 끔찍한 장소를 벗어나야 했다.

그의 무감각한 눈동자가 정원 가장 외곽, 아름드리 참나무가 울창한 그늘을 드리운 구석진 모퉁이를 포착했다. 그곳에는 이끼가 살짝 낀 오래된 돌벤치가 외롭게 놓여 있었다. 소음의 발원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완벽한 도피처였다.

엘리엇은 다리에 힘을 빼고 흐느적거리며 걸어갔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스르륵 움직여 돌벤치 위에 그대로 허물어지듯 누웠다. 목뼈가 부러진 것처럼 벤치 모서리에 머리를 어색하게 기댄 채, 그는 길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참나무 숲의 수풀 너머에서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았다.

바스락.

"……움직였습니다. 타깃이 남동쪽 구역의 돌벤치에 확보되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눈동자만 내밀고 있던 학생회 소속 참모가 소형 통신 마석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들의 시선에는 돌벤치에 누워 있는 엘리엇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비치고 있었다.

"저 자세를 보십시오. 목을 저런 각도로 꺾고 누워 있다니…… 인간의 해부학적 한계를 시험하는 자세입니다. 저것은 주변의 마력 흐름을 신체 내부의 기경팔맥으로 흡수하기 위한 고도의 '무호흡 대지 정렬 수련법'이 분명합니다." "과연……! 소음과 혼란이 극에 달한 축제 현장의 한가운데서, 대지의 기운과 완벽한 동조를 이루다니. 아드리안 회장님이 경계하실 만하군. 저 게으른 척하는 태도 자체가 우리의 감시망을 무력화하기 위한 은폐 기술인 거다."

학생회 감시 부대원들은 침을 삼키며 엘리엇의 미세한 뒤척임 하나하나를 숨죽여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철저한 감시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엘리엇이 누워 있는 돌벤치 반대편 수풀에서, 또 다른 음모와 숭배의 기운이 싹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괴주님."

풀숲 뒤에서 돋보기와 거대한 양장본 노트를 든 실비아 라인하르트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광적인 신앙심이 불타고 있었다.

"보이시나요, 베르너 님? 괴주님께서 누워 계신 저 돌벤치의 이끼 형태를요. 저건 단순한 잡초가 아니에요. 벤치 밑으로 흐르는 미세한 수맥의 파동을 몸소 억누르고 계신 거예요. 소란스러운 축제의 마력이 폭주하지 않도록, 스스로 제물이 되어 아카데미의 균형을 수호하시는 거라고요!"

그녀의 옆에서 고급 실크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던 남작 상인 베르너 로젠버그가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과연 실비아 양의 혜안이오. 내 상인으로서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소. 괴주님께서 저렇게 아무런 미동도 없이 누워 계신 것은, 시장의 폭풍전야와 같소. 저 고요함 끝에는 반드시 제국 상권을 뒤흔들 거대한 격변이 도사리고 있을 터. 우리가 여기서 비바람을 막아드려야 하오."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괴주 엘리엇의 '위대한 은퇴의 안식'을 방해하려는 저 오만한 학생회의 감시 부대를 마크하는 것.

"실비아 양, 3시 방향의 참나무 위에 숨은 학생회 정찰병이 보이는군." "걱정 마세요, 베르너 님. 제가 미리 준비한 '무음의 결계'를 그 자리에 덧씌워 두었습니다. 괴주님의 귓가에 단 한 줌의 소음도 닿지 않게 할 거예요. 지난번 도서관에서 보여주신 7, 42, 109의 계시를 해독하느라 뇌가 타들어 가는 줄 알았는데, 이번엔 더 직접적인 가르침을 내리고 계시니까요." "나 역시 내 호위 상단원들을 사방에 배치했소. 학생회의 졸개들이 한 걸음이라도 괴주님께 다가온다면, 소리 소문 없이 매수하거나 뒷덜미를 잡아채 갈 것이오."

실비아와 베르너는 조용히 움직이며 엘리엇을 중심으로 한 둥근 '극비 호위 진형'을 가동했다.

그들의 눈물겨운 사투 덕분에 엘리엇의 주변은 기적적일 정도로 고요해졌다. 정원의 소음이 마치 투명한 장막에 가로막힌 것처럼 돌벤치 근처로는 단 한 톨도 새어 들지 않았다.

‘어라…… 왜 갑자기 조용해졌지?’

돌벤치에 누워 있던 엘리엇은 속으로 조금 감탄했다.

머리를 짓누르던 이명이 가라앉자 슬슬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풀잎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고, 등 밑의 돌멩이가 살짝 차가워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세상은 이 천재 대마도사가 평화롭게 자는 꼴을 두고 보지 못했다.

스륵, 사각.

정원의 수풀을 헤치고, 극도로 우아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가벼운 실크 드레스가 풀잎에 스치는 소리마저 정교하게 계산된 듯한 박자였다.

황실 공작가 소속이자, 황실 마법 성에서 파견된 일급 정보원인 이벨린이었다.

그녀는 한 손에 고급스러운 은제 쟁반을 들고 있었다. 그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도자기 찻잔이 놓여 있었다. 겉보기에는 신입생에게 호의를 베푸는 상냥한 선배의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서늘한 살기가 숨겨져 있었다.

‘엘리엇 드 벨레로폰…….’

이벨린은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렸다.

‘네가 아무리 깊이를 숨긴 괴물이라 한들, 황실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네가 제국을 전복하려는 혼돈의 씨앗인지, 아니면 그저 기인에 불과한지 오늘 정밀하게 검증해 주지.’

그녀가 준비한 차에는 황실 마법 성에서 독점하는 특제 비약, '청람의 가루'가 미세하게 가미되어 있었다.

마력을 직접적으로 해치지는 않지만, 체내에 들어가는 순간 폐활량을 극도로 흔들어 호흡의 리듬을 깨뜨리는 성질을 지닌 독소였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숨이 조금 가빠지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숨겨진 강자라면 자신의 마력 반응을 숨기기 위해 체내 인과를 비틀다가 반드시 정체가 탄로 나게 되어 있었다.

이벨린은 돌벤치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살짝 굽히며 싱긋 웃었다.

"어머, 신입생 분이 여기서 홀로 쉬고 계셨군요? 향긋한 홍차 한잔 어떠신가요? 축제 열기 때문에 목이 많이 타실 텐데 말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꾀꼬리처럼 고왔지만, 엘리엇에게는 그저 잠을 방해하는 모기의 윙윙거림과 다를 바 없었다.

엘리엇은 감고 있던 눈꺼풀을 느릿하게 들어 올렸다.

무표정하고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이벨린과 그녀가 든 찻잔을 향했다.

‘……기분 나쁜 냄새.’

마력 과민증 덕분에 엘리엇의 후각은 일반인의 수십 배에 달했다. 홍차의 짙은 향기 밑바닥에 숨겨진, 폐를 간지럽히는 쌉싸름한 독소의 냄새가 단번에 그의 비강을 찔렀다.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는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저 차를 마시면 귀찮아진다. 하지만 마시지 않겠다고 거절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더 귀찮다. 그렇다고 저 여자를 힘으로 쫓아내는 것은 우주에서 가장 귀찮은 일이다.

엘리엇은 하품을 길게 내쉬며, 벤치 밑으로 내려뜨린 오른손의 검지손가락을 아주 미세하게 까딱였다.

탁.

‘인과율 조율.’

단 0.0001초의 마나 소모도 없는 극소 제어.

그의 손끝에서 튕겨 나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모래알 하나가 대기 중의 기류를 타고 날아가, 이벨린의 구두 굽 바로 옆에 떨어졌다.

그 모래알은 완벽한 각도로 벤치 밑의 젖은 낙엽을 건드렸고, 낙엽은 이벨린이 딛고 있던 대리석 바닥의 마찰력을 순간적으로 '제로(0)'로 만들었다.

"앗……!"

우아하게 미소 짓던 이벨린의 발끝이 어이없을 정도로 미끄러졌다.

신체의 균형을 잡으려는 찰나, 그녀가 들고 있던 은제 쟁반이 허공에서 45도 각도로 기울어졌다.

그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엘리엇이 조율한 물리적 법칙의 연쇄 반응은 정확하게 이벨린의 무게 중심을 무너뜨렸다.

촤아악!

"꺄악!"

찻잔에 담겨 있던 뜨거운 홍차가 정확하게 이벨린의 화려한 드레스 가슴팍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쟁반에서 튕겨 나간 찻잔 받침은 회전하며 날아가, 수풀 속에 숨어 엘리엇을 훔쳐보던 학생회 참모의 코끝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깡!

"으악!"

코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참모가 수풀 밖으로 나동그라졌다. 뒤이어 기화된 독소 가루가 주변 공기 중으로 흩뿌려졌다.

"콜록! 쿨럭! 이, 이게 무슨…… 마력이……!"

수풀 속에 매복해 있던 학생회 첩보원들이 기화된 '청람의 가루'를 들이마시고 일제히 가슴을 쥐어짜며 비명을 질렀다. 그들이 공들여 유지하던 마력 감시 진형이 단숨에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이벨린은 자신의 드레스에 스며드는 뜨거운 액체와, 그 안의 독소가 피부를 통해 흡수되려는 것을 느끼고 사색이 되었다.

그녀는 급히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려 독소의 침투를 막으려 했지만, 이미 가슴팍은 꼴사납게 젖어 들었고 머리카락은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뒤였다.

"아아…… 괴주님."

멀찍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실비아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두 손을 모아 쥐고 부르르 떨었다.

"보셨나요, 베르너 님? 괴주님께서는 단 한 번의 손가락 제스처조차 쓰지 않으셨어요. 그저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 대기의 압력을 조율해 황실의 첩자와 학생회의 감시망을 동시에 타격하셨다고요! 저 완벽한 인과의 지배력을 보세요!"

베르너 역시 전율하며 수첩에 무언가를 맹렬히 적어 내려갔다.

"이것은…… 이것은 단순한 반격이 아니오. 아카데미 내의 모든 세력 구도를 단숨에 재편하겠다는 괴주님의 엄중한 경고장이지! 당장 상단의 정보망을 가동해 제국 마나스톤 시장의 변동을 주시해야겠소!"

정작 소동의 중심에 선 엘리엇은 그저 귀찮다는 듯 눈을 다시 감을 뿐이었다.

"어머…… 미안해요. 잠을 방해했나 보군요."

이벨린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드레스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독소 때문에 호흡이 가빠오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공포는 그보다 훨씬 깊었다.

그녀는 고통을 참으며 돌벤치 위의 엘리엇을 내려다보았다.

엘리엇은 단 한 마디의 대꾸도 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다치거나 말거나, 학생회 참모들이 쓰러지거나 말거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 무정한 얼굴,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심연 같은 무표정.

그것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자신이 던진 치명적인 독초를 그저 기어가는 벌레의 날갯짓 정도로 치부하는, 세상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굴리는 초월적 괴수의 위엄 그 자체였다.

이벨린은 뒷걸음질을 쳤다.

‘이 자는…… 진짜 괴물이다.’

그녀는 젖은 옷자락을 움켜쥔 채, 수풀 속으로 도망치듯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의 시야 끝에 마지막으로 박힌 것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나른한 표정으로 돌벤치에 누워 눈을 감는 엘리엇의 무자비하리만치 평온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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