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부서져라 덜컹거리는 소리가 좁은 독식 방안을 메웠다. 매트리스에 모포를 덮고 누운 지 정확히 2초 만에 벌어진 대참사였다.
엘리엇은 눈을 감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관자놀이 부근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마력 과민증으로 인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신경이 뇌수를 찌르는 듯했다.
조용한 은퇴. 하루 16시간의 무호흡 수면. 그것이 엘리엇 드 벨레로폰이 이 지긋지긋한 아카데미에 위장 입학한 단 하나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입학 첫날부터 방해꾼이,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부류의 장사치가 문짝을 부술 기세로 날뛰고 있었다.
"벨레로폰 경! 저희 상단을 당신의 위대한 계획의 동반자로 삼아 주십시오!"
베르너 로젠버그는 붉은 마법 인장이 찍힌 두꺼운 가죽 장부를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땀을 뻘뻘 흘렸다. 그의 눈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아카데미 북동쪽의 이 버려진 마나 차단지 방을 고른 엘리엇의 혜안에 감탄하고 또 감탄한 기색이었다.
엘리엇은 좀비처럼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목뼈를 움직이는 것조차 아깝다는 듯 무거운 고개가 까딱 기울어졌다. 그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었고, 입술은 단단히 다물려 있었다.
말을 섞는 것조차 극심한 마력 소모이자 칼로리 낭비였다. 엘리엇은 침대에서 내려와 문턱까지 걸어가는 동안 발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스윽.
문틈이 아주 살짝 벌어졌다. 베르너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장부를 한층 더 높이 치켜들었다. 제국 동부의 모든 마나스톤 유통망을 바칠 준비가 끝났다는 무언의 서약이었다.
하지만 엘리엇의 시선은 베르너의 얼굴이 아닌, 그가 들고 있는 장부의 모서리에 닿았다.
'귀찮아.'
이 장부를 받아 드는 순간, 읽어야 한다. 읽으면 생각해야 하고, 생각하면 은퇴는 멀어진다. 더군다나 이런 세속적인 기밀에 엮였다가는 기껏 숨겨둔 신화급 권능 '인과율 조율'의 꼬투리가 잡힐지도 모른다. 제국 경제를 쥐고 흔드는 대마법을 또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엘리엇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아까웠다. 그는 슬리퍼를 신은 오른발 끝을 가볍게 내밀어, 베르너가 내민 가죽 장부의 하단을 툭 걷어찼다.
툭.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붉은 인장이 찍힌 장부가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베르너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제국의 명운이 담긴 정보가 먼지 쌓인 복도 바닥에 팽개쳐진 순간이었다.
엘리엇은 한기가 서린 무표정으로 베르너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목구멍 밑바닥에서부터 긁어 올린 듯한, 낮고 건조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쓸데없는 노이즈는 치워라."
쿵-!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거칠게 닫혔다.
닫힌 문 너머로 베르너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쓸데없는…… 노이즈?"
베르너는 바닥에 떨어진 장부를 조심스럽게 주워 올렸다. 그의 손끝이 경외심으로 덜덜 떨렸다.
'노이즈라니. 제국 동부 광산의 비축량이 노이즈란 말인가? 아니, 잠깐만…….'
머릿속에서 무수한 계산 수식과 상업적 직관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베르너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우리 로젠버그 상단이 최근 무리하게 추진하던 동부 마나스톤 운송로 확장 사업! 그 노선은 황실 재정처와 긴밀하게 엮여 있어 안전하다고만 믿었는데…… 괴주께서는 이미 그 배후에 도사린 거대한 음모와 위험 요소를 간파하신 거다! 쓸데없는 노이즈에 불과하다며 당장 손을 떼라고 경고하신 거였어!'
만약 엘리엇의 이 한마디가 없었더라면, 로젠버그 상단은 동부 광산에 전 재산을 쏟아부었다가 황실의 규제 법안에 걸려 단숨에 파산했을 터였다. 베르너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역시…… 우주의 흐름을 뒤에서 조율하시는 분답군. 나의 얄팍한 안목을 단숨에 꿰뚫어 보시고 가야 할 길을 지시해 주셨어."
베르너는 굳게 닫힌 문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초조함이 없었다. 대신 절대적인 충성심과 새로운 야망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동부 광산의 '노이즈'를 걷어내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하급 광산이나 서부의 신규 노선으로 눈을 돌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당장 상단으로 전갈을 보내 무역선 경로를 전면 수정하기로 결심했다. 이 결정이 훗날 로젠버그 상단에 수십억 크로네의 독점 세를 안겨줄 위대한 신의 한 수가 되리라고는, 베르너 자신도 이 순간에는 완벽히 짐작하지 못했다.
***
방안으로 돌아온 엘리엇은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수면의 여신은 그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딱딱해."
엘리엇은 이마를 찌푸렸다. 기숙사 구석방이 조용해서 선택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기본 제공되는 매트리스와 베개가 그야말로 목판 수준으로 딱딱했다. 극심한 마력 과민증 때문에 몸의 감각이 일반인보다 수십 배는 예민한 그에게, 이 베개는 머리를 올려놓는 도구가 아니라 고문 기구에 가까웠다.
목뼈가 부러질 듯한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이대로 자다가는 내일 아침 목을 움직이지 못해 더 큰 마력과 인과율을 소모해 몸을 치료해야 할 판이었다.
'푹신한 것. 머리를 완전히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두껍고 아늑한 물건이 필요하다.'
엘리엇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방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 가장 조용하고, 가장 부드러운 가죽이나 양가죽으로 마감된 두꺼운 물건을 찾을 수 있을까. 그의 반쯤 감긴 눈에 저 멀리 솟아 있는 고풍스러운 고딕 양식의 건물이 들어왔다.
헬리오스 아카데미의 중앙 도서관.
그곳에는 고대 문헌과 제국 초기의 역사가 담긴, 사람 머리통 두 개는 족히 합쳐놓은 듯한 두께의 수제 양가죽 고서들이 가득했다. 사서들의 눈을 피해 구석진 서가로 들어가면, 세상 그 어떤 베개보다 포근하고 단단하게 머리를 받쳐줄 최고의 숙면 도구가 널려 있는 셈이었다.
스스스…….
엘리엇은 유령처럼 도서관 내부로 스며들었다.
도서관은 한낮의 열기와 동떨어져 서늘하고 고요했다. 오래된 종이 냄새와 잉크 향이 마력으로 지친 엘리엇의 콧가를 부드럽게 간지럽혔다. 그는 가장 구석진,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고대 역사 및 지리 서가로 향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가죽 표지가 닳고 닳아 푹신해 보이는 거대한 서적이었다. 『제국 전역 고대 지리지』. 대충 봐도 수천 페이지는 되어 보이는, 무기 수준의 두께를 자랑하는 책이었다.
엘리엇은 서가 맨 아래 칸에서 그 책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리고 바닥에 카펫이 깔린 서가 사이의 좁은 틈새에 자리를 잡았다.
툭.
책을 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머리를 얹었다.
"……완벽해."
양가죽의 부드러운 촉감과 적당한 탄성이 머리뼈를 완벽하게 지탱해 주었다. 엘리엇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마침내 찾아온 평화였다.
그는 순식간에 깊은 수면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너무 깊게 잠든 나머지, 입가에서 미세한 침 한 방울이 흘러나와 책의 옆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스며드는 침방울은 무작위로 펼쳐진 책장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엘리엇의 머리 무게가 책을 강하게 짓누르면서, 서적의 특정 페이지들이 강한 압력을 받아 찌그러지고 자국이 남기 시작했다.
그가 베고 누운 페이지 번호는 마침 '7', '42', 그리고 '109'였다.
깊은 잠에 취한 대마도사의 머리 무게와 침 얼룩은 고대 지리지의 세 군데에 깊고 선명한 원형 자국을 새겨 넣었다. 엘리엇은 그저 아주 조금 푹신한 베개를 베고 단잠을 자고 있을 뿐이었다.
***
그로부터 불과 한 시간 뒤.
도서관의 정적을 깨고, 고양이처럼 은밀한 발걸음이 고대 지리 서가로 다가왔다.
실비아 라인하르트였다. 그녀는 동그란 안경테를 추켜올리며, 품에 안은 마법 노트와 깃펜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벨레로폰 경이…… 기숙사를 나와 이곳으로 향하셨어. 분명 무언가 거대한 의식을 치르기 위함이 틀림없어."
실비아는 엘리엇이 하품 한 번을 해도 그것의 주파수를 기록하는 광적인 괴짜 천재였다. 그녀는 엘리엇이 도서관 구석으로 들어갔다는 첩보를 입수하자마자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온 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서가 구석에서, 갓 잠에서 깨어나 유령처럼 사라진 엘리엇의 빈자리를 발견했다.
"앗……!"
실비아는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제국 전역 고대 지리지』를 보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책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엘리엇의 체온이 깃든 책을 보며 실비아는 뺨을 붉혔다. 그녀는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고서를 들어 올렸다.
"이 책은…… 제국의 고대 마나 흐름을 기록한 지리지? 괴주께서 왜 이 책을 직접 만지신 걸까?"
그녀의 날카로운 눈이 책의 옆면에 묻은 미세한 흔적을 포착했다. 그것은 단순한 수분 얼룩이 아니었다. 엘리엇의 마력 제어 과정에서 흘러나온(실제로는 그냥 침이었지만) 극미량의 특이 마나 반응이 서려 있는 흔적이었다.
실비아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첫 번째 흔적이 멈춘 곳은 7페이지였다.
"7페이지…… 제국 영토의 경계선이 그려진 지도."
그녀는 다급하게 다음 흔적을 쫓았다. 42페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109페이지였다.
세 페이지에는 엘리엇의 머리 무게로 인해 깊게 파인 둥근 눌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실비아는 그 세 개의 자국이 가리키는 지리적 좌표를 자신의 마법 노트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슥슥, 슥슥슥.
깃펜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실비아의 눈동자가 경악과 감격으로 점점 커졌다.
"이럴 수가……!"
그녀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좌표들은…… 아카데미를 촘촘히 둘러싸고 있는 학생회의 수학적 감시망, 그 완벽한 인과율의 배열 속에서 유일하게 마나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균열'의 지점들이야!"
실비아의 천재적인 두뇌는 엘리엇이 남긴 침 자국과 눌림 자국을 고도의 마법 기하학으로 해독해 냈다.
학생회장 아드리안이 구축해 놓은 아카데미의 절대적 질서 체제. 그것은 완벽한 수학적 계산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우주에 완벽한 공식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 미세한 오차가 누적되어 발생하는 세 군데의 '인과율 균열'이 존재했고, 엘리엇은 그 좌표를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
"괴주께서는…… 학생회의 숨 막히는 감시망을 단번에 무력화할 수 있는 비밀 경로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신 거야. 아무런 마법도 쓰지 않으시고, 그저 책 한 권을 가볍게 누르는 것만으로!"
실비아는 책을 가슴에 꼭 껴안았다.
"이것은 묵언의 계시다. 학생회의 독재에 맞서, 장막 뒤에 숨겨진 진정한 질서를 확립하라는 괴주의 위대한 인도야!"
그녀는 당장 이 비밀 좌표를 해독한 결과를 들고 아카데미 내부의 뜻있는 천재들을 소집하기로 결심했다. 엘리엇의 사소한 발자취를 쫓는 비밀 연합체, '원탁의 해석자들'의 첫 번째 공식 회동이 마침내 그 서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
같은 시각, 아카데미 본관 최상층에 위치한 학생회장실.
탁, 탁, 탁.
일정한 박자로 깃펜이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안의 무거운 침묵을 깨우고 있었다.
학생회장 아드리안 본 발렌타인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완벽한 제복 차림으로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는 평소보다 짙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똑똑.
"회장님, 도서관 감시단으로부터 긴급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안경을 쓴 학생회 참모가 긴장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드리안은 깃펜을 멈추고 차가운 눈빛으로 참모를 바라보았다.
"보고해라. 1초의 지체도 없이."
"예! 신입생 엘리엇 드 벨레로폰이 조금 전 도서관의 고대 지리 서가에 침입했습니다. 그는 『제국 전역 고대 지리지』를 무단으로 꺼내어, 바닥에 누운 채 머리로 그 서적을 짓눌렀다고 합니다."
아드리안의 눈썹이 꿈틀했다.
"지리지를…… 머리로 짓눌렀다고?"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실비아 라인하르트가 해당 서적을 회수해 갔으며, 그 서적의 7, 42, 109페이지에 특이한 압력 자국과 마나 반응이 남겨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실비아를 중심으로 한 몇몇 우수 학도들이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드리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전신에서 차가운 마력의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그에게 엘리엇의 무질서하고 게으른 행동들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공들여 쌓아 올린 아카데미의 완벽한 수학적 질서 체제를 뒤흔들려는, 고도의 '혼돈 전술'이자 전면적인 도발이었다.
"고대 지리지의 세 페이지라……."
아드리안의 지적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결국 본색을 드러내는군, 엘리엇 드 벨레로폰. 도서관이라는 공공의 영역에서, 보란 듯이 내 감시망의 허점을 가리키며 경고장을 던진 건가."
그는 엘리엇이 자신과의 두뇌 싸움에서 선제공격을 날렸다고 확신했다. 단순한 신입생의 기행으로 치부하기에는, 실비아를 비롯한 천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타이밍이 너무나도 정교했다.
"참모들을 전부 소집해라."
아드리안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가 던진 세 개의 좌표가 의미하는 바를 수학적으로 완전히 분석한다. 감히 내 질서의 영역을 침범하려 한 대가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지."
아카데미를 지배하는 절대적 질서와, 그 질서를 귀찮아하는 은퇴 대마도사의 의도치 않은 전면전의 서막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