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바지 주머니 속으로 슥 미끄러져 들어간 황금빛 '수호자의 열쇠'는 지독하리만치 차가웠다.

엘리엇은 가만히 누운 채 미간을 좁혔다. 주머니 쪽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쇳덩이의 존재감이 몹시 거슬렸다. 이제 막 가고일의 소음에서 벗어나 완벽한 수면의 세계로 침잠하려던 찰나였다. 왼쪽으로 돌아누워야 최적의 호흡 주기를 유지할 수 있거늘, 이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골반 뼈를 누르면 척추 정렬에 0.05도 정도의 미세한 오차가 발생한다.

더욱이 목에 걸린 싸구려 구리 목걸이가 짤랑이며 주머니 속 열쇠와 기분 나쁜 공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나 전도율을 낮추기 위해 입학식 날부터 차고 있던 이 조잡한 구리 사슬마저 무겁게 느껴지는 마당에, 고대의 유물 따위가 굴러 들어오다니 귀찮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주변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고요했다.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엘리엇을 응시하는 아드리안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의 시선은 엘리엇의 바지 주머니, 정확히는 황금빛 열쇠가 사라진 그 지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유적의 수호자가 자멸하며 상납한 열쇠를…… 저리도 무심하게 받아들이다니.'

아드리안의 머릿속은 이미 복잡한 수식과 음모론으로 터져 나가기 직전이었다. 아카데미의 모든 비밀 보물고와 고대 제어권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열쇠다. 그것을 손에 넣고도 저 신입생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마치 길가에 굴러다니는 조약돌을 주운 것처럼 나른하고 지루한 얼굴일 뿐이었다.

그 옆에서 실비아는 이미 두 손을 모은 채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아…… 괴주님. 제국의 역사학자들조차 평생을 바쳐 찾지 못한 수호자의 열쇠가, 스스로 주인을 찾아 무릎을 꿇는군요. 어찌 이리도 당연하다는 듯 우주의 섭리를 부리시는지……!"

"시끄러워……."

엘리엇은 마침내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렸다. 귓가를 때리는 실비아의 숭배 섞인 고함이 그의 극심한 마력 과민증을 자극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귀찮은 상황을 타개하고 당장 기숙사의 푹신한 침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했다.

최소한의 동작. 에너지를 가장 적게 소모하는 효율적인 몸짓.

엘리엇은 주머니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차갑고 단단한 황금 열쇠를 끄집어냈다. 그의 손끝에서 떨어진 열쇠가 허공에서 가볍게 회전했다.

그는 마침 넋을 잃고 자신을 바라보던 남작가의 상인, 베르너 로젠버그를 향해 열쇠를 대충 휙 던졌다.

툭.

"억?!"

베르너는 허둥지둥 손을 뻗어 열쇠를 받아 안았다. 고대의 마력이 깃든 황금빛 유물이 그의 품 안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베르너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가, 이내 붉게 달아올랐다.

"괴, 괴주님……? 이, 이 엄청난 아티팩트를 제게……?"

엘리엇은 베르너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오리털 미니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리며 웅얼거렸다. 말을 많이 하는 것조차 산소 소모를 촉진해 피로를 유발하므로, 단어만을 툭툭 던졌다.

"이런 무겁고 쓸모없는 가공품 말고……."

"예, 예?!"

"푹신한 수면 담요를 사 오거라."

그것이 끝이었다. 엘리엇은 그대로 눈을 감고 깊은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현장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었다.

베르너는 손에 쥔 황금 열쇠를 내려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장사꾼으로서의 뇌세포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무겁고 쓸모없는 가공품 말고, 푹신한 수면 담요라니……?'

베르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것은 단순한 심부름이 아니었다. 괴주 엘리엇이 자신에게 던진 고도의 은유이자 거대한 사업적 계시였다.

'아! 그렇구나! 고대의 열쇠 따위는 본질이 아닌 가공품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가치를 지닌 '안전 자산', 즉 몸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담요처럼 실존적이고 단단한 기초 자산에 집중하라는 뜻이로구나!'

베르너의 뇌리 속에서 얼마 전 엘리엇이 잠꼬대처럼 흘렸던 한마디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장 가치 낮은 하급 마나 광산이 기둥이 된다.']

그때는 단순히 하급 광산들을 매집하라는 뜻으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오늘 내린 '수면 담요'의 계시와 결합하는 순간, 베르너는 거대한 경제적 진리를 깨달았다. 상급 마나스톤이라는 화려한 '가공품'의 거품을 걷어내고, 가장 기초적이고 단단한 '하급 마나'라는 담요를 덮어 제국의 경제적 위기를 대비하라는 무서운 경고였던 것이다.

"과연…… 과연 괴주님이십니다……!"

베르너는 열쇠를 품에 소중히 안으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황금빛 돈다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반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드리안의 낯빛은 창백하게 질려 가고 있었다.

'저 열쇠를 일개 남작가의 상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주다니. 아카데미의 질서 따위는 언제든 상단의 자금력 아래 굴복시킬 수 있다는 무력시위인가? 아니면…… 내 학생회의 재정적 기반을 무너뜨리겠다는 선전포고인가?'

아드리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충격이 컸다. 엘리엇의 그 무심한 던지기 한 번이, 자신이 일구어놓은 무결한 질서의 벽에 거대한 균열을 내고 있었다.

* * *

사흘 뒤. 사태는 베르너의 예상대로, 아니 엘리엇의 의도(?)대로 제국 전역을 뒤흔드는 대격변으로 이어졌다.

제국 수도의 금융가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폭락이다! 상급 고농도 마나스톤의 가치가 반토막이 났다!"

"황실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은 어쩌란 말이냐! 당장 광산을 매각해라!"

그동안 제국의 귀족들과 황실은 상급 고농도 마나스톤의 가치가 영원히 우상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엄청난 이자율을 감수하며 대출을 받아 상급 마나 광산 투기 열풍에 동참했다. 아카데미의 학생회장 아드리안의 가문인 발렌타인 공작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학생회의 공적 자금과 가문의 영지 자산까지 전부 끌어모아 상급 마나스톤을 사들였다.

그러나 거품은 언제나 가장 화려한 순간에 터지는 법이다.

최근 아카데미 유적지에서 발발한 기이한 마나 공명 현상—사실은 엘리엇이 가고일을 부수기 위해 인과율을 아주 미세하게 비튼 여파—으로 인해, 제국 전역의 고농도 마나 노드에 일시적인 왜곡이 발생했다. 상급 마나스톤의 마력 방출 효율이 급격히 저하되자, 시장은 공포에 휩싸였다.

투자자들은 투매를 시작했고, 상급 마나스톤의 가치는 그야말로 수직으로 낙하했다.

하지만 이 아비규환의 지옥도 속에서, 오직 한 곳만이 비현실적인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사들여라! 시장에 나온 하급 마나스톤과 광산들을 모조리 쓸어 담아라!"

베르너 로젠버그는 상단의 모든 지부장들에게 광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도련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상급 마나스톤이 폭락하면서 하급 마나스톤 시장도 덩달아 요동치고 있습니다!"

늙은 집사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만류하려 했지만, 베르너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어리석은 소리! 상급 마나스톤은 허상일 뿐이다. 마법 제국을 지탱하는 진짜 '기둥'은 마법 공학 기기와 보급형 결계에 무제한으로 들어가는 하급 마나스톤이다. 괴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장 가치가 낮은 하급 광산이 기둥이 되리라고! 그리고 푹신한 담요처럼 단단한 기초 자산을 확보하라고 하셨다!"

베르너의 명령에 따라 로젠버그 상단은 폭락장 속에서 헐값으로 쏟아져 나오는 제국 전역의 하급 마나 광산과 물량을 독식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상급 마나스톤의 효율 저하로 제국의 모든 마법 산업이 마비될 위기에 처하자, 황실과 마법 탑은 울며 겨자 먹기로 대체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안정성이 높고 가공이 쉬운 하급 마나스톤이었다.

순식간에 하급 마나스톤의 수요가 폭발했다. 가격은 하루아침에 수십 배로 뛰어올랐다.

"하급 마나스톤의 가격이 상급 마나스톤을 추월했습니다! 로젠버그 상단이 제국 마나 유통량의 80%를 독점했습니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베르너는 상단 집무실에서 소리를 지르며 만세를 불렀다.

황실에서 빌린 대출금으로 상급 자산을 샀다가 파산 위기에 처한 귀족 가문들과 달리, 베르너 상단은 엘리엇의 핀잔 섞인 조언 한마디 덕분에 제국의 무역 권세와 마나 공급망을 완전히 장악해 버린 것이다. 단 하룻밤 사이에 벌어들인 대투기 파동의 순이익만 해도 조 단위에 육박했다.

베르너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쳤다.

"아아, 괴주님…… 당신의 안목은 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계신 것입니까? 이미 시장의 붕괴와 재편을 유적 안에서 전부 계산하고 계셨던 거군요!"

그는 즉시 펜을 들어 비밀 장부를 펼쳤다.

"이 조 단위의 수수료 자금 중 절반을 즉시 '원탁의 해석자들' 지하 기금으로 송금한다. 그리고……."

베르너의 눈이 빛났다.

"나머지 자금은 전액 엘리엇 괴주님의 기숙사 독채 개보수를 위해 배정한다. 최고급 실크 담요와 마력 소음 차단 결계, 그리고 흔들림 없는 침대를 제국 최고의 장인들을 불러 제작하도록!"

괴주님께서 원하셨던 '푹신한 수면 담요'는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의 경제를 장악한 뒤 얻어낼,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황제 수준의 안락한 휴식을 의미했던 것이다. 베르너는 괴주의 깊은 뜻을 완벽히 수행했다는 만족감에 온몸으로 기쁨의 전율을 흘렸다.

* * *

같은 시각, 아카데미 학생회실.

스스스…….

유리창 너머로 붉게 물든 노을빛이 방 안을 비추었지만,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드리안은 책상 위에 놓인 한 장의 서류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렌타인 공작가 및 학생회 재정 파산 우려 통지서]

황실 마법 은행의 붉은 직인이 찍힌 서류는 잔인하도록 명확했다. 상급 마나 광산 투기 실패로 인해 가문의 영지는 물론, 학생회가 관리하던 아카데미의 공적 자금까지 전부 압류당할 위기였다.

그가 그토록 수호하려 했던 완벽한 '질서'와 '체제'가, 단 사흘 만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어째서……."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어째서 하급 마나스톤이 시장의 중심이 된 거지? 수학적 연역으로도, 마법 공식으로도 이런 비상식적인 폭등은 일어날 수 없다. 이것은…… 인위적인 왜곡이다."

머릿속에서 단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제나 나른한 눈빛으로 의자에 파묻혀 있던 신입생, 엘리엇 드 벨레로폰.

유적지에서 수호자의 열쇠를 베르너에게 던져주던 그 순간, 이미 이 경제적 학살극은 시작된 것이었다. 베르너 상단이 하급 마나스톤을 독점할 수 있도록 판을 짜고, 자신을 비롯한 질서 진영의 숨통을 조여 오는 고도의 혼돈 전술.

"처음부터 나를 노린 거였나, 엘리엇……."

아드리안의 이마에 푸른 핏대가 솟구쳤다.

그는 자신이 구축한 아카데미의 완벽한 통제 체제가 저 괴주의 손가락 튕기기 한 번에 완전히 유린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대로 파산 통지서가 집행되면 가문은 몰락하고, 자신은 아카데미에서 쫓겨나게 된다.

질서가 무너진 세상에서 살아가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했다. 아니, 차라리 파괴하는 편이 나았다.

아드리안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렸다.

"내가 쉽게 무릎 꿇을 줄 알았나? 괴주…… 네가 아무리 신화적인 인과를 비튼다 해도, 아카데미의 근간을 이루는 고대 결계 자체를 지울 수는 없을 터."

그는 서랍 깊숙한 곳에서 붉은색 마정석이 박힌 비밀 열쇠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아카데미의 거대 고대 결계인 '카발라'의 자폭 자물쇠 제어 코어를 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다. 결계가 폭주하면 아카데미 내부의 모든 마나가 강제로 동결되고, 대폭발과 함께 시스템 전체가 초기화된다. 제국의 경제고 괴주의 음모고 간에, 전부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끝내겠다. 시스템과 함께 공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네 혼돈의 승리를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겠다."

아드리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학생회실의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아카데미 극장 지하 깊은 곳, 대결계의 심장부가 숨겨진 동굴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등 뒤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마치 파멸을 예고하듯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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