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숨을 쉴 때마다 허파가 찢어질 것처럼 아려 왔다. 아드리안 본 발렌타인은 붉은색 마정석이 박힌 비밀 열쇠를 손에 꽉 쥔 채, 어두컴컴한 지하 동굴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구두 굽이 거친 돌바닥을 내리칠 때마다 둔탁한 파열음이 동굴 벽을 타고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귀를 찢는 이명 속에서도 가문의 파산 서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전부 잃었다.’

학생회가 관리하던 아카데미의 공적 자금마저 상급 마나 광산 투기에 쏟아부었다가 통째로 날아갔다. 몰락이었다. 완벽함을 자부하던 그의 인생에 떨어진 가장 더럽고 비참한 얼룩이었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단 한 사람, 엘리엇 드 벨레로폰이었다.

그 나른하고 게으른 눈빛의 신입생이 베르너에게 던졌던 무심한 한마디.

― 가장 가치 낮은 하급 마나 광산이 기둥이 된다.

처음에는 그저 헛소리인 줄 알았다. 미천한 쓰레기 광산들이 제국 경제의 중심이 될 리가 없다고 치부했다. 그러나 시장은 비웃듯이 뒤집혔다. 베르너 로젠버그는 엘리엇의 그 한마디를 신탁처럼 받들어 하급 광산들을 사그리 쓸어 담았고, 상급 광산의 거품이 꺼지는 순간 홀로 대제국의 부를 독점했다. 반면 아드리안이 굳게 믿었던 황실 귀족 상단들은 휴지 조각이 된 상급 마나스톤을 안고 줄줄이 파산했다.

수학적 연역도, 가문이 자랑하던 마법 공식도 그 괴주의 손가락 튕기기 한 번에 무참히 조각났다.

"처음부터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 이 판을 짠 거였어……!"

아드리안이 마침내 지하 동굴의 끝, 아카데미의 심장부인 '카발라 극장'에 도달했다. 거대한 반원형의 공동(空洞) 중앙에는 아카데미 전체를 띄우고 유지하는 고대 교향 제어 결계핵이 푸른 빛을 발하며 회전하고 있었다.

결계핵의 주위로 뻗어 나간 수천 개의 마력 유로가 마치 살아 있는 신경망처럼 꿈틀거렸다. 아드리안은 광기에 젖은 눈으로 제어 코어의 자물쇠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너지면, 네가 지배하려는 이 아카데미도 존재할 수 없다."

그는 제어 가공이나 마력 완충 공식 따위는 깨끗이 무시했다. 붉은 비밀 열쇠를 결계핵의 심장부에 사정없이 쑤셔 넣었다.

끼이이익!

쇠붙이가 긁히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고대 결계핵의 봉인이 억지로 비틀려 열렸다.

* * *

우르릉!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진동이 아카데미 전체를 흔들었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카발라 극장의 천장 환기 구멍을 뚫고 솟구친 고대의 과부하 마나가 대기를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뭐, 뭐야? 마나가…… 마나가 통제가 안 돼!"

"내 지팡이가 멋대로 타오르고 있어!"

정원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카데미 전정의 물리 공식이 실시간으로 뒤틀리고 있었다. 중력의 방향이 미세하게 어긋나며 분수대의 물줄기가 하늘을 향해 역류했고, 공기 중의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져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통증이 느껴졌다.

학생들이 소지하고 있던 마법 수치 측정기들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펑, 펑 소리를 내며 불꽃을 뿜었다.

그리고 이 마력의 폭주는, 기숙사 가장 깊숙하고 아늑한 방에서 단잠에 빠져 있던 한 남자에게 직격타로 날아갔다.

"……."

엘리엇 드 벨레로폰은 침대 위에서 번쩍 눈을 떴다.

극심한 마력 과민증을 앓고 있는 그에게, 지금 아카데미를 가득 채운 과부하 마나 노이즈는 고막 바로 옆에서 쇠파이프를 징처럼 두들겨 대는 것과 다름없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왔다. 신경망 하나하나가 바늘에 찔린 듯 욱신거렸다.

오늘만큼은 완벽하게 16시간 동안 숙면을 취하려 했다. 침대의 깃털 이불은 포근했고, 방 안의 온도도 완벽했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진동이 기숙사 천장을 사정없이 흔들어 대며 그의 소중한 수면 리듬을 완전히 조각내 버렸다.

"……시끄러워."

그의 목소리는 낮고 낮아서, 오히려 주위의 온도를 영하로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엘리엇은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이마 위로 흘러내린 흑발 사이로, 살기 넘치는 차갑고 창백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평소의 나른함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깊은 수면을 방해받은 자의 극단적인 분노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스윽.

그가 목에 걸려 있던 싸구려 구리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입학식 날 제국의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착용했던, 마나 전도를 저하시키는 하급 도구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목걸이마저 폭주하는 마나의 진동으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감히 내 잠을 깨워?"

엘리엇은 침대 모서리를 거칠게 걷어찼다.

쾅! 하고 단단한 참나무 프레임이 단 한 번의 발길질에 수수깡처럼 부서져 나갔다. 그의 주변으로 일렁이는 무형의 압도적인 중압감이 방 안의 가구들을 짓눌렀다. 평소 최소한의 동작으로 게으름을 피우던 그였기에, 이 거친 행동 하나가 뿜어내는 위압감은 가히 파괴적이었다.

* * *

한편, 아카데미 중앙 광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하늘은 마치 피를 흘리듯 붉은 균열로 가득 찼고, 뒤틀린 결계의 파편들이 번개처럼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학생회 소속의 질서 결사대원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지하 제어실로 가려 했으나,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장벽이 있었다.

"어머, 다들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가시나요?"

광장으로 통하는 유일한 도로 장벽 위에 실비아 라인하르트가 서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하늘의 붉은 빛을 받아 기괴할 정도로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다.

"실비아! 비켜라! 지금 학생회장님이 지하에서 대결계를……!"

"후후, 아드리안 선배의 가련한 발악을 도우러 가시게요?"

실비아는 가볍게 실소를 터뜨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뒤편으로 '원탁의 해석자들' 단원들이 일제히 마법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에요. 마침내 괴주님이 불멸의 질서 체제를 제거하고, 이 아카데미에 새로운 장막을 펼치시는 위대한 의식이라고요!"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학교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질서 결사대의 외침에도 실비아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였다.

"바보 같기는. 괴주님께서 하급 광산을 통해 제국의 썩은 금융을 흔드신 것은 이 거대 결계를 재구성하기 위한 밑그림에 불과했어요. 하늘이 찢어지는 이 장엄한 광경을 보세요! 이것이야말로 그분이 약속하신 구세계의 종말이자 신세계의 도래입니다!"

"이 미치광이들이 정말……! 전원, 강행 돌파한다!"

결사대원들이 마법을 캐스팅하려 했으나, 실비아의 마법 장벽은 그들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빠르게 도로 통로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그녀는 광적인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괴주님의 첫 번째 제자로서, 그 어떤 하찮은 방해도 허락하지 않겠어요. 시작하세요, 나의 주인이시여……!"

* * *

그 시각, 기숙사 문을 열고 나온 엘리엇은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그의 하얀 잠옷 셔츠 깃을 거칠게 흔들었다. 공기 중의 마나가 너무 뻑뻑해 숨을 쉬기조차 귀찮았지만, 이 소음을 끝내지 않으면 평생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귀찮게 하는군."

엘리엇은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 순간, 그의 발끝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파동이 지면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인과율 조율'의 극소 제어.

그는 제국 경제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오직 이 시끄러운 마력 파동을 잠재울 수 있는 최소한의 마찰 지점을 찾았다. 허공에 손가락을 뻗자, 그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미세한 황금빛 실선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구리 목걸이가 파르르 떨리며 엘리엇의 전신을 거대한 마나 전도체로 탈바꿈시켰다.

파아앗!

엘리엇의 머리 위로, 아카데미 상공 전체를 뒤덮을 만큼 거대하고 정교한 황금 무늬의 인과율 원판이 투사되었다. 그것은 고대의 수학적 질서조차 초월한, 오직 세상의 인과를 쥐고 흔드는 괴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신화적 권능의 시현이었다.

"조용히 해라."

엘리엇의 매서운 목소리와 함께, 황금빛 원판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황금빛 원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는 기묘하게도 고요했다.

웅장한 마법의 효과음 대신, 낡은 시계태엽이 째깍거리는 듯한 극도의 정밀함만이 아카데미의 대기를 메웠다. 엘리엇은 그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짚었을 뿐이었다. 폭주하는 카발라의 대결계는 그에게 있어 거대한 재앙이 아니라, 그저 단잠을 방해하는 '시끄러운 소음 진동기'에 불과했다.

"……역위상."

그가 귀찮다는 듯 혼잣말을 읊조렸다.

인과율 조율의 권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거창한 마법진을 그릴 필요도 없었다. 엘리엇은 폭주하는 마나의 주파수를 정확히 반대로 꺾어 상쇄시키는 '역방향 마나 파동'을 아주 얇고 넓게 펼쳤다. 세계의 등가교환 법칙을 자극해 제국 광산의 마나스톤 가치를 또다시 폭락시키지 않기 위한, 그만의 철저한 극소 제어 공법이었다.

하지만 밑에서 이를 지켜보는 천재들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비쳤다.

"말도 안 돼……."

결사대의 마법 장벽을 가로막고 서 있던 실비아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는 뺨을 타고 흐르는 전율의 눈물을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결계의 자폭 마나를 가두거나 소멸시키는 게 아니야. 마나의 '흐름' 자체를 완전히 무(無)로 되돌리고 있어. 우주의 인과율을 거슬러 시간의 태엽을 뒤로 감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저, 저게 정말 신입생의 마법이라고?"

결사대원들의 손에서 지팡이가 힘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그들이 평생을 바쳐 공부한 수학적 마법 공식으로는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수식을 대입하려 할 때마다 머릿속의 마나 연산 회로가 과열되어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 순간, 엘리엇의 목에 걸려 있던 싸구려 구리 목걸이가 한계에 달했다.

지나치게 정교한 인과율 조율의 통로 역할을 하느라, 조잡한 구리 체인이 붉게 달아오른 것이다.

팅―!

가느다란 금속 마찰음과 함께, 목걸이의 체인 연결고리 중 하나가 툭 끊어지며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엘리엇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끊어진 고리를 잡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았다. 그는 그저 끊어진 구리 고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땅으로 떨어지는 궤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인과율은 게으른 그의 방관조차 기적으로 세공해 냈다.

허공에서 황금 원판의 인과율 파동을 맞은 구리 고리는 신화적인 가속도를 얻었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탄환처럼, 아카데미 정원의 흙바닥을 뚫고 지하 깊숙한 곳으로 무섭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 * *

지하 카발라 극장의 통제실.

아드리안은 제어 코어의 자폭 자물쇠가 완전히 해제되었음에도 아무런 폭발이 일어나지 않자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째서…… 폭주가 멈춘 거지? 공식이…… 공식이 뒤틀려 역방향으로 수렴하고 있어!"

그가 미친 듯이 제어판을 두들겼지만, 이미 카발라의 대결계는 그의 손을 떠나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황금빛 실선들이 대결계의 심장부를 칭칭 감아쥐고, 뒤엉킨 마력 회로들을 가장 완벽하고 효율적인 '질서'의 배열로 재정렬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드리안이 평생을 바쳐 도달하고자 했던, 추호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수학적 낙원이었다.

"내가 틀렸단 말인가……? 이것이 괴주가 추구하는 진정한 질서……?"

쾅!

그때, 통제실의 두꺼운 천장을 뚫고 무언가 번쩍이며 날아와 결계핵의 정중앙에 박혔다.

지직, 지지직!

붉게 타오르던 결계핵의 폭주 인입선이 정확히 그 이물질에 관통당하며 맥없이 차단되었다. 아드리안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 이물질을 확인하기 위해 기어갔다.

결계의 대폭발을 완벽하게 저지하고 마핵을 최적화 상태로 고정시킨 '최종 제어 핀'.

그것은 놀랍게도, 길거리 잡상인조차 거들떠보지 않을 싸구려 구리 목걸이의 끊어진 체인 고리였다.

"……겨우, 이깟 구리 조각 하나로?"

아드리안의 무릎이 바닥에 털썩 꺾였다.

그가 가진 모든 권력과 지식, 가문의 사활을 걸고 발동한 자폭 프로토콜이 단돈 3실버짜리 구리 고리 하나에 무참히 무력화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다. 철저한 격의 차이에서 오는 영혼의 굴복이었다.

* * *

아카데미 뒤편의 숲속,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황실 정보원 이벨린은 손에 든 마력 망원경을 떨어뜨렸다. 그녀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성자(聖者)…… 아니, 이건 성자의 영역이 아니야."

그녀는 제국 수비대의 순찰 경로를 가리키던 엘리엇의 손가락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하늘의 붉은 폭주를 단 한 번의 눈짓으로 잠재우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아카데미를 파괴하려는 게 아니었어. 제국 전체의 마나 흐름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길들이고 있는 거야. 베르너 상단을 움직여 경제를 마비시킨 것도, 결국 이 대결계의 폭주를 유도해 아카데미의 권력을 한 손에 쥐기 위한 고도의 연출……!"

이벨린은 공포로 가득 찬 숨을 몰아쉬며 품속의 통신기 깃털을 꺼내 들었다. 황실에 즉시 보고해야 했다. 헬리오스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은 일개 신입생이 아니라, 대제국의 질서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장막 뒤의 지배자'라는 사실을.

* * *

정작 하늘 밑에 서 있는 엘리엇은 밀려드는 피로감에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하늘의 붉은 빛은 완전히 걷혔고, 뒤틀렸던 중력과 대기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제 드디어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할 수 있을 터였다.

"……졸려."

그가 부서진 침대 프레임을 대충 치우고 바닥에 누우려던 찰나였다.

위이이잉―!

갑자기 정원 전체를 뒤덮고 있던 황금빛 인과율 원판이 조각나며 거대한 마나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정돈된 마나들이 갈 곳을 잃고, 이 기적을 일으킨 '근원'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나의 폭포수가 엘리엇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의 이마 위에 기묘한 금빛 성흔(聖痕)의 문양이 일시적으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동시에 아카데미 전체에 그전까지는 느껴지지 않던 거대하고 신성한 대마도사의 마력 파동이 은은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어……?"

엘리엇의 무표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 왔건만, 폭주를 수습한 대가로 아카데미의 대결계가 그를 '새로운 절대적 지배자'로 공인하며 온 세상에 그의 존재를 광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숙사 밖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이 지르는 경악의 함성이 그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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