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거울의 방에 감도는 공기는 차라리 얼음송곳에 가까웠다. 샹들리에의 수천 개 크리스탈이 뿜어내는 백색 광원이 황태후 헬레나가 치켜든 보석 상자 위로 쏟아졌다. 상자 안, 진홍빛 벨벳을 침대 삼아 누워 있는 '푸른 눈물'은 마치 제국의 모든 권위를 응축한 듯 오만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꺼이 응하겠느냐고 물었다, 아르젠트 공녀."

황태후의 입술이 매끄러운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 교활하게 번뜩이는 눈동자는 이미 사냥감을 올가미에 완전히 밀어 넣었다고 확신하는 맹수의 그것이었다. 주위에 늘어선 영애들과 귀족들은 숨을 죽인 채 엘리시아의 입술만을 주시했다. 감히 황실의 상징이자 불멸의 진품이라 불리는 영물에 토를 다는 순간, 기다리는 것은 단두대뿐이라는 사실을 방 안의 그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엘리시아는 가볍게 턱 끝을 치켜올렸다. 상아빛 실크 장갑을 낀 손가락이 가느다란 부채 위를 옭아쥐듯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시야 한구석, 반투명한 푸른빛으로 떠오른 '사교계 평판 장부'가 미친 듯이 연산을 시작하며 붉은 경고등을 점멸하고 있었다.

[경고: 대상 '푸른 눈물(황실 영물)'의 평판 가치 측정 중...] [정보 동기화 완료: 2화 복선 '고대 보석 내부의 미세한 크랙 및 위조 결함 정보' 활성화] [현재 보석 내구도: 12% (내부 수지 결합층 열화 상태)] [물리적 접촉 및 평판 수치 조율 시, 결함 표출 확률: 100%]

"황태후 폐하."

엘리시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청아했으나, 그 끝에는 벼려진 칼날의 서늘함이 묻어났다.

"제국의 역사와 황실의 신뢰가 고작 돌멩이 하나에 담겨 있다는 말씀은 참으로 흥미롭사옵니다. 그렇다면 그 위대한 신뢰의 무게를, 제가 직접 확인해 보아도 되겠습니까?"

"오냐. 허락하마."

황태후는 조소했다.

"그 고결한 손으로 만져 보아라. 제국의 신화가 네 년의 얄팍한 세작질에 부서질 물건인지 똑똑히 깨닥게 될 테니."

황태후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변의 공기가 한 층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귀족들은 저마다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눈빛을 교환했다. 아르젠트 공녀가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다는 비웃음과, 혹시 모를 파란을 기대하는 은밀한 탐욕이 뒤섞인 눈빛들이었다.

엘리시아는 단 한 걸음도 서두르지 않았다. 짙은 청색 사틴 실크 드레스의 밑단이 대리석 바닥을 쓸며 부드러운 마찰음을 냈다. 어깨를 감싼 정교한 레이스 장식이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 물결치듯 흔들렸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을 닮은 사내, 레이반이었다. 그의 단단한 손이 허리에 찬 예검의 자루를 쥔 채, 언제든 황태후의 사병들을 베어 넘길 기세로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있었다. 레이반의 짙은 눈동자에는 오직 엘리시아 한 사람만을 향한 맹목적인 신뢰와 보호욕이 담겨 있었다.

'기다려라, 나의 사냥개여. 아직은 검을 뽑을 때가 아니니.'

엘리시아는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읊조리며 마침내 보석 상자 앞에 도달했다. 붉은 벨벳 위에 놓인 '푸른 눈물'은 사방으로 눈부신 청색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엘리시아의 눈에 비치는 것은 그 찬란한 광채가 아니었다. 평판 장부의 인터페이스가 투사한 보석의 실제 단면도였다.

[아이템: 푸른 눈물 (위조 및 열화 상태)] [세부 정보: 300년 전 대화재 당시 내부 균열이 발생하자, 황실 전속 연금술사가 저열한 천연 수지와 유리 결정을 주입하여 봉인함. 외부 자극과 특정 주파수의 마력 진동에 극도로 취약함.] [액션 플롯: 장부 내 평판 지수를 일시적으로 소모하여 '결함 수치 연산 보정'을 극한으로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 대가: 조작 성공 시 엘리시아의 '사회적 악명 수치(오명)'가 일시적으로 상승할 위험이 있습니다. 현재 오명 수치: 55%]

엘리시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잔인하게 휘어졌다. 그녀는 주저 없이 오른손의 실크 장갑을 천천히 벗어내렸다. 드러난 백옥 같은 맨손가락이 차가운 보석의 표면에 닿았다.

화려하게 치장한 영애들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거울의 방을 채웠다. 몬태규 부인은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사색이 된 얼굴로 엘리시아를 바라보았고, 황태후는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리 만져본들 변하는 것은 없다, 공녀. 그것은 불멸의..."

"폐하."

엘리시아가 황태후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장부의 마력 지수가 보석 내부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평판 장부 연산 보정 가동.] [푸른 눈물의 결함 수치 강제 증폭: 12% -> 100%] [미세 크랙 연쇄 붕괴를 시작합니다.]

"제국의 신뢰라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부서지기 쉬운 법이옵니다."

그녀의 속삭임과 동시에, 보석의 푸른 표면 위로 보이지 않는 파동이 일었다. 엘리시아는 손끝에 아주 가벼운, 깃털을 얹는 듯한 압력만을 가했다.

쩍-.

정적을 깨뜨린 것은 아주 작지만, 방 안의 모든 이들의 심장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선명한 균열음이었다.

황태후 헬레나의 미소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무슨...?"

쩍, 쩌적!

균열은 순식간에 거미줄처럼 보석 전체로 번져나갔다. 눈부시게 빛나던 청색광이 순식간에 탁하게 흐려지더니, 보석 중심부에서부터 거무스름하고 끈적한 액체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300년 동안 감추어져 있던 추악한 비밀이 마침내 지표면 위로 솟구치는 순간이었다.

바스락, 타앙!

마지막 비명과 함께 '푸른 눈물'은 그대로 사분오열하며 붉은 벨벳 상자 위로 무너져 내렸다. 사방으로 튄 것은 찬란한 백 보석의 파편이 아니었다. 거무죽죽하게 변색된 천연 수지의 끈적한 덩어리와, 그 표면에 조잡하게 붙어 있던 저열한 유리 결정체들이었다.

사교계 인물들의 감식안은 날카로웠다. 매일같이 보석의 가치를 매기며 살아가는 귀족 영애들과 부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저건..." "수지잖아? 게다가 안쪽은 완전히 조잡한 유리 결정이고..." "황실의 영물이... 불멸의 백 보석이 고작 유리와 접착제로 붙여 만든 모조품이었다고?"

거울의 방이 순식간에 웅성거림으로 뒤덮였다. 귀족들의 눈빛에 경악과 의심, 그리고 은밀한 조소가 떠올랐다. 평생을 황실의 권위 아래 복종하며 살아온 그들에게, 황실을 상징하는 가장 위대한 보석이 '가짜'였다는 사실은 제국의 도덕성이 통째로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말도 안 돼! 네년이... 네년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냐!"

황태후 헬레나가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품위 있던 얼굴은 핏기가 완전히 가셔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화려하게 올린 머리칼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무너진 보석 파편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끈적한 수지가 손가락에 묻어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엘리시아는 차분하게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 끝에 묻은 보석의 잔해를 우아하게 닦아내며 미소 지었다.

"수작이라니요, 폐하. 저는 그저 폐하의 말씀대로 가볍게 손을 대었을 뿐입니다. 불멸의 진품이라면 제 미약한 손길에 이토록 허망하게 바스러질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 이 사악한 년...! 감히 황실의 보물을 파괴하고 모독해?"

"모독이라니 당치 않사옵니다."

엘리시아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방 안의 귀족들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눈빛은 사교계라는 거대한 체스판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여왕의 그것이었다.

"오히려 황실이야말로 이 조잡한 모조품으로 지난 수백 년간 사교계를 기만해 온 것이 아닙니까? 진품 보증 수표라 자부하던 영물이 고작 천연 수지와 유리의 결합품이었다니. 제국의 법과 신뢰를 수호해야 할 황실이 가짜를 진짜라 우기며 귀족들을 핍박해 왔다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크윽...!"

황태후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뒷목을 타고 올라오는 극심한 충격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듯했다. 그녀의 정치적 권위는 이 보석의 붕괴와 함께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사교계의 영애들은 이제 황태후가 아닌, 그 중심에서 홀로 빛나는 엘리시아를 경외와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엘리시아의 평판 장부에서 찬란한 황금빛 회오리가 일어났다.

[알림: 황실의 절대적 상징 '푸른 눈물'의 사기 행각 폭로 완료.] [살롱 드 루미에르 플랫폼 지배 지분 급등: 42% -> 58% (과반수 돌파 완료!)] [황실 우호 가문들의 평판 가중치 격하 완료.] [사용자의 사회적 악명 수치(오명) 변동: 55% -> 58% (일시적 상승 후 안정화 추세)]

성공이었다. 황태후가 파놓은 함정을 역이용해, 제국 사교계의 금융 플랫폼이자 정보 거래소인 '살롱 드 루미에르'의 지배 지분을 과반수 이상 확보한 것이다. 이제 황실이라 할지라도 사교계 내에서 엘리시아의 동의 없이 그 어떤 유행도, 그 어떤 평판도 조작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거대한 사이다의 순간, 레이반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거대한 체구가 엘리시아의 뒤를 든든하게 받쳤다. 그의 은빛 눈동자는 평소의 차가운 살기 대신, 오직 엘리시아만을 향한 깊은 갈망과 경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냉철한 지략과 압도적인 통제력 앞에, 제국의 전쟁광이라 불리던 사냥개는 기꺼이 머리를 조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공녀의 혜안 앞에 온 제국이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레이반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엘리시아를 완벽한 자신의 반려이자 주군으로 인정하는 단단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엘리시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텐션은 그 어떤 육체적 접촉보다도 은밀하고 뜨거웠다. 그녀는 레이반의 존재를 통해, 서랍 속에 고이 보관해 둔 '헤이즐넛 가문 반역 무고용 위조 직인'을 떠올렸다. 황태자 테오도르가 가문을 말살하기 위해 꾸민 추악한 음모의 핵심 증거. 그것이 바로 엘리시아의 손아귀에 있었다.

'황태후를 꺾었으니, 다음은 네 차례다. 테오도르.'

그녀가 속으로 복수를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거울의 방 입구에서 묵직한 군화 소리가 복도를 울리며 다가왔다. 단순한 경비병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철갑을 두른 정예 병사들의 일사불란한 발소리. 그리고 그 중심에서 풍기는 가학적이고 오만한 마력의 기운.

쾅-!

거울의 방 문이 거칠게 열리며, 황실 전속 친위 사관대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그들의 등 뒤로, 백금색 머리칼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사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황태자, 테오도르 폰 로엔그린이었다.

그의 입가에는 특유의 위선적인 미소가 걸려 있었으나, 눈동자는 뱀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바닥에 부서진 '푸른 눈물'의 파편을 힐끗 보더니, 이내 엘리시아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참으로 훌륭한 광대를 보았군, 아르젠트 공녀."

테오도르가 손뼉을 천천히 치며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 백여 명에 달하는 친위 사관대원들이 무기를 겨누며 거울의 방을 완전히 포위했다. 방 안의 영애들이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피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네 유희는 여기까지다."

테오도르는 품 안에서 황실 통제국의 붉은 인장이 찍힌 체포 영장을 꺼내 들었다.

"엘리시아 드 아르젠트. 감히 황실의 신성한 유물을 마법으로 훼손하고, 사교계를 허위 사실로 교란하여 황실의 명예를 실추시킨 공공 사기 및 반역 혐의로 너를 직속 기소한다. 즉시 체포하라."

사관대원들의 검끝이 일제히 엘리시아의 목을 향해 뻗어 나갔다. 레이반의 손이 검자루를 잡고 검신을 반쯤 뽑아내며 살기를 뿜어냈으나, 사관대의 기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엘리시아는 오히려 차갑게 미소 지었다. 황태자의 눈빛과 엘리시아의 눈빛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과연 이 올가미를 풀고 황태자의 목을 조를 칼날은 누가 쥐게 될 것인가.

침묵 속에서, 새로운 전쟁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무례인가, 테오도르!" 아르젠트 공작가의 원로 세력 중 하나인 베르몽드 후작이 뒤늦게 목소리를 높였으나, 황태자의 시선 한 번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테오도르의 눈빛은 이미 단순한 사교계의 기싸움을 넘어선,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지, 후작." 테오도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엘리시아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기묘한 소유욕과 가학적인 흥분이 뒤섞여 일렁였다. 자신을 그토록 곤란하게 만들었던 영리한 여우를 마침내 제 손으로 옭아맸다는 쾌감이 그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자, 아르젠트 공녀. 네가 자랑하던 그 대단한 '살롱'의 법조인들이 너를 이 상황에서 구해줄 수 있을지 어디 한번 지켜보지." 황태자의 비아냥에 엘리시아는 대답 대신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레이반의 검을 살포시 눌렀다. 레이반은 그녀의 손길이 닿자마자, 들끓던 살기를 억누르며 검을 다시 칼집으로 밀어 넣었다. 비록 몸은 뒤로 물러섰으나, 그의 온 신경은 여전히 황태자의 목줄기를 향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황태자 전하." 엘리시아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패배자의 절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를 더 깊은 수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파놓은 덫 위에 서 있는 사냥꾼의 여유였다.

"제가 이 자리에서 순순히 따라간다면, 전하께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까?" "대가라." 테오도르가 낮게 실소했다. "죽어가는 자의 허세치고는 제법 쓸만하군. 끌고 가라!"

사관대원들이 엘리시아의 양옆을 거칠게 포위했다. 차가운 철제 수갑이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향해 다가오는 순간에도, 엘리시아는 황태후의 일그러진 얼굴과 황태자의 오만한 눈빛을 머릿속 장부에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었다.

[사교계 평판 장부 최종 연산 가동] [적대 세력 '로엔그린 황가'의 평판 균열도: 45% -> 68% (사기 행각 노출로 인한 급격한 붕괴 진행 중)] [다음 시나리오: 대심판정 최종 공판 체인 활성화]

'그래, 짖어보아라. 테오도르. 네가 높이 올라갈수록, 내가 떨어뜨릴 낭떠러지는 더 깊고 참혹할 테니까.'

엘리시아는 스스로 손목을 내밀며, 거울의 방을 나서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뒤로, 수많은 귀족들의 수군거림과 황태후의 독기 어린 시선, 그리고 레이반의 묵직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제국의 가장 화려한 유리 궁전에서 시작된 불꽃은, 이제 황실의 심장부인 대심판정으로 옮겨붙을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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