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사막의 칼바람은 뼛속까지 시렸다. 밤하늘을 붉고 푸르게 물들인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의 네온사인들은 그 열기마저 얼려버릴 듯 차갑게 번쩍였다. 공항에서 벨라지오 호텔로 향하는 리무진의 유리창 너머로, 세계 최대의 야구 시장을 움직이는 거물들의 거대한 전장, 윈터 미팅의 서막이 보였다.

차 문이 열리자마자 라스베이거스의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검은색 오버코트 깃을 세운 한준우가 먼저 대리석 바닥을 밟았다. 그의 뒤로 정장 차림의 레이첼 민과, 잔뜩 긴장한 채 후드 모자를 깊게 눌러쓴 강도윤이 내렸다.

호텔 회전문을 통과해 로비로 들어선 순간, 화려한 이탈리아풍 유리 공예 천장 아래로 수백 명의 야구 관계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단장, 스카우트 책임자, 그리고 그들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에이전트들이 뒤엉킨 그곳은 거대한 자본의 냄새로 가득했다.

그러나 준우 일행이 로비 중앙 분수대를 지나 VIP 구역으로 향하려는 찰나, 검은 슈트를 맞춰 입은 거구의 사내 세 명이 정면을 가로막았다. 사내들의 가슴팍에는 에이펙스 스포츠(APEX Sports)의 금빛 로고 핀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비공식 대리인 및 미승인 인원의 출입이 제한됩니다. 돌아가시죠, 한준우 씨.”

선두에 선 경비 책임자가 준우의 가슴팍을 향해 굵은 팔뚝을 뻗었다. 위협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신체적 압박. 그의 손가락 끝이 준우의 코트 깃에 닿기 직전, 준우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미승인 인원이라.”

준우가 건조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벨라지오 호텔의 로비가 언제부터 에이펙스의 사유지가 됐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최하는 윈터 미팅의 공식 등록 에이전트 카드 발급 처는 저 안쪽인 걸로 아는데.”

“사무국의 지침입니다. 에이펙스의 협조 요청에 따라, 시장 교란 및 탬퍼링 혐의가 있는 개인 에이전시의 출입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힘으로 해결하기 전에 좋은 말로 할 때 나가시지.”

사내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폭력적인 제압을 서슴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거대 카르텔의 수장, 에드워드 스톤이 쳐놓은 얄팍한 바리케이드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준우의 옆에 서 있던 레이첼 민이 가죽 서류 가방의 지퍼를 부드럽게 열었다. 그녀의 손에서 붉은색 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서류 한 장이 허공을 갈랐다. 경비 책임자의 코앞에서 서류가 가볍게 털렸다.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노조(MLBPA) 법률 제소장 및 임시 출입 보장 처분서입니다.”

레이첼의 목소리는 얼음송곳처럼 예리하게 로비의 공기를 찢었다.

“귀하들이 지금 막아서고 있는 한준우 대표는 MLBPA 정식 등록 에이전트이며, 소속 선수인 강도윤 역시 메이저리그 진출 자격을 갖춘 정식 포스팅 대상자입니다. 에이펙스의 사설 경비 인력이 공인 에이전트의 공식 업무를 신체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는, 네바다주 주법 제413조에 따른 ‘불법 구금 및 업무방해’에 해당합니다. 또한, 연방법 제2조 셔먼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즉각적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대상이 됩니다.”

경비 책임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서류 하단에 찍힌 선수노조 수석 법률고문의 친필 서명과 연방법원 접수인이 그의 시선을 옭아맸다.

“이, 이건…….”

“비켜요.”

레이첼이 비웃음이 섞인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다가섰다.

“소송 피고인 명단에 에이펙스뿐만 아니라 귀하들의 개인 인적 사항까지 등재되는 걸 원치 않는다면.”

그 순간, 로비 건너편에서 렌즈가 빠르게 회전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어? 저기 봐! 강도윤이다!”

“그 고척돔에서 100마일 던진 한국인 괴물 투수!”

스포츠 전문 매체인 ESPN과 디 애슬레틱의 기자들이 카메라를 치켜들며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광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눈이 멀 것 같은 하얀 불빛이 벨라지오 호텔의 로비를 가득 메웠다.

강도윤이 천천히 후드 모자를 벗었다. 193센티미터의 압도적인 거구, 터질 듯한 광배근과 벌크업된 어깨가 슈트 위로 완벽한 위압감을 풍겼다. 녀석의 눈빛은 마운드 위에서 타자의 몸쪽 꽉 찬 광속구를 꽂아 넣을 때처럼 차갑고 묵직했다.

“강도윤 선수! 이번 윈터 미팅에서 다저스와 구체적인 협상이 오갈 예정입니까?”

“에이펙스의 방해 공작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쏟아지는 질문 세례 속에서 경비들은 더 이상 준우 일행을 힘으로 막아설 수 없었다. 수많은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의 물리적 충돌은 에이펙스에게 치명적인 스캔들이 될 터였다.

준우는 당황해 물러서는 경비 책임자의 어깨를 툭 치며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방패 삼아, 그들은 카르텔이 구축한 보이지 않는 바리케이드를 비웃듯이 돌파해 VIP 로비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법의 사각지대와 선수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짜낸, 완벽한 정면 돌파였다.

로비 안쪽의 소음이 조금은 차단된 VIP 라운지 근처.

준우는 기자들을 레이첼에게 맡겨둔 채, 라운지 한구석의 대리석 기둥 뒤로 걸어갔다. 그의 시선은 라운지 창가 자리에 홀로 앉아 식어버린 테이크아웃 커피를 신경질적으로 들이켜고 있는 한 사내에게 고정되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기며 아이패드의 수치들을 들여다보는 사내. LA 다저스의 단장(GM), 윌리엄 해리스였다.

준우의 시야가 미세하게 진동하며, 반투명한 푸른빛의 스펙트럼이 해리스의 머리 위로 펼쳐졌다. ‘스카우팅 원장 Lv.2’가 그의 뇌 속 정보와 구단의 재정 상태를 실시간으로 스캔하여 시각화하기 시작했다.

================================== [스카우팅 원장 Lv.2 - 실시간 대상 분석] 대상: 윌리엄 해리스 (LA 다저스 단장) 현재 심리 상태: 극심한 조바심, 경질 공포, 만성 두통 구단주 압박 지수: 92% (최근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조기 탈락으로 인한 경고 누적) 사치세(CBT) 한도 초과 리스크: 4,800만 달러 (페널티율 50% 최고 세율 적용 임박) 선발진 기대 WAR 합계: -4.2 (에이스 부상 및 전력 이탈로 인한 붕괴 상태) 핵심 모순: 사치세 한도를 초과하지 않으면서 최소 WAR 5.5 이상을 보장할 ‘저비용 고효율’ 에이스 영입이 강제됨. *특이 사항: 구단주의 눈을 피해 진행 중인 해외 법인을 통한 불법 세무 회피 장부 시트가 시스템에 연동 중. ==================================

준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7화에서 100만 달러를 아낌없이 지출해 업그레이드한 장부의 힘이 마침내 그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다저스 단장의 목을 죌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과 구단의 아킬레스건이 숫자로 변환되어 그의 손바닥 위에 놓였다.

‘사치세 한도 초과 리스크 4,800만 달러라…….’

다저스는 지금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구단주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요구하지만, 사치세 페널티 때문에 시장의 대어급 FA 선발 투수들에게 2억 달러 이상의 대형 계약을 안겨줄 여력이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연봉은 적게 시작하되, 확실한 승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젊은 괴물 투수였다.

그리고 그 카드는 오직 한준우만이 쥐고 있었다.

동시에 준우는 머릿속으로 에드워드 스톤이 지금쯤 겪고 있을 지옥을 떠올렸다.

불과 사흘 전, 에드워드는 준우로부터 라틴계 외야 유망주 타일러 크루즈의 계약권을 현금 200만 달러에 넘겨받았다. 준우가 의도적으로 유출한 쇼케이스 정보에 눈이 멀어 급하게 계약서에 서명한 결과였다.

당시 준우는 계약서의 세부 조항 속에 정밀한 독소 조항을 심어두었다. [제7조 4항: 선수의 선천적 관절 손상, 연골 연화증을 포함한 기왕증으로 인한 부상 발생 시, 양도인은 일체의 책임을 면하며, 인수 구단은 드래프트 보상권 트레이드 권리를 즉시 상실한다.]

레벨 2로 진화한 스카우팅 원장의 ‘계약 독소 조항 분석’ 기능이 완벽하게 빚어낸 덫이었다. 에드워드는 크루즈의 선천적 무릎 연골 연화증 상태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준우의 싹을 자르고 유망주를 선점하겠다는 욕망에 눈이 멀어 서명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이틀 전, 크루즈의 무릎 연골이 완전히 주저앉으며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에드워드는 200만 달러를 허공에 날렸을 뿐만 아니라, 그를 영입하려던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계약 사기 혐의로 거센 항의를 받으며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드래프트 보상권마저 면책 조항에 묶여 휴지조각이 되었다.

카르텔의 수장이 제 꾀에 제가 넘어가 피를 흘리고 있는 꼴이었다.

준우가 해리스 단장에게 다가가려던 그때였다.

VIP 라운지의 유리문이 거칠게 열리며, 주위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로비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숨을 죽이며 한곳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실크 코트를 걸친 노신사가 수십 명의 경호원과 에이펙스 소속 에이전트들을 거느리고 라운지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에드워드 스톤이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의 오만한 미소 대신, 핏기 없이 하얗게 질린 채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크루즈 건으로 입은 경제적 손실과 업계에서의 신인도 하락이 그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낸 것이 분명했다.

에드워드의 매서운 눈동자가 준우를 발견하자마자, 그의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거구의 경호원들이 준우와 도윤의 주변을 에워싸며 위압적인 진형을 갖추었다.

에드워드가 준우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숨결에서 차가운 분노의 냄새가 풍겼다. 그는 뼈마디가 튀어나온 마른 손가락을 뻗어 준우의 오버코트 깃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이 준우의 쇄골을 박아 누르듯 강한 힘이 실렸다.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내 판에서 장난질을 쳐?”

에드워드의 목소리는 낮고 음산하게 긁혔다.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준우를 찢어발길 듯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네가 그런 잔머리로 나를 물 먹였다고 해서 이 판의 주인이 바뀔 것 같나? 착각하지 마라, 한준우.”

준우는 자신을 짓누르는 에드워드의 손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에드워드의 어깨너머, 멀리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다저스의 해리스 단장에게 향해 있었다.

에드워드가 준우의 귓가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속삭였다.

“오늘 밤, 윈터 미팅의 백룸 밀실 거래가 시작된다. 하지만 똑똑히 기억해 둬라. 너와 저 한국인 괴물 놈은 단 한 군데의 방에도 발을 들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단장들에게 이미 경고했으니까.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너희와 대화조차 나누지 않을 거다.”

에드워드의 입꼬리가 잔인하게 비틀렸다.

“오늘 밤, 너희는 차가운 사막 먼지만 마시며 쫓겨나게 될 거다. 네 놈의 그 얄팍한 제국 꿈은 여기서 끝이야.”

숨 막히는 침묵이 라운지를 지배했다. 에드워드의 서슬 퍼런 협박이 공간을 짓누르는 가운데, 준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에드워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준우의 입술이 천천히 열리며, 보이지 않는 균열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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