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진동음이 대리석 책상 유리를 날카롭게 긁었다. 액정 위에서 점멸하는 ‘에드워드 스톤’이라는 이름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의 눈초리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옆에 선 레이첼 민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녀의 시선은 방금 태블릿 PC로 확인한 ESPN의 속보와 준우의 스마트폰 사이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1,500만 달러짜리 트레이드가 성사되기 직전, 타일러 크루즈의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완전히 파열되었다. 에이펙스 스포츠가 준우에게 200만 달러를 지불하고 계약권을 양도받은 지 고작 이틀 만에 벌어진 참사였다.

준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손을 뻗어 액정을 쓸어 넘겼다. 스피커폰 너머로 수화기를 뚫고 나올 듯한 폭음이 방 안을 난타했다.

-한준우! 이 비열한 새끼가 감히 날 속여?!

뉴욕의 에이펙스 본사 집무실에서 수천 마일의 거리를 넘어 전해지는 에드워드의 목소리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 있었다. 쇠를 긁는 듯한 탁성이 수화기 너머의 집기들이 박살 나는 소음과 뒤섞였다.

“목소리가 크십니다, 스톤 대표님. 시차 적응도 안 된 한국에서 듣기에는 다소 자극적이군요.”

준우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마치 아침 날씨를 묻는 듯한 나른함마저 배어 있었다. 그 태연함이 에드워드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개소리 집어치워! 네놈이 타일러 그 새끼 무릎이 씹창나기 직전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어! 고의로 결함을 숨기고 위조된 메디컬 리포트를 넘긴 거야! 이건 명백한 사기 계약이다! 소송으로 네놈의 에이전시 껍데기까지 탈탈 털어 길거리로 쫓아내 줄 테니 그리 알아!

“사기라니요.”

준우가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우리가 체결한 양수도 계약서를 다시 정독해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에이펙스의 그 유능한 법무팀이 밤새 검토하고 서명한 그 문서 말입니다.”

-뭐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을 텐데요. ‘양도 대상 선수의 신체적 상태는 계약 체결 시점을 기준으로 양수인이 직접 수행한 메디컬 테스트 결과를 최종으로 하며, 계약 효력 발생 이후 발생하는 모든 부상 및 신체적 기능 저하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양수인에게 귀속된다.’ 특히 제12조 4항을 보시죠.”

준우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가볍게 원을 그렸다. 그의 안구 너머로 푸른빛의 스카우팅 원장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스카우팅 원장 Lv.2 — 계약 독소 조항 분석 작동] ▶ 타깃: 에이펙스 스포츠 - 한준우 간 양수도 계약서 ▶ 분석 결과: ‘체결 후 예외 면책 조항(Post-Closing Waiver)’ 및 ‘드래프트 보상권 양도 불가 특약’ 완벽 작동 중. 에이펙스 측의 소송 청구 인용 가능성 0%.

“그 조항은 에이펙스가 타일러 크루즈를 보스턴으로 즉시 트레이드하기 위해 서둘러 삽입을 요구한 독소 조항이었습니다. 본래는 제가 보스턴 측과의 무리한 메디컬 연계 책임을 피하기 위해 설계해 둔 트랩이었는데, 대표님께서 아주 기쁘게 서명해 주셨더군요.”

수화기 너머에서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에드워드가 비서나 법무팀장에게 계약서를 확인하라고 다급하게 지시하는 나직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준우는 그 침묵을 놓치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타일러 크루즈의 무릎이 터진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2년 동안 관리만 잘하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던 유망주를, 단 이틀 만에 100% 강도의 풀 스윙 쇼케이스와 고강도 피지컬 테스트로 내몬 건 에이펙스의 트레이닝 파트 아닙니까? 욕심이 과하셨습니다, 에드워드.”

-네놈이……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전화를 끊겠습니다. 앞으로는 제 개인 번호 대신 공식 대리인인 레이첼 민 변호사를 통해 연락하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보내주신 200만 달러는 강도윤 선수의 쇼케이스 비용으로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감사히 쓰죠.”

툭.

통화가 끊겼다.

방 안에는 적막과 함께 레이첼의 거친 호흡 소리만 남았다. 그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준우를 바라보았다.

“준우 씨…… 당신 정말 미친 사람이에요? 에드워드 스톤이 누구인지 몰라서 이러는 건가요? 그는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의 절반과 형 동생 하는 사이예요. 미국 야구계의 모든 미디어가 그의 입김 아래 움직인다고요!”

“알고 있습니다.”

준우는 책상 위의 서류를 정리하며 담담히 대꾸했다.

“그러니 곧 공격이 시작되겠군요. 지저분하고, 비열하며, 아주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가.”

***

준우의 예상은 단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와 ESPN,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를 비롯한 유력 스포츠 매체들의 헤드라인이 일제히 한준우라는 이름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선수 장사꾼’의 탄생? 한국계 신생 에이전트 한준우, 부상 위험 숨기고 유망주 매각 논란.] [타일러 크루즈의 비극…… 에이펙스 측 “한준우가 고의로 무릎 연골 연화증 수치를 조작해 사기 거래를 감행했다” 주장.] [메이저리그 에이전트 협회, 한준우 에이전트 자격 정지 및 징계 절차 검토 착수.]

미국의 언론들은 타일러 크루즈를 ‘피해자’로, 에이펙스 스포츠를 ‘사기를 당한 선량한 피해 기업’으로 묘사했다. 반면 한준우는 선수의 건강을 담보로 돈벌이를 하는 부도덕한 동양인 브로커로 낙인찍혔다.

여론의 선동은 무서운 속도로 한국까지 번졌다. 국내 야구 커뮤니티와 스포츠 뉴스 역시 미국발 기사를 그대로 번역해 나르며 한준우를 비난했다.

‘괴물 신인 강도윤도 결국 저 사기꾼 손에 망가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여론이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다.

오후 2시, 남양주에 위치한 사설 훈련장.

타격 소리와 투구 소리로 가득해야 할 실내 훈련장은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마운드 위에 서 있던 강도윤은 글러브를 낀 손을 늘어뜨린 채 멍하니 바닥을 보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스마트폰이 떨어져 있었고, 액정에는 자신과 준우를 비난하는 기사들이 띄워져 있었다.

“공 안 던지나, 강도윤?”

훈련장 문을 열고 들어선 준우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울렸다.

도윤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어깨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형……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타일러 크루즈가 무릎이 터졌다고요? 형이 일부러 부상을 숨기고 에이펙스에 팔아넘겼다는 게 진짜예요?”

도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한테도 그랬어요? 내 어깨 상태가 안 좋은 것도, 메이저리그 가기 전에 어디다 비싸게 팔아넘기려고 숨기고 있는 거냐고요!”

불안감. 그리고 의심.

강속구를 던지는 괴물 신인이지만, 본질은 아직 세상의 풍파를 겪지 못한 스무 살의 어린 선수였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의혹의 화살은 도윤의 멘탈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제아무리 시속 100마일을 던지는 어깨를 가졌어도, 머릿속이 의심으로 가득 찬 투수는 마운드 위에서 배팅볼 투수로 전락할 뿐이다.

준우는 천천히 도윤에게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훈련장 바닥에 둔탁하게 울렸다.

스카우팅 원장이 도윤의 머리 위에 붉은색 경고등을 띄웠다.

[강도윤 - 멘탈 상태: 극심한 불안 및 의심] ▶ 현재 투구 밸런스 붕괴 위험도: 78% ▶ 예상 최고 구속 저하: 94마일로 급락 우려.

준우는 도윤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멈춰 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태블릿 PC 하나를 꺼내 도윤의 가슴팍에 거칠게 밀어 넣었다.

“받아.”

도윤이 엉겁결에 태블릿을 받아들었다. 화면에는 복잡한 수치와 3D 인체 그래픽이 빼곡하게 떠 있었다.

“그게 뭔지 읽어봐.”

“이건…….”

“네가 지난 3일 동안 투구하면서 트랙맨과 초고속 카메라로 측정한 투구 메커니즘 데이터다. 골반 회전 각도 42도, 릴리스 포인트 높이 1.98미터, 회전 효율 98.4%. 그리고 어깨 회전근개의 미세 염증 수치는 0.2% 이하. 완벽한 정상이다.”

준우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타일러 크루즈는 선천적인 무릎 연골 연화증을 앓고 있었고, 나는 그에게 골반 회전 위주의 타격 메커니즘을 주입해 무릎의 하중을 분산시켰다. 내가 관리하는 동안 그의 부상 위험도는 15% 이하였다. 하지만 에이펙스는 선수를 사 가자마자 몸값을 부풀리기 위해 하루에 100구 이상의 풀 스윙 쇼케이스를 사흘 연속으로 강행했지.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에 불을 붙인 건 내가 아니라 에드워드 스톤이다.”

준우가 도윤의 턱을 거칠게 치켜올렸다. 도윤의 흔들리는 두 눈이 준우의 차갑고 단단한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도윤아. 내가 인간관계를 믿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나?”

“…….”

“인간은 감정에 휘둘려 스스로를 망치기 때문이다. 지금의 너처럼 말이지. 나는 너를 믿지 않는다. 오직 네 어깨가 가진 가치와, 나와 체결한 계약서의 조항만을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너를 절대로 망가뜨리지 않아. 네가 망가지면 내 3억 달러짜리 비즈니스가 실패하니까.”

도윤의 목소리가 목구멍에 걸렸다. 준우가 말하는 비인간적이고 철저한 수치적 이익 계산법이, 오히려 지금의 도윤에게는 그 어떤 따뜻한 위로보다 더 강력한 구원줄로 다가왔다. 이 사람은 돈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가장 완벽한 상태로 마운드에 세울 것이라는 기묘한 확신.

“언론이 떠드는 소리에 놀아나서 구속을 까먹을 시간 있으면, 공 하나라도 더 던져라. 너를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로 만드는 건 저들의 펜대가 아니라, 네가 던질 시속 100마일의 광속구다.”

준우가 도윤의 어깨를 툭툭 쳤다.

“다시 마운드로 가.”

도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태블릿을 내려놓은 뒤, 천천히 마운드로 걸어갔다. 그의 등 뒤로 다시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내 투구판을 밟은 도윤의 눈빛에서 의심이 사라지고, 지독한 독기가 서렸다.

콰앙!

도윤의 손끝을 떠난 공이 포수의 미트를 찢을 듯이 파고들었다. 100마일. 훈련장 내부에 설치된 레이더 측정기에 선명한 숫자가 찍혔다. 준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섰다.

기다리고 있던 레이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멘탈 통제는 성공했네요. 하지만 미국 쪽 언론은 어떻게 할 건가요? 에이펙스의 공작 때문에 우리 에이전시의 대외 이미지가 완전히 바닥을 쳤어요. 이대로라면 8일 뒤에 있을 도윤이의 쇼케이스에 스카우터들이 단 한 명도 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레이첼.”

준우가 주머니에서 usb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에드워드 스톤이 판을 깔아주었으니, 우리는 그 판을 뒤집기만 하면 됩니다. 미국 최대의 스포츠 전문 로펌과 메이저 언론사들에 이 자료를 뿌리세요.”

“이게 뭐죠?”

“에이펙스와 체결한 계약서 원본, 그리고 타일러 크루즈의 양도 직전 정밀 메디컬 데이터 및 에이펙스 이적 후 강행된 가혹한 훈련 일정표입니다.”

준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적의 무기가 언론이라면, 우리의 무기는 팩트와 계약서입니다. 여론조작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똑똑히 보여주죠.”

***

세 시간 뒤, 미국의 주요 언론사들과 야구 관련 커뮤니티는 거대한 폭탄을 맞은 듯 발칵 뒤집혔다.

한준우 측의 법률 대리인인 레이첼 민 변호사의 이름으로 작성된 공식 반박 성명서와 증거 자료들이 일제히 공개된 것이다.

[단독: 한준우 에이전트, 에이펙스 스포츠와의 ‘계약서 원본’ 전격 공개!] - 계약서 제12조 4항: “에이펙스는 양도 시점 이후 발생하는 모든 부상에 대해 완벽한 면책권을 부여하며, 한준우 에이전시 측에 어떠한 법적 책임도 묻지 않는다.” - 타일러 크루즈의 양도 직전 무릎 상태 리포트 공개: 연골 연화증 상태는 관리 가능한 수준(Level 2)이었음을 입증하는 정밀 MRI 자료 첨부. - 충격 폭로: 에이펙스 소속 트레이너가 크루즈에게 보스턴 레드삭스의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진통제 강제 투여 후 고강도 로테이션 훈련’을 지시한 내부 메신저 대화록 확보.

여론은 단 일초 만에 뒤집어졌다.

동양인 신생 에이전트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징징대던 거대 에이전시 에이펙스가, 실상은 유망주를 비싸게 팔아먹기 위해 진통제까지 먹여가며 무리한 훈련을 시키다 무릎을 터뜨린 ‘진짜 괴물’이었음이 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특히 준우가 계약서에 심어둔 특수 면책 조항은 에이펙스의 손발을 완전히 묶어버렸다.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 완벽한 거래였고, 부상의 책임은 전적으로 에이펙스의 무능하고 강압적인 구식 트레이닝 시스템에 있었다.

여기에 준우가 준비한 두 번째 카드가 터졌다.

[보스턴 레드삭스, 에이펙스 스포츠를 상대로 ‘기만적 트레이드 협상’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검토.] - 레드삭스 GM, “에이펙스가 선수의 심각한 부상 위험을 인지하고도 무리하게 트레이드를 추진했다”며 격분. - 보스턴 레드삭스는 이번 사태로 올해 드래프트 상위 라운드 보상권 및 트레이드 카드를 상실할 위기에 처함.

준우는 계약서 양수도 조항에 교묘하게 숨겨둔 ‘드래프트 보상권 트레이드 권리’를 활용해, 보스턴 레드삭스가 에이펙스에게 뒤통수를 맞은 구도를 완벽하게 설계해 두었다. 결과적으로 에이펙스는 보스턴이라는 거대 구단과의 비즈니스 신뢰 관계마저 파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따르릉!

레이첼의 연락을 받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준우의 개인 전화로 발신자 제한 번호의 연락이 걸려왔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단장(GM)이었다.

-한 에이전트님. 보스턴의 셰인 단장입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다급함과 정중함이 섞여 있었다.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의 수장이 무명의 동양인 에이전트에게 먼저 고개를 숙인 것이다.

“예, 단장님.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이펙스와의 계약서에 포함된 드래프트 보상권 분쟁 조항 말입니다. 한 에이전트님께서 동의해 주신다면, 저희가 에이펙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결정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저희 구단과 이 문제를 조용히 논의할 수 있겠습니까?

준우는 레이첼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물론입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이번 서울에서 개최되는 강도윤 선수의 쇼케이스에 보스턴 레드삭스의 핵심 스카우터들과 함께 단장님께서 직접 참석해 주시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적극 검토하죠. 아니, 반드시 참석하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레이첼은 소름이 돋는다는 듯 팔을 감싸 안았다.

“에드워드 스톤의 여론 공격을 역으로 이용해서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을 우리 쇼케이스의 ‘미끼’로 낚아채다니…… 당신은 정말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태어난 악마 같네요.”

“악마라니요. 철저한 기회비용 계산일 뿐입니다.”

준우가 차갑게 웃었다.

이로써 에이펙스로부터 받아낸 200만 달러의 자금은 고스란히 준우의 수중에 남았고, 강도윤의 쇼케이스는 메이저리그 거물 단장이 직접 참석하는 초특급 이벤트로 격상되었다. 완벽한 역관광이자 압도적인 판정승이었다.

하지만 카르텔의 왕은 순순히 몰락을 받아들일 존재가 아니었다.

그날 밤 11시.

레이첼이 굳어버린 얼굴로 준우의 집무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30개 구단 단장단 사이에서 극비리에 오고 간 이메일 캡처본이 들려 있었다.

“준우 씨…… 큰일 났어요. 에드워드 스톤이 결국 선을 넘었어요.”

준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메일을 확인했다.

그것은 미국 야구계를 지배하는 거대 에이전트 카르텔 ‘빅 3’가 연명으로 발송한, 사실상의 ‘사형 선고서’였다.

[수신: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단장 및 스카우트 책임자] [제목: 업계 교란 에이전트 ‘한준우(Jun-Woo Han)’ 및 소속 선수에 대한 전방위 보이콧 협조 요청] 본 협회 및 에이펙스를 비롯한 주요 에이전시 연합은 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기만적 계약을 일삼는 한준우 에이전트를 블랙리스트로 규정합니다. 이에 따라, 한준우가 대리하는 모든 선수(강도윤 포함)의 쇼케이스에 참석하거나 계약 협상을 진행하는 구단에 대해서는 향후 에이펙스 소속 FA 대어 및 유망주들의 계약 협상을 전면 거부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미끼를 던졌더니, 아예 낚시터 자체를 폐쇄하겠다는 거군요.”

준우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전체를 상대로 한 블랙리스트 선포. 강도윤의 쇼케이스를 단 일주일 앞둔 시점, 카르텔의 왕이 휘두른 마지막이자 가장 치명적인 칼날이 준우의 목전을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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