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가는 체온은 대지에 내린 서리보다 차가웠다.
설원의 손끝이 붉은 핏물로 젖어 들었다. 이초의의 거처에서 잔심부름을 도맡던 도동(道童). 아직 수염도 채 자라지 않은 어린 사내의 가슴팍에는 무당파 태상장로 단혜의 독문 무공인 ‘적양소혼수(赤陽消魂手)’의 잔악한 악력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타들어 간 살갗에서 풍기는 독한 연기가 비를 머금은 산바람에 흩어졌다.
“정신 차려라! 어찌 된 일이냐!”
설원이 다급하게 그의 대추혈(大椎穴)을 짚고 내력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소년의 단전은 이미 깨진 항아리처럼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억지로 밀어 넣은 기운이 갈라진 틈새로 허망하게 새어 나갔다. 진무대제(眞武大帝)의 자비는 이 비참한 절벽 밑바닥까지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설…… 설원 도협…… 님……”
소년의 동공이 흐려지며 검붉은 선혈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피 묻은 손가락이 설원의 깃옷을 움켜쥐었다.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 실린 무게는 한 인간이 짊어진 마지막 삶의 집착이었다.
“말하지 마라. 기운을 모아라!”
“아, 아닙니다…… 시간이…… 장문인께서…… 태상장로의 손에 유폐되셨고…… 묵영각의 살수들이…… 낙엽당을…… 쿨럭!”
기침할 때마다 허파가 뒤집히는 듯한 파편이 튀었다. 소년은 마지막 숨을 쥐어짜듯 말을 이었다.
“단혜가…… 반대파 도사들을…… 모조리 살육하고 있습니다…… 이미 무당산 내부가…… 피바다로…… 초의 아가씨도……!”
거기까지였다. 설원의 도포를 움켜쥐었던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며, 툭 하고 진흙 바닥으로 떨어졌다. 굳게 감기지 못한 소년의 눈꺼풀 사이로 밤하늘의 먹구름만이 공허하게 비쳤다.
설원의 턱밑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뜨거운 불덩이가 치밀어 올랐으나, 그것은 이내 머릿속을 스치는 차가운 혜검(慧劍)의 이성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단혜……!’
무당의 큰 어른이라 자처하며 자애로운 미소를 짓던 노인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그 가증스러운 위선 뒤에 숨겨진 피비린내가 드디어 무당산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장문인을 유폐하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동도들을 마교의 첩자로 몰아 도륙하는 광경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지금 당장 산을 타고 올라가 그 노적(老賊)의 목을 베고 싶었다. 그러나 설원은 제 손에 묻은 피를 내려다보며 끓어오르는 기운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자멸일 뿐이었다. 하산길에 마주한 십이호법과의 사투로 내력은 바닥을 드러냈고, 혜검을 무리하게 휘두른 대가로 영혼의 중심부가 쩍쩍 갈라져 가고 있었다. 사물의 인과를 꿰뚫어 보고 적의 파훼점을 읽는 신묘한 권능은, 쓰면 쓸수록 그녀를 인간이 아닌 목석(木石)으로 만들어 버리는 저주였다.
설원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소년의 눈을 쓸어 감겨주었다.
“편히 쉬거라. 네가 전한 말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으마.”
그녀는 소년의 시신을 절벽 틈새 깊은 수풀 아래 묻어 낙엽으로 덮었다. 추격해 올 묵영각의 살수들이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비를 품은 거친 바람이 무당산의 허리를 세차게 몰아쳤다. 설원은 무거운 신형을 움직여 하산길 외곽, 사냥꾼들이 버려두고 간 외진 오두막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둠을 틈타 몸을 숨기고 흩어진 내력을 추스르는 것이 급선무였다.
***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한 오두막의 내부는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 정도로 차가웠다. 설원은 문을 걸어 잠그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몸을 뒤적였다. 품속에서 낡은 서찰 한 장과 부서진 비석 조각에서 떼어낸 쪽지가 만져졌다.
서찰은 1화에서 태극검총을 탈출할 당시, 원로들의 밀실을 훔쳐보며 입수한 단혜와 천태성가 간의 밀약 문서였다. 단혜가 무당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독점하려 했던 신비로운 영약, ‘벽천단(碧天丹)’의 은밀한 유통 영수증과 부정이 적힌 서한.
그들의 추악한 위선을 만천하에 드러낼 가장 강력한 무기였으나, 지금 당장은 무당산의 칼바람을 막아줄 방패가 되지 못했다.
설원은 서찰을 다시 품에 깊숙이 넣고, 손가락으로 거친 비석 조각을 어루만졌다. 2화에서 태극검총의 무너진 비석 틈에서 찾아냈던 전설의 ‘태극혜검결(太極慧劍決)’ 일실 구결 쪽지였다.
거기에 적힌 문구들이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명멸했다.
[물러서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니, 만물이 스스로 도를 이루도다. 혜검을 쥐되 휘두르지 아니하고, 인과를 보되 베지 아니할 때 비로소 태극의 무극이 완성되리니.]
“태극의 무극이라……”
설원은 자조적인 실소를 흘렸다.
검선의 진리를 깨달아 무학의 경지를 넓혀갈수록, 정작 그녀를 지탱하던 인간 설원의 알맹이는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가고 있었다. 혜검의 법리를 이해하고 인과의 실타래를 끊어낼 때마다, 소중한 이들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하얗게 지워졌다.
지금도 그랬다.
조금 전 숨진 도동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초의라는 이름 석 자를 떠올리면 가슴이 시리도록 아파 왔지만, 그녀가 어떤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며 웃었는지, 그 미소의 온기가 어떠했는지가 안개 속 저편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왜 무당의 검을 쥐고 이 모진 풍파를 견디고 있는지, 가문의 멸문지화에 얽힌 분노마저도 빛바랜 묵화처럼 무미건조해지고 있었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오직 차가운 검리(劍理)와 살육의 본능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단혜와 청운익의 목을 베기도 전에, 자신 또한 감정이 메말라 돌이 된 태극검총의 고대 검선처럼 변해버릴 것이 자명했다.
‘내가…… 누구였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메아리가 없었다. 오두막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이 빈 가슴을 때렸다. 공포가 엄습했다. 육신이 파괴되는 고통보다, 나라는 존재가 내면에서부터 지워져 가는 소멸의 공포는 비할 데 없이 끔찍했다.
그때, 품 안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독특한 향내가 설원의 코끝을 스쳤다.
설원은 떨리는 손으로 품속을 뒤져 작은 옥병을 꺼냈다. 5화에서 이초의가 설원의 뇌리가 기이하게 흐려지는 증상을 눈치채고, 문파의 비밀 한의서를 샅샅이 뒤져 전해준 영약이었다.
‘환정향(還情香).’
감정을 되돌려주는 향이라 했다. 잃어버린 기억의 실타래를 일시적으로나마 다시 묶어주는 신비로운 영약. 이초의는 이것을 건네며 제발 제 몸을 돌보라고,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눈물로 애원했었다.
설원은 오두막 한구석에 굴러다니던 깨진 무쇠 화로를 끌어당겼다. 마른 짚단 몇 개를 모아 내력으로 불씨를 피워 올렸다. 그리고 옥병을 열어 그 안에 든 검붉은 액체를 화로의 불꽃 위에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
치이익―!
불꽃이 일순간 푸른빛으로 변하며, 오두막 내부로 짙고 정화(精華)로운 연기가 피어올랐다. 달콤하면서도 아릿하고, 한편으로는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쓸쓸한 향취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설원은 두 눈을 감고 그 푸른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후우……”
향이 비강을 타고 뇌리로 스며드는 찰나, 설원의 전신이 격렬하게 떨렸다.
쿠구구궁!
머릿속에서 거대한 제방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굳게 닫혀 있던 기억의 문들이 차례로 박살 나며, 억눌려 있던 감정의 홍수가 영혼을 사정없이 휩쓸기 시작했다.
“아……!”
설원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으로 밀려든 것은 핏빛 기억이었다. 3년 전, 비가 무섭게 쏟아지던 밤. 가문이 멸문당하던 날의 참경이었다. 붉은 피로 물든 마당, 검을 쥐고 마지막까지 가로막아 서던 아버지의 넓적한 등과 어머님의 마지막 눈동자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슬픔과 분노, 억울함과 원통함이 가슴뼈를 부술 듯이 요동쳤다.
그리고 이어서 떠오른 것은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던 무당산의 낙엽당이었다.
아무리 밀어내고 독설을 퍼부어도, 쟁반에 따뜻한 만두를 담아 들고 배시시 웃으며 다가오던 이초의의 얼굴이 있었다.
‘설원 사매! 내가 맛있는 걸 가져왔어. 왜 맨날 그렇게 찌푸리고 있어? 웃으면 훨씬 예쁜데!’
수다스럽고 따뜻했던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자신을 향해 흘렸던 그 뜨겁고 시린 눈물의 온기가, 굳어버린 설원의 심장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기억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고결하고 올바르며, 언제나 무당의 대의를 짊어지고 고뇌하던 사형 백자운의 눈빛이 떠올랐다. 단혜의 사슬에 묶여 가문의 안위를 위해 ‘봉문 서약 보검’을 찰 수밖에 없었던 그의 처절한 숙명. 그가 자신을 바라보며 지었던 복잡한 고독의 눈빛이 뇌리를 스쳤다.
‘자운 사형…….’
감정의 범람은 고통스러웠다. 얼어붙었던 심장이 갑자기 뜨거운 피를 뿜어내며 고동치는 감각은, 온몸의 뼈마디를 하나하나 부수는 것보다 더한 통증을 동반했다.
“으아아아악!”
설원은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을 뒹굴었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려 흙바닥을 적셨다.
슬펐다. 너무도 슬퍼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억울했다. 왜 자신만이 이 가혹한 운명의 굴레를 짊어지고 홀로 칼날 위를 걸어야 하는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 고통의 극한에서, 설원은 비로소 깨달았다.
이 슬픔이, 이 분노가, 이 눈물이 바로 자신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라는 것을. 감정을 잃어버린 채 휘두르는 혜검은 그저 살인 기계의 쇠붙이에 불과하지만, 소중한 이들을 지키겠다는 뜨거운 도심(道心)을 품고 휘두르는 검은 진정한 ‘협(俠)’이 된다는 것을.
도(道)란 세상의 위선을 베어내는 칼날인 동시에,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품는 따뜻한 품새여야 했다. 나를 버리고 천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인간성을 온전히 지켜냄으로써 진정한 무당의 태극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태극혜검결이 말하는 무극의 진리였다.
설원은 흙 묻은 얼굴을 들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이전의 차가운 기색 대신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정연한 영기(靈氣)가 깃들어 있었다.
“기억하겠다…… 결코 잊지 않겠다.”
그녀는 칼끝을 세워 자신의 왼쪽 팔뚝에 다시 한번 깊게 새겼다. ‘초의’, ‘자운’, 그리고 ‘무당’.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살아가야 할 이유만이 뚜렷해질 뿐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환정향의 푸른 연기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향의 약효는 극도로 일시적이었다. 다시 머릿속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미세한 징후가 느껴졌다. 약효가 가라앉으며 찾아오는 두통과 부작용으로 전신의 맥락이 요동쳤다.
그때였다.
스으으읍―.
빗소리 사이로 기이할 정도로 고요한 파공음이 오두막 사방을 메웠다.
설원의 혜검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세상을 뒤덮은 빗줄기 사이로, 수십 가닥의 검고 무거운 살기가 오두막을 촘촘한 그물망처럼 에워싸고 좁혀오는 것이 보였다. 인과의 실타래가 오두막을 중심으로 사정없이 뒤엉키고 있었다.
‘정무맹의 묵영각 살수들인가.’
아니, 기의 격이 달랐다. 바람을 찢는 소리가 둔탁하고 무거웠다. 정무맹에서도 가장 잔혹하고 은밀한 사살 부대,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자의 묵직한 내력이 대지를 누르고 있었다.
설원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신에 아직 환정향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감정을 완전히 회복한 일시적 절정의 상태. 소외감도, 스스로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도 이제는 그녀를 흔들지 못했다. 오직 정의와 소중한 이들을 위해 살겠다는 고결한 도심만이 가슴속에서 태극의 형상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의 자루를 꽉 쥐었다.
“쥐새끼처럼 포위망만 좁히지 말고, 들어오거라.”
설원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그 대답에 응하듯, 오두막 너머의 숲속에서 거대한 폭풍 같은 기파가 일어났다.
콰아아앙!
흙바닥이 뒤집히고 오두막의 허술한 판자 벽이 단숨에 박살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부서진 잔해와 빗방울 사이로, 칠흑처럼 어두운 철갑을 두른 거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양끝에 무시무시한 미늘이 달린 거대한 흑창(黑槍)이 쥐어져 있었다.
정무맹의 사살 추격대장, 묵풍단주(墨風團主)였다.
그가 들고 있는 흑창이 공기를 찢으며 소리 높여 회전하기 시작했다. 창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흑색의 강기가 오두막의 지붕마저 통째로 날려 버렸다.
“배교자 설원! 네년의 목을 가져가 정무맹의 법을 세우겠다!”
묵풍단주가 포효하며 흑창을 정면으로 찔러왔다. 창끝이 가리키는 궤적을 따라, 수십 명의 흑의 살수들이 사방에서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쇄도했다.
설원의 눈동자에 푸른 혜검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정무맹의 법이라…… 참으로 가소롭구나.”
그녀의 검이 마침내 칼집을 벗어나며,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눈부신 설광(雪光)을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