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 특별 징계위원회실의 삼엄하고 어두운 철문의 탁상 한가운데로 홀로 등단한 이은우가, 위선적인 웃음을 띠는 부회장과 대면하며 눈빛을 차갑게 좁혔다.
“송원고 이은우 선수. 자네가 빙판 위에서 보여준 활약은 인상적이었네만, 스포츠맨십을 저해하는 비정상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제보가 들어와서 말이지.”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협회 부회장 임창식의 목소리는 기름지게 끓어 넘쳤다. 그는 앞에 놓인 서류 더미를 툭툭 치며 은우의 반응을 살폈다.
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죽 의자를 드르륵 소리 나게 당겨 앉았다.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다리를 꼬아 올렸다.
바지 자락 아래로 감춰진 오른쪽 무릎에서 묵직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플레이어 신체 상태] - 오른쪽 무릎 관절 마모도: 12% (적색 경고 진입 대기) - 특이사항: 과거 혹사 누적으로 인한 미세 마찰 열 발생 중.
시야 한구석에 떠오른 붉은 글씨가 눈을 자극했다. 은우는 오른손 손가락으로 무릎 뼈 언저리를 툭툭 두드렸다. 송원고 트레이닝실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처박혀 있던 서아린의 대학 연구용 ‘진동 파동 수치 치료기’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 기계의 독특한 전기 자극 주파수라면 지금 무릎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미세한 마모 열을 단숨에 식힐 수 있을 터였다.
‘돌아가자마자 그것부터 세팅해야겠군.’
은우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자신들의 기세를 눈빛으로 받아쳐 내자, 탁자 양옆에 늘어선 징계 위원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은우 선수! 지금 협회 간부진의 질문이 장난으로 보이나?”
한성고의 후원사인 대기업 재단의 입김을 듬뿍 받은 전무이사 하나가 탁자를 탁 내리쳤다.
“한성고와의 연습 경기에서 자네가 사용한 스틱 말이야. 일반 고교생이 낼 수 없는 비정상적인 반발력이 측정되었네. 무단으로 내부 탄성 코어를 불법 개조해 스틱의 반발 계수를 임의로 조작했다는 의혹이 있어. 장비 규정 위반은 즉각적인 출전 정지 사유인 것을 모르나?”
질문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게다가 경기 중 상대 수비수들의 무릎 관절을 겨냥한 악의적인 진로 방해와 충돌 유도까지 보고되었어. 고의적인 위해 행위로 상대 선수들을 부상 위험에 빠뜨린 점, 이에 대해 해명해 보게.”
교묘한 덫이었다. 장비 규정 위반과 고의적 위해 행위. 두 가지 중 하나만 걸려들어도 춘계 토너먼트 출전은 날아간다.
회의실 구석, 참관인 자격으로 어둠 속에 앉아 있던 한성고 전력분석관 윤성현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의 안경 렌즈 너머로 차가운 조소가 번뜩였다. 열여덟 살짜리 고등학생이 협회라는 거대한 권위의 벽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거나 횡설수수하며 변명하는 꼴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은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단 한 마디의 변명도, 분노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임창식 부회장의 눈을 응시할 뿐이었다.
침묵이 고요하게 회의실을 지배했다.
1분.
2분.
시간이 흐를수록 조급해지는 것은 오히려 질문을 던진 위원들이었다. 그들은 은우의 굳게 다물린 입술과 미동조차 없는 태도에 점점 페이스를 잃어갔다.
“이봐! 묻지 않나! 벙어리야?”
“장비 검사를 진행해서 불법 개조가 사실로 드러나면, 자네 하키 인생은 그걸로 끝이야! 송원고 하키부 자체를 해체할 수도 있어!”
폭언에 가까운 협박이 터져 나왔다. 은우는 속으로 타이머를 돌렸다. 상대방의 밑천이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그들이 가진 모든 카드를 흥분해서 던질 때까지 기다리는 침묵의 늪.
임창식 부회장이 헛기침을 하며 서류에 만년필을 가져갔다.
“본 선수가 혐의에 대해 소명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 협회 징계 규정 제18조에 의거하여—”
“그 서류에 사인하시는 순간.”
은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낮고, 차분하며,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목소리였다.
“부회장님은 물론이고, 여기 계신 위원님들 전부 옷을 벗으셔야 할 겁니다.”
임창식의 만년필 끝이 허공에서 뚝 멈췄다.
“...무슨 소린가?”
“제 스틱은 협회 공인 규격을 정확히 준수하는 탄성 수치 85의 일반 카본 스틱입니다. 경기 전 협회 검측관의 검인 도장까지 찍힌 정품이죠. 정말 불법 개조 장비를 쓴 쪽이 어디인지, 진짜 모르셔서 묻는 겁니까?”
은우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탁자 위로 밀어 던졌다. 매끄러운 유리 화면 위로 푸른빛의 폴더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오너십 장부 전산망 싱크로율 100%] [데이터 추출: 한성고등학교 하키부 장비 정밀 스캔본]
“이게 뭔가?”
전무이사가 인상을 쓰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기하학적인 그래프와 복잡한 수치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날 한성고 수비진이 들고나온 스틱의 내부 밀도 분석표입니다.”
은우가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키며 탁자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의 눈빛에 서린 압도적인 기세가 위원들을 짓눌렀다.
“스틱 샤프트 내부에 고밀도 진동 흡수재를 무단으로 주입했더군요. 임팩트 시 발생하는 충격 파동을 인위적으로 증폭시켜, 스케이트 날과 빙판의 마찰력을 순간적으로 깨뜨리는 불법 튜닝입니다. 연습 경기 전후로 제 오른쪽 무릎에 가해진 전파 충격과 물리적 타격 수치를 변환한 증거 도표도 함께 첨부되어 있습니다.”
윤성현의 얼굴에서 여유가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일개 고등학생이 그런 정밀 데이터를 어떻게 추출한단 말인가? 허무맹랑한 조작이다!”
“조작인지 아닌지는 기자들이 판단하겠죠.”
은우가 싱긋 웃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톡 두드렸다.
[체육계 전문 기자단 50인 대상 메일 발송 전송 완료]
“지금 막 대한민국 스포츠 전문 매체 기자 50명의 메일함으로 해당 분석 도표가 전송되었습니다. 아, 물론 여기 계신 임창식 부회장님과 한성 스포츠 재단 간의 사적 회동 일정표, 그리고 협회 전산망에 등록된 송원고 장비 검사 결과지를 임의로 조작하려 한 시스템 로그 기록도 함께 동봉했습니다.”
회의실 안의 모든 공기가 얼어붙었다.
임창식의 손에 쥐어 하얗게 질려가던 만년필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데구르르 구르는 소리가 기괴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
“이... 이은우 선수, 자네 지금 무슨 짓을...”
부회장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한성 스포츠 재단의 고위 관계자였다.
그때였다.
쾅-!
징계위원회실의 두꺼운 참나무 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열렸다.
“이런 야만적인 밀실 심문이 대명천지에 존재하다니, 협회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됩니까?”
날카로운 정장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든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송원고 감독 박한솔이었다. 그의 뒤에는 송원고 법인 대리인 변호사가 단호한 표정으로 따르고 있었다.
평소의 무기력하고 흐리멍덩한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한솔의 눈동자는 먹잇감을 포착한 매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박... 박 감독?”
임창식이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박한솔은 대답 대신 서류 가방에서 두꺼운 법률 문서를 꺼내 탁자 위에 내던지듯 내려놓았다. 탁- 하는 묵직한 마찰음이 회의실을 울렸다.
“협회 규정 제24조 3항. 미성년 선수의 특별 징계 심문 시, 법정 대리인 및 소속 팀 지도자의 입회를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모든 심문 과정과 결과는 원천 무효로 규정한다.”
박한솔이 임창식 부회장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지도자의 동의 없이 선수를 단독 소환해 협박성 유도 심문을 진행한 점. 그리고 특정 대기업 재단의 사주를 받아 공인되지 않은 장비 의혹을 조작해 유포하려 한 점. 이에 대해 송원고등학교 재단과 법률 대리인은 협회 및 임창식 부회장 개인을 상대로 직권남용 및 업무방해, 명예훼손 혐의로 즉각적인 형사 고소를 진행할 것입니다.”
변호사가 묵묵히 고소장 초안을 위원들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완벽한 외통수였다.
내부에서는 이은우가 쏘아 올린 과학적 증거와 커넥션 폭로 메일이 기자들의 손에서 기사화되기 직전이었고, 외부에서는 송원고 감독과 변호사가 법률적 올가미를 씌우고 있었다.
윤성현은 주먹을 움켜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충혈되어 붉게 물들었다. 자신들이 완벽하게 짜놓은 판이, 고작 열여덟 살짜리 윙어 한 명과 몰락해가던 송원고 감독의 조직적인 반격에 완전히 박살 나버린 것이다.
“부회장님.”
은우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무릎에서 미세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표정에는 단 한 자락의 흔들림도 없었다.
“서명하셔야죠. 징계 확정 서류 말입니다.”
임창식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냈다. 그의 스마트폰은 끊임없이 울려 대며 회의실의 침묵을 찢어발겼다.
“어... 오해였네! 아주 큰 오해가 있었어!”
부회장이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서류를 찢어발겼다. 허공으로 흩날리는 종이 조각들이 우스꽝스러웠다.
“송원고의 장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음이 확인되었네! 연습 경기에서의 판정 시비 역시 단순한 경기 중 물리적 충돌로 결론짓겠네. 송원고의 본선 토너먼트 진출 자격은 완벽하게 유효하네! 당연히 징계는 전면 무효화일세!”
“그렇다면 공식 사과문은 언제쯤 받아볼 수 있겠습니까?”
박한솔이 차가운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오늘 오후 중으로 협회 공식 홈페이지 팝업창으로 게재하겠네. 송원고 하키부의 명예를 훼손한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사과문을 올리지!”
은우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비웃음을 흘렸다.
권위라는 허울을 쓴 자들의 몰락은 이토록 비겁하고 빨랐다.
“가시죠, 감독님. 공기가 너무 탁해서 숨을 쉬기 힘드네요.”
은우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참나무 문을 나서는 그의 등 뒤로, 협회 위원들의 무참한 탄식과 윤성현의 이 가는 소리가 길게 꼬리를 물었다.
***
본관 건물을 빠져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은우의 뺨을 스쳤다.
겨울의 끝자락, 그러나 여전히 매서운 한기를 담은 바람이었다.
“수고했다, 은우야.”
박한솔이 은우의 어깨를 툭 쳤다. 그의 손끝에 실린 무게감이 든든했다.
“감독님이 제시간에 와주신 덕분입니다.”
“네가 뒤를 완벽하게 묶어놓았으니 내가 들어갈 틈이 생긴 거지. 그나저나 무릎은 괜찮냐?”
박한솔의 예리한 눈이 은우의 오른쪽 다리로 향했다. 은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지만, 머릿속 장부의 경고창은 여전히 붉게 깜빡이고 있었다.
“멀쩡합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거짓말 마라. 스케이트 날 딛는 각도가 미세하게 안쪽으로 쏠려 있어. 아린이 녀석한테 연락해 놓을 테니까, 체육관 돌아가는 대로 트레이닝실로 직행해.”
박한솔은 겉으로는 무심한 척 웅얼거렸지만, 은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과거 자신의 실수로 선수들을 부상으로 잃었던 상처가, 그를 빙판 위의 완벽한 감시자로 만든 것이리라.
버스에 올라타 송원고로 향하는 길.
은우는 스마트폰을 켜 협회 홈페이지를 새로고침했다.
약속대로 협회 부회장 명의의 공식 사과문이 팝업창으로 크게 떠 있었다. 동시에 포털 사이트의 스포츠 섹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송원고 이은우, 불법 장비 의혹 전면 무죄... 협회 이례적인 공식 사과] [베일 벗은 송원고의 천재 라이트 윙, 전국 춘계 리그의 태풍의 눈 되나]
댓글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변두리 무명 팀의 반란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고, 한성고의 비열한 공작은 은밀한 역풍을 맞이하고 있었다.
체육관에 도착하자마자 은우는 곧장 트레이닝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하얀 가운을 걸친 서아린이 깐깐한 눈빛으로 체온계와 심박계를 들고 서 있었다.
“왔어? 징계실에서 혈압이랑 심박수 얼마나 치솟았는지 당장 측정해.”
“그것보다 무릎이 좀 뻐근한데.”
은우가 윙크를 건네며 트레이닝실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대형 기계를 가리켰다. 먼지가 대충 닦여 나간 ‘진동 파동 수치 치료기’였다.
“저것 좀 써봐도 될까?”
서아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걸 어떻게 알아? 내 대학 연구용 기기라 아직 상용화도 안 된 건데.”
“그냥 척 보면 알지. 나한테 딱 필요한 주파수를 뿜어내고 있잖아.”
은우가 배드에 누우며 다리를 뻗었다. 아린은 투덜거리면서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기기의 전극 패드를 은우의 오른쪽 무릎 관절 주위에 붙였다.
삐- 삐- 웅-.
기계가 작동하며 독특한 미세 진동이 무릎 내부의 슬개골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상태 장부 피드백 수신 중] - 진동 파동 주파수 동조율: 94% - 관절 내부 마모 열 방출 시작. - 무릎 마모도 강하: 12% -> 10.5% -> 9.8% (안정세 회복 중)
얼어붙었던 인대가 스르륵 녹아내리는 듯한 극상의 쾌감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은우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 기계와 아린의 과학적 케어가 있다면, 토너먼트 기간 동안 무릎 마모도가 폭발하는 위기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을 터였다.
그때, 트레이닝실의 모니터 화면이 깜빡였다.
전국 고교 아이스하키 춘계 토너먼트의 공식 대진표가 최종 확정되어 전산망에 등록된 것이다.
지후를 비롯한 송원고 부원들이 모니터 앞으로 몰려들었다.
“나왔다! 대진표 떴어!”
지후의 거친 목소리가 트레이닝실을 울렸다.
은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빙벽의 형상을 한 대진표의 최상단.
송원고등학교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첫 대결 상대의 이름이 붉은색 글씨로 선명하게 박혔다.
[16강전: 송원고등학교 VS 경성공업고등학교]
리그 최악의 크래시 하키를 구사하며, 상대 선수의 뼈를 부러뜨리는 것으로 악명 높은 ‘빙판 위의 도살자들’이었다.
협회의 가혹한 난관을 짓부수고 마침내 전국 고교 춘계 리그 토너먼트의 첫 대진표가 가혹한 빙벽 위에 격상으로 선언되는 순간이었다. 은우의 눈동자 속에서 푸른빛의 오너십 장부가 다시금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