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장비 규정 위반이라니. 우리가 무슨 장비를 개조라도 했다는 겁니까?”
박한솔 감독의 목소리가 라커룸의 눅눅한 공기를 찢고 나갔다. 평소의 무기력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빳빳하게 인쇄된 협회 공문을 움켜쥐며 미세하게 떨렸다.
협회 사무국장 김진우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송원고의 이번 경기 데이터는 고교 연맹의 평균 범주를 아득히 벗어났습니다. 특히 라이트 윙 이은우 선수의 스케이트 날과 스틱의 탄성 계수에서 비정상적인 수치가 감지되었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장비 검측관의 정밀 조사가 끝날 때까지, 송원고 하키부 전원의 훈련 및 경기 출전 자격은 ‘잠정 정지’됩니다.”
“잠정 정지?”
민지후가 헬멧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이봐요! 우리가 어떻게 이겼는데! 한성고 놈들이 깨진 이빨을 부여잡고 도망치는 걸 똑똑히 봐놓고 이제 와서 장비 탓을 해? 뇌물이 가득 든 봉투라도 받으신 겁니까?”
“말조심해, 민지후 선수!”
김진우의 안경 너머 눈빛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협회의 공신력을 모독하는 발언은 가중 처벌 대상이다. 군말 말고 내일 오전 10시, 협회 특별 징계위원회실로 출두해.”
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등을 돌렸다. 한성고 코칭스태프와 기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라커룸 문이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남겨진 송원고 부원들의 얼굴에는 깊은 절망과 분노가 내려앉았다.
징계 위원회 회부 소식은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스포츠 지면은 이미 한성고의 배후 대기업인 한성 그룹의 입김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기적의 역전승’ 송원고, 알고 보니 불법 장비 사용? 협회 전격 조사 착수] [이은우의 기괴한 스케이팅, 스케이트 날 불법 개조 의혹 증폭] [한성고 하키부 측, “상식 밖의 탄성에 선수들 안전 위협받았다” 호소]
댓글 창은 벌써부터 송원고를 사기꾼 집단으로 몰아붙이는 여론으로 들끓었다. 겨우 피어오르던 기적의 불씨가 대기업과 협회의 비열한 합작품 아래 허무하게 꺼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은우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라커룸 구석에 앉아 묵묵히 자신의 오른쪽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눈앞의 허공에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경고: 플레이어 이은우의 오른쪽 무릎 관절 마모도 상시 12% (적색 경고 진입 대기)] [한계 돌파 스케이팅의 여파로 미세 충격 누적 수치 증가 중] [현재 누적 환상통 발생 확률: 45%]
‘아직은 견딜 만해.’
은우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무릎 깊은 곳에서부터 욱신거리는 미열이 타고 올라왔지만, 지금 신경 써야 할 것은 육체의 통증이 아니었다.
그는 슬그머니 눈을 감고 머릿속의 ‘피지컬 상태 장부’를 활성화했다.
‘시스템. 방금 전 경기에서 발생한 모든 충돌 로그 데이터를 역추적해.’
[시스템 명령 수신: 경기 로그 정밀 역학 분석을 시작합니다.] [데이터 로딩 중…… 100%]
징이잉- 하는 기계음과 함께 은우의 시야에 지난 경기의 홀로그램 잔상들이 어지럽게 펼쳐졌다. 퍽이 빙판을 가르는 궤적, 선수들의 관절이 꺾이는 각도, 그리고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던 순간의 힘의 크기가 3차원 그래프로 재구성되었다.
은우의 타깃은 명확했다. 한성고 수비수들이 송원고 부원들을 바디체크로 들이받았던 바로 그 순간들.
‘한성고 놈들의 스틱 타격 수치를 보여줘.’
화면에 붉은색 막대그래프가 솟구쳤다.
[충돌 개소 #14: 한성고 수비수 강태훈 vs 송원고 포워드 민지후] [타격 장비: 카본 컴포지트 스틱 (미승인 고강도 특수 섬유 코팅)] [타격 순간 임팩트 압력: 1,850N (고교 연맹 허용 기준치 1,200N을 54% 초과)] [송원고 민지후의 오른쪽 어깨 관절 마모도 순간 급상승: +8.5%]
은우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이것 봐라?”
한성고 놈들은 자신들의 피지컬이 압도적이라 송원고를 짓뭉갠 것이 아니었다. 규정을 위반한, 성인 프로 리그에서도 금지된 초고강도 카본 탄성 스틱을 몰래 사용하고 있었다. 그 흉기 같은 스틱으로 송원고 부원들의 스틱을 내리치고 어깨를 가격해 의도적으로 관절을 마모시키고 부상을 유도했던 것이다.
[시스템 기록: 한성고 불법 장비 사용에 따른 충돌 역학 증거 데이터(용량: 4.2GB) 추출 완료] [송원고 부원들의 관절 마모도 변화 추이 보고서 작성 완료]
“도둑이 매를 든다더니, 딱 그 꼴이군.”
은우는 장부의 메모리 영역에 저장된 데이터를 확인하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한성고와 협회가 송원고를 묻어버리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의 깊이보다, 은우가 쥐고 있는 역공의 패가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
스스스스-
송원고 하키부실의 낡은 철제 침대 위.
차가운 젤이 이은우의 오른쪽 무릎에 도포되었다. 서아린은 깐깐한 눈빛으로 초음파 측정기와 심박계를 번갈아 보며 은우의 다리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아프면 말해. 참는 게 미덕인 줄 아는 미련한 짓은 사절이니까.”
그녀의 말투는 차가웠지만, 은우의 무릎을 문지르는 손길엔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
“안 아파.”
“거짓말하지 마. 방금 대퇴사두근 수축 주파수가 상식을 벗어났어. 너, 대체 어떤 초인적인 압력을 혼자 견디고 있는 거야?”
아린이 초음파 화면에 표시된 근섬유의 미세한 떨림을 가리키며 쏘아붙였다.
“이 정도 마모도와 피로도면 스케이트를 신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야 정상이야. 그런데 넌 빙판 위에서 시속 40킬로미터로 질주하면서 턴을 돌았어.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 안 들어?”
은우는 대답 대신 아린의 어깨 너머, 하키부실 구석에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방치된 대형 기계를 바라보았다. 아린이 대학 연구실에서 가져왔다던 ‘진동 파동 수치 치료기’였다.
초록색의 미세한 전류 신호가 액정 화면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은우의 눈에는 그 기계가 내뿜는 고유의 파동 주파수 수치가 선명하게 읽혔다.
[진동 파동 치료기 가동 대기 중] [현재 설정 주파수: 45Hz ~ 120Hz (신경 세포 재생 및 환상통 억제 최적 대역)]
‘저 기계의 주파수라면…… 내 무릎의 마모도는 몰라도, 뇌가 느끼는 환상통의 전기 신호는 완벽하게 교란할 수 있어.’
은우는 침묵을 지키며 장부에 기계의 세부 스펙을 동기화시켰다.
아린은 은우의 시선이 머문 곳을 따라가더니, 한숨을 푹 쉬며 치료기 가동 스위치를 올렸다.
위이이잉- 미세한 진동음과 함께 은우의 오른쪽 무릎에 패드가 부착되었다.
따뜻하면서도 찌릿한 전류가 피부를 뚫고 관절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다.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던 환상통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이 기기 주파수가 너한테 정말 도움이 되는 건 맞지?”
아린이 은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송원고 메디컬 스태프로서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예고 없이 무릎 마모도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면 난 감독님한테 네 출전 불가 소견서 보낼 거야. 협회가 징계를 때리기 전에 내가 먼저 네 스케이트 날을 부러뜨려 놓을 거라고.”
그녀의 집착 섞인 정서적 우려는 진심이었다. 은우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무릎의 힘을 풀었다.
“걱정 마.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설계하니까.”
“말은 잘해요. 내일 징계 위원회는 어쩔 셈인데? 협회 놈들, 이미 한성고랑 한통속인 거 온 세상이 다 알아.”
“그놈들이 판을 짰으면, 난 그 판을 뒤엎을 뿐이야.”
은우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
같은 시각, 밤이 깊어가는 송원고 아이스링크.
쾅! 쾅!
퍽이 펜스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굉음이 차가운 은반 위에 울려 퍼졌다.
민지후를 비롯한 송원고 팀원들은 링크 위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감독인 박한솔은 링크 한구석에서 굳은 표정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후야! 자세 더 낮춰! 펜스 쪽 플레이할 때 어깨 밀어 넣지 말고 스케이트 날 각도로 버텨!”
박한솔의 외침에 지후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빙판을 지쳤다.
그들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지난 경기에서 한성고의 무자비한 바디체크에 두들겨 맞은 탓에 어깨와 허리에는 온통 파란 피멍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스틱을 내려놓지 않았다.
“하아…… 하아…….”
지후가 펜스에 기댄 채 가쁜 숨을 토해냈다.
“감독님. 우리 진짜 출전 정지당하는 겁니까? 은우 그 녀석, 혼자 징계위원회에 가게 둘 순 없잖아요.”
부원들이 하나둘 지후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억울함과 불안감, 그리고 은우를 향한 미안함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은우는 우리 팀의 심장이에요. 은우가 없었으면 우리는 한성고한테 또 10 대 0으로 짓밟히고 하키부 해체 수순을 밟았을 겁니다. 그런데 왜…… 왜 이긴 우리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지후의 목소리가 울컥 젖어 들었다.
박한솔은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쓰레기통에 처박았던 한성 스포츠 재단의 인수 제안서가 떠올랐다. 송원고를 해체하고 유망주들을 헐값에 쓰려던 대기업의 음모. 그리고 그것이 실패하자 협회를 움직여 은우의 목줄을 죄어오는 비열한 수단.
“걱정하지 마라.”
박한솔이 부원들의 어깨를 한 명씩 짚어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너희는 빙판만 지켜. 감독인 내가, 그리고 우리 팀의 에이스인 은우가 절대 송원고의 이름표가 더럽혀지게 두지 않을 테니까.”
그때, 하키부실 문이 열리며 협회 직원이 차가운 얼굴로 걸어 들어왔. 그의 손에는 붉은색 직인이 찍힌 공식 서류가 들려 있었다.
“이은우 선수에게 전달하는 협회 징계위원회의 최종 통지서입니다.”
서류를 받아 든 박한솔의 미간이 좁혀졌다.
[통지: 송원고등학교 이은우 선수는 내일 오전 10시, 대리인이나 감독의 동석 없이 ‘단독’으로 특별 심문실에 출두할 것을 명령함. 불응 시 즉각적인 영구 제명 처분.]
철저하게 은우를 고립시켜 밟아버리겠다는 독비 가득한 최후통첩이었다.
“이 비겁한 새끼들이……!”
지후가 날을 세우며 달려들려 했지만, 언제 들어왔는지 은우가 그의 팔을 붙잡아 세웠다.
“가만히 있어, 지후야.”
은우의 표정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했다. 그는 박한솔의 손에서 통지서를 담담하게 빼앗아 들었다.
“단독 출두라. 도망칠 구멍을 다 막아놨다고 생각하나 보네.”
“은우야, 내가 같이 가마. 협회 규정상 미성년자 선수의 단독 심문은—”
“아닙니다, 감독님.”
은우가 박한솔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기묘한 푸른빛이 번뜩였다.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죠. 그래야 방심할 테니까.”
그것은 사냥감을 함정으로 몰아넣은 포식자의 여유로운 미소였다. 은우의 머릿속 장부에는 이미 협회 전산망과 한성고의 커넥션을 증명할 역학 데이터가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
다음 날 오전 9시 50분.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협회 본관 5층.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밟는 이은우의 스니커즈 소리가 복도에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복도 양옆으로는 역대 협회장들의 화려한 초상화가 걸려 있었지만, 은우의 눈에는 그저 썩어빠진 카르텔의 초상으로 보일 뿐이었다.
특별 징계위원회실 앞.
두꺼운 참나무로 만들어진 철문이 은우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고 고압적이었다.
은우는 문고리를 잡기 전, 마지막으로 장부의 상태를 점검했다.
[스캔 대상: 협회 특별 징계위원회실 내부 구조 및 전산 장치] [연결 상태: 송원고 오너십 장부와 실시간 싱크로율 100%] [경고: 내부 감시 카메라 및 녹음 장비 가동 중. 한성 스포츠 재단 실시간 모니터링 회선 감지.]
‘다 보고 계시겠다?’
은우는 비웃음을 흘렸다. 상대는 자신들이 완벽한 갑의 위치에서 열여덟 살짜리 고등학생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판을 흔드는 리모컨이 누구의 손에 쥐여 있는지, 그들은 꿈에도 모른 채 함정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스스륵.
은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삼엄하고 어두운 위원회실 내부.
긴 타원형 탁자 한가운데에는 ‘협회 부회장’ 명패를 앞에 둔 중년의 사내가 위선적인 웃음을 띤 채 앉아 있었다. 그의 양옆으로는 징계 위원들이 싸늘한 눈빛으로 은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서 오게, 이은우 선수.”
부회장이 안경을 지켜 올리며 뱀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앉지. 송원고의 미래, 그리고 자네의 하키 인생이 걸린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니까.”
철문이 쾅- 하고 닫히며 외부와의 소통이 완벽히 차단되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홀로 단상에 선 이은우가 눈빛을 차갑게 좁혔다. 빙판 위의 포식자들을 사냥하기 위한, 천재의 은밀한 설계가 비로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