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얼음 조각이 뺨을 찔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한기는 지독하리만큼 매캐한 비린내를 풍겼다. 시야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뇌를 사정없이 짓이기고 지나간 환상통의 여파가 척수를 타고 내려가 온몸의 신경망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은우야! 이은우!”
민지후의 찢어지는 듯한 외침이 귓전을 때렸지만, 그 목소리는 마치 수중에서 듣는 것처럼 먹먹하게 울릴 뿐이었다.
머릿속에 설치된 피지컬 상태 장부가 요란한 비프음과 함께 붉은색 경고등을 폭발적으로 점멸했다.
[경고: 대뇌 피질 과부하율 182% 돌파] [시스템 대가 지불: 환상통(Phantom Pain) 피드백 강도 ‘상(High)’] [우측 무릎 관절 마모 평가: 12.5% (실질 물리 마모 증가치: +0.5%)]
실제 육체의 손상은 고작 0.5%에 불과했다. 무릎 인대가 끊어지지도, 뼈가 으스러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뇌가 기억하는 10년 전의 끔찍한 파열 통증은 실시간으로 신경계를 장악하며 은우의 전신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지독한 가상의 고통. 이것이 한계를 초월한 연산의 대가이자, 장부가 요구하는 잔인한 통행료였다.
“야! 들것 가져와! 빨리!”
송원고 벤치에서 박한솔 감독의 다급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구급 요원들이 들것을 들고 링크 안으로 진입하려 했다.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지치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다가왔다.
‘안 돼.’
은우는 얼어붙은 혀를 억지로 움직여 침을 삼켰다. 이빨이 깨질 것처럼 악물렸다. 여기서 들것에 실려 나가는 순간, 이번 연습 경기는 물론이고 송원고의 기세는 완전히 꺾인다. 한성고 놈들에게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비켜.”
은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장갑 끝에 묻어 있던 얼음가루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은우야, 너 정신이 들어? 어디가 아픈 거야? 무릎이야?”
지후가 무릎을 꿇으며 은우의 어깨를 붙잡았다. 은우는 지후의 장갑을 거칠게 밀쳐냈다. 그리고 엎드린 자세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스틱을 짚고 일어서는 은우의 전신이 사시나무 떨리듯 진동했다. 뇌를 파고드는 통증의 해일 속에서, 오직 단 하나의 사실만을 되새겼다.
‘이건 가짜다.’
뇌가 만들어 낸 환상일 뿐이다. 내 무릎은 멀쩡하다. 기껏해야 0.5% 마모되었을 뿐이다.
‘속지 마라, 이은우.’
그는 스스로의 정신을 채찍질했다. 이빨 사이로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려 하얀 은반 위로 툭, 투둑 떨어졌다.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통증을 억누른 결과였다. 은우의 눈동자가 독기로 번뜩였다.
다가오던 구급 요원들이 그의 살기 어린 눈빛에 짓눌려 제자리에 멈춰 섰다.
“들것 치워.”
쉰 목소리였지만, 얼음판 전체를 얼려버릴 만큼 서늘한 목소리였다.
“은우 너 진짜 괜찮은 거야?”
지후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했다. 은우는 대답 대신 헬멧을 고쳐 쓰고 스틱을 단단히 쥐었다.
“라인 복귀해.”
그 짧은 한마디에 송원고 부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벤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박한솔 감독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과거의 자신이었다. 링크 위에서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지면서도 끝내 스틱을 놓지 못했던, 그리하여 결국 부러져 버렸던 천재의 모습. 하지만 은우의 눈에 서린 것은 미련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승리를 향한 지독한 집착이었다.
박한솔의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전의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그는 벤치 문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전원 들어라!”
박한솔의 굵직한 목소리가 텅 빈 관람석까지 울려 퍼졌다.
“이은우가 버틴다. 우리가 기어이 선제골을 넣었어! 저 오만한 한성고 놈들의 콧대를 꺾어놓았단 말이다! 은우가 흔들리면 너희가 몸을 던져라! 이빨이 부러지든 어깨가 나가든, 은우의 앞길을 막는 놈들은 대가리로라도 받아서 치워!”
“예!”
송원고 부원들의 대답이 링크를 뒤흔들었다. 패배감에 젖어 있던 퇴물들의 눈에 처절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경기가 재개되었다.
“저 새끼 무릎 조져!”
한성고의 윤성현이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한성고 선수들이 미친 포식자처럼 은우를 향해 쇄도했다. 그들의 스케이팅은 이전보다 훨씬 거칠고 포악해져 있었다. 규칙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노골적인 물리적 압박이었다.
하지만 은우의 머릿속 장부는 이미 가동되고 있었다.
[동료 싱크로율: 민지후 88%, 김정우 75%] [진입 경로 분석…… 좌측 30도, 우측 45도 차단막 형성 가능]
“지후야, 좌측 윙백 밀어내!”
은우의 날카로운 지시에 지후가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콰아앙-!
지후의 어깨와 한성고 수비수의 보호구가 부딪치며 굉음이 발생했다. 지후의 헬멧이 삐딱하게 돌아갈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지만, 그는 입술을 깨물며 자리를 지켰다. 가슴팍에 시퍼런 멍이 들었을 터였다.
[민지후 어깨 피로도: 68% -> 74%]
지후가 몸으로 만든 단 1초의 틈. 은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퍽을 낚아챘다.
스르륵, 슥!
은우의 스케이트 날이 얼음판 위를 미끄러지며 기묘한 궤적을 그렸다. 한성고 주장 강태훈이 거대한 덩치로 은우의 정면을 가로막았다.
“여기서 끝이다, 좆만아!”
강태훈이 어깨를 낮추며 은우의 상체를 날려버릴 기세로 들이받았다. 링크를 박살 낼 듯한 바디체크였다. 일반적인 고교생이라면 늑골 몇 대는 가볍게 부러질 만한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은우에게 강태훈의 돌진은 느린 화면처럼 보였다. 장부가 강태훈의 스케이트 각도와 무게 중심을 완벽하게 계산해 내고 있었다.
[적대 대상: 강태훈] [왼쪽 스케이트 날 아웃코너 장착 각도 미세 오차: 2도] [우측 회전 시 외측 인대 부하율 급상승 구간 포착]
‘거기구나.’
은우는 상체를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였다. 강태훈이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막기 위해 우측 발에 힘을 실었다.
그 순간, 은우의 스케이트 날이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지이익-!
얼음 파편이 폭발하듯 비산했다. 은우는 찰나의 순간에 강태훈의 왼쪽 빈틈을 파고들었다. 강태훈은 급격한 방향 전환을 감당하지 못하고 중심을 잃었다. 그의 거대한 몸이 빙판 위를 볼품없이 뒹굴며 펜스에 처박혔다.
쿵-!
“끄윽!”
강태훈의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체육관을 메운 관중석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성고의 절댓값이라 불리던 강태훈이 단 한 번의 페인팅에 완전히 농락당한 것이다.
“지후, 들어가!”
은우가 낮게 외치며 스틱을 휘둘렀다.
딱-!
자로 잰 듯한 패스가 한성고의 골대 앞, 수비수들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해 지후의 스틱 끝에 정확히 배달되었다.
한성고 골리가 다급하게 자세를 낮추며 슬라이딩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지후는 은우가 설계한 완벽한 슛 각도를 확보한 상태였다.
퍽-!
지후가 온 힘을 다해 때린 퍽이 골리의 글러브를 스치며 골망 구석을 세차게 흔들었다.
부우우웅-!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 소리와 함께 골 전등에 붉은 불빛이 켜졌다.
[송원고 2 : 1 한성고]
경기 종료였다.
송원고의 대역전극. 대한민국 고교 하키의 절대 강자 한성고가, 예산 지원조차 끊겨 가던 변두리의 송원고에게 무릎을 꿇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겼어…… 진짜로 이겼다고!”
지후가 스틱을 허공으로 던지며 포효했다. 한성고 벤치에는 얼어붙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윤성현은 넋이 나간 얼굴로 전광판을 바라보았고, 펜스에서 겨우 일어난 강태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은우는 스틱에 기대어 거친 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을 맴돌던 환상통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땀방울이 눈을 찔러 따가웠지만,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독하게 이기적인 설계. 동료들을 방패로 삼고, 그들의 마모도를 한계까지 쥐어짜 만들어 낸 승리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경기 직후, 송원고 라커룸.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승리의 흥분이 뒤섞여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오늘 진짜 미쳤다! 이은우, 너 그 페인팅 어떻게 한 거냐?” “나 한성고 놈들 얼굴 썩어 들어가는 거 보고 체증이 다 내려갔다니까!”
부원들이 은우의 어깨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은우는 라커룸 한구석에서 장비를 정리하며 묵묵히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장부에 기록된 동료들의 상태창이 보였다. 피로도는 높았지만, 영구적인 부상을 입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완벽한 통제였다.
그때, 박한솔 감독이 감독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의 표정은 승리의 기쁨보다는 복잡한 심경이 얽혀 있는 듯 굳어 있었다.
박한솔은 손에 든 서류 뭉치를 힐끗 바라보더니, 이내 그것을 쓰레기통 깊숙이 처박아 버렸다.
툭.
서류가 쓰레기통 바닥에 처박히는 소리는 부원들의 환호성에 묻혔지만, 은우의 날카로운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은우가 천천히 걸어가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서류의 제목을 훑었다.
[한성 스포츠 재단: 송원고등학교 하키부 인수 및 해체 후 한성고 편입 검토 제안서]
은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한성고의 배후에 있는 대기업 재단이 송원고를 헐값에 인수해 해체하고, 유망한 선수들만 쏙 빼가려 했던 기획 문서였다. 감독 박한솔은 오늘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그 더러운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셈이었다.
[시스템 기록: 한성 스포츠 재단 인수 검토 제안서 사본 저장 완료]
장부의 메모리 칩에 문서의 내용이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이건 나중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겠군.’
은우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라커룸의 낡은 철문이 거칠게 열렸다.
쾅-!
승리의 흥분으로 가득했던 라커룸이 순식간에 정적으로 휩싸였다.
체육관 복도의 차가운 공기와 함께 들어선 이들은 양복을 빳빳하게 차려입은 사내들이었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대한민국 고교 아이스하키 협회의 공식 휘장이 문양으로 박혀 있었다. 그 뒤로는 한성고의 코칭스태프와 카메라를 든 기자 몇 명이 험악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협회 사무국장인 김진우가 차가운 눈빛으로 라커룸 안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은우에게 머물렀다.
“송원고 박한솔 감독. 그리고 이은우 선수.”
김진우가 엄숙한 목소리로 서류 봉투를 꺼내 들었다.
“방금 끝난 연습 경기에서 송원고 측의 명백한 부정행위 및 비공식 장비 규정 위반 혐의가 접수되었습니다. 협회 규정 제24조에 의거, 즉시 징계 위원회를 소집할 예정이니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뭐라고요?”
지후가 벌떡 일어섰지만, 박한솔 감독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게 무슨 소리요, 김 국장! 장비 위반이라니? 우리가 무슨 부정행위를 했다는 겁니까!”
“자세한 사항은 위원회에서 밝혀지겠지요.”
김진우는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뒤에 선 한성고 코칭스태프의 눈빛에는 승리를 도둑맞은 자들의 독기가 가득했다.
그들의 배후에 있는 대기업과 협회의 유착. 기적 같은 승리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거대한 권력의 덫이 송원고와 이은우의 목을 죄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