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득, 드드득.
목동 아이스링크의 차가운 강화유리 벽면이 쩍쩍 비명을 질렀다.
등 뒤를 짓누르는 단단한 충격과 함께 뇌수가 흔들리는 진동이 관자놀이를 타고 올랐다. 강태훈의 거친 손아귀에 붙들린 헬멧 끈이 턱밑을 조여왔다. 콧수염 부근에서 느껴지는 그의 뜨거운 입김에는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그 발목을 가지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은우의 목소리는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강태훈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확장되었다. 멱살을 잡은 그의 두꺼운 장갑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짧은 틈을 은우는 놓치지 않았다. 장부를 가동한 눈앞으로 붉은색 연산 막대가 쏟아져 내렸다.
[대상: 강태훈] [특이사항: 왼쪽 스케이트 날 아웃코너 장착 각도 오차 2.04도] [추정 피로 가중치: 좌측 외측 인대 부하율 142% 돌파] [경고: 해당 부위 집중 타격 시 전도 확률 88.9%]
‘찾았다.’
고교 하키 최강의 포식자라 불리는 놈의 치명적인 결함. 매끄러운 은반 위에서 미세한 2도의 뒤틀림은 시속 4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거구에게 시한폭탄과 다름없었다. 강태훈은 이 뒤틀린 각도를 메우기 위해 왼쪽 발목 인대를 과도하게 비틀며 스케이팅을 하고 있었다. 은우는 그 숫자를 뇌세포 깊숙이 새겨 넣었다.
“이 새끼가 진짜……!”
강태훈이 이를 악물며 스틱을 쥔 손에 힘을 주려는 찰나였다.
삐이이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빙판을 갈랐다. 주심과 선심 세 명이 동시에 달려들어 두 사람의 몸을 강제로 떼어 놓았다.
“그만해! 1피리어드 끝났어! 전부 벤치로 물러나!”
“강태훈, 손 떼! 마이너 페널티 받고 싶어?”
선심들이 강태훈의 거구목을 밀쳐냈다. 강태훈은 못내 아쉬운 듯 은우를 향해 침을 뱉으며 멱살을 놓았다. 은우의 유니폼 옷깃이 거칠게 펄럭이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스르륵.
은우는 스케이트 날을 가볍게 눕히며 뒤로 물러섰다. 가슴이 거칠게 들썩였지만, 눈빛은 이미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은우야! 괜찮냐?”
민지후가 씩씩거리며 다가와 은우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후의 뺨은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저 새끼들이 지금 우리를 대놓고 무시하잖아! 연습 경기라고 막 나가겠다는 거야? 감독님한테 말씀드려서 당장……”
“지후야.”
은우가 지후의 헬멧 그릴 너머로 시선을 고정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지후가 멈칫했다.
“말했잖아. 하키는 몸으로 하는 게 아니야.”
은우는 멀어지는 강태훈의 등번호 55번을 응시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장부의 수치들을 빠르게 재정렬했다.
***
송원고등학교 벤치.
얼음주머니를 목 뒤에 대고 있는 선수들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1피리어드 무실점. 대한민국 고교 하키 최강이라 불리는 한성고를 상대로 버텨낸 결과치고는 지나치게 가혹한 대가였다.
송원고 선수들의 체력 마모도는 이미 노란색 영역을 넘어서고 있었다.
[민지후: 대퇴사두근 피로도 68%] [김중현: 오른쪽 발목 인대 가중치 72%] [이선우: 심폐 부하율 81%]
부러진 이빨을 삼키듯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고 있는 지후의 모습이 보였다. 은우는 조용히 스틱을 고쳐 잡으며 팀원들 사이에 섰다.
박한솔 코치는 패드 위에 펜을 쥔 채 손가락 끝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은우의 움직임에서 무언가 엄청난 전술적 가능성을 보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현실로 구현해야 할지 몰라 웅얼거리는 상태였다.
은우가 팀원들 중심부로 걸어 들어갔다.
“2피리어드부터는 전술을 바꾼다.”
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은우에게 쏠렸다. 평소의 이기적이고 차가운 은우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하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효율적인 ‘도구’들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해야 했다. 장부의 동료 싱크로 기능을 가동하기 위한 설계였다.
“바꾸다니? 어떻게?”
지후가 땀을 훔치며 물었다.
“한성고는 무조건 우리를 몸으로 으깨려고 들 거야. 특히 강태훈은 1피리어드에 골을 못 넣어서 눈이 뒤집혔어. 2피리어드 시작하자마자 강한 바디체크로 밀어붙이겠지.”
은우는 스틱 끝으로 링크 지도를 그렸다.
“내가 센터라인을 넘어 드라이브를 걸면, 정면에서 세 명이 압박해 올 거다. 그때 지후 너를 포함한 공격 라인은 내 뒤를 받치지 마.”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너 혼자 다 뚫겠다고?”
선수들의 얼굴에 의아함과 불만이 스쳤다. 또다시 은우의 독단적인 플레이가 시작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아니.”
은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내가 보낸 신호가 뜨면, 즉시 내 좌측 7미터 지점으로 너희의 몸뚱이 평수를 넓혀 길목을 막아라. 퍽을 받으려 하지 말고, 오직 그 공간을 몸으로 채우기만 해.”
“공간을 채우라고?”
“그래. 너희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한성고 수비수들의 각도가 제한된다. 시속 40킬로미터로 달리는 놈들의 스케이트 날은 1도만 꺾여도 제동 거리가 3미터 이상 늘어나니까.”
은우의 눈동자에 깃든 기하학적인 연산 수치들이 실시간으로 회전했다.
[동료 싱크로 활성화 수치: 85%] [송원고 선수들의 평균 이동 속도 대비 마모도 분산율 연산 중...] [최적의 충돌 회피 경로 확보 확률: 94.2%]
이것은 비정한 오너십이었다. 동료들의 체력과 위치를 체스판의 말처럼 완벽하게 통제하여, 자신에게 가해질 물리적 충격을 제로(0)로 수렴시키는 전술. 동료들은 은우가 설계한 완벽한 안전 방패이자, 동시에 한성고의 숨통을 조일 보이지 않는 덫이었다.
웅얼거리던 박한솔 코치의 눈이 번쩍 뜨였다.
“……공간의 면적을 넓혀서 상대의 슬라이딩 앵글을 강제 유도하겠다는 건가? 은우 너, 설마 한성고의 횡방향 전환 속도가 떨어진다는 걸 눈치챈 거야?”
“눈치챈 게 아니라, 그들의 발목 상태가 그렇습니다.”
은우는 짧게 대답하고는 스틱을 챙겼다.
“나머지는 제 패스 타이밍에 몸만 맞추십시오. 부상은 당하지 않게 해 드릴 테니까.”
지후는 은우의 차가운 태도에 알 수 없는 압도감을 느꼈다. 말을 삼킨 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두두두두-!
2피리어드의 시작을 알리는 버저가 울렸다.
다시 은반 위로 올라선 은우의 시야에 한성고 선수들의 마모도가 붉고 푸른 빛으로 점멸했다. 강태훈의 왼쪽 발목 부위는 이미 주황색 경고등이 맹렬하게 켜져 있었다.
페이스오프.
퍽이 빙판에 떨어짐과 동시에 한성고의 센터가 퍽을 긁어갔다.
서거억-!
한성고의 빌드업은 무자비했다. 덩치 큰 윙어들이 송원고의 수비진을 몸으로 밀어내며 공간을 만들었다. 퍽이 강태훈에게 연결되었다.
“야! 쥐새끼! 어디 한번 피해 봐라!”
강태훈이 폭발적인 가속도로 은우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빙판 위의 폭주기관차 같았다.
은우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과거 무릎이 박살 났던 순간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충돌 공포증. 트라우마가 발목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장부가 실시간으로 푸른색 안전 구역을 그려보였다.
[경로 연산 완료] [강태훈의 진입 각도: 32도] [회피 슬라이드 스케이팅 작동 시 부상 확률: 0%]
은우는 몸을 낮췄다.
스케이트 날의 아웃엣지를 빙판에 깊숙이 박아 넣으며 무게중심을 오른쪽으로 급격히 이동시켰다.
슈우우욱-!
빙판을 깎아내는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은우의 몸이 강태훈의 거구 바로 옆을 스치듯 통과했다. 종이 한 장 차이의 회피였다.
“뭐야?!”
강태훈이 허공을 가른 스틱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의 미세하게 뒤틀린 왼쪽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제대로 지지하지 못했다.
스르륵!
은우는 흐트러진 강태훈의 시야 뒤편에서 굴러다니던 프리 퍽을 가볍게 낚아챘다.
“지후, 지금!”
은우가 나지막하게 외쳤다.
그와 동시에 장부의 싱크로 신호가 가동되었다. 지후와 송원고의 레프트 윙 이선우의 머리 위에 푸른색 가이드라인이 그어졌다.
‘좌측 7미터!’
지후는 은우의 말을 본능적으로 믿었다. 이빨을 악물고 다리를 굴렀다. 이선우 역시 은우가 그려놓은 궤적을 따라 몸뚱이를 들이밀었다. 두 선수의 거구 뒤편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성고의 수비수 윤성현이 은우를 저지하기 위해 대각선으로 침투하려다 멈칫했다. 지후와 선우가 넓혀 놓은 ‘인간 장벽’에 진로가 완벽하게 차단된 것이다.
“비켜, 이 쓰레기들이!”
윤성현이 소리쳤지만, 이미 각도는 죽어 있었다. 무리하게 진입하려다가는 동료들과 엉켜 대형 충돌이 일어날 판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 은우의 눈앞에 골대까지의 최단 경로가 열렸다. 푸른색 안전 가속 구역이 한성고의 골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골리 가동 범위 연산: 우측 하단 5% 틈새 존재] [슛 성공 확률: 91.2%]
체력 마모도를 철저히 배분받은 송원고 부원들이 한성고의 수비진을 묶어두는 사이, 은우는 홀로 은반 위의 지배자가 되어 있었다.
탁! 타닥!
은우의 스틱 끝에서 퍽이 춤을 추었다. 한성고의 최종 수비수가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지만, 은우는 이미 0.1초 전에 스케이트 날을 뒤로 꺾어 충돌 범위를 벗어난 뒤였다.
완벽한 회피. 그리고 완벽한 기회.
손목의 스냅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카본 스틱이 휘어지며 강력한 탄성을 비축했다.
깡-!
빙판을 찢는 듯한 타구음이 목동 링크 전체를 울렸다.
퍽은 한성고 골리의 블로커 밑, 단 5센티미터의 틈새를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펄럭-!
흰색 골망이 세차게 뒤흔들렸다.
고요함이 찾아왔다.
정적을 깨뜨린 것은 전광판의 붉은 불빛과 골 버저 소리였다.
부우우웅-!
[송원고 1 : 0 한성고]
선제골이었다.
대한민국 고교 하키의 절대 강자, 단 한 번도 실점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한성고의 골망이 무명의 송원고, 그것도 은퇴의 기로에 섰던 이은우의 스틱 끝에서 무너져 내렸다.
“……들어갔어?”
지후가 멍한 얼굴로 골망을 바라보았다.
관람석에 있던 타 학교 관계자들과 협회 스카우트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격상 반격이었다.
“말도 안 돼…….”
한성고 벤치에서는 침묵만이 흘렀고, 윤성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헬멧을 감싸 쥐었다. 강태훈은 씩씩거리며 붉어진 얼굴로 은우를 노려보았지만, 이미 전광판의 숫자는 바뀌어 있었다.
완벽하게 배분된 물리 에너지의 승리. 은우가 동료들의 마모도를 통제하고 지휘하여 만들어 낸, 역사상 최초의 ‘마모 제로 전술 선제골’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송원고 벤치에서 터져 나온 함성이 은반을 가득 메웠다. 지후가 은우를 향해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아윽……!’
은우의 턱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눈앞의 장부 화면이 붉은색 오류 메시지로 가득 찼다.
[경고: 한계 이상의 쾌속 방향 전송 연산 수행] [대뇌 피질 과부하율 180% 돌파] [시스템 대가 지불: 환상통(Phantom Pain) 피드백 개시]
뇌세포 하나하나에 불이 붙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들이닥쳤다. 과거 오른쪽 무릎 인대가 끊어지며 뼈가 으스러지던 그 생생한 감각이, 1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뇌를 직접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으, 윽…….”
은우의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렸다. 시야가 흐려지고, 지후의 환호성이 먼 메아리처럼 멀어져 갔다.
스틱을 쥔 손가락 끝에 힘이 빠졌다.
툭.
스틱이 은반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은우의 마지막 의식의 끈을 건드렸다.
은우의 몸이 힘없이 꺾이며, 차가운 은반 위로 쓰러져 내렸다. 쓰러진 그의 시야 너머로, 경악에 찬 지후의 얼굴과 붉게 명멸하는 장부의 부상 경고등만이 어지럽게 회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