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곧 있을 춘계 대회 전에 가볍게 몸풀기나 한번 하시죠. 저희가 특별히 원정까지 와 드렸는데, 연습 경기 한 판 안 해주시면 섭섭하잖습니까?”
강태훈의 혀끝에서 흘러나온 제안은 독침과 같았다. 박한솔 감독의 턱끝이 파르르 떨렸다. 거절하면 명문이라는 껍데기마저 찢긴 채 도망친 겁쟁이가 된다. 받아들이면? 작년처럼 아이들의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나가는 꼴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한다. 송원고 벤치 위에 무거운 침묵이 납덩이처럼 가라앉았다.
그 정적을 깨뜨린 것은 차가운 스케이트 날의 마찰음이었다.
스슥.
이은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시선은 강태훈의 오만한 눈동자를 정면으로 꿰뚫고 있었다.
“하죠, 연습 경기.”
“은우야!”
박한솔 감독이 놀라 소리쳤지만, 은우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강태훈을 도발하듯 내려다보았다.
“멀리서 손님들이 굳이 매까지 맞으러 오셨는데, 그냥 보내드리는 건 송원고의 예의가 아니잖습니까.”
“뭐라냐, 이 새끼가?”
강태훈의 미간이 사납게 좁아졌다. 입안에서 맴돌던 껌이 콰직 소리를 내며 짓이겨졌다. 윤성현 역시 실실 웃던 입꼬리를 굳혔다.
[적대 대상 감지: 강태훈 (한성고 DF)] [적대 대상 감지: 윤성현 (한성고 FW)] [시스템 연산: 매치 성사 시 승률 42% -> 58% (동료 싱크로 가동 시)]
은우의 시야에 푸른색 전술 매트릭스가 반짝이며 경로를 새로 그리기 시작했다. 물리적 충돌을 극도로 회피하는 트라우마는 여전히 척추를 타고 서늘한 한기로 기어올랐다. 하지만 장부가 제안하는 수많은 푸른색 안전 궤적들이 은우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뇌를 타격하는 환상통의 경고음이 귓가에 삐 소리를 내며 울렸지만, 은우는 이를 악물고 통증을 짓눌렀다.
‘기어 들어온 건 너희들이다. 이번엔 니들이 도망치게 만들어 주마.’
* * *
콰앙-!
링크의 사이드 펜스가 비명 같은 굉음을 질렀다. 경기 시작 불과 3분 만에 일어난 첫 번째 바디체크였다. 한성고의 라이트 윙이 송원고의 디펜스를 그대로 받아 쳐 박아버린 것이다.
“악!”
송원고 수비수가 펜스에 부딪혀 빙판 위로 나뒹굴었다. 퍽은 이미 한성고의 스틱 끝에 걸려 있었다.
관중석도 없는 텅 빈 연습 빙상장이었지만, 공기는 실제 결승전보다 더 살벌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한성고의 플레이는 하키가 아니었다. 럭비였다. 은반 위의 합법적인 폭력을 무기 삼아 송원고 선수들의 기세를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는 심산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잡아! 들이받아!”
강태훈의 짐승 같은 고함이 링크를 찢었다.
한성고 선수들이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송원고의 수비 진영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스틱이 빙판을 거칠게 때리며 퍽을 몰아붙였다. 퍽이 얼음 위를 타고 빠르게 돌았다.
퍼억! 퍽이 한성고 공격수의 스틱을 떠나 송원고의 골대 구석을 겨냥했다.
“내가 막는다!”
민지후가 이빨을 악물며 몸을 날렸다. 퍽은 겨우 막았지만, 그의 앞에는 이미 거대한 덩치의 한성고 센터가 먹구름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그대로 들이받으면 지후의 흉부가 으스러질 판이었다. 지후의 눈동자에 찰나의 공포가 스쳤다. 작년, 갈비뼈가 세 대나 부러졌던 그 순간의 기억이 그의 뇌리를 스친 탓이었다.
‘위험하다.’
지후의 몸이 굳어가는 순간, 은우의 눈앞에 붉은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동료 싱크로 대상: 민지후 (DF)] [실시간 신체 스캔: 흉부 부하량 35% -> 78% 급증] [충돌 시 장기 손상 및 늑골 골절 확률: 82%] [경고: 즉각적인 회피 경로 미확보 시 강제 동기화 해제]
은우의 뇌 속에서 수천 개의 연산 회로가 불꽃을 튀겼다. 지후가 무너지면 팀의 수비 라인은 완전히 붕괴한다. 그리고 지후의 부상은 송원고 하키부의 종말을 의미했다.
“지후야! 뒤로 빼지 마! 왼쪽 30도, 날 세우고 슬라이딩 트랜지션!”
은우의 목청이 연습장 천장을 강타했다.
그의 외침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지후의 귓전에 박힌 것은 장부가 계산해 낸 완벽한 ‘탈출 각도’였다.
“어……?”
지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은우의 목소리에 담긴 기묘한 확신과 압도적인 통제력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지후는 본능적으로 아웃코너 날을 빙판에 처박으며 몸의 중심을 왼쪽으로 기울였다.
서거거억!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지후의 몸이 한성고 센터의 어깨 바로 밑, 불과 5센티미터 간격을 두고 스치듯 비껴갔다.
쿵-!
지후를 받으려던 한성고 센터는 허공을 들이받고 그대로 펜스에 안면을 처박았다.
“지후야, 퍽 흘려! 성진 형한테 대각선 롱 패스!”
은우의 지시는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지후는 미끄러지는 와중에도 스틱 끝으로 퍽을 툭 건드렸다. 퍽은 정확히 한성고 수비진의 가랑이 사이를 관통해 반대편 블루라인에서 대기하던 송원고 포워드 성진에게 배달되었다.
“말도 안 돼…….”
한성고의 벤치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윤성현의 눈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완벽하게 설계된 바디체크가 단 한 번의 미세한 각도 조절로 무력화된 것이다.
[동료 싱크로 안정화: 민지후 (DF) 신체 마모도 35%로 복구] [동기화 링크 유지율: 95%]
은우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김이 새어 나왔다. 관전 피로도가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지만, 쾌감이 그 통증을 압도했다.
‘보인다. 저들의 무식한 돌진 궤적이 전부.’
한성고의 하키는 무자비하지만, 거칠고 단순했다. 속도와 무게를 실어 들이받는 힘의 기교. 그것은 장부의 기하학적 연산 앞에서는 그저 뻔히 읽히는 붉은색 직선에 불과했다.
“한 번 더 온다! 대형 유지해!”
은우가 스틱을 들어 올리며 송원고 선수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의 스케이트가 빙판 위에 푸른색 궤적을 그리며 춤을 추듯 미끄러졌다.
한성고의 수비수들이 다시 한번 무리를 지어 은우를 향해 돌진했다. 두 명의 거구가 은우를 샌드위치처럼 끼워 눌러 죽이겠다는 기세로 덮쳐왔다.
쾅! 쾅!
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은우의 잔상뿐이었다.
은우는 충돌 직전, 스케이트 날의 안쪽 각도를 극단적으로 꺾으며 몸을 낮췄다. 마찰력을 최소화한 무마찰 슬라이딩. 그의 몸이 두 수비수의 사이 공간을 유령처럼 빠져나갔다.
“어디를 보는 거야?”
은우의 차가운 나지막한 목소리가 허공을 치받고 뒹구는 한성고 선수들의 귀에 가닿았다.
콰당탕!
제어력을 잃은 한성고 수비수 둘이 서로의 몸을 들이받으며 빙판 위로 사정없이 굴렀다. 헬멧이 빙판에 부딪히며 신경질적인 깡 소리를 냈다.
“이, 미친 새끼가……!”
강태훈이 이를 갈며 은우를 향해 스케이트를 지쳤다. 그의 눈은 이미 핏발이 서 있었다. 고교 최강이라 자부하던 한성고가, 겨우 송원고 따위의 잔기술에 놀아나고 있었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유효 충돌도 기록하지 못한 채로.
은우는 강태훈의 돌진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위험 감지: 강태훈 (S-)] [충돌 시 무릎 마모도 폭발 확률: 98% (영구 부상 위험)] [우회 경로 탐색 완료: 우측 15도, 펜스 반사 각도 활용]
은우의 몸이 허공에 뜬 것처럼 가볍게 꺾였다. 강태훈이 온 힘을 실어 날린 숄더 체크는 은우의 유니폼 자락만을 스치고 지나갔다.
슈우욱-!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은우는 펜스를 스틱으로 가볍게 밀치며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완벽한 충돌 회피. 그리고 그 자리에는 한성고의 골대를 향해 길게 뻗은 푸른색 고속도로가 열려 있었다.
“성진 형! 지금이야!”
은우가 허공을 찌르는 완벽한 공간 패스를 찔러 넣었다. 퍽은 물 찬 제비처럼 날아가 성진의 스틱에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한성고의 골키퍼가 깜짝 놀라 자세를 낮췄지만, 이미 송원고의 공격 라인은 완벽한 3대 2 아웃넘버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막아! 이 병신들아! 막으라고!”
강태훈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링크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송원고 선수들은 더 이상 예전의 주눅 든 패배자들이 아니었다. 은우의 완벽한 전술 설계와 지휘 아래, 그들은 자신들이 다치지 않는 ‘안전 구역’을 확신하고 있었다. 몸싸움의 공포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승리를 향한 갈망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슥, 슉, 퍼억!
수동적이던 송원고 수비수들이 단 한 번의 직접 충돌도 없이, 유기적인 공간 패스만으로 한성고의 포악한 파상 공세를 빈틈없이 흘려보냈다. 한성고 선수들은 들이받으려 할 때마다 텅 빈 허공만을 치받았고, 제풀에 겨워 체력을 방전시키고 있었다.
삐이이이-!
1피리어드의 종료를 알리는 날카로운 버저 소리가 빙상장에 울려 퍼졌다.
전광판의 스코어는 0:0.
하지만 링크 위의 분위기는 이미 송원고의 완벽한 압승이었다. 한성고 선수들은 헬멧을 벗어 던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그들의 얼굴은 붉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물들어 있었다. 반면 송원고 선수들의 눈빛은 전례 없는 생기로 번뜩였다.
“우리가…… 한성고를 상대로 실점 없이 막았어.”
민지후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유니폼에는 단 하나의 멍 자국도 없었다. 부상 확률 0%의 하키. 은우가 약속했던 그 기적이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은우야, 너 진짜…….”
박한솔 감독 역시 펜스에 기대어 펜을 쥔 손가락 끝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은우가 보여준 스케이팅과 공간 설계는 고교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아니, 프로 리그에서도 보기 힘든 컴퓨터 하키 그 자체였다.
하지만 쾌감도 잠시였다.
은우의 관자놀이에 찌르는 듯한 극심한 환상통이 다시 한번 찾아왔다.
‘으윽…….’
은우는 신음 소리를 삼키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는 초인적인 스케이팅 궤적을 연산하고 동료들과의 싱크로율을 100% 가깝게 유지한 대가였다.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에 은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때였다.
서거억-!
빙판을 찢는 듯한 난폭한 스케이트 소리가 은우의 뒤편에서 빠르게 다가왔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은우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퍽!
“이 쥐새끼 같은 법 버러지 새끼가……!”
강태훈이었다.
그의 거친 손길이 은우의 유니폼 깃과 멱살을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고교 최강의 피지컬을 자랑하는 강태훈의 완력이 은우의 몸을 빙판 위에서 반쯤 들어 올렸다.
콰앙-!
강태훈은 은우를 그대로 이끌고 가 단단한 강화유리 빙벽에 거칠게 메쳤다. 은우의 등 뒤로 둔탁한 충격음이 울렸다.
“야! 강태훈! 뭐 하는 짓거리야!”
민지후가 격분해 소리치며 달려들려 했지만, 한성고의 다른 선수들이 지후를 가로막았다. 링크 위는 순식간에 일촉즉발의 난투극 직전 상황으로 치달았다.
강태훈의 핏발 선 눈동자가 은우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숨결에서 뜨겁고 비린내가 풍겼다.
“도망치기만 하는 쥐새끼가 하키를 한답시고 깝쳐? 1피리어드 내내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면서 장난질치니까 재밌었냐, 어?”
강태훈의 스틱이 은우의 턱밑을 강하게 압박해 왔다. 은우의 장부에 붉은색 경고가 미친 듯이 깜빡였다.
[경고: 물리적 압박 감지] [강태훈의 악력 및 흉부 압박 부하량: 85%] [환상통 수치 급증 경고]
턱밑을 조여오는 통증과 뇌를 찌르는 환상통 속에서도, 은우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짓누르는 강태훈의 스케이트 날을 내려다보았다.
강태훈의 왼쪽 스케이트 날. 아웃코너 장착 각도가 미세하게 2도 휘어져 있는 그 약점이, 은우의 장부 화면 위에 선명하게 붉은색 점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은우가 피 묻은 입술을 살짝 올리며 차갑게 속삭였다.
“그 발목을 가지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뭐……?”
강태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은우의 시선이 머문 곳은 정확히 자신의 스케이트 날이었다. 단 한 번도 남에게 말한 적 없는, 자신만의 비밀이자 지독한 약점.
그 찰나의 공포와 의문이 강태훈의 얼굴에 스치는 순간, 은우의 손이 강태훈의 손목을 강하게 맞잡았다.
빙판 위의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