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한계 스텝 진입 시 부상 확률 88%.

망막을 잔혹하게 찢어발기는 적색 경고등이 은반 위에 붉은 피처럼 퍼져 나갔다.

두근, 두근, 두근.

터질 듯 날뛰는 심장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채웠다. 턱끈을 조여 맨 헬멧 안쪽으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눈가를 찔렀다. 따가움보다 더 지독한 것은 뇌 신경을 직접 난타하는 환상통이었다. 10년 전, 오른쪽 무릎 인대가 사정없이 뜯겨 나가던 그 끔찍한 파열음과 칼로 뼈를 후벼 파는 듯한 물리적 고통이 척수를 타고 뇌하수체에 다이렉트로 내리꽂혔다.

몸은 멀쩡했다. 회귀한 지금의 육체는 아직 파열을 겪지 않은 18세의 푸르른 상태다. 하지만 과거의 충돌 트라우마가 뇌를 지배하는 순간, 장부는 여지없이 그 공포를 극심한 통증으로 치환해 돌려주었다.

[경고: 소유주의 정신력 마모도 19% 돌파.] [뇌 신경계 과부하로 인한 가상 통증 피드백 심화.]

"하아…… 하아……!"

이빨이 맞부딪히며 딱딱 소리를 냈다. 시야가 붉은색 노이즈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바로 그 순간, 정면에서 한성고의 센터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은반을 찍어 누르며 들이닥쳤다. 얼음 파편이 톱날처럼 공중으로 비산했다. 퍽은 이미 심판의 손을 떠나 빙판 위를 구르고 있었다. 정면충돌 코스였다. 이대로 어깨를 맞부딪치며 퍽을 다투는 순간, 장부가 경고한 88%의 확률이 현실이 되어 무릎을 바스러뜨릴 것이 분명했다.

'물러설 것인가?'

아니다. 은퇴라는 절벽 끝에서 기어코 돌아온 빙판이다. 두 번 다시 휠체어 위에서 남들의 경기를 구경하는 시체로 살 수는 없다.

은우는 질겁하며 뒤로 물러서려는 본능을 억누르고, 장부가 실시간으로 쏘아 올리는 수식과 기하학적 궤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빙판은 전쟁터가 아니다. 각도와 마찰력, 그리고 질량의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거대한 체스판일 뿐이다.

[연산 제어 가동.] [상대 진입 각도: 좌측 14도, 속도 28km/h.] [최적의 회피 및 돌파 경로 연산 완료.] [스케이트 날 안쪽 엣지(Inner Edge) 진입 마찰 각도 0.3도 미세 조정 제안.]

0.3도. 눈으로 식별조차 불가능한 극 미세의 각도.

은우는 오른쪽 다리에 실려 있던 무게중심을 아주 미세하게 왼쪽 아웃코너로 흘려보냈다. 동시에 오른쪽 스케이트 날의 안쪽 날을 얼음판에 대는 각도를 찰나의 순간에 비틀었다.

스어억.

얼음판을 무식하게 파고들며 굉음을 내던 상대의 스케이팅과 달랐다. 은우의 스케이트 칼날은 마치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얼음의 미세한 수막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마찰력을 극단적으로 지워버렸다.

[부상 확률: 88% → 0.04%로 급하강.] [안전 가속 구역 진입 성공.]

"어……?"

정면에서 들이받으려던 한성고 센터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분명히 어깨와 어깨가 부딪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야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야에 있던 이은우라는 존재는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은우는 단 0.3도의 각도 조절만으로 상대의 돌진 경로를 완벽히 흘려내며, 마치 바람이 틈새를 통과하듯 그의 옆구리 공간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콰아아앙-!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한성고 센터가 홀로 송원고의 펜스에 처참하게 처박혔다. 둔탁한 굉음과 함께 펜스가 크게 출렁였다.

그 아수라장의 한복판에서, 은우는 소리 없이 빙판을 찢었다.

스으으윽.

빙판을 부술 듯이 쿵쾅거리며 달리는 고교 수준의 스케이팅이 아니었다. 은우의 스케이팅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얼음판과 날의 마찰을 완전히 통제한, 이른바 '무마찰 오너십 스케이팅'이었다.

"……말도 안 돼."

송원고 벤치에 서 있던 감독 박한솔이 들고 있던 전술 보드펜을 떨어뜨렸다. 펜이 얼음판 위로 툭 떨어져 굴렀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칼날이 얼음을 지칠 때 들리는 특유의 콰득거리는 소리가 없었다. 그저 스르륵, 슈우욱 하는 가벼운 바람 소리만이 은우의 발끝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빙판의 성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몸의 무게를 완벽하게 분산할 수 있는 초일류 스케이터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활주였다.

"인우야! 저거 이은우 맞아? 쟤 스케이팅이 언제 저렇게……!"

조연인 민지후가 침을 삼키며 소리쳤지만, 은우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현재 오른쪽 무릎 관절 마모도: 12.1% (상시 적색 경고)] [실시간 피로 누적도: 0.02% 상승 중.]

장부의 경고등을 내려다보며, 은우는 냉정하게 퍽을 가로챘다.

검고 묵직한 고무 원반이 은우의 스틱 블레이드에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한성고 수비수 두 명이 즉각 양옆에서 덮쳐왔다. 그들의 눈빛에는 '송원고 따위의 윙어를 빙판에 묻어버리겠다'는 가학적인 살기가 번뜩였다.

"죽어라, 새끼야!"

오른쪽에서 거대한 체구의 디펜스 부가 어깨를 들이밀며 펜스 쪽으로 은우를 밀어붙였다.

보통의 선수라면 여기서 퍽을 지키기 위해 몸싸움을 버티거나, 반대편에 있는 동료에게 퍽을 패스했을 것이다. 저 멀리서 지후가 "은우야! 이쪽이야! 패스해!"라며 스틱을 빙판에 두드리고 있었다. 지후의 위치는 완벽했다. 수비수가 비워둔 노마크 찬스였다.

하지만 은우는 지후를 보지 않았다.

'패스한다고?'

머릿속에서 냉소적인 연산이 폭발했다.

'내가 저 패스 미숙한 놈에게 퍽을 주는 순간, 리턴 패스를 받기 위해 내 몸은 다시 수비수들의 충돌 위협 노선에 노출된다. 지후가 퍽을 흘리기라도 하면? 역습을 막기 위해 내 무릎을 던져 백체킹을 해야 한다. 싫다. 두 번 다시 남의 발놀림에 내 몸의 안전을 맡기지 않는다.'

지독한 이기심. 과거의 은퇴 트라우마가 은우의 시야를 좁혔다. 은우에게 동료란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신체 마모도를 제로로 보존하기 위한 방패이자 도구에 불과했다.

지금은 방패조차 필요 없다. 이 통로라면 홀로 찢을 수 있다.

은우는 스틱을 쥔 손목을 꺾었다.

탁, 타닥.

퍽이 은우의 스틱 앞뒤를 현란하게 오가며 한성고 수비수의 가랑이 사이를 관통했다.

"뭐, 뭐야?!"

수비수의 상체가 무너지는 찰나, 은우는 이미 그의 바깥쪽으로 스케이트 날을 크게 눕히며 아웃코너 드라이브를 걸었다. 원심력을 극한으로 이용한 초고속 드리프트. 은우의 상체가 빙판과 거의 45도 각도로 기울어졌다.

스으으으윽!

날카로운 칼날이 얼음판에 단 하나의 깊고 깨끗한 궤적을 그리며 원을 그렸다. 수비수의 거친 바디체크는 허공을 갈랐고, 은우는 물리적 접촉을 단 1밀리미터도 허용하지 않은 채 완벽하게 수비 라인을 무너뜨렸다.

"이 미친…… 혼자 다 하네!"

한성고의 지략가 윤성현이 서둘러 길목을 막아섰지만, 은우는 이미 골대 앞까지 진입한 상태였다.

윤성현의 눈이 은우의 어깨 움직임을 쫓았다. 왼쪽으로 꺾을 것인가, 아니면 오른쪽인가.

하지만 은우는 꺾지 않았다.

스틱을 가볍게 뒤로 뺏다가 앞으로 퉁기는 찰나의 릴리즈.

툭.

가볍게 얹어 치는 스냅 샷이었다. 힘을 잔뜩 실어 때리는 슬랩 샷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퍽은 물리학적인 최적의 회전력을 얻어 골키퍼의 오른쪽 어깨 위, 단 10센티미터의 좁은 빈틈을 향해 광속으로 날아갔다.

퍽이 날아가는 궤적을 따라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일었다.

퍽-!

"골!!!"

송원고 벤치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성고의 골망이 뒤로 팽팽하게 늘어났다. 골대 뒤의 빨간 불빛이 요란하게 반짝였다.

1-0.

경기가 시작된 지 단 30초 만에 터진, 그 누구와도 섞이지 않은 지독하게 완벽하고 이기적인 솔로 골이었다.

빙판 위의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한성고 선수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전광판과 은우를 번갈아 바라보았고, 윤성현은 이를 악문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힘으로 밀어붙이던 자신들의 크래시 하키가, 오직 수학적인 궤적과 미세한 각도 조절만으로 무참하게 난도질당했기 때문이다.

은우는 골 세레머니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스틱을 고쳐 잡고 벤치로 향했다.

[뇌 신경 연산 종료.] [실시간 환상통 피드백 해제.] [정신력 마모도: 15%로 안정화.]

"하아, 하아……."

가슴이 격렬하게 들썩였다. 관절은 멀쩡했다. 마모도는 여전히 12.1%에서 멈춰 있었다. 다치지 않았다. 완벽하게 몸을 보존한 채 골을 넣었다.

승리감과 안도감이 척수를 타고 짜릿하게 올라왔다.

'이거다. 이 속도와 이 각도라면, 그 누구와도 몸을 부딪치지 않고 세계 정상까지 갈 수 있어.'

자신감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은우는 벤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와, 이은우! 너 방금 스케이팅 진짜 미친 거냐? 어떻게 그 좁은 데를 그냥……!"

지후가 흥분해 은우의 어깨를 툭 치려 했다. 은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며 지후의 손길을 피했다. 가벼운 접촉조차도 거부하는 은우의 노골적인 태도에 지후의 손이 허공에서 어색하게 멈췄다.

벤치 분위기는 기묘했다. 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송원고 부원들의 얼굴에는 환희 대신 묘한 소외감과 가라앉은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 은우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벤치 깊숙한 곳에 주저앉아 땀을 닦았다.

툭.

은우의 스케이트 날 앞쪽으로 거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어 올렸다.

송원고 하키부 감독, 박한솔이었다. 겉으로는 무기력해 보이고 만사가 귀찮은 듯 늘어져 있던 그의 눈빛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칼날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은 펜을 쥔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은우의 천재적인 플레이에 전율한 탓이 아니었다.

그것은 깊은 분노와 실망의 떨림이었다.

박한솔은 은우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gravelly한 목소리가 벤치 안의 공기를 얼려버렸다.

"이은우."

"예, 감독님."

"방금 그 상황에서 민지후가 완전히 열려 있었다. 퍽을 내줬으면 99% 확률로 더 안전하게 골을 넣을 수 있었어. 그런데 왜 패스하지 않았지?"

은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지후의 패스 리시브 성공률은 60% 미만입니다. 흘렸을 경우의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보다, 제가 직접 해결하는 것이 성공 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 장부의 데이터가 그랬다. 은우는 철저하게 계산된 사실만을 말했다.

하지만 박한솔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그의 눈빛에 서린 실망감이 더욱 짙어졌다.

"그게 네 판단이냐?"

"예. 결과적으로 골을 넣었습니다."

"그래, 골은 들어갔지. 하지만 그건 하키가 아니다."

박한솔이 전술 보드를 벤치 바닥에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부원들이 어깨를 흠칫 떨며 뒤로 물러섰다.

"우리 송원고는 깨진 유리 조각 같은 팀이다. 장비도 부족하고, 실력도 부족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가 서로의 방패가 되어주고, 서로를 믿고 퍽을 연결하는 것뿐이다."

박한솔이 은우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거칠게 가리켰다.

"그런데 네 플레이에는 동료가 없어. 오직 너 자신의 안전과 너 자신의 골밖에 없지. 빙판 위에서 동료를 믿지 못하고 혼자서만 설치는 놈은, 아무리 천재라도 팀을 망치는 독약일 뿐이다."

은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들어갔다.

"제 방식이 틀렸다는 말씀이십니까? 이겼지 않습니까."

"틀렸다."

박한솔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리고 그는 은우의 심장을 정통으로 꿰뚫는 잔혹한 지시를 내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혼자 설쳐대는 쓰레기가 아니다. 이은우, 2피리어드부터 주전에서 배제한다. 기어 나가서 웜업 존에 처박혀 있어."

"……!"

은우의 턱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이제 막 회귀하여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세계 정상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디려던 찰나, 가장 믿었던 아군으로부터 완벽한 거부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위기 상황 감지: 주전 제외로 인한 커리어 진행 불가 확률 74% 발생……!]

장부의 붉은 경고등이 다시금 은우의 시야를 어지럽게 뒤흔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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