쩍, 소리와 함께 혀끝에 달라붙는 것은 비린 먼지 맛이었다.
골을 울리는 둔탁한 이명이 고막을 짓눌렀다. 들이쉬는 숨마다 싸구려 물파스 냄새와 땀에 절어 썩어가는 가죽 냄새가 폐부 깊숙이 찔러 들어왔다. 익숙하다 못해 넌더리가 나는 냄새.
서른 살의 이은우가 기억하는 마지막 풍경은 보증금마저 까먹은 반지하 단칸방의 천장이었다. 매일 밤 싸구려 위스키를 들이붓지 않으면 통증 때문에 잠들 수 없던, 완전히 파열되어 덜덜 떨리던 오른쪽 무릎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런데 지금은 손끝에 닿는 감촉이 달랐다. 장판때기가 아니었다. 차갑고 딱딱한, 그리고 군데군데 칼자국이 깊게 패어 있는 목재 벤치였다.
"어이, 이은우. 멍 때리지 말고 빨리 장비 차라. 감독님 들어오신다."
굵직하고 둔탁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은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숨이 턱 막혔다. 페인트칠이 허옇게 벗겨진 낡은 캐비닛, 바닥에 굴러다니는 때 묻은 테이프 뭉치들, 그리고 벽면에 조잡하게 붙어 있는 파란색 엠블럼.
[송원고등학교 아이스하키부]
"……송원?"
목구멍을 비집고 나온 목소리가 기묘할 정도로 맑고 앳됐다. 갈라지고 찢어진 서른 살 알코올중독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변성기를 갓 지난, 단단하지만 싱그러운 고등학생의 목목소리.
은우는 다급하게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굳은살이 박여 거칠지만,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럽고 탄력 있는 피부. 이어서 본능적으로 시선이 향한 곳은 오른쪽 무릎이었다.
바지깃을 걷어 올렸다.
흉터가 없었다. 세 차례의 대수술로 인해 지네처럼 흉측하게 얽어매져 있어야 할 수술 자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슬개골 주변을 꾹 눌러보았다. 찌릿한 방사통 대신, 단단한 근육과 인대가 손끝을 통해 팽팽한 탄력성을 고스란히 전해왔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은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방이 핑 돌았지만 다리에 힘이 빠지지 않았다. 지탱할 수 있다. 한쪽 다리에 온 체중을 실어도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극통이 찾아오지 않는다.
라커룸 한구석, 얼룩덜룩한 전신거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울 속에는 앳된 얼굴의 소년이 서 있었다. 날카롭고 짙은 눈매, 아직 젖살이 다 빠지지 않았지만 턱선만큼은 칼날처럼 곧게 뻗은 18세의 이은우.
"말도 안 돼……."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회귀. 활자 매체에서나 보던 그 해괴한 현상이 지금 자신의 육체에 벌어지고 있었다. 전성기를 꽃피우기도 전에 무릎이 걸레짝이 되어 NHL의 문턱에서 좌절했던 비운의 천재 라이트 윙. 그 이은우가 10년 전, 모든 비극이 시작되기 전인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온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윙-!
귓가를 찢는 고주파 소음과 함께 거울 표면이 물결치듯 흔들렸다. 은우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허공에 비현실적으로 떠오른 형광 네온빛의 인터페이스였다. 반투명한 푸른색 창 위로 정교한 인체 해부도가 그려지며, 실시간으로 수식과 그래프가 나열되기 시작했다.
[피지컬 상태 장부(物理狀態帳簿)를 개방합니다.] [소유주: 이은우 (18세)] [신체 동기화율: 100%]
"이게…… 뭐지?"
눈을 비벼도 사라지지 않았다. 시선을 움직이는 대로 푸른색 시스템 창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장부의 가장 윗줄에는 굵은 적색 글씨로 쓰인 경고 문구가 번쩍이고 있었다.
[주의: 과거 누적 마모 데이터 감지] -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 12% (상시 적색 경고) - 인대 미세 손상율: 4.2% - 대퇴사두근 피로도: 28%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8세의 몸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교 시절 혹사의 여파가 12%라는 마모도로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완전한 무결점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른 살 시절 마모도 99%에 달해 휠체어를 만지작거리던 때에 비하면, 12%는 그야말로 신이 내린 축복이자 기회였다.
은우가 침을 삼키며 손가락을 뻗어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 12%' 항목을 터치했다.
파르르 떨리는 네온 창이 확장되며 세부 조절 인터페이스가 펼쳐졌다.
[마모 통제 시스템 활성화] * 체중 분산 각도 조정 (현재 0.0도 -> 추천 각도 +1.5도 외측 편향) * 스케이팅 활주 시 무릎 굴곡 한계선 제어 권능 부여.
실시간으로 몸을 움직여 보았다. 오른쪽 발목을 바깥쪽으로 미세하게 뒤틀며 체중의 중심을 아주 조금 이동시켰다.
스르륵.
눈앞의 수치가 기적처럼 요동쳤다.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 12% -> 11.8%]
소수점 단위의 수치가 깎여 내려가는 순간, 무릎 주변을 감싸고 있던 미세한 이물감과 묵직한 압박감이 썰물 빠지듯 가벼워졌다.
소름이 돋았다.
단순히 상태를 보여주는 창이 아니었다. 자신의 신체 마모도와 피로도를 실시간으로 인지하고, 자세와 부하를 조율하여 부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통제 권능'이었다. 평생을 통증의 노예로 살며 은반 위에서 쫓겨나야 했던 이은우에게, 이것은 단순한 이능이 아니었다. 신이 내린 면죄부이자 구원의 동선이었다.
"하하……."
건조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전율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온몸을 지배했다.
이 장부만 있다면 다치지 않는다.
다시는 무릎이 으스러지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링크를 떠나지 않아도 된다. 완벽하게 보존된 신체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무결점의 스케이팅을 완성해 최고 존엄의 무대인 NHL의 은반을 지배할 수 있다.
그때였다.
팍-!
"아이고, 우리 은우 새끼! 거울 깨지겠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보고 있어?"
우람하고 묵직한 손바닥이 은우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체중이 실린 타격에 은우의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본능적으로 턱을 굳히며 몸싸움을 회피하려는 방어 기제가 꿈틀댔다. 뒤를 돌아보자, 땀 냄새를 풍기며 씨익 웃고 있는 거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민지후.
송원고의 우직한 수비수이자, 은우의 가장 친했던 동기. 훗날 무리한 바디체크와 부상 방치로 인해 대학 진학조차 실패하고 하키계를 떠나 병석을 전전하던 녀석이었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지후는 이빨이 부러져도 가슴을 내밀며 퍽을 막아내던 그 시절의 미련하고 듬직한 불나방 그대로였다.
"민…… 지후."
"왜 그래? 이름은 왜 그렇게 애틋하게 불러? 징그럽게 씨발. 기합 좀 넣어라. 오늘 한성고 놈들 연습 경기 온다고 아주 기가 살아서 돌아다니더라."
지후가 은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락커에서 자신의 낡은 스틱을 꺼내 들었다. 스틱 끝에 감긴 테이프가 다 헤어져 실밥이 터져 나와 있었다. 가난하고 몰락한 송원고의 현실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장비였다.
그 순간, 은우의 시야에 변화가 일어났다. 지후의 머리 위로 흐릿한 반투명 창이 하나 더 떠오른 것이다.
[동기화 대기 대상: 민지후 (DF)] - 좌측 어깨 마모도: 45% (주의) - 요추 피로도: 62% (경고) - 싱크로율: 0% (비활성화)
'동료의 마모도까지 읽을 수 있다고?'
은우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자신의 무릎뿐만이 아니었다. 장부는 동료들의 신체 상태와 관절 마모도까지 실시간으로 가시화하고 있었다. 저 미련한 녀석은 벌써 허리 피로도가 62%에 달해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넉살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지후야."
"엉? 왜?"
"너 허리 아프지."
지후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녀석은 흠칫 놀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 어? 아, 씨발. 티 나냐? 요새 좀 뻐근하긴 한데, 뭐 하키 선수가 허리 안 아픈 놈이 어딨냐? 파스 좀 붙이면 괜찮아."
"파스로 해결될 문제 아니야. 오늘 경기에서 무리하게 슬라이딩 블로킹하지 마. 특히 왼쪽 어깨로 들이받는 거 금지다."
은우의 목소리는 지극히 냉정하고 단호했다. 지후는 뚱한 표정으로 은우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뭔 개소리야, 새끼가. 우리가 몸 안 던지면 한성고 괴물 새끼들을 어떻게 막냐? 걔네 크래시 하키 장난 아닌 거 알잖아. 들이받아야 겨우 막을까 말까 한데."
"내가 막아."
은우가 거울 속 자신을 다시 한 번 응시했다. 은우의 눈빛에 서린 차가운 이성이 지후의 말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내가 다 뚫을 테니까, 너는 내 뒤만 지켜. 몸 대주고 뒹구는 미련한 짓은 오늘부로 끝이다."
"……너 오늘 좀 이상하다? 약 먹었냐?"
지후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은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은우는 벤치로 걸어가 낡은 스케이트를 집어 들었다. 가죽이 닳아 헤어진, 그러나 자신의 발에 딱 맞는 스케이트. 신발끈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그리고 단단히 죄어매기 시작했다.
서른 살의 패잔병 시절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지독한 갈망이 심장을 타고 들끓었다.
다시는 부상 때문에 울지 않는다.
다시는 동료들의 파멸을 방치하지 않는다.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게 계산된, 부상 확률 0%의 완벽한 스케이팅으로 이 빙판을 지배하리라. 세계 최고의 무대 NHL의 전설이 될 때까지, 단 한 걸음도 멈추지 않겠다.
지이익.
라커룸의 무거운 철문이 열리며 목동 아이스링크의 차가운 냉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은반 특유의 칼날 같은 한기가 살결을 스치자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가자."
은우가 스틱을 쥐고 문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스케이트 날이 차가운 은반의 가장자리에 닿는 바로 그 찰나.
잉-!
뇌리를 때리는 날카로운 경고음과 함께, 은우의 눈앞에 번쩍이는 붉은색 격자무늬 라인이 얼음판 위로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장부의 실시간 피드백이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경고: 한계 스텝(크로스오버 가속) 진입 시 우측 무릎 부상 확률 88%] [감지된 변수: 빙판 표면 마찰력 불균형 및 상대 수비 침투 각도 45도]
파멸적인 적색 가이드라인이 은우의 첫걸음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한기 속에서 은우는 멈추어 섰다.
허공에 뜬 88%라는 숫자가 기괴하게 일렁였다. 붉은 격자무늬는 목동 링크의 얼음 바닥을 붉은 핏빛으로 물들이며 은우의 오른쪽 무릎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이 벼락처럼 뇌리를 스쳤다. 회귀 전, 무릎 연골이 완전히 박살 나기 직전의 경기. 바로 이 각도, 이 궤적의 스케이팅이었다. 무리하게 아웃코너로 파고들며 체중을 실었던 순간, 쩍 하는 파열음과 함께 인생이 무너져 내렸었다.
몸이 본능적으로 굳어졌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은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두려움에 도망치는 대신, 눈앞의 장부 창을 노려보았다.
[마모 통제 시스템 연산 중…….] * 추천 진입 각도 변경: 외측 2.4도 편향. * 활주 스피드 15% 감속 후 순간 턴 권장.
머릿속 연산 장치가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은우는 첫발을 내딛는 순간, 오른쪽 발목을 미세하게 안쪽으로 비틀었다. 스케이트 날의 엣지가 얼음판을 깎아내는 각도를 소수점 단위로 미세하게 조율했다.
콰드득!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체중이 무릎이 아닌, 허벅지와 둔근 쪽으로 완벽하게 분산되는 감각이 직관적으로 전해졌다.
스르륵!
눈앞의 적색 가이드라인이 거짓말처럼 푸른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우측 무릎 부상 확률: 88% -> 34% -> 1.2%] [안전 가속 구역 진입 완료.]
"됐다."
은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발끝에서부터 밀려오는 마찰력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통증은커녕,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신체의 효율이 극대화되는 전율이 척추를 타고 짜릿하게 올라왔다.
슈우우욱!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은우의 신형이 빙판 위를 부드럽게 가로질렀다. 단 한 번의 스트라이드로 링크 절반을 가볍게 넘어섰다.
"어……? 저 새끼 스케이팅 폼이 왜 저러냐?"
먼저 링크에 들어와 웜업을 하던 한성고 선수들 사이에서 나직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평소의 투박하고 다소 뻣뻣했던 이은우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마치 은반 위를 활공하는 백조처럼, 극도로 부드러우면서도 무서운 속도감이 실려 있었다.
콰르르릉!
그때, 얼음을 거칠게 지치며 은우의 진로를 가로막는 그림자가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 사이로 오만한 눈빛을 빛내는 녀석. 한성고의 지략가이자 상대의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포워드, 윤성현이었다.
성현은 은우의 코앞에서 스케이트 날을 급격히 꺾었다.
솨아아악!
거친 얼음 가루가 폭풍처럼 일어 은우의 안면을 덮쳤다. 성현은 스틱을 한 손으로 건들거리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송원고 에이스라더니, 빙판 위에서 춤이라도 추는 거냐? 꼴에 폼은 잡네."
은우는 멈추지 않았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성현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은우의 검은 눈동자 위로, 성현의 머리 위에 뜬 장부의 실시간 데이터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대상: 윤성현 (FW)] - 좌측 발목 피로도: 41% - 약점: 아웃코너 에지 전환 시 왼쪽 가동 범위 2.5도 제한.
"비켜."
낮게 가라앉은 은우의 한마디에 성현의 미소가 굳어졌다.
"뭐?"
"날이 무뎠다, 윤성현. 왼쪽으로 돌 때 발목 꺾이는 각도가 헐거워. 그 무릎으로 바디체크 들어오다간 너부터 실려 나갈 거다."
은우는 성현을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그 짧은 찰나, 성현의 얼굴이 수치심과 경악으로 붉게 물들었다. 자신의 약점을, 그것도 링크 위에서 처음 마주한 몰락한 팀의 윙어가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진짜……!"
성현이 이를 갈며 돌아섰지만, 이미 은우는 저만치 멀어진 뒤였다.
"야, 이은우! 너 진짜 미쳤냐? 감히 한성고 윤성현한테 시비를 걸어?"
지후가 헐떡이며 은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얼굴이 흙빛이 되어 있었다.
"시비 건 거 아냐. 팩트를 말했을 뿐이지."
은우는 헬멧의 바이저를 내렸다. 시야가 좁아지며 집중력이 극한으로 끌어올려졌다.
삐이익-!
심판의 날카로운 휘슬 소리가 목동 링크의 한기를 찢었다. 양 팀 선수들이 센터 서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친선 연습 경기라고는 하지만, 공기 중에는 팽팽한 살기가 감돌았다.
은우는 라이트 윙 포지션에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에는 잔뜩 독이 오른 윤성현이 이빨을 드러내며 은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심판이 퍽을 쥔 손을 들어 올렸다.
두근. 두근. 두근.
은우의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온몸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롭게 벼려졌다.
[페이스오프 진입.] [신체 부하 예측 시스템 가동…… 연산 제어 100% 돌입.]
'다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긴다.'
은우가 스틱을 얼음판에 바짝 붙이며 자세를 낮추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머릿속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극통이 이식되었다.
"크윽……!"
은우의 이가 맞부딪히며 턱이 덜덜 떨렸다. 몸은 멀쩡했다. 오른쪽 무릎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하지만 뇌 신경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과거의 끔찍했던 무릎 파열의 기억, 뼈와 살이 분리되던 그 잔혹한 물리적 감각이 뇌를 직접 난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고: 한계 이상의 뇌 신경 연산 감지!] [소유주의 과거 충돌 트라우마로 인한 신경계 과부하 발생!] [실시간 환상통(Phantom Pain) 피드백 개시!] [정신력 마모도: 18% 돌파!]
"하아, 하아……!"
시야가 붉게 번지며 흔들렸다. 푸른빛으로 빛나던 안전 가이드라인이 기괴한 붉은색 노이즈로 뒤덮이며 깨어져 나갔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가상의 고통 속에서, 심판의 손을 떠난 검은색 퍽이 얼음판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졌다.
툭.
빙판이 얼어붙었다. 관절이 굳어졌다.
환상통의 늪에 빠진 은우의 스케이트 날이 얼음판 위에 무겁게 묶여버린 바로 그 찰나, 한성고의 폭력적인 돌진이 은우의 정면을 향해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