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퍽이 빙판에 닿기도 전이었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마찰음과 함께 송원고의 센터 민지후가 빙판 위로 나뒹굴었다. 한성고의 거구 수비수가 퍽의 궤적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어깨를 낮추고 지후의 가슴팍을 그대로 들이받은 결과였다.

빙판 위에 쓰러진 지후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턱끈을 움켜쥐었다. 헬멧 사이로 붉은 선혈이 툭, 툭 떨어져 은반을 적셨다. 입술을 터뜨리면서도 비명을 참아내려는 지후의 이빨 사이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스포츠맨십 따위는 이미 안동포처럼 찢겨 나간 뒤였다.

한성고의 2피리어드 전술은 명백했다. 규칙의 회색지대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합법을 가장한 폭력. 즉, ‘킬 바디체크(Kill Body Check)’였다.

“지후야! 정신 차려!”

벤치에서 박한솔 감독이 메가폰을 쥔 손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과거 자신의 손으로 제자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그 끔찍한 죄책감의 망령이 다시금 목덜미를 움켜쥐는 듯했다.

은우는 차갑게 식어가는 빙판을 내려다보았다. 시야 전면에 푸른색과 붉은색의 입체 격자선이 가파르게 출렁이고 있었다.

`[동료 싱크로: 민지후 - 어깨 마모도 45% -> 59% 급증]` `[경고: 상대 팀의 물리적 충돌 빈도 240% 증가]`

한성고 놈들은 사냥감을 가두는 늑대 떼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퍽을 소유한 선수를 향해 두 명, 세 명이 동시에 스틱을 칼날처럼 세우고 돌진했다. 얇은 보호대 너머로 전해지는 충격이 송원고 선수들의 뼈마디를 흔들어 놓았다. 은반 위의 온도는 영하를 밑돌았지만, 링크 내부를 가득 채운 열기는 살을 태워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쫄았냐, 송원고 찌질이 새끼들아? 몸싸움도 못 하면서 무슨 하키를 하겠다고!”

한성고의 포워드가 이빨을 드러내며 비아냥거렸다. 그의 스틱 끝이 은우의 허벅지 안쪽을 찔러왔다. 심판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노린 비열한 잽이었다.

은우는 턱관절을 강하게 물었다. 본능적인 공포가 척수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과거 무릎이 완전히 파열되어 은반 위에서 비참하게 기어 나갔던 그 순간의 기억. 충돌에 대한 원초적인 트라우마가 뇌를 난도질했다.

동시에 우측 무릎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치밀어 올랐다.

`[플레이어 이은우 -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 12% (상시 적색 경고)]`

과거 혹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은우의 오른쪽 무릎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12%라는 수치는 낮아 보이지만, 한성고의 미친 무력 압박 속에서 단 한 번의 잘못된 회전이나 미세한 충격만 가해져도 순식간에 임계점을 돌파해 95%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었다. 무릎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환상통이 신경망을 타고 올라와 머릿속을 하얗게 태웠다.

이대로는 무너진다. 은우는 숨을 들이마셨다. 허파 깊숙이 차가운 공기가 박혔다.

‘기억해라.’

은우는 머릿속 장부의 데이터베이스 구석을 뒤졌다. 며칠 전, 송원고 트레이닝실 구석의 대형 먼지 더미 아래 방치되어 있던 기계가 떠올랐다. 서아린이 대학 연구용으로 가져다 두었던 ‘진동 파동 수치 치료기’.

그 기기가 뿜어내던 독특한 전기 자극 수치와 진동 주파수. 뇌 신경의 통증 신호를 차단하고 근육의 미세 경련을 억제하던 그 감각을 은우는 자신의 신경계에 그대로 대입하기 시작했다.

‘142헤르츠.’

뇌 주파수를 그 특정 진동에 동기화하듯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징웅거리는 가상의 진동이 척추를 타고 내려가 우측 무릎 관절 주변의 근육을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시스템 피드백: 142Hz 가상 자극 동기화 완료]` `[뇌 신경계 환상통 강제 억제 성공. 우측 무릎 마모도 12% 안정화]`

통증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눈앞의 시야가 극도로 선명해졌다. 빙판 위에 새겨진 수많은 스케이트 날 자국들이 입체적인 마찰 계수 데이터로 변환되어 은우의 시야에 박혔다.

“태훈아! 저 새끼 무릎만 노려! 한 번만 제대로 들이받으면 끝난다!”

한성고 벤치에서 윤성현 전력관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강태훈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태훈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승리를 확신하는 포식자의 여유였다. 그들은 은우가 충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은우는 충돌을 두려워하지만, 그 두려움을 완벽한 회피 연산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을.

퍽이 다시 움직였다. 한성고의 수비수 두 명이 은우를 가두기 위해 양옆에서 좁혀 들어왔다. 거대한 두 개의 벽이 시속 4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좁혀지는 형국이었다. 그대로 부딪치면 최소 갈비뼈 골절이었다.

관중석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잡았다, 이 새끼!”

수비수들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은우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은우의 장부가 미친 듯이 연산을 토해냈다.

`[좌측 수비수 진입 각도: 42도, 마찰 계수: 0.04]` `[우측 수비수 진입 각도: 38도, 마찰 계수: 0.03]` `[최적 회피 경로 연산 완료: 진행 방향 좌측 5센티미터 편향 낙하 회회]`

단 5센티미터.

그 미세한 틈새가 은우의 눈앞에 푸른색 선으로 선명하게 그어졌다.

은우는 스케이트 날의 아웃코너를 빙판에 깊숙이 박았다. 얼음 가루가 분수처럼 사방으로 뿜어졌다. 몸을 극단적으로 낮추며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각도로 상체를 눕혔다.

스치듯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

은우는 바람처럼 그들의 지옥 같은 포위망 사이를 빠져나갔다. 정확히 계산된 5센티미터의 궤적 안에서, 은우의 유니폼 깃만이 그들의 가슴팍을 스쳤을 뿐이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끄아악!”

은우를 뭉개버리기 위해 온 힘을 실어 돌진했던 한성고의 두 거구 수비수가 서로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뼈와 뼈가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링크 전체에 울려 퍼졌다. 헬멧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두 선수는 제어력을 잃고 빙판 위를 사정없이 굴렀다. 한 명은 목을 움켜쥐었고, 다른 한 명은 어깨를 부여잡은 채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완벽한 팀킬(Team Kill)이었다.

“와아아아아아!”

목동 링크를 가득 채운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이 은반을 진동시켰다.

“말도 안 돼! 저걸 저 사이로 빠져나간다고?!” “완전히 가지고 놀았잖아!”

은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흘러나온 퍽을 가볍게 낚아챘다. 그의 스틱 끝에서 퍽이 자석처럼 달라붙어 매끄럽게 굴러갔다.

한성고의 벤치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승리를 장담하던 윤성현 전력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손에 쥐어진 태블릿 PC 위로 송원고의 기묘한 동선이 그려지고 있었지만, 인간의 반사신경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궤적이었다.

삐이익!

심판의 휘슬이 울리며 라인 아웃으로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다.

송원고 선수들이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벤치로 복귀했다. 동료들의 얼굴에는 지독한 피로와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한성고의 잔혹한 육탄전에 몸도 마음도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그때, 박한솔 감독이 빙판 가림막을 강하게 두드렸다.

짝! 짝! 짝!

날카로운 손뼉 소리가 선수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 감독의 눈빛은 이전의 무기력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죄책감의 껍질을 깨고 나온, 진짜 지도자의 불꽃이 그 너머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고개 들어! 이 녀석들아!”

박 감독의 목소리가 라커룸과 벤치를 쟁쟁하게 울렸다.

“아픈 녀석은 하나도 없다! 저놈들이 아무리 몽둥이질을 하고 들이받아도, 우리는 부러지지 않아. 왜냐고? 우리에겐 이은우가 있으니까!”

그는 은우의 어깨를 꽉 쥐었다. 뜨거운 온기가 두꺼운 장비 너머로 전해졌다.

“은우가 빙판 위에 그려주는 길만 봐라. 저 녀석이 가리키는 방향은 언제나 가장 안전하고, 가장 확실한 승리의 길이다. 은우의 가이드선만 믿고 달려! 알겠나!”

그 숭고한 믿음의 외침에 흔들리던 소년들의 눈빛이 하나둘씩 변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동공에 푸른 불꽃이 깃들었다.

`[싱크로율 상승: 송원고 전원 동기화 지수 85% 돌파]` `[동료들의 마모 분산 효율성이 150% 증폭됩니다]`

은우는 동료들의 눈빛에서 자신을 향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읽었다. 이기적인 생존 본능으로 시작했던 장부의 설계가, 이제는 팀 전체를 단단하게 묶는 보이지 않는 사슬이 되어 있었다.

“해볼게요, 감독님.”

민지후가 턱에 흐르는 피를 유니폼 소매로 슥 닦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은우야, 패스만 넣어줘. 몸빵은 내가 다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막아줄 테니까.”

은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 장부에는 이미 다음 플레이의 모든 경우의 수가 빛나는 경로로 그려지고 있었다.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고, 은반 위의 전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송원고는 더 이상 밀리지 않았다. 한성고가 들이받으려 하면, 은우의 정밀한 패스를 받은 동료들이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나 다른 공간을 선점했다. 은우가 연산한 최적의 마찰력 각도는 한성고의 무식한 힘을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였다.

그렇게 2피리어드의 치열한 공방전이 끝나갈 무렵.

전광판의 스코어는 3대 3. 동점이었다.

체력은 바닥을 드러냈고, 양 팀 선수들의 스케이트 날은 무뎌질 대로 무뎌졌다. 마지막 3피리어드를 앞둔 상황에서 승부의 저울추는 팽팽하게 수평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적을 깨고 마지막 피리어드의 시작을 알리는 버저가 울렸다.

은우가 다시 한번 빙판 위로 나섰다.

그때, 저편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가 은우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강태훈이었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다 못해 검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지배자의 자존심이 짓밟힌 맹수의 광기가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은우의 시야에 강태훈의 실시간 데이터가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점멸했다.

`[위험 대상: 강태훈 - 공격성 임계치 돌파]` `[약점 데이터 리마인드: 좌측 스케이트 날 아웃코너 2도 편차 존재]`

태훈의 미세한 약점이 은우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의 태훈은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오직 은우를 완벽하게 파멸시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움직이고 있었다.

강태훈이 스틱을 거꾸로 쥐듯 움켜잡으며 빙판을 박찼다.

콰과과광!

얼음 파편이 폭발적으로 사방으로 튀었다.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그의 시선은 오직 은우의 오른쪽 무릎, 그 단 한 곳만을 조준하고 있었다.

인간 missile이 되어 돌진하는 강태훈의 궤적이 은우의 장부에 붉은색 파멸의 경고음과 함께 길게 그려졌다.

피할 공간이 없었다. 은우의 등 뒤는 단단한 보드 벽이었다. 충돌하면 무릎뿐만 아니라 선수 생명 자체가 끝장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죽어라, 이은우!”

광기 어린 포효와 함께, 강태훈이 은우를 향해 폭발적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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