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퍽!

얼음바닥에 내리꽂힌 검은색 우레탄 블록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얼음가루를 뚫고 튕겨 올랐다.

시작과 동시에 퍽을 선점하려는 한성고 센터의 스틱이 은반을 사납게 긁었다. 콰앙! 강태훈의 육중한 어깨가 은우의 시야를 가로막으며 밀고 들어왔다. 무지막지한 질량의 압박. 과거의 은우였다면 본능적으로 턱을 굳히고 스케이트 날을 뒤로 꺾어 충돌을 피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스으윽!

은우는 무리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대신, 스케이트 에지의 인코너를 미세하게 비틀어 뒤쪽으로 미끄러졌다. 얼음과의 마찰력을 최소화하는 극상의 슬라이딩. 강태훈의 거구는 은우의 유니폼 깃만 간신히 스친 채 허공을 갈랐다.

`[피지컬 상태 장부 동기화 프로토콜 가동]` `[대상: 송원고등학교 하키부 주전 5인]` `[연산 오버헤드 발생: 실시간 뇌 신경 부하율 42%]`

은우의 시야 사방으로 반투명한 푸른색 스펙트럼이 펼쳐졌다. 동료들의 머리 위에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관절 피로도와 근육 마모 상태가 숫자로 명시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붉게 타오르는 것은 은우 자신의 오른쪽 무릎이었다.

`[이은우 -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 12% (상시 적색 경고)]` `[※ 현재 상태: 95% 임계치 돌파 후 긴급 안정화 단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수치였다. 준결승전에서 한계 돌파를 감행하며 95%라는 파멸적인 마모도에 도달했던 무릎이었다. 당장 인대가 뜯겨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시한폭탄.

하지만 그 아래로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명멸하고 있었다.

`[잔존 효과: 진동 파동 수치 치료기(142Hz) 전기 자극 제어 활성화 중]` `[신경 피로도 억제율: 78%]`

어젯밤의 기억이 은우의 머릿속을 스쳤다.

송원고 트레이닝실 구석, 먼지 더미 아래 방치되어 있던 서아린의 대학 연구용 기기. 은우가 유심히 관찰해 두었던 그 장비를 아린은 밤새도록 만져 기어이 작동시켰다. 뇌 신경이 환상통으로 타들어 가던 은우의 귓가에 울리던 웅웅거리는 주파수 소리. 142Hz의 독특한 전기 자극이 은우의 척수 신경을 타고 올라와 통증의 전달 경로를 완벽하게 차단해 주었기에, 지금 은우는 이 은반 위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가자, 지후야!”

은우가 빙판을 박차며 외쳤다.

퍽은 이미 한성고의 윙어가 잡아 송원고의 블루라인을 넘보고 있었다. 붉은색 유니폼의 물결이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한성고 특유의 ‘크래시 하키’가 시작되는 신호였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송원고 선수들의 몸을 짓부수고 기세를 꺾어놓는 것.

그 선봉에 선 한성고의 헤비급 디펜스 김창혁이 송원고의 불나방, 민지후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했다.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거구가 얼음을 지치며 일으키는 바람이 매서웠다.

보통의 고교 선수라면 그 위압감에 얼어붙어 퍽을 흘렸을 터였다. 지후의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어지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은우의 날카로운 음성이 지후의 귓전을 때렸다.

“지후야! 우측 30도! 뒤꿈치 하중 빼고 스케이트 에지 아웃코너로 흘려!”

`[민지후 - 현재 무릎 관절 평점: B+]` `[최적 회피 각도 계산 완료: 32.5도]` `[마찰 지체 부담률: 0%]`

지후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은우가 가리킨 방향, 은우가 지시한 스텝만을 머릿속에 그렸다.

“은우 너만 믿는다! 가자아아!”

지후가 기합 소리와 함께 몸을 비틀었다.

스으으윽!

김창혁의 어깨가 지후의 가슴팍을 들이받기 직전, 지후의 스케이트 날이 빙판을 미끄러지듯 매끄러운 궤적을 그렸다. 마치 기름을 바른 것처럼, 지후의 몸이 김창혁의 돌진 경로를 스치듯 비껴갔다.

콰아앙!

김창혁은 지후를 맞추지 못하고 그대로 보드 벽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쿵 하는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펜스가 심하게 흔들렸다. 김창혁의 헬멧이 삐뚤어지며 그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반면 지후는 단 1%의 유효 충격도 받지 않은 채 가볍게 얼음 위를 돌아서고 있었다.

“어……? 안 아파?”

지후가 자신의 어깨와 무릎을 번쩍 들어 올리며 눈을 크게 떴다. 매번 한성고와 부딪칠 때마다 뼈가 으스러지는 통증을 겪었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저항도, 충격도 느껴지지 않았다.

은우의 시야에 지후의 수치가 업데이트되었다.

`[민지후 - 무릎 관절 마모도 상승률: 0.1%]` `[충격 흡수율: 100%]`

완벽했다.

은우는 동료들의 피지컬 상태를 실시간으로 조립하는 정밀한 엔지니어였다. 동료들의 무릎과 발목을 유압 오일 장치처럼 조절 조작하는 은우의 지휘 아래, 송원고는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현 형, 뒤쪽 패스 경로 차단! 명우는 내 뒤로 붙어!”

은우의 목소리가 목동 링크의 한기를 뚫고 울려 퍼졌다.

송원고 선수들은 은우가 열어주는 가장 안전하고 마모도가 낮은 루트로만 스케이트를 지쳤다.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한성고의 무자비한 바디체크는 매번 허공을 가르거나, 송원고 선수들의 완벽한 각도 분산에 막혀 충격력을 잃었다.

스틱과 스틱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뭐야, 저 새끼들 원래 저렇게 잘 피했어?” “왜 몸싸움이 한 번도 제대로 안 들어가는 건데!”

한성고 선수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돈과 대기업의 후원으로 다듬어진 최고급 장비와 괴물 같은 피지컬을 지닌 팀이었다. 반면 송원고는 예비 장비조차 부족해 테이핑으로 연명하는 언더독에 불과했다. 상식적으로는 1피리어드 시작 5분 만에 송원고의 수비 라인이 무너지고 점수 차가 벌어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전광판의 스코어는 0대 0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1피리어드 15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한성고의 파상공세는 송원고의 철통 같은 수비 벽에 막혀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다. 힘의 마찰 지체 부담률 0%를 유지하는 은우의 정밀 설계 하키가 한성고의 ‘도살장’ 전술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대박이다…… 진짜 몸싸움을 다 흘려내고 있어!” “송원고 수비 라인 미친 거 아냐? 한성고가 한 골도 못 넣다니!”

관중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한성고의 압승을 예상했던 관중들의 얼굴에 경악과 흥분이 교차했다.

빙판 위의 설계자, 이은우.

그는 무리하게 퍽을 몰고 나가지 않았다. 자신이 충돌할 위험이 있는 구역은 철저히 배제했다. 대신 가장 신체 상태가 온전하고 가속도가 붙은 동료에게 자로 잰 듯한 패스를 연결했다.

틱. 틱. 퍽!

가장 효율적인 궤적으로 움직이는 검은색 퍽이 송원고 선수들의 스틱 사이를 자석처럼 넘나들었다. 한성고 선수들은 퍽의 궤적을 쫓아 이리저리 뛰다가 제풀에 지쳐 근육 마모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다.

삑-!

주심의 호루라기 소리가 목동 링크에 울려 퍼졌다.

1피리어드 종료를 알리는 부저음이었다.

전광판의 붉은 디지털 숫자는 여전히 [0 : 0]을 가리키고 있었다.

관중석에서 폭발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기업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는 고교 최강 한성고를 상대로, 몰락해가던 송원고가 완벽한 대등함을 넘어 경기의 템포를 지배한 채 1피리어드를 마무리한 것이다.

“말도 안 돼…… 우리가 한성고를 상대로 무실점으로 막았어.”

민지후가 벤치로 돌아오며 헬멧을 벗어 던졌다.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다른 동료들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서로의 어깨를 치며 환호했다.

“은우야, 진짜 네가 가라는 대로만 가니까 몸싸움이 하나도 안 힘들어!” “맞아, 원래 이쯤 되면 무릎이 시려야 하는데 멀쩡하다니까?”

동료들의 활기찬 목소리를 들으며 은우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 뜬 마모도 수치는 여전히 안전 대역인 초록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료들을 방패이자 창으로 삼아 자신의 무릎을 보존하고, 동시에 팀 전체의 부상율을 완벽히 통제하는 ‘오너십 하키’. 그 설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은우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시선을 돌려 한성고의 벤치를 바라보았다.

그곳의 분위기는 송원고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한성고의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선수들은 고개를 숙인 채 거친 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들의 오만하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당혹감과 짜증만이 락커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특히 강태훈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태훈은 스틱을 바닥에 거칠게 내리치며 신경질적으로 헬멧을 고쳐 썼다. 어젯밤 은우의 트라우마를 자극해 무너뜨렸다고 확신했건만, 오늘 은우가 보여준 플레이는 그야말로 괴물 같았다. 자신들의 무자비한 물리적 압박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빠져나가는 그 움직임에 자존심이 갈갈이 찢겨 나갔다.

한성고 감독이 태훈을 비롯한 주전 라인을 거칠게 불러 모았다.

“이게 지금 뭐 하자는 플레이야! 저딴 잡초 같은 놈들한테 1피리어드 내내 끌려다녀?”

감독의 목소리에 서슬 퍼런 살기가 담겨 있었다.

“상대가 몸싸움을 피하면, 피하지 못하게 가두고 들이받아! 규칙의 테두리 따위는 신경 쓰지 마라. 심판 눈 피해서 무릎이든 어깨든 하나 작살을 내놓으란 말이다!”

감독의 잔인한 지시가 떨어졌다. 더 이상 정상적인 하키로는 송원고의 기묘한 회피 전술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태훈아, 네가 중심을 잡아. 2피리어드부터는 전원 ‘킬 바디체크(Kill Body Check)’로 간다. 저놈들의 뼈를 으스러뜨려 놓아라. 빙판 위에서 걸어 나가지 못하게 만들어.”

“……알겠습니다.”

강태훈이 이빨을 갈며 대답했다. 그의 눈동자에 가학적인 포식자의 광기가 서서히 차올랐다.

은우는 저편 벤치에서 흘러나오는 심상치 않은 아우라를 감지했다.

동시에 자신의 장부 시스템을 통해 강태훈의 실시간 신체 데이터를 다시 한번 정밀 스캔했다.

`[경고: 적대 대상 강태훈의 공격 성향 수치 급증 중]` `[약점 데이터 리마인드: 강태훈 - 좌측 스케이트 날 아웃코너 2도 편차 존재]`

은우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과거 5화에서 수집해 두었던 강태훈의 치명적인 설계 결함이었다. 왼쪽 외측 인대에 가해지는 부하를 제어하지 못하는 그 2도의 미세한 틈새.

그리고 은우의 뇌리 속 장부 데이터베이스 구석에는 또 하나의 카드가 잠자고 있었다.

`[송원고등학교 하키부 인수 제안서 사본 데이터 보존 중]`

대기업 스포츠 재단이 송원고를 헐값에 인수하려 쓰레기통에 처박아 두었던 비열한 음모의 흔적. 한성고의 배후가 자신들의 판을 짜기 위해 준비했던 그 문서를, 은우는 머릿속 장부에 고스란히 저장해 두고 있었다.

빙판 위에서의 완전한 파멸, 그리고 빙판 밖에서의 완벽한 역습.

은우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두꺼운 빙판의 냉기가 다시 한번 스케이트 날을 타고 올라왔다. 정적을 깨고 2피리어드의 시작을 알리는 경보음이 목동 링크에 울려 퍼졌다.

강태훈이 어둠보다 짙은 살기를 뿜어내며 은반 위로 들어섰다.

그의 눈빛은 이미 스포츠맨의 그것이 아니었다. 상대를 완전히 짓밟아 불구로 만들겠다는 도살자의 눈빛이었다.

은우는 그런 태훈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천천히 스틱을 쥐었다.

과연 은우는 한성고의 잔혹한 ‘킬 바디체크’ 전술 속에서 자신의 무릎과 동료들을 완벽하게 지켜내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인가.

운명의 2피리어드가 막을 올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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