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억!
빙판을 짓이기는 에지 소리가 목동 아이스링크의 천장을 찢어발겼다.
피할 곳은 없었다. 은우의 등 뒤는 3인치 두께의 단단한 강화 플라스틱 보드 벽이었다. 그 정면에서 시속 4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강태훈이 돌진하고 있었다.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턱을 당긴 채, 오직 은우의 오른쪽 무릎만을 겨냥한 살인적인 바디체크 궤적.
관중석에서 비명에 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은우! 피해야 돼!”
벤치에 있던 박한솔 감독이 메가폰을 쥔 손을 바르르 떨었다.
하지만 은우의 눈동자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폭풍의 한가운데에 선 것처럼, 그의 시야 속 세상이 미세하게 느려졌다. 심장 박동 소리가 고막을 쿵, 쿵, 두드리는 사이로 반투명한 푸른색 스크린이 허공에 펼쳐졌다.
스르륵.
`[보유 골든핑거: 피지컬 상태 장부 활성화]` `[사용자: 이은우]`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 상시 12% (적색 경고)]` `※ 주의: 과거 혹사 누적으로 인한 시한폭탄 상태. 충격 감쇄 실패 시 마모도 폭발적 증가 및 영구 손상 가능성 존재.`
지독한 경고 문구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18세의 육체로 회귀했음에도 지워지지 않은 유일한 낙인. 이 12%의 균열은 은우의 뇌리에 각인된 충돌 공포증의 근원이자, 동시에 그가 빙판 위에서 가장 정밀한 계산을 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은우는 도망치지 않았다. 스케이트 날을 얼음에 박아 넣으며 장부의 데이터를 일순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정밀 연산 레이어 기동]` `[대상: 강태훈 - 질량 92kg, 속도 11.2m/s]` `[관성 벡터 분석 중…… 98% 완료]` `[약점 데이터 리마인드: 좌측 스케이트 날 아웃코너 2도 편차 존재]`
태훈의 거대한 몸뚱이가 삼차원 입체 와이어프레임으로 변환되어 은우의 머릿속에 중첩되었다. 그의 무게 중심이 오른쪽 어깨로 쏠려 있는 것이 보였다. 왼쪽 발목이 미세하게 바깥으로 꺾여 나가는 2도의 오차. 그 사소한 틈새가 은우에게는 태평양처럼 넓은 탈출구로 보였다.
쾅!
그 찰나의 순간, 은우의 시야 측면에서 거대한 적색 경보가 하나 더 끼어들었다.
“비켜, 이 새끼야!”
민지후였다.
턱 끝에서 흘러내린 핏방울이 유니폼 깃을 붉게 적신 채, 지후가 얼음판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는 은우와 강태훈 사이의 궤적을 향해 자신의 몸뚱이를 통째로 던졌다.
콰아아앙!
빙판 위에서 쇠붙이와 쇠붙이가 부딪치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이 일었다. 지후의 어깨가 강태훈의 가슴팍을 사선으로 들이받았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기습 장벽.
“끄아악!”
지후가 비명을 지르며 얼음 위로 나뒹굴었다. 헬멧이 보드 벽에 부딪치며 깡! 하는 날카로운 금속음을 냈다.
하지만 그의 육탄 방어는 헛되지 않았다. 92킬로그램의 괴물 같던 강태훈의 돌진 속도가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궤적이 흐트러졌다. 장부 위의 가속 벡터가 15% 감속을 가리켰다.
지후는 쓰러진 채로도 은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려 터진 상태에서도 그의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은우야, 가라.’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다.
이기적인 하키만을 고집하던 과거의 이은우였다면 지후를 그저 쓸 만한 방패로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온몸이 부서져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날아간 동료의 투혼. 그것은 은우의 차가운 머릿속에 ‘팀’이라는 두 글자를 강제로 새겨 넣었다.
미안함과 동시에 전율 어린 동료애가 은우의 전신을 관통했다.
‘고맙다, 지후야. 헛되게 안 만든다.’
은우의 다리에 힘이 실렸다.
어제 경기 직후, 환상통으로 타들어 가던 무릎을 진정시켜 준 서아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트레이닝실 구석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가져온 ‘진동 파동 수치 치료기’. 142Hz의 독특한 전기 자극이 무릎의 미세 신경을 완벽하게 재정렬해 주었던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했다. 덕분에 지금 은우의 무릎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슈우욱!
은우는 상체를 가볍게 오른쪽으로 트는 척하다가, 왼쪽으로 급격하게 축을 이동시켰다.
강태훈의 진짜 약점인 ‘좌측 스케이트 날 아웃코너 2도 편차’를 공략하는 완벽한 역학적 회피였다. 강태훈이 은우의 페인팅에 반응해 왼쪽 발에 힘을 싣는 순간, 미세하게 휘어진 그의 아웃코너 날이 얼음을 제대로 움켜쥐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어……?”
강태훈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은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강태훈의 왼쪽 어깨 너머로 스치듯 파고들었다. 강태훈의 거대한 폭발력을 부드러운 원형의 유도각으로 수립하여 흘려보내는 스케이팅.
회오리바람을 스쳐 지나가는 한 조각 낙엽처럼, 은우의 몸이 우아하게 회전했다.
스으으윽.
마치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듯한 마찰력 제로의 궤적. 강태훈의 무지막지한 돌진력은 은우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고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쾅! 콰과광!
자신의 관성을 제어하지 못한 강태훈이 그대로 강화 플라스틱 보드 벽에 정면으로 처박혔다. 목동 링크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충격이었다.
“와아아아아!”
“이은우! 미친 회피!”
관중석이 떠나가라 함성이 터졌다.
한성고의 무패 괴수, 학원 하키의 절대 포식자라 불리던 강태훈이 단 한 번의 몸싸움도 걸어보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해 보드 벽에 처박힌 꼴이었다. 은우는 그 와중에도 부드럽게 턴을 하며 퍽을 스틱 끝으로 낚아챘다.
마치 성난 황소를 붉은 천 하나로 농락하는 투우사의 몸짓이었다.
빙판 위에 홀로 우뚝 선 은우의 주위로 푸른색 안전 구역 레이저가 선명하게 깔렸다. 물리적 힘의 한계를 지능과 역학으로 완벽하게 파쇄한 순간이었다.
은우는 보드 벽에 처박혀 헐떡이는 강태훈을 내려다보았다.
태훈의 헬멧 틈새로 침과 땀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그의 눈은 분노를 넘어선 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아직 멀었다, 강태훈.’
은우는 머릿속 장부 한구석에 저장된 또 다른 데이터 사본을 떠올렸다. 송원고 감독실 쓰레기통에서 발견했던 대기업 스포츠 재단의 인수 제안서. 한성고의 배후 세력이 송원고를 헐값에 삼키려 했던 비열한 음모.
이 경기에서 완벽하게 승리하는 것만이 그들의 오만을 짓밟고 송원고의 가치를 세상에서 가장 비싼 곳으로 끌어올릴 유일한 방법이었다.
삐이익-!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지후의 부상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일시 중단이었다.
서아린이 구급 상자를 들고 링크 안으로 신속하게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지후의 상태를 살피는 와중에도 눈가를 찌푸린 채 은우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은우, 무릎은? 통증 수치 어때?”
그녀의 손에 들린 심박계와 체온계가 은우를 향했다. 은우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어제 그 치료기 덕분에 아주 멀쩡해.”
아린의 눈동자가 안도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신뢰감이 차가운 빙판 위의 긴장을 잠시 녹여주었다.
다행히 지후는 큰 부상이 아니었다. 턱의 상처가 조금 벌어졌을 뿐,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지후는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헬멧 끈을 다시 조여 맸다.
“나 뛸 수 있어요. 은우가 길 다 열어줬는데, 여기서 빠지면 사내자식이 아니지.”
지후의 고집에 박한솔 감독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페이스오프 라인으로 모여드는 선수들.
전광판의 시간은 이제 단 3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스코어는 여전히 3대 3.
빙판의 중앙, 페이스오프 서클에 은우와 강태훈이 다시 마주 섰다.
강태훈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콧등에서 흘러내린 피가 입술을 타고 흘렀고, 호흡은 거칠다 못해 짐승의 그르렁거림에 가까웠다. 그의 왼쪽 스케이트를 지탱하는 발목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서서히 퍽을 든 심판이 다가왔다.
태훈이 은우를 노려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가죽 장갑을 낀 스틱을 거칠게 쥔 손가락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너, 오늘 내 손에 죽는다. 은퇴가 아니라 아예 못 걷게 만들어 줄 테니까.”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광기 어린 살육의 의지가 가득했다.
은우는 대답 대신 장부의 상태창을 다시 띄웠다.
`[경고: 상대 선수 강태훈의 부상 유도 확률 95% 돌파]` `[예상 시나리오: 다음 퍽 쟁탈 시 하체 조준 슬라이딩 가능성 극도로 높음]`
태훈은 이미 하키의 규칙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은우의 오른쪽 무릎을 부셔버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눈이 뒤집혀 있었다.
툭.
심판의 손에서 퍽이 빙판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두 대의 기관차가 충돌하듯, 두 사람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태훈이 퍽을 향해 손을 뻗는 대신, 자신의 스케이트 날을 고의로 눕히며 은우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얼음 파편을 사방으로 뿜어내며, 날카롭게 날이 선 스케이트 코너가 은우의 오른쪽 무릎 관절을 향해 낫처럼 휘둘러졌다.
콰아아앙!
은우의 시야가 순식간에 붉은색 경고등으로 물들었다.
`[위험! 영구 부상 확률 99.8%!]` `[회피 경로 탐색 실패!]`
태훈의 미친 살육 슬라이딩이 은우의 다리를 덮치기 직전, 은우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피할 수 없다면, 밟고 넘는다.
은우의 머릿속 슈퍼컴퓨터가 도출한 유일한 생존 경로였다.
은우는 오른발 에지를 빙판에 수직으로 박아 넣었다. 동시에 스틱 샤프트를 지탱점 삼아 얼음판을 강하게 밀어냈다. 지렛대의 원리. 자신의 체중과 강태훈이 밀고 들어오는 관성의 법칙을 역으로 이용한 극단적인 공중 도약이었다.
`[시스템: 수직 회피 궤적 강제 기동]` `[경고: 착지 시 우측 무릎 관절에 가해지는 하중 임계치 초과]` `[마모도 급증 예측: 12% → 95% (한계 한계 돌파)]` `[뇌 신경계 환상통 피드백: 최고 단계(MAX) 발령!]`
‘상관없어. 뛰어!’
은우가 빙판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슈우욱!
찰나의 순간, 은우의 스케이트 날 바로 밑으로 강태훈의 살기 어린 스틸 블레이드가 스치고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였다. 0.1초만 늦었어도 은우의 오른쪽 정강이뼈는 그 자리에서 두 동강이 났을 터였다.
관중석에서 단체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링크 안의 한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허공을 가른 은우의 몸이 빙판을 향해 떨어졌다. 오직 오른발 하나로 착지의 충격을 받아내야 하는 가혹한 물리적 현실.
쿵!
“윽……!”
얼음판을 디디는 순간, 은우의 척추를 타고 차가운 불꽃이 튀었다.
그것은 뇌가 만들어 낸 지독한 환각이었다. 과거 무릎 인대가 끊어지며 뼈와 뼈가 부딪치던 그 끔찍한 파열음이 귓가에 환청으로 들렸다. 달궈진 쇠창살로 무릎 관절을 사정없이 쑤셔 박는 듯한 극심한 환상통.
시야가 일순간 백색으로 점멸했다.
턱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입안에서 비린 피 맛이 확 퍼졌다. 어제 서아린이 진동 치료기로 미세 신경을 정렬해 두지 않았다면, 이 엄청난 충격 속에서 신경계가 먼저 쇼크로 기절했을 터였다.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 95% (임계 구역 진입)]` `[경고: 추가 충격 발생 시 영구적 기능 상실 확률 99%]`
심장이 터질 것처럼 무섭게 뛰었지만, 은우는 쓰러지지 않았다. 장부가 가리키는 5%의 실낱같은 안전 마진을 붙잡고 균형을 유지했다.
반면, 은우의 다리를 부수기 위해 바닥을 기었던 강태훈의 말로는 참혹했다.
고의로 스케이트 날을 눕혀 슬라이딩을 감행한 탓에, 그의 고질적인 약점인 ‘좌측 아웃코너 2도 편차’가 최악의 방향으로 작용했다. 얼음의 저항을 이기지 못한 그의 왼쪽 발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미끄러졌다.
콰드득!
“크아아아악!”
강태훈이 비명을 지르며 골대를 향해 사정없이 처박혔다. 90 킬로그램이 넘는 거구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철제 골대 기둥을 들이받았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골대가 통째로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퍽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강태훈의 스틱에서 흘러나온 검은색 고무 원판이 은우의 스케이트 날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은우의 시야에 실시간 패스 경로가 푸른색 선으로 번뜩였다.
`[동료 싱크로율: 민지후 92%]` `[패스 성공 확률: 97.4%]`
골대 우측 포스트로 무섭게 쇄도하는 민지후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의 어깨 마모도는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지만, 심장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뛰고 있었다.
은우는 통증으로 감각이 마비된 오른발을 억지로 버티며, 왼손 스틱을 가볍게 꺾었다.
툭.
자로 잰 듯한 백핸드 패스가 한성고 수비수 두 명의 가랑이 사이를 관통했다. 얼음판 위를 미끄러진 퍽이 정확하게 민지후의 스틱 블레이드에 얹혔다.
“지후야! 때려!”
은우의 외침과 동시에 민지후가 이를 악물고 슬랩샷을 날렸다.
퍽!
한성고 골키퍼의 겨드랑이 사이를 뚫고 들어간 퍽이 골망 그물을 강하게 흔들었다.
적색 램프가 목동 링크의 천장을 붉게 물들였다.
3피리어드 종료 2분 15초를 남겨둔 상황.
스코어 4대 3.
송원고의 역전이었다.
“골!!! 골인입니다! 송원고등학교, 기적 같은 역전 골을 성공시킵니다!”
중계석의 캐스터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관중석은 이미 떠나갈 듯한 함성과 환호로 뒤덮였다. 송원고 벤치의 선수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빙판 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허억, 허억…….”
골대 기둥에 처박혀 있던 강태훈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왼쪽 발목은 이미 정상적인 스케이팅이 불가능할 정도로 꺾여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성을 완전히 잃은 괴물의 그것이었다.
자존심이 짓밟힌 맹수의 마지막 발악.
“이은우…… 네까짓 게 감히 나를……!”
강태훈이 절뚝거리며 은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손에 들린 하키 스틱이 얼음바닥을 거칠게 긁으며 쇠붙이 소리를 냈다. 심판들이 급히 그를 제지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태훈은 거칠게 그들을 뿌리쳤다.
은우의 장부에 다시 한번 붉은색 경고가 휘몰아쳤다.
`[위험: 대상의 비이성적 폭력 행위 감지]` `[우측 무릎 마모도 95% 상태 - 추가 충격 시 파열 확실]`
경기 시간은 단 2분.
한 골 차의 리드.
그리고 눈이 뒤집힌 한성고의 포식자가 마지막 사투를 청해오고 있었다. 은우는 떨리는 무릎을 고정하며 스틱을 고쳐 잡았다. 이 마지막 2분을 견뎌내야만, 무결점의 왕좌와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강태훈이 스틱을 치켜들며 은우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