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퍼억! 골망이 찢어질 듯이 출렁였다.

적막 수평선을 깨부수는 적색 경보음과 함께, 목동 링크를 가득 채운 전광판의 숫자가 정지했다.

3대 2.

송원고등학교의 역전승. 준결승 종료를 알리는 부저음이 빙판 위를 날카롭게 가르며 쏟아졌다.

“와아아아아!”

관람석이 통째로 뒤흔들리는 듯한 함성이 쏟아졌다. 믿을 수 없는 역전극이었다. 한성고의 그 무시무시한 크래시 하키를 뚫고, 송원고가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는 순간이었다.

관람석 저 높은 곳, 한성고의 지략가 윤성현이 들고 있던 분석용 태블릿이 시멘트 바닥으로 툭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화면 속에서 붉게 깜빡이던 ‘이은우 저지 대책’이라는 글자가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단 한 번의 물리적 충돌도 허용하지 않은 채, 완벽한 공간 계산만으로 한성고의 수비 라인을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린 이은우의 기하학적 패스. 그것은 윤성현의 뇌 용량을 초과한 신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은우는 승리의 기쁨에 취하지 않았다.

스틱을 가볍게 털며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그의 턱밑으로는 이미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콰드득.

빙판 맞은편에서 강태훈이 천천히 얼음을 지치며 다가왔다. 그의 묵직한 스케이트 날이 빙판을 깊게 파고들며 내는 소리가 고막을 긁었다. 거대한 멧돼지 같은 풍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살기. 강태훈의 눈동자는 먹잇감을 놓친 포식자의 그것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 강태훈이 이은우의 귀청에 대고 낮게 읊조렸다.

“기어이 기어 올라오는구나, 쥐새끼가.”

이은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스틱을 쥔 손가락끝에 힘을 주어 고정했을 뿐이다. 본능적인 공포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으나, 이은우는 그보다 더 끔찍한 자극을 느끼고 있었다.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푸른빛의 ‘피지컬 상태 장부’가 눈앞에서 미친 듯이 점멸했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뇌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경고음이 귓전에서 폭발했다.

`[위험: 우측 무릎 관절 마모 누적도 급증]` `[현재 마모율: 95% (임계치 도달!)]` `[경고: 한계 돌파 시 영구적 인대 파열 및 연골 마멸 확률 99.8%]` `[시스템 제약: 초인적 회피 동작의 대가로 극심한 '환상통(Phantom Pain)'이 피드백됩니다.]`

‘으윽……!’

신물이 넘어왔다.

1화에서 처음 장부를 각성했을 때, 은우의 오른쪽 무릎 마모도는 상시 12%의 적색 경고 상태였다. 과거 혹사로 인해 뼈가 깎여 나갔던 원죄의 흔적. 그것을 미세 조정하며 간신히 버텨왔건만, 방금 전 한성고 수비진 두 명을 동시에 바보로 만들었던 0.1밀리초 단차의 회피 스케이팅이 무릎에 가한 부하는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무릎뼈가 잘게 쪼개져 관절 사이사이를 긁어대는 듯한 착각이 뇌를 지배했다.

실제 부상이 아니었다. 장부가 내리는 형벌이자, 한계를 넘은 플레이를 펼친 대가로 주어지는 환상통이었다. 하지만 통증의 강도는 진짜 뼈가 부러진 것보다 더 생생하게 신경망을 타격했다.

은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입술 틈새로 붉은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은우야! 우리가 이겼어! 진짜로 이겼다고!”

주장 민지후가 땀범벅이 된 얼굴로 달려와 은우의 어깨를 껴안으려 했다.

“오지 마.”

은우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극도의 통증 속에서 몸싸움 회피 본능이 극대화된 상태였다. 지후는 멈칫하며 뻗었던 팔을 어정쩡하게 내렸다. 은우의 눈빛이 평소와 달리 겉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먼저 들어간다.”

은우는 절뚝거리는 걸음을 필사적으로 숨기며 락커룸을 향해 걸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무릎에서 불덩이가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 95%.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정말로 다리가 부러져 나갈 것 같은 공포의 숫자다.

***

스산한 송원고 하키부 락커룸.

쾅!

은우는 문을 잠그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장비를 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오른편 스케이트 부츠를 움켜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눈앞이 번쩍거렸다. 시야 구석에 방치된 트레이닝실의 낡은 먼지 더미가 보였다. 그 아래에는 서아린이 대학 연구용으로 가져다 놓았던 ‘진동 파동 수치 치료기’가 쓸쓸하게 박혀 있었다. 일전에 그 기기에서 뿜어져 나오던 독특한 전기 자극 수치를 눈여겨보았던 기억이 스쳤지만, 지금은 그것을 가동할 여력조차 없었다.

철컥.

그때, 잠겨 있던 락커룸 보조문이 열리며 서아린이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실시간 심박계와 체온계가 들려 있었다.

“이은우!”

아린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은우의 상태는 처참했다. 유니폼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굳게 다문 입술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오른쪽 다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린은 서둘러 무릎을 꿇고 은우의 다리 상태를 살폈다. 휴대용 진단기를 갖다 대자, 계기판의 수치가 위험한 곡선을 그리며 치솟았다.

“너…… 이게 대체 무슨 수치야? 근육 피로도랑 신경 자극 전도율이 일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어. 뇌에서 통증 신호를 보내는 강도가 거의 사지 타버리는 수준이라고!”

아린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그녀의 깐깐하고 논리적이던 눈동자에 물기가 차올랐다.

“이대로 결승에 가면 네 선수 생명은 끝이야! 아니, 평생 지팡이 짚고 걸어야 할지도 몰라! 한성고 녀석들이 결승에서 널 그냥 둘 것 같아? 강태훈은 빙판 위에서 사람을 담그는 놈이야!”

아린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려 은우의 무릎 보호대 위로 툭, 떨어졌다.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과학적 트레이닝 시스템을 구축해 송원고 선수들이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그녀의 신념이, 눈앞에서 스스로를 갉아먹는 천재의 모습 앞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은우는 고개를 들어 아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시릴 정도로 맑았다.

“끝 안 나.”

“고집 피우지 마! 이건 의학적으로 불가능해!”

“의학으로는 그렇겠지.”

은우는 아린의 손을 살며시 밀어내며 스스로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95%의 마모도.

지독한 트라우마가 머릿속에서 과거 은퇴 직전의 휠체어를 보여주며 속삭였다. *여기서 멈춰라. 또 다치고 싶으냐? 너는 어차피 도망쳐야 하는 겁쟁이다.*

하지만 은우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과거의 은우라면 도망쳤을 것이다. 충돌이 두려워 빙판 구석으로 숨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에게는 30년의 전술 지식과, 이 빙판의 모든 법칙을 지배하는 장부가 있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줄 동료들이 있었다.

‘내가 다칠 확률이 95%라면.’

은우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 위험을 분산시키면 돼.’

은우는 장부의 심부 메뉴를 활성화했다.

`[동료 싱크로 및 마모도 분산 법칙 가동]` `[현재 동기화 가능 인원: 4명]` `[설정: 플레이어 이은우의 운동 부하 및 충돌 충격 에너지 분산 전송]`

은우는 락커룸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승리의 기쁨 속에서도 은우의 안색을 걱정하며 서성이던 민지후와 송원고 주전 멤버들이 서 있었다.

“은우야! 괜찮냐?”

지후가 걱정스레 물었다.

은우는 지후의 어깨를 짚었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오는 다른 세 명의 주전들의 어깨를 차례로 짚었다.

`[싱크로 대상 등록 완료]` `- DF 민지후 (관절 평점: A, 마모도: 34%)` `- FW 김우빈 (관절 평점: B+, 마모도: 28%)` `- DF 최태성 (관절 평점: A-, 마모도: 41%)` `- FW 박현수 (관절 평점: B, 마모도: 30%)`

`[연계 포메이션: 제로 링크(Zero-Link) 활성화]` `[효과: 리더 이은우에게 가해지는 운동 마찰 및 피로 부하의 100%를 동기화 대상 4인에게 각 25%씩 균등 분산 이송]`

지후와 팀원들의 몸이 순간적으로 흠칫 떨렸다.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은우의 장부가 설계한 기하학적 전술 망이 그들의 신체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이것은 이기적인 착취가 아니었다. 동료들의 마모도는 여전히 안전 범주 내에 있었다. 은우의 자로 잰 듯한 패스 경로와 스케이팅 각도를 그대로 수행하는 대가로, 그들은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빙판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방패이자 창이 되는 완벽한 오너십 하키의 완성.

“지후야.”

“어, 어?”

“내일 결승전 전술은 내가 짜온 대로만 움직여. 너희는 내 몸이 될 거고, 나는 너희의 눈이 될 거다.”

은우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지배력이 깃들어 있었다.

“우리가 다치는 일은 없어. 내일, 한성고의 그 무식한 크래시 하키를 단 한 번의 접촉도 없이 박살 낸다.”

민지후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은우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확신에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냐! 네가 가라면 지옥 끝까지라도 달린다!”

`[시스템 메시지]` `[동료 싱크로율 급상승: 88% -> 95%]` `[이은우의 실시간 무릎 마모도 분산 가동: 95% -> 20% (안전 영역 진입!)]`

머리를 짓누르던 환상통이 거짓말처럼 씻겨 내려갔다. 무릎을 조여오던 붉은 불길이 사그라지고, 시원하고 푸른빛의 에너지가 은우의 전신을 감쌌다.

완벽한 제어.

은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한성고가 아무리 거친 폭력으로 밀어붙인다 해도, 이 유기적인 기계 장치 같은 포메이션 앞에서는 허공을 가르는 헛손질에 불과할 터였다.

***

결승전 전날 밤.

대회가 치러지는 목동 링크 인근의 송원고 임시 숙소.

내일 있을 결승전 전술 노트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던 은우는 갈증을 느끼고 방 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가려던 그 순간, 문손잡이를 잡은 손끝에 기괴할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서렸다.

스으으으.

복도의 어스름한 불빛 사이로, 어둠보다 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은우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곳에, 큰 풍채의 사내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한성고의 주장, 강태훈이었다.

그의 두꺼운 패딩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짐승 같은 체취와 얼어붙은 빙판의 냄새가 복도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강태훈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 은우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깊은 심연처럼 어두웠고, 입가에는 기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강태훈의 발끝을 스쳐 지나가는 시선 속에서, 은우의 장부가 본능적으로 작동했다.

`[정밀 분석 대상: 강태훈]` `[특이 사항: 왼쪽 스케이트 날 아웃코너 장착 각도 미세 2도 휘어짐 (약점)]`

은우는 그 데이터를 조용히 뇌리에 새겨넣으며 표정을 굳혔다.

강태훈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은우의 몸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이은우.”

강태훈의 목소리가 복도의 시멘트 벽을 울리며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내일 빙판 위는 네가 알던 그런 놀이터가 아닐 거다.”

그가 은우의 어깨너머로 방 안을 슬쩍 훔쳐보더니, 이빨을 드러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진짜 도살장이 뭔지 보여줄게. 네 그 잘난 다리가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고.”

소름 끼치는 도발이 은우의 귓가를 때렸다. 결승전을 몇 시간 앞둔 밤, 포식자의 잔혹한 선전포고가 차가운 정적 속에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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