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은우야? 안에 있어?”

서아린의 목소리가 굳게 닫힌 트레이닝실 문 너머에서 울렸다.

문고리가 격렬하게 덜컥거렸다. 하지만 바닥에 쓰러진 이은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신음은 차가운 타일 바닥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양 무릎이 사정없이 떨렸다. 머릿속에서는 피지컬 상태 장부의 경고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대고 있었다.

`[경고: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 34% 유지 시, 다음 경기 출전 시 부상 확률 90% 돌파 예상]` `[신경계 피로도: 82%]` `[환상통 피드백 누적치: 임계값 도달]`

과거 은퇴의 순간을 장식했던 그 끔찍한 파열음이 환청이 되어 고막을 때렸다. 뼈마디가 통째로 으스러져 내리는 감각. 30세의 이은우가 겪어야 했던 그 절망적인 궤적이 지금 18세의 육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철컥.

비상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온 서아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문을 열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은우를 발견했다. 보통의 고등학생 매니저라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아린은 달랐다. 그녀는 들고 있던 태블릿을 바닥에 던져두고 은우에게 달려왔다.

“이은우! 정신 차려! 맥박이 너무 빨라.”

그녀의 손끝이 은우의 목덜미와 이마를 짚었다. 차갑고 이성적인 손길이었지만, 미세하게 떨림이 묻어났다. 은우는 필사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여 한구석을 가리켰다. 대형 먼지 더미 아래 방치되어 있던 기계. 서아린이 대학 연구실에서 가져왔던 ‘진동 파동 수치 치료기’였다.

“저…… 저거.”

“치료기? 하지만 이건 아직 주파수 세팅이 안 끝났어. 잘못 쓰면 신경이 마비될 수도…….”

“142.”

은우가 턱을 부르르 떨며 간신히 뱉어냈다.

“142Hz로…… 맞춰.”

서아린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먼지 더미를 단숨에 걷어내고 치료기 전원을 켰다. 투박한 기계음과 함께 액정에 푸른 빛이 들어왔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다이얼을 빠르게 돌렸다.

120, 130, 그리고 정확히 142Hz.

그녀가 치료 패드를 은우의 우측 무릎과 척추 하단에 밀착시켰다. 버튼을 누르자, 미세한 진동 파동이 피부를 뚫고 신경계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웅- 웅- 웅-.

마치 뇌세포를 직접 긁어내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척추를 타고 올라오던 지독한 불길이 서서히 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장부의 붉은 경고창이 깜빡이며 수치를 갱신했다.

`[시스템 동기화: 진동 파동 수치 치료기 연동 성공]` `[최적 주파수 142Hz 동조 중]` `[신경계 피로도: 82% -> 61% -> 45% (안정)]` `[환상통 피드백 누적치: 급격히 하강 중]`

“하아…… 하아…….”

으스러질 것 같던 무릎의 통증이 기적처럼 잦아들었다. 은우의 굳어있던 손가락 끝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차가운 땀으로 젖은 이마를 벽에 기댄 채, 은우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서아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은우의 무릎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의 눈에는 안도감과 동시에 집요한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142Hz가 신경 진통의 임계 주파수라는 걸. 이건 아직 학계에서도 임상 데이터가 제대로 안 나온 수치인데.”

은우는 대답 대신 무릎을 천천히 굽혔다 폈다. 뻑뻑하던 관절이 한결 매끄럽게 돌아갔다. 피지컬 상태 장부의 수치가 다시금 녹색으로 안정화되는 것을 보며 은우는 속으로 읊조렸다.

‘살았다.’

과거의 혹사로 누적된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는 여전히 12%의 상시 적색 경고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당장 다음 경기를 뛰지 못할 수준의 마비는 풀렸다. 은우는 바닥에 떨어진 타월로 얼굴을 훔치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냥 본능이야.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린은 깐깐하게 눈매를 찌푸렸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들고 온 분석 자료를 은우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것 봐. 준결승전 상대 분석 자료야. 한성고 2진 진영이 주축이 된 연합 팀인데, 전술 설계자가 누구인지 알아?”

태블릿 화면에 띄워진 인물의 사진을 보는 순간, 은우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윤성현.

한성고의 브레인이자, 상대의 약점을 현미경처럼 분석해 내는 잔인한 지략가. 그는 무식하게 들이받는 강태훈과 달리, 상대 선수의 아킬레스건을 집요하게 공략해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타입이었다.

“윤성현이 이번 준결승의 전술을 총괄하고 있어. 그리고 그들의 타깃은 명확해.”

아린의 손가락이 화면을 쓸어 넘기자, 송원고 선수들의 포지션 맵 위에 붉은색 충돌 예상 경로가 조밀하게 그려졌다.

“너야, 은우야. 그들은 네가 몸싸움을 극도로 피한다는 걸 이미 간파했어. 이번 경기에서 너를 향해 미친 듯이 밀착 바디체크를 걸어올 거야. 그냥 체크가 아니야. 무릎과 어깨 등 부상 부위만 노리는 아주 비열한 크래시 하키지.”

은우는 픽 웃었다.

윤성현이 파놓은 수비 함정들. 장부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지 않아도 그 악랄한 의도가 빤히 보였다. 과거 은우를 은퇴로 몰고 갔던 그 가혹한 물리적 압박을 고스란히 재현하겠다는 뜻이었다.

***

송원고 하키부 라커룸.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준결승을 앞둔 선수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특히 민지후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스케이트 끈을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조여매고 있었다.

“지후야, 끈 끊어지겠다.”

은우가 곁으로 다가와 지후의 어깨를 툭 쳤다. 지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눈에는 투지와 함께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은우야. 한성고 놈들이 이번에 우릴 아주 박살 내려고 작정을 했대. 특히 너한테 붙는 수비수들이 장난 아니라는 소문이 돌더라. 내가…… 내가 몸으로 다 막아줄게. 내 이빨이 다 부러져도 좋으니까, 너한테는 손도 못 대게 할 거야.”

지후의 무식할 정도로 우직한 선언에 다른 팀원들도 침을 꿀꺽 삼켰다. 팀원들의 멘탈이 이미 상대의 압박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 빙판에 올라간다면, 한성고의 의도대로 흥분해서 페널티를 남발하거나 몸싸움에 말려들어 부상을 당할 것이 뻔했다.

은우는 라커룸 중앙의 전술 보드판 앞으로 걸어갔다. 보드마커를 쥐고 칠판을 강하게 내리쳤다.

탁!

시선이 은우에게 집중되었다. 은우의 목소리는 얼음물처럼 차갑고 차분했다.

“착각하지 마. 놈들이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은우는 보드판 위에 한성고의 예상 수비 대형을 빠르게 그려 나갔다.

“주장 강태훈이 이끄는 본대와 달리, 윤성현이 설계한 이번 준결승 팀은 철저하게 ‘사냥’을 목적으로 해. 우리가 흥분해서 몸싸움에 맞대응하기를 기다리는 거지. 특히 지후 너처럼 무작정 몸을 던지는 플레이는 저들의 좋은 먹잇감이야.”

지후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어쩌라고? 들어오는 바디체크를 그냥 맞고만 있으라고?”

“아니.”

은우가 지후의 마모도를 장부로 스캔했다.

`[민지후: 어깨 관절 피로도 58% (주의)]`

은우는 지후의 어깨 부위를 짚으며 레이아웃을 다시 그렸다.

“맞대응하지 마. 놈들이 들이받으려고 어깨를 낮추는 순간이 바로 기회야. 무게중심이 쏠린 수비수는 0.1초 동안 방향 전환을 하지 못해. 우리는 그 틈을 타서 빠져나간다. 지후 너는 들이받는 게 아니라, 내가 열어주는 빈 공간으로 달리기만 해. 내 몸은 내가 지킨다. 너희는 너희 몸이나 지켜.”

은우의 단호하고도 철저한 계산이 담긴 목소리에 라커룸의 술렁임이 가라앉았다. 은우는 팀원들의 장부 싱크로율을 최대로 끌어 올렸다. 그들의 피로 상태와 관절 마모도를 실시간으로 동기화하며,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패스 루트를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우리는 하키를 하는 거지, 싸움을 하는 게 아니다. 빙판 위에서 멍청하게 뼈를 깎아 먹지 마라. 승리는 머리로 하는 거야.”

그 차가운 오너십 전술 선언이 송원고 선수들의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

목동 아이스링크.

준결승전의 서늘한 한기가 빙판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관중석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링크 위는 오직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지치는 날카로운 마찰음만이 지배했다.

삐익-!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퍽이 빙판에 떨어졌다.

페이스오프와 동시에 한성고의 윙어들이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윤성현의 지시를 받은 그들의 타깃은 단 하나, 이은우였다.

“잡아!”

한성고의 헤비급 디펜스 김대용이 어깨를 낮추며 은우를 향해 돌진했다. 시속 40km가 넘는 속도로 부딪쳐 오는 인간 흉기. 가혹한 바디체크의 각도였다. 그대로 부딪치면 최소 갈비뼈 골절, 혹은 무릎 관절의 영구적 손상이었다.

관람석의 윤성현이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도망쳐 봐라, 이은우. 네가 몸싸움을 무서워하는 겁쟁이라는 걸 온 세상에 보여주마.’

하지만 은우의 눈에 비친 빙판은 난폭한 격투기 장이 아니었다. 장부가 실시간으로 그려내는 3차원의 기하학적 체스판이었다.

`[스캔 완료: 상대 디펜스 김대용]` `- 돌진 각도: 좌측 45도` `- 무게중심: 오른발 외측에 78% 편중` `- 충돌 회피 확률: 100% (우측 외곽 드리프트 시)`

은우의 턱이 단단하게 굳었다. 스케이트 날의 안쪽 코너가 얼음판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슈우욱!

첫 번째 페인트. 은우는 몸을 왼쪽으로 크게 기울였다. 김대용의 시선이 은우의 왼쪽 어깨로 쏠리는 찰나.

사아악!

두 번째 페인트. 0.1밀리초의 단차를 두고 은우의 오른발 에지가 바깥쪽으로 꺾였다. 마찰 계수를 극단적으로 줄인 미끄러짐. 몸이 오른쪽으로 용수철처럼 튕겨 나갔다.

“단독 질주!” “어라? 놓쳤다!”

김대용의 거구는 허공을 가르며 쾅! 소리와 함께 펜스에 처박혔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한성고의 중원 윙어 두 명이 양옆에서 은우의 진로를 차단하며 쌈짓수비를 시도했다. 완벽한 포위망이었다.

“여기서 끝이다!”

두 명의 수비수가 은우를 샌드위치처럼 끼워 누르기 위해 좁혀 들어왔다. 은우의 장부에 붉은색 충돌 경고가 번쩍였다.

`[경고: 충돌 위험 구역 진입]`

은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세 번째 페인트. 은우는 스틱을 쥐고 퍽을 뒤로 흘리는 척하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순간적으로 스케이트 날의 앞부분을 들어 올려 완전한 제동을 거는 기묘한 제동 기술.

스으으윽!

얼음 파편이 하얗게 튀어 오르며 은우의 몸이 두 수비수의 사이, 단 20cm의 틈새로 유빙처럼 미끄러져 들어갔다. 두 수비수의 어깨가 은우의 옷깃을 스치며 서로 쾅! 하고 정면충돌했다.

“말도 안 돼……!”

관람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윤성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태블릿 화면 속의 데이터 분석기가 기괴한 전술 오류를 뿜어내고 있었다.

단 세 번의 미세한 각도 계산과 페인트 동작.

물리적 마찰을 완벽하게 무력화한 0.1밀리초 단차의 회피 스케이팅에 한성고의 자랑인 크래시 수비진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은우는 단독 찬스를 잡았다. 골리와의 1대 1 상황.

하지만 은우는 무리하게 슛을 쏘지 않았다. 굳이 자신이 직접 골을 넣어 무릎 관절 마모도를 올릴 필요가 없었다.

은우의 시야에 장부로 연동된 민지후의 위치가 푸른색 안전 구역으로 깜빡였다.

`[동료 싱크로: 민지후]` `- 노마크 찬스 확률: 98%` `- 슛 성공 확률: 95%`

은우의 스틱 끝이 가볍게 퍽을 밀어냈다. 자로 잰 듯한, 감각적인 백핸드 패스. 퍽은 골리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 반대편에서 쇄도하던 민지후의 스틱 매트에 정확히 배달되었다.

탁! 콰아앙-!

민지후가 온 힘을 다해 때려 넣은 슬랩 샷이 한성고의 골망을 찢을 듯이 흔들었다.

골!!!

빙판 위로 송원고 선수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윤성현은 관람석에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분석용 태블릿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자신이 설계한 완벽한 덫이, 단 한 번의 상처도 입지 않은 이은우의 기하학적 패스에 무참히 깨져버렸다.

은우는 붉게 달아오른 한성고의 벤치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는 단 1%도 상승하지 않은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은우는 스틱을 가볍게 털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윤성현. 네가 짠 판은 여기까지야.’

그때, 빙판 맞은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성고의 절대적 지배자, 강태훈이 천천히 얼음을 지치며 은우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의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짓이기는 소리가 기괴할 정도로 묵직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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