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앙!
얼음을 가르는 날카로운 마찰음 뒤로, 둔탁하고 뼈가 시리는 파열음이 목동 링크를 사납게 흔들었다.
도봉고 백업 공격수의 카본 스틱이 민지후의 오른쪽 허벅지 뒤편을 그대로 내리쳤다. 퍽과 전혀 상관없는 무방비 상태의 등 뒤를 노린, 명백히 선수 생명을 끊어놓겠다는 악의가 담긴 벌목질(Slashing)이었다.
“으아악!”
지후가 비명을 지르며 빙판 위로 고꾸라졌다. 거대한 체구가 균형을 잃고 미끄러져 펜스에 거칠게 부딪혔다.
심판의 휘슬 소리가 다급하게 빙판을 찢었다. 하지만 은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심판의 수신호가 아니었다. 허공에 잔인하게 명멸하는 붉은색 경고창이었다.
`[!!! 경고 !!!]` `[동료: 민지후]` `- 우측 대퇴사두근 및 슬개건 마모도: 72% (임계치 돌파)` `- 부상 확률: 88% (적색 경고: 인대 미세 파열 진행 중)`
72퍼센트. 체육관 청소부로 밀려나 림프액이 가득 찬 무릎을 끌고 다니던 은우 자신의 과거가 지후의 다리 위로 겹쳐 보였다. 머릿속에서 이성이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은우는 스케이트 날을 얼음에 깊숙이 박아넣으며 제동했다. 얼음 가루가 폭풍처럼 사방으로 비산했다. 은우의 눈동자가 도봉고의 가해 선수를 향해 번뜩였다. 턱뼈가 부서질 듯 힘이 들어갔고, 스틱을 쥔 장갑 너머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저 비열한 안면을 짓이기고 싶은 충동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은우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 저놈의 멱살을 잡고 난투극을 벌이는 것은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징계위원회에서 겨우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한성고와 협회 놈들이 쳐놓은 덫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스케이트 날이 빙판을 박차고 나갔다. 은우는 쓰러진 지후에게 단숨에 미끄러져 가 몸을 낮췄다.
“지후야! 정신 차려! 움직이지 마!”
지후는 얼음바닥에 뺨을 댄 채, 깨진 입술 사이로 핏물을 흘리고 있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녀석은 오히려 은우의 유니폼 소매를 악착같이 움켜쥐었다.
“은…… 우야.”
“말하지 마. 가만히 있어.”
“나, 괜찮아. 난 송원고의…… 토대자잖아. 이따위 양난(장난)에…… 안 꺾여.”
지후가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빨 사이로 흘러내린 붉은 피가 하얀 얼음바닥을 적셨다. 고통으로 눈물이 고인 눈을 하고서도, 녀석은 팀의 수비 라인이 무너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무식할 정도로 우직한 불나방. 그게 민지후라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장부의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후의 무릎 마모도는 실시간으로 72%에서 73%로 치솟고 있었다. 이대로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가 병원으로 간다면, 지후의 이번 시즌은 여기서 끝이다. 아니, 고교 선수로서의 생명 자체가 영구히 손상될 터였다.
은우의 입술이 차갑게 다물어졌다.
‘절대 그렇게 두지 않아.’
과거의 자신처럼, 꿈을 품은 동료가 빙판 뒤안길로 사라지는 비극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할 생각은 없었다.
은우는 지후의 어깨 아래로 팔을 밀어 넣어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동시에 뇌리 속 깊은 곳에 묻어둔 시스템의 코어를 강제로 깨웠다.
‘동료 싱크로, 전송 제어 계수 오픈.’
`[동료 싱크로 전송 제어 계수 활성]` `[대상: 민지후]` `[전송 비율 설정: 1:1 (균등 분산)]`
장부의 톱니바퀴가 거칠게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묵직한 이명과 함께 은우의 머릿속으로 붉은 수치들이 어지럽게 나열되었다.
`[주의: 동기화 대상의 물리적 대미지 및 마모도를 사용자의 신체로 전송합니다.]` `[사용자 이은우의 현재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 12% (상시 적색 경고)]` `[전송 실행 시 사용자의 마모도 급상승 및 극심한 환상통 유발 가능성 존재. 실행하시겠습니까?]`
‘실행해.’
일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정신을 짓이기는 충격이 은우의 우측 무릎으로 고스란히 들이쳤다.
“흐윽……!”
은우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삼켰다. 오른쪽 무릎뼈 안쪽에서 불로 지지는 듯한 극통이 치밀어 올랐다. 인대가 팽팽하게 늘어나다 못해 뚝뚝 끊어지는 듯한 환각. 뇌가 비명을 질렀다. 과거 은퇴를 결정지었던 그 끔찍한 파열의 감각이 신경망을 타고 역류했다. 이마에 순식간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시야가 거칠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후의 어깨를 지탱하던 은우의 손끝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됐다.
`[동료 민지후 마모도 분산 완료]` `- 민지후 무릎 마모도: 73% -> 45% (안정 수치 진입)` `- 부상 확률: 88% -> 15% (경고 해제)`
지후의 거친 호흡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녀석은 자신의 다리를 더듬거리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은우를 바라보았다.
“어……? 은우야. 나 방금 전까지 다리가 안 움직였는데…… 지금은 좀 괜찮은 것 같아. 그냥 타박상인가?”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서. 아직 경기 안 끝났어.”
은우는 무릎을 찌르는 환상통을 악물고 버티며 차갑게 대꾸했다. 다리가 사정없이 떨려왔지만, 겉으로는 단 한 터럭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지후가 스스로 체중을 지탱하며 일어서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은우는 손을 뗐다.
도봉고의 벤치는 물론, 관람석까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방금 전의 가격은 누가 보아도 최소 5분간 퇴장당하는 메이저 페널티급 반칙이었다. 들것이 들어와야 할 상황에서, 피해자인 민지후가 멀쩡히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자 도봉고 선수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특히 가해자인 백업 공격수는 귀신을 본 듯한 표정으로 지후를 응시했다.
심판이 가해 선수에게 게임 미스컨덕트(Game Misconduct, 경기 퇴장)를 선언했다.
“도봉고 34번, 퇴장!”
관중석에서 야유와 환호가 뒤섞여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은우의 눈은 이미 냉정하게 식어 있었다.
은우는 붉게 물든 링크 바닥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더는 봐주지 않는다.’
은우는 송원고 동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지후를 비롯해 숨을 헐떡이는 팀원들의 머리 위로 장부의 실시간 데이터가 일렬로 정렬되었다.
`[팀 동기화 활성화율: 95%]` `- 송원고 평균 마모도: 32% (안전)` `- 도봉고 평균 마모도: 68% (피로 누적 및 흥분 상태)`
“모두 내 말 들어.”
은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빙판 위의 한기보다 더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도봉고 놈들은 완전히 흥분했어. 우리가 몸싸움으로 맞서면 저들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거다. 이제부터 바디체크는 전부 흘린다. 단 한 명도 저들과 부딪히지 마.”
“하지만 은우야, 저 자식들이 저렇게 대놓고 들어오는데 어떻게 안 부딪쳐?”
윙인 선우가 걱정스레 물었다. 은우는 스틱 끝으로 얼음바닥을 툭툭 쳤다.
“내가 길을 열어준다. 너희는 내가 퍽을 보내는 위치로 달리기만 해. 내 패스는 도봉고 놈들의 스틱이 닿지 않는 안전 주파수만 골라서 간다. 날 믿어.”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방금 전 지후가 기적처럼 부상 없이 일어서는 모습을 목격한 그들이었다. 은우의 말에는 거역할 수 없는 지배력과 과학적인 확신이 담겨 있었다.
페이스오프.
퍽이 얼음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은우의 스틱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퍽을 가로챈 은우는 크로스오버 스케이팅으로 가속을 붙였다. 도봉고의 수비수 두 명이 은우의 진로를 막아서며 거칠게 어깨를 들이밀었다.
쾅!
그들이 충돌을 예상하고 몸을 던진 순간, 은우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스케이트 날의 아웃코너 에지를 극한으로 활용한 기하학적인 회전. 마찰 계수를 제로에 가깝게 수렴시키는 은우의 특기, 무마찰 회전 회피였다. 은우는 수비수들의 사이 공간을 유령처럼 빠져나갔다.
“잡아! 놓치지 마!”
도봉고 주장 배진태가 비명을 지르며 쫓아왔다. 하지만 은우의 시야에는 이미 3차원의 패스 경로가 푸른색 실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최적 패스 경로 연산 완료]` `- 수신자: 김선우 (마모도 28%, 안전 구역 대기 중)` `- 패스 성공 확률: 98%`
은우의 핸드 제스처가 미세하게 꺾였다. 스틱 끝을 떠난 퍽이 도봉고 수비진의 스틱 밑동을 스치듯 통과해 정확히 선우의 스틱 블레이드에 안착했다.
착!
완벽한 테이프 투 테이프(Tape-to-Tape) 패스.
선우는 속도를 줄일 필요도 없이 퍽을 받아 그대로 골대를 향해 질주했다. 당황한 도봉고 골텐더가 각도를 좁히며 튀어나왔지만, 선우는 은우가 미리 일러준 대로 골대 우측 상단 코너를 향해 스냅 샷을 날렸다.
퍽!
퍽이 네트를 강하게 흔들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빨간 불빛이 골대 뒤에서 켜졌다. 송원고의 세 번째 골이었다.
“골!!! 송원고 추가 득점! 이은우의 환상적인 어시스트에 이은 김선우의 깔끔한 마무리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송원고 응원석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하지만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은우의 지휘 아래, 송원고는 완벽히 조율된 오케스트라처럼 움직였다. 도봉고 선수들이 폭력적인 바디체크를 시도할 때마다, 송원고 선수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 발 먼저 패스를 건네고 유연하게 충돌을 회피했다. 은우가 제공하는 실시간 안전 경로 데이터 덕분이었다.
퍽이 흐른다. 얼음을 가른다. 그대로 꽂힌다.
송원고의 패스 워크는 눈이 부실 정도로 유기적이었다. 도봉고 선수들은 허공에 허우적대며 스틱을 휘두를 뿐, 송원고 선수들의 유니폼 자락조차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다.
4대 0. 5대 0.
3피리어드 중반, 전광판의 숫자가 송원고의 압도적인 우세를 증명하고 있었다. 도봉고 선수들의 눈동자는 이제 악기가 아니라 허탈함과 자괴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폭력으로도, 실력으로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을 마주한 자들의 절망이었다.
삐이익-!
최종 버저가 울렸다.
“경기 종료! 송원고등학교, 도봉고를 상대로 6대 0, 완벽한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며 전국 춘계 토너먼트 8강 진출 확정입니다!”
목동 아이스링크가 송원고의 이름을 연호하는 함성으로 뒤덮였다. 선수들은 얼음 위로 뛰어내려와 서로를 껴안았고, 벤치에 있던 박한솔 코치와 서아린 트레이너도 환호성을 지르며 빙판으로 향했다.
부상 악마가 늘 도사리던 몰락한 팀. 늘 누군가가 다쳐서, 이가 빠진 기어처럼 주저앉았던 송원고 하키부가 마침내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가장 완벽하고 안전한 과학적 하키로 거인들을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은우야! 우리가 해냈어! 대박이다, 진짜!”
지후가 은우의 어깨를 툭 치며 활짝 웃었다. 은우는 그저 묵묵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은우의 시야 구석에 떠 있는 자신의 상태 장부는 여전히 붉은 빛을 내뿜으며 경고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본인: 이은우]` `-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 34% (위험 수준 돌파)` `- 신경계 피로도: 82%` `- 환상통 피드백 누적치: 임계값 도달`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무릎에서 시작해 척추를 타고 뇌간으로 전해졌다. 지후에게 가야 할 충격을 대신 흡수하고, 팀 전체를 동기화하느라 뇌의 연산 능력을 한계까지 쥐어짜 낸 대가였다.
은우는 동료들의 축하 행렬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승리의 열기로 가득 찬 링크 위에서 버티고 서 있기에는 무릎이 더 이상 한계를 지탱하지 못하고 있었다.
‘빨리…… 구석으로 가야 해.’
은우는 절뚝거리는 발걸음을 필사적으로 숨기며 락커룸 통로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 구석진 트레이닝실 문을 열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은우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걸어 잠갔다.
머릿속에서 아린이 가져왔던 대학 연구용 장비가 떠올랐다. 트레이닝실 한구석, 대형 먼지 더미 아래 방치되어 있던 ‘진동 파동 수치 치료기’. 아린이 은우의 미세한 통증을 눈치채고 가져다 놓았던, 하지만 아직 제대로 사용법조차 맞추지 못한 장비였다.
은우는 장부의 시스템을 켰다.
`[장비 스캔: 진동 파동 수치 치료기]` `- 최적 치유 주파수: 142Hz` `- 현재 설정 상태: 미작동`
‘이 주파수라면…… 신경계로 가해지는 이 미친 환상통을 조금은 완화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지금 당장 기계를 조작할 여유는 없었다. 무릎을 지탱하던 마지막 힘줄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윽……!”
은우는 차가운 벽을 짚었으나, 이내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양 무릎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뼈마디가 통째로 으스러져 나가는 듯한, 미래의 자신이 겪었던 그 혹독한 은퇴의 순간이 육체를 지배하는 감각이었다.
손끝이 차가운 타일 바닥을 긁으며 굳어갔다. 멀리서 송원고 동료들의 승리 환호성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문득, 트레이닝실의 문손잡이가 덜컥거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은우야? 안에 있어?”
서아린의 목소리였다. 은우는 대답하려 입을 열었지만, 목구멍에서는 오직 마른 신음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기 직전, 은우의 눈앞에 장부의 마지막 경고창이 잔인하게 떠올랐다.
`[경고: 우측 무릎 관절 마모도 34% 유지 시, 다음 경기 출전 시 부상 확률 90% 돌파 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