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당장 무대 내려!!!”

지르는 비명에 가까운 호통이 먼지 쌓인 대기실 복도의 공기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SBS 예능국장 권만수의 목덜미는 붉은 핏줄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있었고, 그의 손에 쥔 스마트폰은 마치 시한폭탄이라도 된 것처럼 요란한 진동을 뿜어대고 있었다. 리허설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스튜디오가 그 한마디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차갑게 식어 내렸다.

큐시트를 꽉 쥐고 있던 안형준 PD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국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미 송출 테스트까지 끝났고 이제 본방송 큐 사인만 남았습니다! 아스테르 무대는 이번 예고편 나간 뒤로 실시간 검색어부터 터져 나가고 있다고요!”

“시끄러워! 네가 국장이야? 최태준 부사장이 직접 본부장실로 들이쳤단 말이다! 오늘 아스테르가 단 1초라도 화면에 송출되는 순간, 스타더스트 소속 모든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예정된 연말 가요대전 스폰서십까지 싹 다 날아가게 생겼어! 일개 중소 기획사 망돌 하나 때문에 국 전체를 풍비박산 낼 셈이냐? 당장 무대 철거하고 대체 다큐멘터리 틀어!”

권만수는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지르며 침을 튀겼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와 탐욕으로 잔뜩 흐려져 있었다. 거대 기획사 스타더스트의 외압이라는 거대한 해일 앞에서, 그는 아스테르라는 작은 돛배를 가차 없이 침몰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폭력적인 선언을 들은 아스테르 멤버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꽉 쥐고 있던 강이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간신히 다시 잡은 기회였다. 온갖 더러운 루머와 누명을 뚫고, 오직 실력 하나로 증명하기 위해 서 보낸 시간들이 권만수의 가벼운 입놀림 한 번에 허공으로 날아가려 하고 있었다. 백도훈의 어깨가 분노로 잘게 떨렸다. 그의 주먹이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강하게 쥐어졌다.

그때였다.

스태프들이 웅성거리며 눈치를 보던 대기실 입구에서, 구두 굽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또각, 또각.

어수선한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그 규칙적인 소리에 권만수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누구야? 리허설 장에 외부인 통제 안 해? 당장 안 내보내고 뭐…”

말을 끝맺지 못한 권만수의 목구멍에서 컥, 하는 막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한서현이었다. 서현은 공황장애로 인해 가슴 속을 옥죄어오는 지독한 압박감을 숨기기 위해, 오히려 입꼬리를 기괴할 정도로 화사하게 끌어올리고 있었다. 눈동자는 이성을 잃은 맹수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머, 국장님. 어딜 그렇게 바쁘게 도망치려고 하십니까? 아직 우리 애들 무대 시작도 안 했는데, 관객이 먼저 자리를 뜨시면 섭섭하죠.”

“당신… 아스테르 매니저 한서현인가? 지금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앞을 가로막아! 비켜, 경비 부르기 전에!”

권만수가 서현을 밀치고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서현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의 앞을 단단히 막아섰다. 그리고 천천히, 비정상적으로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경비는 국장님이 부르실 게 아니라, 경찰이 불러야 할 것 같은데요.”

그 순간, 서현의 시야 속으로 푸른빛의 홀로그램 창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덕질 계정부(Fandom Ledger) 가동]` `[정신력 잔여 수치: 45 / 100]` `[타깃 분석: SBS 예능국장 권만수]` `[현재 심리 상태: 극도의 불안, 탐욕, 외부 압박에 의한 과호흡]` `[협박 및 굴복 유도율: 42% → 실시간 분석 중]`

서현의 머릿속으로 권만수의 자금 흐름과 약점이 촘촘한 회계 장부 형태로 정렬되기 시작했다. 정신력이 깎여 나가는 날카로운 두통이 관자놀이를 때렸지만, 그녀는 오히려 더 짙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국장님, 잠깐 저랑 아늑한 대기실로 들어가서 조용히 대화 좀 나누실까요? 남들 눈이 아주 많네요.”

“내가 왜 그딴 쓸데없는 짓을…!”

“처남 명의로 개설된 홍콩 페이퍼 컴퍼니, ‘실버 라이닝(Silver Lining)’. 그리고 2주 전, 스타더스트 최태준 부사장의 개인 비자금 계좌에서 그쪽으로 송금된 ‘기획 협찬금’ 3억 원.”

서현이 아주 작게, 오직 권만수의 귀에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단어를 읊조렸다.

그 순간, 권만수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의 가쁜 숨소리가 뚝 멈췄다.

“그, 그게 무슨…”

“더 듣고 싶으시면, 들어오시죠.”

서현은 망설임 없이 VIP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 가죽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다리를 우아하게 꼬고 앉은 그녀의 모습은 마치 사형 집행을 앞둔 판사와도 같았다.

권만수는 다리가 풀린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대기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서현은 문을 거칠게 닫아걸었다.

탁!

단둘만 남은 밀실의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 권만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서현을 노려보았지만, 이미 그의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네가 대체 그걸 어떻게… 아니, 그건 정당한 제작 지원비였어! 아무 문제 없는 돈이라고!”

“정당한 제작 지원비를 왜 굳이 홍콩 유령회사를 거쳐서, 그것도 국장님 처남의 차명 계좌로 받으셨을까?”

서현이 품 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유리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복선 회수: 안세희의 채증 데이터 연계 분석 완료]`

“그리고 이거, 우리 아스테르의 학폭 누명을 처음 유포했던 디시인사이드 아이피(IP) 주소와 가입자 신상 명세입니다. 우리 탑시드 팬이자 천재적인 해커 안세희 씨가 피시방에서 밤을 새우며 채증해 준 아주 보물 같은 자료죠. 추적해 보니까 말이에요, 국장님.”

서현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권만수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서늘한 안광에 권만수는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다.

“그 최초 유포자가 스타더스트 홍보팀의 현장 대리인이더군요. 그런데 아주 기가 막힌 우연이 하나 더 있어요. 그 대리인의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가, 국장님 자택 근처인 날이 무려 열두 번이나 겹칩니다. 최태준이랑 셋이서 은밀하게 만나서 무슨 모의를 하셨는지, 통화 녹취록까지 보여드려야 믿으시겠습니까?”

“이, 이건… 이건 모함이야! 난 모르는 일이라고!”

권만수의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테이블 위로 뚝뚝 떨어졌다.

덕질 계정부의 수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타깃: 권만수 심리 장벽 붕괴율: 85%]` `[자백 유도율: 90%]` `[여론 반전 최적 타이밍 도달]`

“모함인지 아닌지는 내일 아침 9시, 대검찰청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그리고 모든 언론사 사회부 기자들 메일함에 이 자료들이 일제히 발송되면 밝혀지겠죠.”

서현은 스마트폰을 가볍게 흔들며 나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 생방송 시작까지 정확히 4분 남았네요. 국장님 인생이 먼저 종 치는 게 빠를까요, 아니면 우리 애들 무대가 생중계되는 게 빠를까요? 아스테르를 무대에서 내리면, 저는 이 버튼을 누를 겁니다. 대기업과 결탁해 중소 아티스트를 조직적으로 매장하고 수억 원의 수수료를 챙긴 예능국장이라니. 아주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헤드라인이네요.”

“너… 너 미쳤어?! 이러면 너희 아스테르도 무사하지 못해! 스타더스트가 너희를 가만둘 것 같아?!”

권만수가 악에 받쳐 소리쳤지만, 서현은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가만 안 두면 어쩔 건데요? 우리는 이미 바닥입니다. 잃을 게 없는 미친개보다 무서운 건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주저함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상대를 완전히 파멸시키고 말겠다는 광적인 확신만이 가득했다.

그 서슬 퍼런 구원자의 오라(Aura)에 짓눌려, 권만수는 숨을 쉬지 못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서현이 보여주는 완벽한 통제력과 압도적인 힘 앞에, 그는 자신이 한낱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 * *

같은 시각, 대기실 문틈 너머로 안쪽의 팽팽한 대치를 지켜보고 있던 아스테르 멤버들은 숨을 죽였다.

백도훈은 주먹을 쥔 채 어깨를 떨었다. 서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매니저님은… 우리를 위해서 저 괴물 같은 인간들과 직접 진흙탕 속에서 싸우고 있어.’

도훈은 자신의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작고 낡은 노트를 만지작거렸다. 곰팡이 냄새가 나는 망원동 지하 연습실에서, 세상을 향한 분노와 억울함을 랩 가사로 빼곡히 적어 내려갔던 비밀 노트. 기성 작곡가들의 뻔한 사랑 노래 대신, 진짜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서현이 직접 다듬어준 그 타이틀곡의 멜로디가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강이온 역시 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눈빛은 무시무시했지만, 동시에 그 어떤 신보다도 든든한 방패였다.

“이온아.”

도훈이 나직한 목소리로 이온을 불렀다. 그의 눈빛에는 더 이상 가벼운 무대 공포증이나 망설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무대를 짓밟고 일어서겠다는 강렬한 갈망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우리, 오늘 무대에서 죽자. 저 사람이 만들어준 기회잖아. 절대 헛되게 안 만들어.”

“그래.”

이온이 굳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짜들한테 진짜가 뭔지 보여주는 거야.”

멤버들의 눈빛이 완벽하게 달라졌다. 패배감과 두려움으로 얼룩졌던 눈동자에는 이제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반골의 에너지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 * *

대기실 안.

`[타깃: 권만수 정신력 붕괴 완료]` `[자백 및 굴복 유도율: 99%]` `[덕질 계정부 임무 생존 완료: 푸른 잠금해제 아이콘 활성화]`

서현의 머릿속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권만수의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그가 소파 아래로 주저앉으며 서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듯이 손을 뻗었다.

“제발… 제발 그것만은 보내지 말아 주게. 내가 생각이 짧았어. 최태준 그 악랄한 놈이 협박을 하니까 무서워서 그랬던 거네. 아스테르 무대, 내보내겠네! 원하는 대로 다 해줄 테니까 제발 그 자료만은…”

방금 전까지 갑질을 일삼던 예능국장의 추악한 민낯이었다. 서현은 혐오스럽다는 듯 그의 손을 가볍게 피해 일어났다.

“구걸은 무대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 하세요. 지금 당장 나가서 조정실에 큐 사인 보내시고요.”

“알겠네! 지금 당장 지시하겠네!”

권만수는 허둥지둥 대기실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대기실 밖으로 나온 권만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안형준 PD에게 소리쳤다.

“안 PD!!! 뭐 해, 당장 준비 안 하고! 아스테르 무대 준비해! 카메라 워킹 최고로 신경 쓰고, 음향 볼륨 최대로 올려! 당장!!!”

스태프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국장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무대를 내리라고 소리치던 국장이, 이제는 제발 무대를 완벽하게 세팅하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안 PD는 흘끗 서현을 바라보았다. 서현은 그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안 PD의 입꼬리가 호기심 어린 미소로 나직하게 올라갔다.

“알겠습니다. 아스테르, 무대 위로 대기!”

스튜디오의 조명이 서서히 꺼지고, 오직 무대 중앙만을 비추는 푸른 조명이 켜졌다.

그 사이, 인터넷 커뮤니티는 이미 아스테르의 컴백 소식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 * *

``` [더쿠 - 스퀘어방] 제목: 야 미친 오늘 뮤직챔피언 아스테르 무대 라인업 그대로 가나 봐 ㅋㅋㅋㅋ 작성자: 익명

스타더스트가 방송 막으려고 방송국에 압박 존나 넣었다는 찌라시 돌아서 취소되는 줄 알았는데, 방금 큐시트 최종본 확인됨 ㅋㅋㅋ 아스테르 무대 그대로 송출된다!!!

댓글 (427) - ㄹㅇ?? 스타더스트가 웬일로 꼬꼬마 중소를 그냥 놔둠? - ㄴ 놔둔 게 아니라 매니저가 방송국 국장 멱살 잡고 캐리했다는 소문이 자자함 ㅋㅋㅋㅋㅋ 아스테르 매니저 진짜 정체가 뭐냐? - 이번 타이틀곡 백도훈 자작곡이라는데 힙합 락 장르래... 비주얼 미쳤다 진짜 ㅠㅠㅠㅠ - 누명 벗고 첫 지상파 무대인데 제발 잘했으면 좋겠다 ㅠㅠㅠㅠ 이온아 노래 찢어줘!!! ```

``` [트위터 실시간 반응] - @aster_love_99: 아스테르 대기실 복도에서 국장이 울면서 나왔다는 목격담 도는 중 ㅋㅋㅋㅋㅋㅋ 매니저님 진짜 광기 그 자체다... 우리 애들 구원자임 ㄹㅇ - @kpop_analy: 이번 아스테르 컴백은 단순한 복귀가 아님. 대기업 카르텔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항아 콘셉트 그 자체임. 무대 퀄리티만 받쳐주면 라이징 확정이다. - @stardust_out: 최태준 부사장 지금 집무실에서 모니터 부수고 있을 듯 ㅋㅋㅋㅋ 꼬시다 꼬셔! ```

* * *

생방송 시작을 알리는 붉은 ‘ON AIR’ 불빛이 카메라 위에 켜졌다.

방송국 전체를 지배하는 긴장감 속에서, 서현은 모니터 화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가슴 속의 불안감이 가라앉고, 그 자리에 승리의 확신이 차올랐다.

“가자, 아스테르.”

그녀의 혼잣말과 함께, 방송국의 모든 조명이 일시에 꺼졌다.

암전.

그리고 1초 뒤, 고요한 어둠을 가르고 심장을 찢는 듯한 백도훈의 거친 디스토션 기타 사운드가 스튜디오 전체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쿵- 쿵- 쿵-!

묵직한 드럼 베이스가 시청자들의 심장박동과 동기화되듯 울려 퍼지며, 드디어 아스테르의 반격이 전 세계 생방송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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