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ON AIR’ 표시등이 어둠 속에서 성난 맹수의 외눈처럼 번뜩였다.
방송국 천장에 매달린 수십 대의 조명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무거운 침묵이 흐른 지 정확히 1초 뒤, 고요를 찢고 백도훈의 거친 디스토션 기타 사운드가 스튜디오 안의 모든 공기를 사정없이 으스러뜨렸다.
쿠구구궁—!
심장을 진동시키는 묵직한 드럼 베이스가 스피커를 찢고 튀어나왔다. 무대 바닥에서부터 치솟는 불꽃이 다섯 명의 실루엣을 붉고 선명하게 빚어냈다.
그 중심에 백도훈이 서 있었다.
평소의 얌전하고 기가 죽어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손에 들린 마이크는 흉기나 다름없었다. 도훈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첫 소절을 뱉어내자, 스튜디오 내부의 기압이 한순간에 내려앉는 듯한 압박감이 전해졌다.
“가짜들이 떠드는 소리, 귀를 막아도 웅성대지. 진흙탕 속에 처박아 두면 우리가 썩을 줄 알았나 보지?”
서현은 대기실 구석의 모니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지끈거렸다. 권만수 국장을 무릎 꿇리기 위해 ‘덕질 계정부’를 과도하게 가동한 여파였다. 관자놀이가 요동치고 눈앞에 붉은 잔상이 어른거렸지만, 서현은 굳이 그 통증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술을 짓씹으며 새어 나오는 광기 어린 미소로 공황의 압박감을 찍어 눌렀다.
‘그래, 바로 이거야.’
도훈이 뱉어내는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은 서현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이 곡은 스타더스트의 외압에 굴복한 작곡가들이 던져준 얄팍한 댄스곡이 아니었다. 망원동 지하 2층,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방음조차 되지 않아 위층 주민들의 발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던 그 누추한 연습실. 그곳에서 도훈이 밤새도록 머리를 쥐어뜯으며 낡은 스프링노트에 적어 내려갔던 비밀 자작곡이었다.
- 매니저님, 저 진짜 억울해서 못 살겠어요. 내가 안 한 짓을 왜 했다고 빌어야 하는데요?
서현이 연습실 소파 틈새에서 먼지 쌓인 노트를 발견했을 때, 도훈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그렇게 소리쳤었다. 온 세상이 자신을 악마로 몰아세울 때, 유일하게 그의 분노를 담아내 주었던 그 곰팡이 핀 노트의 낙서들이 지금 이 순간, 지상파 방송망을 타고 전국으로 난사되고 있었다.
곡명은 <Under Fire (포화 속으로)>.
도훈의 거친 래핑 위로 강이온의 미성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얹어졌다.
“We are under fire, but we never die! 네가 던진 돌멩이, 전부 모아 왕관을 만들지!”
이온의 목소리는 맑으면서도 단단했다. 가사 하나하나에 서린 독기와 한이 청중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이온의 눈빛에는 더 이상 흔들림이 없었다. 서현이라는 가장 든든한 방패를 뒤에 둔 소년은, 이제 무대 위에서 세상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짐승이 되어 있었다.
무대 위를 가득 채운 다섯 명의 칼군무는 마치 잘 훈련된 군대의 모의전투 같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댄스의 각도, 조명이 굴절되며 그들의 땀방울을 보석처럼 산산조각 내는 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적인 뮤직비디오였다.
관객석 1열에 앉아 있던 안세희는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던 손을 멈췄다.
손끝이 잘게 떨렸다.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이온의 푸른 눈빛과 마주한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 솟구쳐 올랐다.
세희의 머릿속으로 지난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어두컴컴한 PC방 구석에서 컵라면 불어 터지는 줄도 모르고 마우스를 움켜쥐었던 밤들. 스타더스트 홍보팀 대리인 놈들이 조직적으로 날조한 학폭 폭로글의 악성 IP 주소와 신상 명세를 최초로 채증해 서현에게 넘겼던 그 순간.
‘내가 버틴 시간이 틀리지 않았어.’
세희의 눈에서 결국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스테르!!! 가보자고!!!”
세희의 외침을 신호탄으로,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던 관객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스튜디오는 이제 단순한 방송 녹화장이 아니었다. 억압받던 이들이 만들어낸 폭동의 현장이자, 거대한 락 페스티벌의 한복판이었다.
그 열기는 고스란히 안방극장과 모바일 화면을 타고 번져나갔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실시간으로 초토화되고 있었다.
* * *
``` [더쿠 - 스퀘어방] 제목: 야 미친놈들아 지금 뮹챔 아스테르 무대 본 사람????? 작성자: 익명
나 방금 밥 먹다가 숟가락 떨어뜨림;;;; 학폭이니 마약이니 하던 애들 맞냐? 백도훈 랩 딕션 딕션인데 눈빛 돌았음 진짜 ㅋㅋㅋ 이 갈고 나왔네
댓글 (1,208) - ㄹㅇ 노래 존나 힙함 ㅋㅋㅋㅋㅋ 락 힙합인데 가사 스타더스트 저격 아니냐? - ㄴ "네가 던진 돌멩이로 왕관을 만든다" << 이거 백퍼 저격임 ㅋㅋㅋㅋ 존나 락스타 그 자체 - 와 메보 고음 미쳤다 라이브 맞음? 음감 지리네 - 그동안 억까당한 거 무대 위에서 다 패버리네 ㅋㅋㅋ 이게 진짜 케이팝이지 ㅠㅠㅠㅠ - 방금 입덕함;;;; 얘네 소속사 어디임? 매니저 일 잘하네 ```
``` [네이트판 - 엔터톡] 제목: 오늘 자로 아스테르 정체성 재정립됨. (스압) 작성자: 멜론탑백러
그동안 중소 아이돌이라고 무시당하고 스타더스트한테 존나 밟히던 아스테르 맞냐? 오늘 무대 연출, 보컬, 댄스, 라이브 다 씹어 먹음. 특히 백도훈 독기 품은 거 보니까 내가 다 지릴 것 같음. 솔직히 이 정도 실력이면 그동안 억까 프레임 씌운 놈들이 천벌 받아야 됨.
댓글 (849) - 애초에 마약도 실시간 검사로 구라 선동인 거 다 까발려졌잖아 ㅋㅋㅋ - 스타더스트 주가 떨어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꺼억- - 도훈아 누나가 미안해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해 ㅠㅠㅠㅠㅠㅠ - 오늘부터 아스테르 코어 팬 한다. 앨범 사러 간다. ```
* * *
“커트! 존나 완벽해!”
안형준 PD가 헤드폰을 벗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그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것은 귀가 먹먹할 정도의 함성과 박수갈채였다. 멤버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도훈은 마이크를 쥔 손을 부르르 떨며 대기실 입구에 서 있는 서현을 바라보았다.
서현은 그를 향해 소리 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주 화사하고, 동시에 오싹할 정도로 승리에 찬 미소였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서현의 눈앞으로 푸른색 홀로그램 창이 튀어 올랐다.
[덕질 계정부(Fandom Ledger) 가동 중] [정신력 수치: 35/100 (경고: 공황장애 지수 상승 중)] [실시간 입덕 에너지 게이저: 98.7%... 99.9%... Peak Value 돌파!] [계산 결과: 대중의 도파민 수용체 완전 개방. 여론 반전 타이밍 적합도 100%]
머릿속을 찌르는 통증이 한층 더 강해졌지만, 서현은 뇌를 마비시키는 도파민의 쾌감으로 그것을 상쇄시켰다.
스마트폰 화면 속 음원 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요동치고 있었다.
1. 아스테르 2. Under Fire 3. 백도훈 자작곡 4. 아스테르 라이브
그리고 몇 분 뒤, 매시 정각에 업데이트되는 실시간 차트 진입 순위가 화면에 떴다.
[멜론 실시간 차트] - 9위: 아스테르 - <Under Fire> (NEW)
“진입 9위…….”
대기실 안의 스태프 중 누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중소 기획사의, 그것도 해체 직전까지 몰렸던 그룹이 지상파 컴백 무대 단 한 번으로 차트 TOP 10에 진입하는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그 순간, 대기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권만수 국장이 기어들어 왔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권 국장은 서현의 눈치를 살피며 덜덜 떠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 한 매니저…… 약속대로 방송 사고 없이 무사히 송출했네. 내 차명 계좌 건은…….”
서현은 권 국장을 빤히 내려다보며, 소름 돋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국장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스타더스트 최태준 부사장이 보낸 3억 원의 출처가 정확히 어디인지, 내일 아침 검찰청에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면 됩니다. 물론, 국장님의 안전을 위해서 말이죠.”
“이, 이봐! 약속이 다르잖아!”
“제가 언제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했습니까? 방송만 내보내 주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서현의 독설에 권 국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서현은 더 이상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은 이미 다음 전장으로 향해 있었다.
* * *
같은 시각, 청담동 스타더스트 엔터테인먼트 본사 15층 부사장실.
쨍그랑—!
고급 크리스탈 재질의 양주잔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최태준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아스테르의 컴백 무대 영상이 조회수 수백만을 돌파하며 실시간으로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이게……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최태준의 손이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자신이 완벽하게 짜놓았던 판이었다. 마약 프레임, 학폭 프레임, 그리고 방송국 외압까지. 그 어떤 중소 기획사도 버텨낼 수 없는 파상 공세였다. 그런데 그 모든 음해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스테르는 오히려 더 힙하고 강력한 모습으로 부활해 자신들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그때, 최태준의 개인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홍콩 실버 라이닝’의 관리자였다.
- 부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국내 바이럴 실행사들 계좌로 송금되던 자금 라인에 이상 경고가 떴습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IP를 추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태준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아스테르의 차트 역주행을 막지 못하면, 자신이 밀어주던 스타더스트의 신인 그룹은 완전히 묻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부사장 자리는커녕, 그동안 저지른 불법 차트 조작 자금 세탁 혐의로 쇠고랑을 차게 될 판이었다.
“닥쳐! 지금 당장 가용할 수 있는 돈은 전부 다 긁어모아!”
최태준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가문을 헐어서라도 자금을 융통해라! 해외 유령 계좌에 있는 비자금까지 전부 털어서 멜론 차트에 하락 봇(Bot) 전부 투입해! 아스테르 저 새끼들, 당장 차트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란 말이야!”
이성을 잃은 소시오패스의 비명이 적막한 부사장실을 가득 채웠다.
가문을 헐어 만든 거액의 불법 자금이 다시 한번 홍콩 페이퍼 컴퍼니를 거쳐 국내 음원 차트 조작 공장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대기실 소파에 앉아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던 서현의 눈앞에 붉은색 경고 창이 맹렬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위험 경고: 해외 불법 자금 송금 내역 포착] [출처: 실버 라이닝 (Hong Kong)] [규모: 30억 원 상당의 대규모 음원 차트 하락 매크로 가동 개시]
서현의 입꼬리가 천천히, 아주 잔인하게 올라갔다.
“결국 쥐새끼가 덫으로 기어 들어오는구나.”
서현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가볍게 미끄러졌다. 이제, 최태준을 완전히 매장할 마지막 덫을 놓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