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 씨! 큰일 났어요! 스타더스트가 방송국 심의실까지 압박해서, 아스테르 관련 모든 영상 소스를 방송 불가 판정 내리려고 움직이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우리 영상들 전부 인터넷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요!”
안세희가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오며 내지른 비명은 눅눅한 지하 연습실의 공기를 단숨에 얼려 버렸다.
500만 뷰. 방금 전까지 모니터 너머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아스테르의 홍대 버스킹 영상들이 검은색 장막 뒤로 사그라지고 있었다. [스타더스트 뮤직 콘텐츠 협회의 저작권 요청에 의해 재생이 중단된 영상입니다.] 화면마다 박힌 붉은색 경고 문구는 거대 공룡이 중소 기획사의 목덜미를 움켜쥔 채 뱉어내는 비웃음 같았다.
“형…….”
백도훈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제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전율하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강이온 역시 입술을 짓이겼다. 겨우 한 걸음 나아갔다고 생각한 순간, 발밑의 땅바닥을 통째로 뜯어내 버리는 거대 기획사의 횡포였다.
피잉-.
서현의 귓가에 날카로운 이음이 박혔다. 눈앞이 흐려지며 푸른빛의 ‘덕질 계정부’ 인터페이스가 붉은 피처럼 물들어 요동쳤다.
[위험! 실시간 유입 트래픽 89% 급감!] [코어 팬덤 ‘골드’ 불안 지수: 74% 돌파!] [경고: 한서현의 정신력 수치: 31/100 (공황 발작 위험 수위)]
가슴이 턱 막혀왔다. 숨이 불규칙하게 가빠지며 목덜미에 식은땀이 흘렀다. 과거, 스타더스트의 음모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았던 그날의 차가운 밤공기가 환각처럼 뺨을 스쳤다. 결벽증에 가까운 불안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서현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눈이 풀린 듯한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삐딱하게 고개를 꺾었다. 맛이 간 놈처럼 큭큭 웃어젖히는 매니저의 모습에 이온이 깜짝 놀라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매니저님! 괜찮으세요? 형, 숨 쉬어요!”
“괜찮냐고? 아니, 아주 짜릿해서 미칠 것 같은데.”
서현이 이온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모니터 화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최태준 이 대머리 독수리 새끼가 드디어 머리를 좀 썼네. 지들이 가진 유통망이랑 저작권 협회 끈 떨어진 갓끈처럼 쥐어짜서 우리 목줄을 죄겠다? 클래식하잖아. 아주 구태의연하고 쉰내 나는 대기업식 횡포지.”
“서현 씨, 지금 웃음이 나와요? 이의신청이라도 당장 넣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소송이라도 걸어서 영상 복구해야죠!”
세희가 답답하다는 듯 침을 튀기며 다가왔다. 하지만 서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의신청? 법적 검토 거쳐서 영상 한 개 복구되는 데 최소 삼 주야. 그사이에 대중의 도파민은 식어 문드러지고, 우린 잊혀진 망돌이 되겠지. 저놈들이 바라는 게 바로 그 느려터진 법적 공방이라는 늪지대야. 우리가 왜 그 똥통에 제 발로 기어 들어가 줘야 하지?”
서현의 눈빛이 광기로 번뜩였다. 그는 자판을 부술 듯이 두드리며 덕질 계정부의 여론 시각화 장부를 스캔했다. 실시간으로 아스테르의 영상을 보지 못해 발을 구르는 수많은 대중의 욕구, 그리고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불씨처럼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소리가 안 나오면, 소리가 안 나오는 대로 즐기게 만들면 돼.”
“네? 그게 무슨…….”
“세희 씨. 지금 당장 아스테르 공식 계정이랑 팬 네트워크에 공지 올려. 그리고 평소에 우리 영상 리액션하던 유튜버들이랑 틱톡커들한테 DM 싹 돌려.”
서현이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음소거 댄스 챌린지. 그리고 ‘검열당한 아이돌’ 블랙배너 운동이다.”
“블랙배너요?”
“스타더스트가 우리 목소리를 지웠지? 그럼 대중한테 똑똑히 보여주는 거야. 거대 권력이 어떻게 약자의 입을 틀어막는지. 소리 없는 아스테르의 무대 영상에 ‘[검열됨]’이라는 자막만 띄워서 사방에 뿌려. 소리를 듣고 싶으면 대중 지들이 직접 스타더스트 고객센터를 테러하게 만들란 말이야.”
서현의 지시는 거침없었다. 뇌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독설이 비수처럼 꽂혔다.
“우리가 불쌍하게 해명글 올리면 사람들은 ‘아, 억울한가 보다’ 하고 뒤로 가기 눌러. 하지만 ‘너희가 좋아하는 이 힙한 음원과 춤을 대기업 꼰대들이 강제로 뺏어갔어’라고 판을 깔아주면? 눈이 뒤집히는 건 도파민에 중독된 대중이야. 뺏긴 장난감을 되찾으려는 유치원생들처럼 날뛰게 만들 거라고.”
공지는 선동가 한서현의 손끝에서 10분 만에 가공되어 인터넷 전역으로 살포되었다.
[아스테르(ASTER) 공식 입장: 저희의 목소리는 잠시 지워졌지만, 여러분의 눈은 가릴 수 없습니다. #Let_Us_Sing #검열된_아스테르]
이와 함께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는 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 오직 백도훈의 거친 호흡과 강이온의 춤선만이 담긴 15초짜리 쇼츠 영상들이 쏟아졌다. 영상 한가운데에는 붉은색 검열 마크와 함께 ‘Stardust Censored’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반응은 서현의 계산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폭발적이었다.
***
[여성시대] 제목: 야 스타더스트 미친 거 아님? 아스테르 버스킹 영상 다 잘라놓음ㅋㅋㅋ 댓글: - ㅇㅇ 진짜 양아치 대기업 짓거리 오짐;; 지들 신인 띄우려고 중소 돌 영상 저작권 시비 걸어서 다 내리네 - 와 방금 유튜브 보는데 소리 안 나오는 댄스 영상 뜸ㅋㅋㅋ 근데 소리 없어도 도훈이 춤선 미쳤다 진짜;; - 헐 나도 봄! 이거 완전 ‘검열당한 반항아’ 컨셉 같아서 더 힙한데? 스타더스트가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 제대로 해준 듯ㅋㅋㅋ - 2222 오히려 반골 심리 자극 오지게 옴. 음원 사이트에서 아스테르 노래 직접 스밍 돌린다 개빡쳐서 - 얘들아 아스테르 공식 인스타 가봐 블랙배너 프사로 다 바뀜 개멋있음 ㄷㄷ
[디시인사이드 남자 연예인 갤러리] 제목: 아스테르 저작권 블락 사태 요약.jpg 내용: (스타더스트가 저작권 협회 유통망 이용해서 아스테르 게릴라 영상 4천 개 고사시키는 중) 댓글: - 슽다 새끼들 추하다 추해 ㅋㅋㅋ 중소 기획사 하나 죽이려고 아주 발악을 하네 - 근데 아스테르 대응이 진짜 천재적임. 억울하다고 안 짜고 ‘응 검열해봐~ 소리 없이 춤만 춰도 지려~’ 이러면서 쇼츠 올림ㅋㅋㅋ - 솔직히 락스타 간지임. 저항 정신 오졌다. 입덕할 것 같음 - 슽다 주주들 오열 중 ㅋㅋㅋ 브랜드 평판 실시간으로 꼬꾸라지는 중임 지금
***
“후우…….”
서현은 가슴을 옥죄는 공황의 전조를 억누르며 자판을 두드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덕질 계정부를 가동하는 대가는 가혹했다. 정신력 수치가 20대까지 떨어지자 시야가 붉게 흔들렸다.
‘덕심 포인트를 수급해야 해. 안 그러면 여기서 쓰러진다.’
서현은 아스테르 안티 커뮤니티와 코어 팬덤의 소통 창구를 동시에 열었다. 한편으로는 안티들의 비아냥거림에 “너희가 아무리 짖어도 우리 애들 음원 순위는 올라간다, 대가리 깨진 소리 그만하고 가서 스타더스트 주식이나 팔아라”라며 광기 어린 독설로 받아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코어 팬들의 멘탈을 케어하는 주접 멘트를 쏟아냈다.
[매니저_한: 골드 여러분, 거대 공룡이 울부짖는 것은 우리의 빛이 눈부셔 눈이 멀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제아무리 어둠으로 덮으려 해도, 아스테르라는 우주는 이미 팽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촛불은 바람에 꺼지지만, 모닥불은 바람을 만나면 활활 타오르는 법입니다. 우리는 모닥불입니다. 다 불태워 버립시다.]
[시스템: 코어 팬덤의 진심 어린 덕심 포인트가 수급되었습니다!] [정신력 수치가 25% 회복됩니다. (현재 정신력: 56/100)]
조여들던 가슴이 한결 편안해졌다. 서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안경을 고쳐 쓸 때, 옆자리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안세희가 마우스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그를 불렀다.
“서현 씨, 지금이에요. 그 대머리 독수리 놈들 숨통 끊어놓을 물리적 카드, 완성됐어요.”
세희가 품 안에서 낡은 USB 하나를 꺼내 서현의 책상 위에 툭 던졌다.
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2화에서 세희가 PC방을 전전하며 아스테르의 학폭 폭로글을 작성하던 악성 IP 주소와 신상 명세를 최초로 채증했던 바로 그 핵심 데이터였다.
“그때 잡은 IP, 추적 끝내니까 어디로 연결되는지 알아요? 스타더스트 홍보팀 산하의 바이럴 외주 업체 ‘네오 마케팅’의 대리인 김태식이야. 홍대 버스킹 현장에서 정전 사고 일으키려다 나한테 붙잡혔던 그 새끼 맞아요.”
세희의 목소리에는 서릿발 같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이 새끼 신상 명세랑, 스타더스트에서 이놈 개인 계좌로 다이렉트 송금된 정황, 그리고 학폭 가짜 폭로글 원본 작성 시간대랑 일치하는 IP 타임라인까지 전부 매칭 끝냈어요. 법적으로 빼도 박도 못하는 ‘대기업의 중소 돌 학폭 루머 조작 및 현장 테러 공작’ 패키지예요.”
서현이 USB를 손에 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가락을 타고 뇌세포를 깨웠다.
“완벽하네.”
서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최태준, 이 멍청한 새끼. 지가 찌른 칼날이 자기 목줄을 끊으러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서현은 이 데이터를 단순한 ‘학폭 무죄 해명’ 용도로 쓸 생각이 없었다. 해명은 지루하다. 대중은 자극적인 음모론과 거대 권력의 몰락을 원한다.
“이걸로 언론 플레이를 시작한다. 단, 우리가 직접 터뜨리는 게 아냐. ‘학폭 폭로 배후에 거대 기획사가 있다’는 의혹을 유명 IT 유튜버랑 탐사 보도 채널에 익명으로 제보해. 대중이 스스로 ‘스타더스트가 아스테르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구나!’ 하고 대리 분노를 터뜨리게 만들어.”
“이온아, 도훈아.”
서현이 고개를 돌려 연습실 한구석에 서 있던 멤버들을 불렀다. 그들의 눈빛은 이전의 패배감에 젖어 있던 눈빛이 아니었다. 매니저가 온몸으로 대기업의 파도를 막아서며 판을 짜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이들이었다.
“우리가 판은 깔았어. 하지만 결국 대중의 뺨을 때리고 입덕의 쐐기를 박는 건 너희 무대야. 저들이 저작권으로 음원을 막겠다면, 우린 몸뚱이 하나로 증명해야 해. 준비됐어?”
강이온이 단단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님이 우리를 지키려고 흙탕물 속에서 싸우고 계시는데, 저희가 가만히 있을 순 없죠. 보여줄게요. 진짜 음악이 뭔지.”
백도훈 역시 거칠게 땀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하루 20시간이든 24시간이든 상관없어요. 다리 뼈가 부러질 때까지 출 테니까, 판만 키워놔요 형.”
그 순간, 멤버들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스타성이 지하 연습실의 눅눅한 공기를 찢고 번쩍이는 오라(Aura)가 되어 서현의 눈에 비쳤다. 덕질 계정부의 수치들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아스테르 잠재 오라 지수: 120% 돌파! (한계 돌파 상태)]
멤버들은 곧바로 안무 대형을 맞추며 거울 앞으로 향했다. 반주 음악도 나오지 않는 음소거 상태. 오직 서로의 발소리와 거친 호흡 소리만이 지하실을 채웠다.
탁, 타닥, 탁!
백도훈이 선두에서 몸을 날렸다. 소리가 없기에 댄스의 각도와 디테일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그의 춤선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공기를 갈랐고, 메인 보컬 강이온의 절창은 반주가 없는 적막 속에서 더욱 투명하고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거울에 김이 서리고 땀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순간에도 그들의 발걸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갔다.
그들은 진짜 음악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서현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다시 덕질 계정부의 심부층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화면 구석, 붉은색 이상 경고등이 흐릿하게 깜빡이는 영역이 보였다.
[이상 징후 감지: 스타더스트 산하 우회 자금 경로 포착.] [송금처: 홍콩 소재 유령 회사 ‘Starlight Holdings’ -> 국내 마케팅 대행사 ‘네오 바이럴’] [거래 금액: 15억 원 (음원 차트 매크로 조작 및 역바이럴 실행 자금 추정)]
“홍콩이라…….”
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최태준 이 소시오패스 자식이 꼬리를 밟히지 않으려고 해외 유령 회사 계좌까지 동원해 바이럴 자금을 세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현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해당 거래 흔적과 IP 타임라인을 자신의 덕질 계정부 추적 장부에 고정 연동해 두었다.
‘이 돈줄이 끊기는 날이 네놈의 진짜 제삿날이다, 최태준.’
한편, 인터넷 공간은 이미 스타더스트의 ‘검열 횡포’로 인해 완전히 발칵 뒤집혀 있었다.
소리 없는 블랙배너 챌린지는 반골 기질이 강한 MZ세대 사이에서 일종의 ‘힙한 저항 문화’로 자리 잡았고, 스타더스트의 공식 소셜 미디어 계정은 분노한 대중의 항의 댓글로 마비되었다. 여기에 세희가 흘린 ‘학폭 폭로 조작 배후설’이 대형 유튜버들을 통해 공론화되기 시작하자, 스타더스트의 브랜드 평판 지수는 그야말로 수직 낙하했다.
[스타더스트 엔터테인먼트 실시간 주가: -7.8% 급락] [대기업 횡포 프레임 여론 점유율: 82%]
완벽한 역전극이었다. 대기업의 권력을 약점 삼아, 그들이 휘두른 칼날을 그대로 제 발등에 찍게 만든 고도의 미디어 유도 심문이 먹혀든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서현의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화면에 떠오른 번호는 발신자 정보 없음. 하지만 서현의 촉이 말해주고 있었다. 단순한 장난전화가 아니었다.
서현이 전화를 받아 귀에 가져다 대자, 수화기 너머로 담배 연기를 깊게 뿜어내는 듯한 거친 숨소리와 함께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한서현 매니저 맞나?
“누구시죠.”
- SBS <뮤직 챔버> 안형준 PD라고 하네.
안형준. 지상파 방송사에서 타협 없는 연출과 반골 성향으로 유명한, 음악 방송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메이저 음악 프로의 수장이었다. 스타더스트의 방송 출연 차단 카르텔마저 무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 지금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그 ‘소리 없는 전쟁’ 아주 흥미롭게 보고 있어. 대기업 놈들 턱주가리를 그렇게 힙하게 날릴 줄은 몰랐거든. 지금 당장 여의도로 오지. 아스테르의 진짜 목소리를 내 프로그램에서 들려줄 기회를 주지.
서현의 입꼬리가 천천히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막혀 있던 지상파 컴백 출전권의 문이, 마침내 강제로 뜯겨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