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탁, 타드득!

가솔린 발전기 너머로 새파란 불꽃이 튀었다.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홍대 야외 광장을 가득 채우던 백도훈의 거친 비트가 비명처럼 뚝 끊겼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육중한 드럼 베이스도, 무대를 비추던 할로겐 조명도 일시에 생명을 잃었다.

암전(暗電).

빛 한 점 없는 어둠이 광장을 집어삼켰다. 수백 명의 인파가 만들어내던 웅성거림이 싸늘한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 야유를 터트리려 숨을 들이마시는 찰나였다.

서현의 눈은 이미 어둠 속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뇌세포 하나하나가 극도로 맑아지는 감각을 느꼈다. 공황장애의 전조 증상으로 차오르는 호흡곤란을, 그는 특유의 광기 어린 집착으로 짓눌러 버렸다.

‘왔구나, 대머리 독수리의 하수인 새끼들.’

서현은 망설임 없이 무대 뒤편, 가솔린 발전기가 설치된 골목길로 몸을 날렸다. 어둠 속에서 허둥지둥 도망치려던 가죽 재킷의 사내 중 한 명의 덜미를 낚아챘다.

억센 손길로 목덜미를 움켜쥐자,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윽! 뭐야, 이거 놔!” “놓으라고? 야, 이 개만도 못한 손가락을 놀려놓고 어딜 기어가려고?”

서현이 사내의 어깨를 벽으로 거칠게 밀어붙였다. 쿵, 하는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사내의 손에서 펜치와 전선 절단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다.

서현은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화면의 차가운 파란 불빛이 사내의 일그러진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었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찌질한 얼굴. 스타더스트 엔터테인먼트 홍보팀의 현장 대리인이자, 온라인에서 아스테르의 조직적 학폭 루머를 퍼트리던 실행사 직원, 김태식이었다.

“너, 너 한서현 매니저……?” “어, 네 할아버지다. 태식아.”

서현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스마트폰 화면을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푸른빛의 폴더 하나가 열려 있었다. 아스테르의 코어 팬이자 천재 해커인 안세희가 PC방을 샅샅이 뒤져 채증해 낸, 아스테르 학폭 최초 폭로글의 악성 IP 주소와 가입자 신상 명세서였다.

“이거 네 IP 맞지? 스타더스트에서 돈 받고 골방에서 키보드 두드리던 쓰레기 계정. 그리고 지금 네 손에 들려 있던 저 절단기.”

서현은 스마트폰의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 렌즈가 김태식의 얼굴과 바닥에 떨어진 절단기, 그리고 반쯤 잘려 나간 발전기 전선을 한 화면에 담았다.

“스타더스트 최태준 실장이 시키더냐? 대기업 신인 쇼케이스 망칠까 봐, 지나가던 중소돌 무대 전선 끊으라고? 이거 특수재물손괴에 업무방해, 게다가 이 대규모 인파 속에서 대형 사고 유발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상해 미수까지 엮을 수 있는데. 감당 가능해?” “그, 그게 무슨…… 난 그냥 위에서 시켜서……!” “입 닥쳐. 짖는 건 감방 가서 간수들 앞에서 해라.”

서현의 서늘하고 기괴한 독설이 김태식의 귓전을 때렸다. 사내의 눈동자가 공포로 거칠게 흔들렸다. 대기업의 비호 아래 기고만장하던 용역 직원은, 눈앞에서 광기를 뿜어내는 서현의 서슬 퍼런 기세에 완전히 압도당해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무대 쪽에서 관객들의 동요가 시작됐다.

“아 뭐야? 정전이야?” “스타더스트 애들 쇼케이스는 불 번쩍번쩍하던데, 얘네는 발전기도 싸구려 쓰나 봐.” “에이, 가자. 볼 것도 없네.”

돌아서려는 발걸음들. 웅성거림이 실망으로 바뀌어 흩어지려는 찰나, 서현이 무대 위의 이온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강이온!”

어둠 속에서도 이온의 맑은 눈동자가 서현이 있는 곳을 정확히 찾아냈다. 서현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떨림을 담아 외쳤다.

“불러! 반주 따위 개나 주라고 해! 네 목소리가 악기잖아!”

그 소리는 무대 위 이온의 가슴을 관통했다.

이온은 침을 삼켰다. 마이크는 전원이 꺼져 먹통이었고, 주변은 오직 홍대 거리의 가로등 불빛 몇 개에 의존한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이온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서현의 독설 섞인 지독한 트레이닝 속에서 피어난 자신의 목소리를 믿었다.

이온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마이크 없이, 오직 자신의 목청만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 어두운 밤하늘에 가려진 별이라도…… ♬”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미성이 암흑이 깔린 홍대 야외 광장에 울려 퍼졌다.

반주도, 마이크 필터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보컬. 그러나 이온의 목소리는 광장의 거친 소음을 단숨에 제압할 만큼 압도적인 성량과 감성을 품고 있었다. 마치 웅장한 대성당 안에서 울려 퍼지는 독창처럼, 그의 음색은 관객들의 귀가 아니라 심장으로 곧장 파고들었다.

“어……? 대박.” “마이크도 안 썼는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잘 들려?”

돌아서던 관객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였다. 맨 앞줄에 서 있던 한 여학생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플래시 기능을 켰다. 하얗고 눈부신 작은 불빛 하나가 어둠을 밝혔다.

이어서 옆 사람도, 그 뒷 사람도, 그리고 광장 전체로 불빛이 번져나갔다.

하나, 둘, 수십 개, 그리고 수백 개의 스마트폰 플래시가 일제히 허공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

마치 거대한 우주의 은하수가 홍대 한복판으로 내려앉은 듯한 장관이었다. 수백 개의 인공 별빛이 어둠에 잠긴 아스테르 멤버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드럼 비트 대신 관객들이 손바닥을 부딪치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짝, 짝, 짝.

“♪ 너의 눈빛이 나를 비출 때, 나는 비로소 빛나니까…… ♬”

이온의 보컬에 백도훈의 거칠고 나지막한 저음 랩이 화음을 얹었다. 도훈의 랩은 드럼 비트 없이 오직 관객들의 박수 소리 위에서 춤을 추었다.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가 스마트폰 불빛 속에서 부서져 내렸다.

현장의 온도가 급격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서현의 눈앞에 푸른빛의 홀로그램 인터페이스가 화려하게 명멸했다.

[시스템: ‘덕질 계정부(Fandom Ledger)’ 가동!] [실시간 현장 여론 분석 중……] [홍대 광장 관객 수: 420명] [여론 온도: 50°C -> 85°C -> 110°C (임계치 돌파! 오버히트!)] [실시간 입덕 이탈률: 0.01%] [평균 입덕 유발율: 99.8% (LOCKED)]

[알림: 대중의 도파민 수치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정전 사고를 ‘로맨틱한 우주 콘셉트’로 역발상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신력 수치 +30 회복!]

뇌리를 스치는 시스템의 쾌감에 서현은 전율했다.

최태준이 파놓은 비열한 함정이, 오히려 아스테르를 가장 눈부시게 빛내주는 최고의 우주로 변모한 순간이었다. 인위적인 조명과 기계음으로 도배된 스타더스트의 쇼케이스장 저편에서, 관객들이 대거 이쪽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야! 스타더스트 쇼케이스보다 여기가 대박이야! 빨리 와!” “미쳤다, 이건 진짜 역사적인 무대다!”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이 장관을 영상으로 담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실시간으로 중계되던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는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

[여성시대 - 쩌리방] 제목: 지금 홍대 정전 났는데 아스테르 라이브 미쳤음;;;; (동영상 첨부) 조회수: 124,902 | 추천: 3,420

- 와 미친 거 아님? 반주도 없고 마이크도 없는데 목소리가 광장 꽉 채움;; - 댓쓴이인데 나 지금 현장임ㅋㅋㅋ 스타더스트가 기계 고장 낸 거라는데 아스테르 애들 굴하지 않고 쌩목으로 라이브 때림. 관객들이 폰 플래시 켜줘서 완전 은하수 됨ㅠㅠㅠ 눈물 흘리면서 박수 치는 중 - ㄴ 헐 스타더스트가 일부러 그런 거라고? 존나 추하다 대기업 횡포 오지네 - 이온이 보컬 음색 실화냐? 귀에 고막 꿀 바른 줄 알았음. 도훈이 랩도 비트 없이 쌩으로 하는데 딕션 개지림 - 이게 진짜 실력파 아이돌이지 립싱크 떡칠한 대기업 신인들이랑 차원이 다름ㅋㅋㅋ - 오늘부터 아스테르 내 통장 바친다 입덕 완.

[더쿠 - 스퀘어] 제목: [실시간] 역대급 레전드 찍은 중소돌 홍대 버스킹 촛불 라이브..jpg - 아... 온몸에 소름 돋음. 스마트폰 플래시 켜진 거 보니까 무슨 올림픽 체조경기장 단독 콘서트인 줄 알았어ㅋㅋㅋ - 무대 정전되자마자 매니저가 기선제압하고 애들 노래 시켰다는데 매니저 일 잘하네ㅇㅇ - 억울하다고 질질 짜는 해명문보다 이 무대 하나가 오천만 배 나음. 힙함 그 자체다. - 아스테르 학폭이랑 마약 찌라시 억까인 거 진작 밝혀졌는데, 아직도 방해 공작하는 세력들 추하다 추해~ - ㄹㅇ 솔직히 스타더스트가 견제하는 거 투명하게 다 보임ㅋㅋㅋ 아스테르 흥하자!!!

***

무대가 끝나고, 광장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가득 찼다.

스마트폰의 은하수 속에서 아스테르 멤버들은 서로를 끌어안았고, 관객들은 앙코르를 연호했다. 최태준은 저 멀리 천막 뒤에서 얼굴이 흙빛이 된 채 비서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서현은 덜덜 떨며 구석에 처박혀 있는 김태식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태식아. 이 영상, 그리고 안세희가 털어낸 네 IP 자료들. 내일부터 어떻게 쓰이는지 팝콘이나 사서 지켜봐라.” “저, 저기…… 살려주세요. 전 그냥 시켜서 한 거예요!” “살려주는 건 법원 판사님한테 빌고. 아, 참. 최태준한테 전해라. 덕분에 우리 애들 우주 대스타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서현은 김태식을 쓰레기 분리수거하듯 밀쳐두고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입가에는 광기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위기관리 전문가로서, 그리고 아스테르의 구원자로 보낸 첫 번째 대형 승부처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날 밤, 홍대 버스킹의 ‘은하수 라이브’ 영상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을 타고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조회수는 무서운 속도로 치솟았다. 10만, 50만, 100만…… 그리고 사흘 만에 누적 조회수 500만 회를 돌파하며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위를 차지했다. 지상파 방송 한 번 출연하지 않고 오직 대중의 자발적인 도파민과 반골 심리만으로 일궈낸 기적이었다.

망원동 지하 2층 연습실.

서현은 모니터 수십 대를 켜놓고 여론의 추이를 감상하고 있었다. 이온과 도훈, 그리고 다른 멤버들은 팬클럽 가입자 수가 초 단위로 폭증하는 화면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 진짜 우리가 해낸 거예요?” 도훈이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가 한 게 아냐.” 서현이 삐딱하게 앉아 턱을 괴며 대답했다. “스타더스트 대머리 독수리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거지. 원래 악플러들이 던지는 돌멩이는 가장 단단한 성벽의 벽돌이 되는 법이거든.”

[시스템: 아스테르 공식 팬클럽 ‘골드’ 가입자 수 5만 명 돌파!] [덕질 계정부 자산 가치: 500% 폭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대로 다음 단계인 케이블 방송 출연 계약만 성사시키면, 스타더스트의 카르텔을 완전히 뚫어버릴 수 있는 탄탄대로가 열릴 터였다.

바로 그 순간.

서현의 눈앞에 붉은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피잉-!

귀를 찢는 듯한 이음과 함께, 덕질 계정부의 홀로그램 인터페이스가 붉은 피처럼 물들었다.

[위험! 위험! 대규모 여론 차단 공작 감지!] [스타더스트 산하 대리 단체 및 저작권 대행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경고: 유튜브 및 SNS에 업로드된 아스테르의 ‘홍대 은하수 라이브’ 관련 영상 4,200여 개에 대해 ‘저작권 침해 및 무단 복제’ 가처분 신청이 동시다발적으로 등록되고 있습니다!]

“……뭐?”

서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화면을 확인해 보니, 방금 전까지 500만 뷰를 기록하던 메인 입덕 영상들의 화면이 차례대로 어둡게 변하더니 문구가 떠올랐다.

[스타더스트 뮤직 콘텐츠 협회의 저작권 요청에 의해 재생이 중단된 영상입니다.]

자신들이 부른 노래의 반주음원 소유권을 빌미로, 스타더스트가 유통망을 이용해 전방위적인 ‘저작권 블로킹’을 걸어버린 것이다. 영상들이 순식간에 블라인드 처리되며 유입 경로가 문자 그대로 ‘고사’당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연습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안세희가 사색이 된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서현 씨! 큰일 났어요! 스타더스트가 방송국 심의실까지 압박해서, 아스테르 관련 모든 영상 소스를 방송 불가 판정 내리려고 움직이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우리 영상들 전부 인터넷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요!”

완벽한 승리의 도취감 뒤로, 더 거대하고 음습한 대기업의 수작이 아스테르의 목을 죄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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