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아스테르 백도훈 마약."

세희의 손가락이 가리킨 모니터 화면 위로 핏빛 글씨가 선명하게 박혔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3위까지가 단 5분 만에 아스테르와 마약이라는 단어로 도배되었다. 학폭 루머를 힙한 유희용 밈으로 돌려세우며 간신히 인공호흡기를 붙인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 안 했어. 진짜 아니라고……!"

백도훈의 주먹이 하얗게 뼈를 드러내며 떨렸다. 거친 반항아 같은 겉모습 뒤에 숨겨진 소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공포로 물들었다. 이온이 다급하게 도훈의 어깨를 감싸 안았지만, 쏟아지는 스마트폰 알림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서현의 안구 전면에 푸른 빛의 홀로그램 인터페이스가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강제로 떠올랐다.

--- [덕질 계정부(Fandom Ledger) 가동] * 평판 오염도: 98.7% (위험 단계: 파멸) * 여론 온도: 영하 52℃ (여론 동결 상태) * 코어 팬 이탈 예측률: 84.2% * 안티 유입 속도: 초당 450명 * 소모될 정신력 수치: -45 (현재 정신력: 55/100) ---

머릿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뇌리를 덮쳤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며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공황장애의 전조 증상이었다. 서현은 셔츠 깃을 거칠게 풀어헤치며 쓰라린 침을 삼켰다. 여기서 무너지면 끝장이다. 저 청담동 펜트하우스에서 비웃고 있을 최태준의 면상을 짓밟아 버리기 전까지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었다.

"매니저님, 어떻게 해요? 공식 해명서라도 써서 올릴까요? 아니면 형사 고소 공지라도 바로……."

세희가 울먹이며 자판 위에서 손을 떨었다.

"해명서?"

서현이 낮게 읊조렸다. 비틀린 미소가 입꼬리에 걸렸다. 눈빛에는 이성을 가장한 광기가 번득이고 있었다.

"누가 그 지루하고 구구절절한 종이 쪼가리를 읽어 준답니까? 대중은 진실 따위엔 관심 없어. 그들이 원하는 건 오직 자극적인 파멸과 도파민뿐이지. 스타더스트가 우리에게 똥물을 던졌다면, 우리는 그 똥물을 받아다가 저 새끼들 주둥이에 정수기로 꽂아 넣어 줘야지."

"예, 예?"

세희가 침을 삼켰다. 이온 역시 멍한 눈으로 서현을 바라보았다.

"도훈아."

서현이 도훈의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도훈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서현이 도훈의 턱을 거칠게 잡아 올려 자신과 눈을 맞추게 했다.

"너 약 했어?"

"……안 했어요. 절대."

"그럼 됐어. 억울하면 질질 짜지 말고, 네 몸뚱이로 증명해."

서현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다이얼을 눌렀다. 망설임 없는 손가락 움직임이었다. 신호음이 단 세 번 울린 뒤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 예, 마포경찰서 마약수사과입니다.

"안녕하십니까. LS뮤직의 아스테르 담당 매니저 한서현입니다. 지금 인터넷에 돌고 있는 저희 멤버 백도훈의 마약 투약 의혹과 관련해, 자진해서 긴급 간이 검사 및 모발 채취를 요청하고자 연락드렸습니다. 지금 당장 망원동 연습실로 수사관 두 분만 파견해 주십시오.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습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당황한 듯한 침묵이 흐른다. 연예 기획사가 마약 의혹이 터지자마자 경찰을 직접 호출하는 경우는 전무후무했다.

- 아…… 자진 검사요? 절차상 임의동행이나 내사 단계가 아니라 직접 오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기자들 대동하지 마시고, 공무 수행용 검사 키트와 밀봉 봉투만 챙겨서 10분 내로 와 주십시오. 거부하시면 저희가 직접 경찰서 앞마당에서 라이브 방송 켜고 대기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서현이 세희를 돌아보았다.

"세희 씨, 지금 당장 아스테르 공식 유튜브랑 SNS 계정으로 실시간 스트리밍 준비해. 제목은 '아스테르 백도훈 마약 찌라시 관련 실시간 검증 라이브'로 간다."

"미, 미쳤어요?! 마약 검사를 라이브로 송출한다고요? 만에 하나 오류라도 나면……!"

"오류 안 나. 진짜 안 했으면 음성이 나오는 게 과학이야. 그리고 대중은 이 생생한 날것의 쇼에 미쳐버릴 거다."

서현의 목소리에는 확신을 넘어선 지독한 가학성이 서려 있었다. 백도훈은 멍하니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서현의 눈에 서린 기괴할 정도의 독기를 발견했다. 도훈의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전율이 일었다. 억울함에 짓눌려 있던 반항심이 서서히 불꽃으로 변해 눈동자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해요. 까짓거 보여주면 되잖아요."

도훈이 이채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온이 그런 도훈의 손을 꽉 잡으며 서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님을 믿을게요. 도훈이는 결백하니까요."

"믿지 마. 난 너희를 구원하러 온 천사가 아니라, 저 새끼들 모가지를 따러 온 사냥꾼이니까."

서현이 차갑게 대꾸하며 카메라 거치대를 조정했다.

정확히 12분 뒤, 망원동 지하 연습실의 낡은 철문이 열리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경찰관 두 명이 들어섰다. 그들의 손에는 마약 간이 검사 키트와 파란색 모발 채취용 봉투가 들려 있었다.

"저기, 정말로 이걸 방송으로 내보내겠다는 겁니까?"

중년의 형사가 카메라 장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법적으로 문제 될 거 없잖습니까? 피의자 인권 침해도 아니고 본인이 자발적으로 동의한 검사 과정인데요. 오히려 공정한 공권력의 집행을 국민에게 똑똑히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겁니다."

서현이 세희에게 턱짓했다.

"송출 시작해."

* * *

[LIVE] 아스테르 백도훈 마약 의혹 관련 실시간 검증 라이브

방송이 켜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악플러들과 호기심에 가득 찬 누리꾼들이 무서운 속도로 유입되었다. 시청자 수는 순식간에 5천 명을 돌파하더니, 1만 명, 3만 명을 향해 수직 상승했다. 화면 오른쪽의 채팅창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 ㅋㅋㅋ 미친 새끼들 진짜 라이브를 켰네? - 멘탈 보소 ㅋㅋㅋ 이거 마약 검사 하는 척 시간 끌다가 튀려는 수법 아님? - 백도훈 눈빛 보니까 백프로다. 동공 풀린 거 안 보임? - LS뮤직 기획사 사장 정신 나갔냐? 이걸 왜 라이브로 해 ㅋㅋㅋ 자폭 방송 개꿀잼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백도훈의 얼굴이 화면 가득 잡혔다. 도훈은 평소의 무뚝뚝함을 던져버리고, 오만할 정도로 당당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벼운 무대 공포증으로 늘 카메라를 피하던 소년이 아니었다. 서현의 독설이 도훈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오기를 완전히 깨워버린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아스테르 백도훈입니다. 이태원 근처는 가본 적도 없고, 마약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못 해봤는데 실검에 제 이름이 떠 있더군요. 억울하냐고요? 아뇨, 전혀요. 오히려 잘됐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제 몸뚱이로 직접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도훈의 거침없는 어조에 채팅창의 흐름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여기 마포경찰서 마약수사과 수사관님 두 분 오셨습니다."

카메라 앵글이 넓어지며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의 모습이 담겼다. 경찰관의 공무원증과 들고 있는 미개봉 상태의 소변 검사 키트가 클로즈업되었다.

"조작 시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키트 개봉부터 시약 반응까지 단 일초의 편집도 없이 날것 그대로 원테이크로 송출합니다. 수사관님, 진행해 주시죠."

서현의 지시에 따라 형사가 카메라 앞에서 밀봉된 키트를 뜯었다.

"본 검사는 소변을 통한 5종 마약 간이 스크리닝 검사입니다. 피검사자 백도훈 군은 수사관 동행하에 화장실에서 소변을 채취해 오겠습니다. 카메라는 화장실 문 앞을 계속 비추고 있겠습니다."

형사 한 명과 함께 화장실로 향하는 도훈의 뒷모습이 비쳐졌다. 채팅창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 와 진짜 실시간으로 하네 미쳤다 ㅋㅋㅋㅋ - 이거 음성 나오면 찌라시 쓴 기자 새끼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 - 스타더스트 주가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ㅋㅋㅋ - 설마 오줌에 물 타서 나오는 거 아니겠지? 형사가 같이 들어갔잖아 바보들아 ㅋㅋㅋ

잠시 후, 화장실 문이 열리고 도훈이 소변이 담긴 컵을 들고 나왔다. 형사의 삼엄한 감시 하에 컵은 그대로 카메라 앞 테이블에 놓였다.

형사가 간이 검사 키트의 스포이트를 이용해 소변을 빨아들인 뒤, 검사창에 세 방울을 떨어뜨렸다.

뚝. 뚝. 뚝.

망원동 지하 연습실에는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 카메라 줌이 키트의 하얀 플라스틱 표면을 바짝 당겨 비췄다. 붉은색 시약이 필터를 타고 서서히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약 간이 검사 키트는 두 줄이 나와야 '음성(정상)'이고, 한 줄만 나오면 '양성(마약 반응 있음)'이다.

서현의 안구 일면에 다시 한번 덕질 계정부의 푸른 인터페이스가 선명하게 켜졌다.

--- [여론 전환 타이밍 계산 완료] * 타깃 포인트: 시약 선이 완전히 고정되는 순간 (앞으로 5초) * 추천 주접 바이럴 키워드: #결백의_두줄 #도훈이는_청정구역 #쉬해서_증명하는_아이돌 * 기대 효과: 안티 팬의 70% 이상이 즉각적인 인지 부조화 및 코어 팬 전환 프로세스 진입 ---

'지금이다.'

서현이 눈을 빛냈다.

키트의 대조선(C)에 붉은 선 하나가 선명하게 그어졌다. 그리고 3초 뒤, 테스트선(T) 위로 또 하나의 붉은 선이 굵고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완벽한 두 줄.

음성이었다.

"보시다시피, 필로폰, 코카인, 대마를 포함한 모든 항목에서 음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형사의 건조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8만 명의 귀에 꽂혔다.

"이어서 모발 채취도 진행하겠습니다."

도훈은 스스로 가위를 들어 자신의 머리카락 한 움큼을 싹둑 잘라냈다. 그리고 그것을 형사가 내민 파란색 증거물 봉투에 밀어 넣고, 직접 봉인 스티커 위에 서명했다.

"국과수 정밀 감정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오겠지만, 이미 간이 검사로 대답은 끝난 것 같네요."

도훈이 카메라 렌즈를 꿰뚫어 볼 듯 강렬하게 노려보며 픽 웃었다.

"이태원 클럽에서 저 보셨다는 분들, 그리고 확인도 안 하고 단독 기사 쓰신 기자님들. 제 모발 국과수 보내는 김에 그쪽들 뇌 검사도 같이 맡겨보는 건 어떨까요? 약은 내가 아니라 그쪽들이 하신 것 같은데."

도훈의 날것 그대로의 거침없는 독설이 라이브 화면을 찢고 대중의 도파민을 직격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우는 아이돌이 아닌, 온몸을 던져 루머를 찢어발기는 반골의 탄생이었다.

그 순간, 서현의 눈앞에서 푸른색 장부가 미친 듯이 회전하며 숫자들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 [덕질 계정부(Fandom Ledger) 수치 변동] * 평판 신뢰도 수치: 12,000 → 1,450,000 (초고속 상승!) * 실시간 안티 이탈 수: 32,400명 (전환율 92%) * '코어 팬' 신규 등록: +42,000명 * 정신력 수치 회복: +40 (현재 정신력: 95/100) ---

머리를 짓누르던 극심한 압박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전율과도 같은 쾌감이 가득 찼다. 서현은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방송이 종료되자마자, 주요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

[여성시대] 아스테르 백도훈 마약 라이브 요약 ㅋㅋㅋ 진짜 미친놈인줄 - 작성자: 폰케이스이뻐

방금 라이브 방송 켜서 마포경찰서 마약수사과 형사들 앞에서 오줌 싸고(진짜 쌈) 간이 키트 두 줄 인증함 ㅋㅋㅋㅋㅋ 머리카락도 지가 가위로 뭉텅이 잘라내서 국과수 보냄 ㅋㅋㅋ 마지막에 기자들 뇌 검사나 해보라고 꼽주는데 솔직히 개치임;;; 진짜 억까당한 거 존나 투명하게 증명하네 ㅋㅋㅋ

댓글: - ㄴ 헐 대박 ㅋㅋㅋ 진짜 억울했나 봐 - ㄴ 웅 ㅋㅋㅋ 형사들 표정 어안이 벙벙한 거 개웃김 - ㄴ 야 근데 백도훈 눈빛 장난 아니다... 나 방금 입덕한 듯? - ㄴ 222 요즘 세상에 저렇게 정면 돌파하는 돌이 어딨냐 존나 힙해 - ㄴ 찌라시 쓴 기자 새끼들 고소장 배달 준비해야 할 듯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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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쿠] 현재 실시간 난리 난 아스테르 인스타 스토리 상황.jpg - 작성자: 됴훈됴훈

[이미지: 백도훈이 마약 음성 키트 들고 윙크하고 있는 사진] 문구: "깨끗해요. 무농약 유기농 아이돌 백도훈입니다. ^^"

미치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학폭 루머 때는 일진 밈으로 받아치더니 마약 루머 터지니까 유기농 아이돌 드립 침 ㅋㅋㅋㅋㅋ 여기 마케팅 담당자 누구냐? 진짜 여론 가지고 놀 줄 아는 천재임이 분명함.

댓글: - ㄴ 유기농 아이돌 ㅋㅋㅋㅋㅋ 미치겠다 진짜 - ㄴ 아 놔 방금 유행어 예감 ㅋㅋㅋ - ㄴ 이 기획사 일 존나 잘하네 억울하게 질질 짜는 것보다 백배 나음 - ㄴ 스타더스트 엿 먹이는 거 개사이다 ㅋㅋㅋ 역바이럴 한 놈들 다 뒤져라

***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요!"

세희가 모니터를 안아 들 기세로 환호성을 질렀다.

"실시간 시청자 수 최고 12만 명 찍었어요! 공식 유튜브 구독자 수도 두 배 넘게 뛰었어요! 안티들이 전부 영업글 쓰고 자빠졌다고요!"

이온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도훈의 등을 두드렸고, 도훈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서현의 눈치를 살폈다.

"잘했어, 유기농 도훈 군. 카메라 공포증 있다더니 렌즈 씹어 먹을 기세던데?"

서현의 비아냥 섞인 칭찬에 도훈이 픽 웃었다.

"매니저님이 판 깔아주셨잖아요. 이왕 까는 거 제대로 엎어버려야죠."

"그래. 이게 바로 우리의 방식이야. 진흙탕 싸움에서 고상하게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건 멍청한 짓이지. 차라리 진흙을 무기로 삼아 상대의 눈구멍에 쑤셔 박아버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니까."

서현이 냉혹하게 중얼거렸다. 최태준은 지금쯤 청담동 펜트하우스에서 이 라이브 방송을 보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완벽한 덫이 오히려 아스테르를 '가장 힙하고 투명한 아이돌'로 띄워주는 로켓 엔진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서현은 방심하지 않았다. 스타더스트의 총책인 최태준이 이 정도로 멈출 위인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똑, 똑.

망원동 지하 연습실의 낡은 철문 위로 건조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형사들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세희와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가로 향했다.

철문이 천천히 열리며, 검은색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가슴팍에는 스타더스트 엔터테인먼트의 로고가 새겨진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최태준의 전속 비서였다.

사내의 손에는 붉은색 봉인 인장이 찍힌 싸늘한 등기 우편 봉투가 들려 있었다.

"LS뮤직 한서현 매니저님 되십니까?"

사내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렇습니다만."

서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최태준 부사장님께서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사내가 다가와 서현의 손에 등기 봉투를 쥐여주었다. 봉투의 겉면에는 굵은 서체로 단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스테르 전속 계약 효력 정지 및 방송 출연 금지 처분 가처분 신청서]

서현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최태준은 여론 싸움에서 밀리자, 거대 기획사의 막강한 법적 자본을 동원해 아스테르의 손발을 완전히 묶어버리려는 법적 도살검을 뽑아 든 것이다.

"부사장님께서 전해 달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비서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서현의 귀에 속삭였다.

"인터넷 놀이터에서 아무리 재롱을 떨어봐야, 진짜 어른들의 싸움판에서는 종이 한 장이면 숨통을 끊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예정된 컴백 방송, 기대하겠습니다."

도발이었다.

공들여 쌓아 올린 여론의 파도가 거대한 법적 장벽 앞에 가로막히는 순간이었다. 서현의 손아귀 속에서 등기 봉투가 거칠게 구겨졌다. 눈동자 속에서 푸른 광기가 다시 한번 맹렬하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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