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라 참기 힘드네, 한세아."
귓바퀴를 타고 내려온 도현의 목소리는 고막을 직접 긁는 것처럼 생생했다. 세아는 목덜미로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공황 발작의 잔여물 때문이 아니었다. 등 뒤로 서서히 멀어지는 도현의 넓은 어깨를 보며, 세아는 붉어진 귀 끝을 감추려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미쳤어, 강도현. 여기가 어디라고.'
사무실 복도 한복판이었다. 지나가던 계약직 직원이 힐끗 눈길을 주자, 세아는 순식간에 얼굴에서 감정을 지우고 냉정한 포커페이스를 장착했다. 쿵쾅거리는 심장은 결재판으로 꾹 눌러 가렸다. 15년 지기 소꿉친구라는 껍데기 아래 묻어둔 불온한 텐션이, 사내 정치라는 시퍼런 칼날 위에서 위태롭게 춤을 추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엘리시안 그룹 사옥의 분위기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부터 끈질기게 웅성거리던 소음은 탕비실 커피 머신 앞에서 극에 달했다. 세아는 에스프레소 샷이 유독 느리게 떨어지는 액정을 무표정하게 응시했다.
"한 팀장님, 어제 상무실 결재 건으로 늦게까지 남으셨다면서요? 분위기 어땠어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팀의 마당발인 김 대리가 슬그머니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세아는 억지 미소를 입가에 매달며 잔을 들어 올렸다.
"어떻긴요. 예산안 깎으려는 상사님과 한 푼이라도 더 지키려는 노비의 피 튀기는 사투였죠. 대리님, 오늘 립스틱 컬러 잘 어울리시네요. 어디 제품이에요?"
"앗, 정말요? 이거 이번에 새로 나온 컬러인데……."
화제를 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까지 말리지는 못했다. 자리에 앉아 PC를 켜자마자 사내 메신저가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깜빡였다.
[민채원 과장: 한 팀장, 지금 전무실 라인 애들 움직임이 이상해. 조 전무가 아침부터 검찰 쪽 인맥이랑 감사팀장 불러서 회의실 들어갔어. 타깃은 강 상무님인 것 같은데.]
세아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조인석 전무. 겉으로는 허허실실 웃으며 부하 직원에게 따뜻한 보이차를 대접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상대의 약점을 쥐고 흔들어 뼈까지 발라 먹는 뱀 같은 인간이었다. 그가 칼을 뽑아 들었다면, 그것은 단순한 으름장이 아닐 터였다.
'결국 그 약인가.'
세아의 뇌리에 1화에서 상무실 소파 밑으로 굴러 들어갔던 회색 약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도현의 가방 틈새에서 떨어졌던, 라벨조차 붙어 있지 않은 신경안정제. 15년 전 은하백화점 참사의 끔찍한 기억이 엄습할 때마다 도현이 입안에 털어 넣던 노란색 캡슐이었다.
그 약은 국내 정식 처방 경로를 거치지 않은, 해외에서 특수 제작된 정제형 고단위 도파민 안정제였다. 법적으로 꼬투리를 잡으려면 얼마든지 '향정신성 불법 약물 임의 보관'이라는 무시무시한 프레임으로 엮을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다.
"한 팀장님, 상무실 쪽에 지금 감사팀 들이닥쳤답니다!"
팀원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세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옥 18층 상무 집무실 복도는 이미 구경꾼들과 감사팀 직원들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강 상무님,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 임원실 내 불법 향정신성 의약품 보관 및 오남용에 대한 구체적인 내부 고발이 접수되었습니다."
조인석 전무의 사주를 받은 감사팀장이 빳빳하게 인쇄된 수색 협조 요청서를 도현의 코앞에 들이밀고 있었다. 그 뒤편에는 조 전무가 거느린 검찰 조력자라는 사내 법무팀 자문위원이 팔짱을 낀 채 거만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도현은 책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오만하고 차가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세아는 볼 수 있었다.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은 도현의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동시에 세아의 명치끝이 짓눌리는 듯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100미터 이내에서 발동하는 '트라우마 싱크'의 경고음이었다. 도현이 지금 극심한 스트레스로 공황의 경계에 서 있다는 증거였다.
"강 상무, 몸이 많이 고되다는 소문은 들었네만 사내에서 불법 약물까지 손을 댔을 줄이야. 참 실망스럽군."
조인석 전무가 어느새 복도 끝에서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위선적인 가면이 씌어 있었다.
"오해를 풀고 싶다면 지금 당장 개인 금고와 서랍을 열어 약통의 성분을 확인시켜 주면 되네. 아주 간단한 일이지 않나?"
도현의 턱끝이 팽팽하게 굳어졌다. 그가 입을 열지 않자, 조인석의 조력자들이 도현의 서랍을 강제로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사내 규정상 감사팀의 수색을 거부하면 즉시 직무 정지 처분이 내려진다. 열어도 파멸, 열지 않아도 파멸인 정교한 외통수였다.
"찾으시는 게 이 약통입니까?"
정적을 깨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뒤편으로 쏠렸다. 세아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팀의 서류철을 품에 안은 채, 군더더기 없는 걸음걸이로 감사팀장과 조인석 전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의 손끝에는 불투명한 회색 약통이 들려 있었다.
도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인석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한 팀장, 자네가 그걸 왜 가지고 있지? 강 상무의 약을 은닉해 주려던 건가?"
"은닉이라니요, 전무님."
세아는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약통의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바닥에 거침없이 쏟아냈다. 영롱한 노란색 캡슐 알약들이 대리석 바닥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강 상무님께서 최근 무리한 일정으로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셔서, 제가 비서실을 통해 특별히 챙겨둔 영양제입니다. 타우린과 고함량 비타민C가 주성분인 해외 직구 정제죠. 로고가 없는 불투명 통에 담겨 있어서 오해를 산 모양입니다만."
"궤변이군! 당장 저 성분을 분석해!"
조인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보건팀 심사관이 허겁지겁 다가와 휴대용 신속 성분 분석 키트에 노란 알약을 으깨어 넣었다.
1초, 2초, 3초.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분석기 화면에 파란색 결과 수치가 떠올랐다. 심사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검출 결과, 고농축 타우린 98%와 아스코르빈산, 즉 비타민C 외에는 어떠한 마약류나 향정신성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시중에서 파는 고성능 피로회복제입니다."
"뭐? 그럴 리가 없어! 다시 검사해!"
조인석이 직접 키트를 뺏어 들며 악을 썼다. 하지만 화면의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
세아는 속으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확히 15분 전이었다. 조인석이 움직인다는 민채원 과장의 첩보를 받자마자, 세아는 도현의 집무실로 들어가 비서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탔다. 1화에서 발견한 도현의 특수 억제제와 완벽하게 똑같은 크기와 색상의 비타민 정제를 미리 구해두었던 것은, 세아의 철저한 방어기제가 낳은 신의 한 수였다. 진짜 약은 이미 세아의 다이어리 깊숙한 비밀 지퍼백 안에 안전하게 옮겨진 뒤였다.
"전무님."
세아가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로 조인석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근거 없는 악의적 투서 한 장에 대기업 감사팀과 외부 인력까지 동원해 신임 상무의 집무실을 헤집어 놓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리본 서울 프로젝트 최종 예산 보고가 지연되었고, 브랜드 가치 훼손 우려로 인한 무형적 손실이 막대합니다. 이 무리한 감사 과정을 이사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도 되겠습니까?"
조인석의 얼굴이 붉다 못해 검푸르게 죽어갔다. 주위 감사팀 직원들은 이미 좆되었다는 표정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임원의 영양제 복용을 마약 오남용으로 몰아간 꼴이 되었으니, 사내 여론은 조 전무 일파를 '사내 정치를 위해 억지 덫을 놓는 적폐'로 낙인찍을 것이 뻔했다.
"……철저히 공사 구분을 하자는 취지였네.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이군."
조인석은 이빨을 부득 갈며 비열하게 웃어 보이고는, 휑하니 복도를 빠져나갔다. 뱀의 꼬리가 사그라지는 것처럼 비열한 퇴장이었다.
구경꾼들이 흩어지고, 마침내 상무실 문이 닫혔다.
도현은 제 목구멍을 틀어쥐며 억눌린 호흡을 내뱉었다. 공황의 전조증상으로 허공을 헤매던 그의 시선이 천천히 세아에게 닿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방금 전 세아가 보여준 날카롭고 대담한 정략성에 대한 경탄과,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이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
그날 밤 10시. 사옥의 불이 대부분 꺼진 늦은 시각.
세아의 작은 원룸 자취방 안에는 은은한 스탠드 불빛만이 켜져 있었다.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을 열자, 차가운 밤공기를 묻힌 도현이 서 있었다. 그의 슈트 재킷은 흐트러져 있었고,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린 상태였다.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온 도현은 세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낮의 사무실보다 훨씬 더 밀도가 높고 아슬아슬했다.
"언제 약을 바꾼 겁니까?"
도현이 한 걸음 다가서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세아는 서랍장 위에 올려두었던 자신의 가죽 수첩을 펼쳤다. 그 안에서 지퍼백에 밀봉된 노란색 진짜 억제제 캡슐 한 알을 꺼내 도현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상무님이 소파 밑에 흘리고 다니시는 칠칠치 못한 습관 덕분에요."
세아의 말투는 평소처럼 건조했지만, 눈빛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도현이 손을 뻗어 세아의 손바닥에 놓인 약을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세아는 손가락을 오므리며 약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다가가, 도현의 흐트러진 셔츠 깃을 슬며시 움켜잡았다.
도현의 몸이 굳었다. 세아의 체온이 셔츠 깃을 타고 그의 목덜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낮에 겪었던 그 지독한 한기가 세아의 따스한 손길에 서서히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세아는 도현의 셔츠 깃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그의 얼굴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코끝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세아의 맑은 눈동자가 도현의 흔들리는 시선을 단단히 붙잡았다.
"이제 빚 한 번 갚았네요."
세아의 입술 끝에 매혹적이면서도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그러니까 절 우습게 보지 마세요, 상무님. 전 상무님 뒷바라지나 하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니니까."
그녀가 덜어준 노란 약이 도현의 손바닥 위로 툭 떨어졌다. 도현은 약을 쥔 채, 제 앞의 여자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15년 전의 연약했던 소녀는 없었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칼을 휘두를 줄 아는, 지독하게 아름다운 포식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숨결이 엉키는 좁은 방 안에서, 도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공황 때문이 아니었다. 명백한, 다른 종류의 열병이었다.
도현의 단단한 손가락이 세아의 손목을 움켜쥔 것은 찰나의 일이었다.
눈앞으로 바짝 다가온 그의 눈동자가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세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려 했으나, 손목을 결박한 그의 손길은 완강했다. 밀어내려 도현의 가슴팍에 얹은 손끝으로 얇은 와이셔츠 너머의 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독하게 빠르고, 사정없이 흔들리는 박동.
동시에 세아의 척추를 타고 서늘한 한기가 엄습했다. 낮에 감사팀의 기습 속에서 제 몫의 공황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가버린 남자의 정직한 신체 반응이었다.
"강도현. 손 놔."
"싫다면."
"이거 놔, 진짜. 너 지금 체온……."
"낮엔 잘만 만져대더니, 왜 이제 와서 내외하는 척입니까, 한 팀장님."
도현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지만, 그의 입술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세아의 손목을 쥔 그의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트라우마 싱크의 잔인한 대가였다. 타인의 고통을 물리적으로 흡수하는 대가로 급격하게 떨어지는 체온.
서랍장 위에 놓인 디지털 체온계가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도현의 체온은 위험 수준까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세아는 입술을 깨물며 손목에 힘을 주어 그를 끌어당겼다. 밀어내려던 힘이 고스란히 인력으로 바뀌자, 도현의 커다란 몸이 세아의 어깨 위로 무너지듯 겹쳐왔다.
"하……."
도현이 세아의 목덜미에 이마를 묻으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목덜미에 닿는 그의 숨결은 서늘하다 못해 시릴 정도였다. 세아는 저도 모르게 도현의 넓은 등판을 감싸 안았다. 얇은 면 티셔츠 너머로 뼈마디가 도드라진 그의 척추가 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미쳤어, 진짜. 약 바꿨으면 바로 먹고 쉬었어야지, 여기까지 왜 기어 와?"
"약 먹어도 이건 해결 안 돼. 오태식 박사가 말 안 하던가? 진짜 약은 여기 있다고."
도현이 낮게 속삭이며 세아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차가운 얼음덩어리를 품에 안은 듯한 오한이 세아의 전신으로 퍼져나갔지만, 그녀는 그를 밀어내지 못했다. 사내에서는 철저히 공과 사를 구분하는 칼날 같은 상사였으나, 이 좁은 자취방 안에서만큼은 그저 상처 입고 덜덜 떠는 소꿉친구일 뿐이었다.
"너 이러다 진짜 죽어. 체온 34도 밑으로 떨어지면 심장 마비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잖아."
"안 죽어. 네가 이렇게 안고 있는데 내가 왜 죽어."
도현이 세아의 살결 속으로 얼굴을 더 깊이 묻었다. 그의 차가운 체온이 세아의 온기와 뒤섞이며 묘한 열감을 만들어냈다. 들키면 둘 다 파멸인 사내 연애의 족쇄 속에서, 오직 서로의 숨결에 의지해 생을 연명하는 이 기이한 공생 관계가 가슴을 저릿하게 조여왔다.
세아는 서서히 도현의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긴장을 풀었다. 그의 떨림이 잦아들고, 규칙적인 호흡이 어깨 위를 간지럽힐 때쯤이었다.
징-.
침대 머리맡에 던져두었던 세아의 개인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도현의 품에 안긴 채, 세아는 손을 뻗어 액정을 확인했다. 발신인 제한 표시로 들어온 멀티미디어 메시지 한 건.
아무런 생각 없이 화면을 터치한 세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메시지 안에는 몇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어두운 골목길, 세아가 사는 빌라 건물 앞에 주차된 도현의 검은색 세단. 그리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도현이 빌라 공동현관의 보안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뒷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각도로 보아 길 건너편 승용차 안에서 망원렌즈로 집요하게 추적해 찍은 것이 분명했다.
사진 아래에는 짤막한 텍스트가 적혀 있었다.
[공사 분리가 생명인 엘리시안에서, 상무님과 브랜드 디렉터의 심야 밀회라. 임원실과 감사팀 메일함에 이 사진들이 들어가면 내일 아침 참 재미있는 그림이 나오겠네요, 한세아 팀장님?]
세아의 심장이 쿵,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끝에서부터 피가 전부 빠져나가는 듯한 극심한 오한이 다시금 그녀를 덮쳤다. 이번에는 트라우마 싱크 때문이 아니었다. 날 것 그대로의 현실적인 공포였다.
조인석이었다.
낮의 약물 스캔들로 한 방 먹은 뱀이, 곧바로 꼬리를 흔들며 독니를 드러낸 것이다. 도현의 동선을 샅샅이 감시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세아야? 왜 그래."
품 안에서 급격히 경직되는 세아의 몸짓을 느낀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스쳤다.
세아는 대답 대신 도현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다급하게 막아섰다. 그리고 스마트폰 화면을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사진을 확인한 도현의 미간이 흉측하게 찌푸려졌다. 그의 전신에서 다시금 차가운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띠리릭, 띡.
조용한 원룸 안을 가르는 날카로운 전자음이 울렸다.
세아의 집 도어록 패드가 외부에서 활성화되는 소리였다. 누군가 밖에서 세아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삐- 삐- 삐-*
잘못된 번호를 누른 듯 경고음이 작게 울리더니, 이내 거친 손길로 문고리를 사정없이 흔들어대는 소리가 이어졌다.
"한 팀장님! 안에 계십니까? 브랜드 커뮤니케이션팀 민채원 과장입니다! 급한 건으로 왔으니 문 좀 열어보세요!"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민 과장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 뒤편으로, 여러 명의 구두 굽 소리와 낮게 깔린 사내들의 웅성거림이 불길하게 섞여 들려왔다.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다. 현장을 덮치기 위한 사내 감사팀의 기습이었다.
세아는 굳어버린 채 도현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도현의 눈빛 역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퇴로가 없는 5층 원룸. 문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커리어가 완전히 발가벗겨져 매장당할 위기가 코앞까지 들이닥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