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흐흐흐, 저 계집의 가죽을 벗겨 인질로 삼으면 도사놈들도 제법 재미있는 반응을 보이겠지?"

참마도를 비스듬히 쥔 사패천(邪覇天)의 척후가 핏발 선 눈으로 설화선을 바라보며 음산하게 웃었다.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낙하원의 부서진 정문 틈새로 불어닥치는 밤바람을 타고 스산하게 울려 퍼졌다.

설화선은 겁에 질려 전신을 가늘게 떨었다. 그러나 그녀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흙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백무강을 가녀린 어깨로 가로막으며, 이빨을 악물고 사내를 노려보았다.

"이곳은 다친 이들을 치료하는 의원일 뿐이오. 당장 물러가시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흔들렸으나, 눈빛만큼은 흔들림 없는 등불처럼 곧게 뻗어 있었다.

"치료? 흐흐흐, 죽은 놈들에겐 치료 따위 필요 없다!"

대장 격인 사내가 거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이 설화선의 어깨를 향해 잔혹하게 뻗어 나가는 찰나였다.

쿵, 쿵, 쿵.

설화선의 등 뒤, 흙바닥에 엎드려 있던 백무강의 가슴팍에서 거친 심장 박동 소리가 고요한 마당을 울렸다.

그것은 단순한 고동이 아니었다. 단전 깊은 곳에 묏자리처럼 가라앉아 있던 환정마경(幻情魔經)의 붉은 마기가 칠정(七情)의 분노와 결합하여 폭발적으로 요동치는 소리였다. 전신의 혈맥이 불길에 휩싸인 듯 뜨겁게 달아올랐고,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뇌리를 강타했다. 원혼들의 비명과 광기가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엉켰다.

'죽여라. 저들의 목을 베어 내 한을 풀어라!'

환정마경에서 흘러나오는 망집(妄執)의 목소리가 이성을 잠식하려 들었다. 칠정반사(七情反噬)의 흉포한 파도가 심상을 뒤흔들었으나, 무강은 어금니가 부서져라 악물며 그 광기를 억눌렀다. 마음의 굳건한 벽을 세우고, 흘러넘치는 분노를 오직 살의라는 하나의 칼날로 벼려냈다.

스산한 밤안개가 낙하원의 마당을 낮게 쓸고 지나가는 순간, 무강의 감겨 있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안구가 핏빛으로 붉게 점멸했다.

파앗!

무강의 신형이 땅을 박차고 일어난 것은 한 호흡도 걸리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 억?!"

설화선의 어깨를 움켜쥐려던 사패천 무인의 손이 공중에서 허망하게 멈추어 섰다. 눈앞에 있던 가녀린 의원의 모습 대신, 온몸이 피칠갑이 된 귀신 같은 형상의 소년이 귀곡성 같은 바람을 일으키며 앞을 막아선 까닭이었다.

무강의 손끝이 허공을 갈랐다. 그것은 화산파의 정종 무학이 아니었다. 낮에 거두었던 사파일류 무인의 기운, 환정마경 속 정신 세계에서 온전히 제 것으로 흡수한 비정하고 번뜩이는 살수의 초식이었다.

강체(强體)의 단단함으로 뼈를 부수고, 유체(流體)의 부드러움으로 공간을 미끄러지듯 파고드는 기묘한 신법이 극의를 이루었다.

서걱!

어둠 속에서 붉은 선 하나가 그어졌다.

"끄, 으윽……!"

대장 사내의 목에서 분수처럼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사내는 제 목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으나, 손가락 틈새로 쏟아지는 생명의 유실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눈동자가 경악과 공포로 물들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쿵.

무거운 신형이 흙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뒤에 서 있던 나머지 두 명의 척후 무인들은 불과 한 장(丈)도 안 되는 거리에서 일어난 급작스러운 참극에 숨을 들이켰다. 자신들의 대장이 단 한 초 만에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뇌가 미처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이, 이 자식이……!"

"괴물 같은 놈! 죽여라!"

그들은 본능적인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비명을 지르며 제각기 참마도를 휘둘렀다. 두 자루의 무거운 칼날이 밤공기를 가르며 매서운 파공음을 내뿜었다. 좌우에서 짓눌러오는 강맹한 경력(勁力)이 무강의 숨통을 조여 왔다.

그러나 무강의 눈에 비친 그들의 움직임은 지독하리만치 느렸다. 환정마경의 마해(魔海)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며 단련된 그의 감각은, 이미 적들의 초식이 지닌 파고와 허점을 명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무강은 상체를 가볍게 비틀어 왼쪽에서 날아오는 참마도의 궤적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스쳐 지나가는 칼바람이 뺨을 차갑게 긁었으나, 그의 눈동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신형을 회전시키며, 무강은 오른손 장법을 내질렀다.

파수(破手). 적의 관절을 파괴하는 비정한 살수의 수법이었다.

퍼억!

그의 손바닥이 오른쪽 척후의 팔꿈치 관절에 정확히 작렬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가혹한 파쇄음과 함께 사내의 참마도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사내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무강은 회전하던 탄력을 그대로 이어받아 왼손 끝으로 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정순한 마기가 손끝에 모여 송곳처럼 단단해진 상태였다.

푸학!

등 뒤로 붉은 혈안(血眼)의 기운이 관통해 나갔다. 사내는 상체를 앞으로 꺾으며 허망하게 고꾸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한 명이었다.

마지막 남은 척후는 동료들이 낙엽처럼 쓰러지는 정경을 보며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그의 손에 쥔 참마도가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

"사, 살……."

"강호에 자비란 없다. 너희가 뿌린 피는 오직 피로만 씻을 수 있을 뿐이다."

무강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는 도망치려 발을 떼는 사내의 등 뒤로 소리 없이 육신을 날렸다. 유려하게 흐르는 물과도 같은 신법이 사내의 그림자를 밟았다. 무강의 손가락이 사내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그대로 비틀었다.

두두둑.

뼈가 어긋나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사내의 고개가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사내는 비명 한 자락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져 차디찬 시신이 되었다.

낙하원의 마당은 고요해졌다. 사방을 채운 것은 씁쓸한 약초 향이 아니라, 코를 찌르는 끈적한 피비린내였다.

"후우…… 윽!"

무강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바닥을 짚었다. 입안 가득 고여 드는 비릿한 피를 참지 못하고 흙바닥에 울컥 쏟아냈다.

"쿨럭! 흑……."

단전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다시금 밀려왔다. 방금 전 격렬하게 휘두른 마기가 전신의 맥락을 헤집어 놓은 탓이었다. 칠정반사. 죽은 자들의 원혼이 남긴 망집이 그의 심상을 갉아먹으며 온몸의 피를 역류시키고 있었다. 머릿속이 붉게 타오르며 미쳐버릴 것만 같은 광기가 치솟았다.

"무강아!"

설화선이 다급하게 달려와 그의 곁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으나, 쓰러진 무강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오직 깊은 우려와 슬픔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무강의 턱 끝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품 안에서 정성스럽게 밀봉된 작은 도자기 병을 꺼냈다.

"이걸 마셔라. 어서!"

그녀가 병마개를 열고 무강의 입가로 병을 가져다 댔다.

병구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지독하리만치 씁쓸하고 서늘한 약탕의 향이었다. 낮새도록 그녀가 무강을 위해 가마솥 앞에서 땀을 흘리며 졸여낸 천명초(天命草) 약탕의 농축액이었다.

무강은 본능적으로 약탕을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는 얼음물을 삼킨 듯 차가웠고, 가슴속을 아릿하게 찌르는 쓴맛을 풍겼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전신을 불태우던 붉은 마기가 그 서늘한 기운에 닿자마자 거짓말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칠정반사로 미쳐 날뛰던 뇌리의 광기가 차분하게 정돈되고, 뒤틀렸던 맥락이 제 자리를 찾아가며 안정을 되찾았다.

무강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붉게 점멸하던 안구가 원래의 깊고 검은 색채로 돌아와 있었다.

'이 약탕은 대체…….'

무강은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단순한 구휼 의원의 약탕이라 하기에는 그 효능이 지나치게 탁월했다. 마교의 절대비급인 환정마경의 맥맥을 이어주고, 자멸의 제약인 칠정반사를 이토록 완벽하게 억제해 주다니. 설화선이 끓여내는 이 씁쓸한 약탕에는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이 약에 무엇을 넣으신 겁니까?"

설화선은 무강의 안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서야 참았던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비록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으나, 그녀의 눈빛은 따스했다.

"그저 산자락에서 캐온 흔한 천명초와 몇 가지 약재를 달인 것뿐이란다. 네 몸의 열기를 식히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지.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그녀는 무강의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하지만 무강아, 네 무공이 언제 이토록…… 그리고 그 눈빛은 대체 무엇이냐.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책과 슬픔이 묻어 있었다. 자신이 돌보는 소년이 괴물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깊은 고뇌가 서려 있었다.

무강은 그녀의 손길을 가만히 느끼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평생 타인을 경계하며 살아온 그였지만, 오직 이 여인의 온기만큼은 차마 차갑게 쳐낼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기른 것뿐입니다."

그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곧 더 큰 피바람이 불 것입니다. 사패천의 척후가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정사대전의 전운이 이미 화산의 턱밑까지 이르렀다는 뜻이니까요."

무강의 시선이 정문의 부서진 잔해 너머, 어두운 밤길로 향했다.

그때였다.

스스스스.

낙하원의 담장 너머에서 숲을 헤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맑고도 위압적인 기운이 마당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사패천 척후들의 탁하고 흉포한 살기와는 궤를 달리하는, 태산처럼 묵직하고 청량한 도가의 기운이었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마당의 정문 앞, 어둠을 가르고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청한 도포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내. 그의 어깨 위로 흘러내린 검은 머리칼이 밤바람에 가볍게 출렁였다. 단정한 이목구비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맑은 눈동자. 그러나 그의 이마에는 화산파 본산의 대제자라는, 무맥의 정통성을 홀로 짊어진 자만의 무겁고 고독한 책임감이 짙은 그늘로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는 화산의 자랑이자, 규율과 도덕을 고수하는 천재, 현운(玄雲)이었다.

현운의 손에는 검은 가죽으로 감싸인 묵검(墨劍)이 쥐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 검날의 하단에는 미세하게 금이 가 가느다란 금박으로 때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과거 현안 도인의 위선적인 지시 아래 무고한 검수를 베고 부러졌던, 그의 마음의 짐이자 고뇌를 상징하는 흔적이었다.

현운의 시선이 마당 바닥에 처참하게 흐트러진 사패천 무인들의 시체로 향했다.

그의 눈썹이 가볍게 꿈틀했다. 단 한 초 만에 급소를 관통당하고 목뼈가 꺾여 죽은 시체들의 잔혹한 형상. 그것은 도가의 무학으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철저하고도 비정한 살수의 수법이었다.

현운이 시선을 올려 무강을 바라보았다. 그의 맑은 눈동자에 경계와 의구심이 서렸다.

"속가(俗家)의 제자가 사패천의 일류 척후들을 이토록 참혹하게 도륙하다니. 참으로 믿기 힘든 광경이구나."

현운의 목소리는 정중했으나, 그 안에는 거역할 수 없는 위엄과 묵직한 압박감이 담겨 있었다.

그는 무강의 몸 주변에 미세하게 잔존해 있는, 검고 붉은 이질적인 기운을 포착했다. 화산의 청명한 도기(道氣)와는 백보 이상 떨어진, 음습하고 흉포한 마교의 잔재와도 같은 내력이었다.

무강은 현운의 등장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본산의 대제자가 이 먼 속가 구역 끝자락까지 직접 행차했을 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무강은 기를 죽이지 않고 가슴을 꼿꼿이 폈다. 그의 입가에 비죽이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본산의 고귀하신 대제자께서 이 허름한 낙하원에는 무슨 일로 걸음을 하셨습니까? 시체 구경이라도 하러 오신 것은 아닐 테고 말입니다."

가차 없는 독설이었다. 화산파의 배분을 생각하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공손한 태도였다.

현운은 무강의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이 움직일 때마다 주위의 피비린내가 청량한 도가 내력에 쓸려 나가는 듯했다.

"나는 속가 구역에 침투한 사패천의 기운을 느끼고 법도를 바로잡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런데 정작 와서 보니, 사패천보다 더 불길하고 이질적인 기운이 화산의 제자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구나."

현운이 묵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금박으로 메워진 금 틈새가 달빛을 받아 미세하게 반짝였다.

"무릇 화산의 검은 상생(相生)을 근본으로 삼는다. 천지만물과 조화를 이루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우리의 도(道)이거늘. 너의 손에 깃든 기운은 오직 파멸과 멸절만을 바라고 있구나. 그 기이한 내력은 대체 어디서 얻은 것이냐?"

현운의 다그침에는 억압보다는 고뇌가 섞여 있었다. 그는 이 어린 속가제자가 사마(邪魔)의 길에 빠져 파멸하는 것을 진심으로 우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강의 귀에는 그 고결한 훈계가 지독한 위선으로 들릴 뿐이었다.

"상생이라."

무강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눈빛에 냉소적인 독기가 서렸다.

"본산의 고귀하신 도사들께서 산 위에서 청고한 도리와 상생을 읊조리며 차를 마시는 동안, 산 아래의 우리 속가제자들은 사패천의 칼날 아래 고기방패로 던져져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당장 오늘 밤만 해도, 우리가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면 그 위대하신 상생의 검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무강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현운을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그대들이 말하는 상생의 검에 우리 속가의 미천한 목숨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본산의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속세를 더럽히는 거름으로 쓰는 것뿐입니까?"

"닥쳐라!"

현운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격한 감정이 실렸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문파의 모순과 자신의 고뇌가 무강의 가차 없는 독설에 정면으로 찔린 탓이었다.

현운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화산의 정통 가치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전쟁의 참화 속에서 모두를 구하고자 번민해 왔다. 그러나 무강의 말은 그가 애써 외면하려 했던 본산의 위선적인 민낯을 잔혹하게 들춰내고 있었다.

"그것이 아무리 가혹한 전운일지라도, 도심(道心)을 잃은 힘은 결국 마(魔)에 이를 뿐이다. 힘의 정당성을 잃는 순간, 너는 사패천의 저 무도한 도적들과 다를 바 없는 괴물이 될 것이다. 내 화산의 대제자로서 너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

현운의 전신에서 푸른 도가의 진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당의 잡초들이 그의 기파에 눌려 일제히 바닥으로 누웠다.

무강은 전신을 짓누르는 본산 천재의 위압감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단전의 환정마경이 다시금 요동치며 칠정반사의 고통을 자극했으나, 그는 꼿꼿이 서서 차갑게 비웃었다.

"방치하지 않으면 어쩔 텐가? 본산의 대제자께서 이 미천한 속가제자의 목이라도 베어 상생의 도를 증명하시겠습니까?"

오만하고도 한 치의 물러섬 없는 대답이었다.

현운의 눈썹이 크게 꿈틀했다. 그의 고뇌 어린 눈빛이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위가 얼어붙는 듯한 침묵이 흐른 찰나.

스릉!

현운의 손에 들린 묵검이 칼집을 벗어났다.

묵검의 갈라진 금박 틈새로 화산파 본산의 정순하고도 서늘한 푸른 검기(劍氣)가 폭발적으로 휘몰아쳤다.

파앗!

바람소리조차 내지 않는 기뢰 같은 속도로, 푸른 광막을 두른 묵검의 끝이 백무강의 목덜미를 향해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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