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이것들이 기어코 판을 엎으시겠다?"

내 입꼬리가 천천히 내려갔다.

안락한 눕방을 방해하는 귀찮은 벌레들이, 이제는 아예 정원 자체를 불태우려 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기득권 놈들의 지저분한 계산기가 두들겨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자금줄이 막히고 물약 시장 독점권이 깨지니까, 결국 무력으로 하층민들을 쓸어버리며 자원을 강탈하겠다는 심보년들이 분명했다.

"약자 대정비 작전이라니. 이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세탁했네."

옆에서 금빛 장부를 품에 안고 있던 엘리제가 차갑게 혀를 찼다.

"말이 정비지, 그냥 방해되는 가난한 놈들이랑 우리한테 협력하는 연금술 가문들을 마물 먹이로 던져 주겠다는 소리잖아?"

"예, 그렇습니다. 원탁의 집행관 마르쿠스가 직접 기사단을 이끌고 하층 구역의 차단벽을 개방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백설아의 목소리는 분노로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정화 대상 명단까지 작성해 두었습니다. 가치가 없는 하위 90%의 인류는 대멸망을 대비한 자원 보존을 위해 제거되어야 마땅하다면서요."

참으로 질서 원탁다운, 그리고 그들의 수장인 아드리안다운 미친 논리였다.

세상이 망해 가니까 쓸모없는 입을 줄여서 지들끼리 꿀을 빨겠다는 극단적인 효율주의.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세상이 망하든 말든, 90%가 마물 목구멍으로 기어 들어가든 말든 내가 신경 쓸 영역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화 대상 명단에 내 미래의 '가성비 최강 노동력'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설아라."

"예, 영주님."

"그 명단에 묶여 있는 연금술 하급 가문들이랑, 아카데미 하층 구역의 기술직 생존자들 수치가 얼마나 되지?"

"대략 수천 명에 달합니다. 그중 핵심 기술을 보유한 가문원들만 해도 오백 명이 넘습니다."

나는 소파 가죽을 툭툭 두드렸다.

수천 명의 고급 인프라가 그냥 마물 똥이 되게 내버려 둔다?

그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모독이자, 미래의 내 안락한 은둔 생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내 넓고 아늑한 침대를 유지하려면, 내 대신 밭을 갈고 마법 도구를 생산해 줄 유능한 노예들이…… 아니, 훌륭한 소작농들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데려와."

내 한마디에 방 안의 공기가 일순간 멈췄다.

엘리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하? 현우 너 지금 제정신이야? 수천 명을 이 좁은 조제실도 아니고, 그레이 가든 안으로 들이겠다고?"

"왜 안 돼? 우리 영지 넓잖아. 땅만 넓고 일할 놈들이 없어서 맨날 네가 징징댔던 건 잊었냐?"

"그건 그렇지만…… 걔들이 들어오면 식량은? 주거지는? 그리고 원탁 놈들이 가만히 있겠어? 당장 반역죄로 몰아서 쳐들어올걸!"

엘리제의 걱정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완벽한 차익거래와 영지 설계를 끝마친 상태였다.

"원탁이 반역이라고 우기든 말든, 여긴 아카데미 총장조차 함부로 법적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자치 지구야. 비서관한테 받아 둔 영토권 문서가 괜히 있는 줄 알아?"

나는 품 안에서 붉게 빛나는 아르케 엘릭서 병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식량이랑 주거지? 걱정 마라. 내 이중 상태창이 장식용인 줄 아나 보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아는 지금 즉시 하층 구역으로 가서 사람들을 선동해라. 살고 싶다면, 원탁의 칼날이 닿지 않는 유일한 피난처인 그레이 가든의 맹독 장막 앞으로 모이라고."

"……알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인도하겠습니다."

백설아가 깊게 고개를 숙이고는 그림자처럼 방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발걸음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자신의 동족들을 구할 기회를 얻었으니, 이제 원탁의 심장에 칼을 꽂을 준비가 된 것이다.

나는 씩 웃으며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시스템: 심연의 이중 상태창(Abyss Dual Slate)을 활성화합니다.]**

**[현재 누적 침식도: 2.8%]**

**[영지 기획(Territory Planning) 탭을 개방합니다.]**

눈앞에 화려한 네온사인 같은 홀로그램 창이 펼쳐졌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세계의 근간을 해킹하는 관리자 전용 인터페이스.

"어디 보자…… 놀려 두던 땅이 너무 많아서 탈이었는데, 마침 잘됐네."

나는 그레이 가든의 지형도를 훑어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 * *

그날 밤.

아카데미 하층 슬럼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문 열어! 이 더러운 기생충들아! 정화 작전이 시작되었다!"

철갑을 두른 원탁의 집행 기사들이 쇠창살을 부수며 가차 없이 진입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편으로는 굳게 닫혀 있던 외곽 장벽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스스스스─!

장벽 너머, 어두운 심연의 던전에서 오랫동안 굶주린 마물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미친 놈들! 우리를 마물한테 던지겠다고?!"

"제발 살려주세요! 제 아이만큼은……!"

"시끄럽다. 인류의 영광스러운 보존을 위한 거름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집행관 마르쿠스는 냉혹한 눈빛으로 채찍을 휘둘렀다.

그의 가슴팍 부근에서 마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모습이 내 멀리서도 훤히 보였다.

'마르쿠스 저 병신, 마력 순환 경로에 고정 결함이 있는 건 여전하네.'

나는 멀리서 망원경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과거 게임 지식에 따르면, 마르쿠스는 마력을 급격히 끌어올릴 때 가슴 중앙의 혈맥이 막히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지금 당장 저놈의 머통을 깨버릴 수도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더 큰 판을 짜야 하니까.

"모두 이쪽입니다! 무기를 든 자들은 뒤를 막고, 노약자들은 앞으로!"

백설아의 맑고 강인한 목소리가 슬럼가의 비명 속을 뚫고 울려 퍼졌다.

절망에 빠져 있던 피난민들은 그녀의 은빛 검날이 만들어 내는 길을 따라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아카데미 학생들 사이에서 '죽음의 금지구역'이라 불리는 그레이 가든이었다.

"미쳤어! 거긴 맹독의 소용돌이가 치는 지옥이잖아!"

"가도 죽고, 여기 있어도 죽는다면 차라리 가보겠어!"

수천 명의 피난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레이 가든의 거대한 장벽 앞에 도달했다.

눈앞을 가로막은 것은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매캐하고 보랏빛으로 빛나는 맹독의 장막이었다.

그 장막 너머에서, 내가 가죽 소파를 통째로 들고 나와 나른하게 기대앉아 있었다.

옆에는 엘리제가 팔짱을 낀 채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피난민 여러분. 멈춰 봐."

내 목소리가 마력에 실려 장막 전체에 울려 퍼졌다.

피난민들이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원탁보다 더한 악마나 약탈자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거만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긴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보육원이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나는 다리를 꼬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너희가 가진 기술, 노동력, 그리고 목숨값까지 전부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는 놈들만 들여보내 주겠다. 난 쓸모없는 식충이들을 거둘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거든."

일부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역시…… 여기도 똑같은 착취자였어……."

누군가 절망적인 중얼거림을 뱉었다.

하지만 나는 가차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대신, 계약에 동의하고 내 영지의 법도를 따른다면 최소한 안전은 완벽하게 보장하지. 선택해라. 저 뒤에서 쫓아오는 마물들의 이빨에 씹힐 것인가, 아니면 내 밑에서 좆뺑이…… 아니, 열심히 일하며 목숨을 보존할 것인가?"

"살려만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들여보내만 주세요!"

뒤편에서 마물들의 포효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피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들의 절박한 눈빛을 확인한 나는 피식 웃었다.

"좋아. 계약 성립이다."

나는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튕겼다.

**[시스템: 영지 기획 - '주민 등록 및 신체 에너지 연동'을 실행합니다.]**

우우웅─!

그 순간, 수천 명의 피난민들의 몸에서 미세한 빛무리가 흘러나와 하늘로 치솟았다.

그들의 생명력이나 마력을 빼앗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이 영지에 존재한다는 '개인 식별 코드'를 그레이 가든의 왜곡 법칙과 융합하는 작업이었다.

**[경고: 영지 방어막 대규모 확장으로 인해 '심연의 침식도'가 급증합니다!]**

**[현재 누적 침식도: 18.5%]**

"윽."

순간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검게 점멸했다.

역시 수천 명의 존재를 일시에 영지 결계에 연동시키는 건 꽤 큰 무리였다.

나는 즉시 품에서 아르케 엘릭서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차갑고 청량한 마력이 뇌수를 적시자, 꿈틀거리던 침식도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안정제 효과 적용: 누적 침식도가 3.1%로 급감합니다.]**

"후우, 살겠네. 진짜 이 물약 없었으면 벌써 대인 광증 걸려서 날뛸 뻔했잖아?"

나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지의 진짜 모습을 개방할 시간이 왔다.

"그레이 가든의 장막을 개방한다."

내가 손을 내리자, 피난민들을 가로막고 있던 보랏빛 맹독의 안개가 거짓말처럼 양옆으로 갈라졌다.

"……어?"

누군가의 턱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옥이라 믿었던 그레이 가든의 내부였다.

"이게…… 대체 무슨……?"

"신이시여……."

피난민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몇몇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장막 너머에는, 그들이 평생 슬럼가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눈부신 유토피아가 펼쳐져 있었다.

머리 위에는 거대한 태양 마법진이 복제되어 찬란하고 따스한 금빛 햇살을 대지에 내리쬐고 있었다.

그 아래로, 맑고 깨끗한 인공 강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강가 주변에는 정갈하게 지어진 현대식 목조 주택들과 임시 대피 시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심지어 테이블 위에는 따뜻한 수프와 빵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원탁의 기득권 놈들이 지옥이라 부르던 곳이…… 바로 여기였단 말인가?"

한 연금술 가문의 장로가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땅의 흙을 쥐었다.

오염된 줄 알았던 대지에서는 향기로운 풀 내음이 풍겨오고 있었다.

내가 시스템 에러를 이용해 마력 전도율과 중력 공식을 뒤틀고, 오염된 독소를 정화하는 마법진을 영지 전체에 박아 넣은 결과물이었다.

"내가 말했지. 밥값은 해야 한다고."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피난민들을 향해 걸어갔다.

"저기 보이는 집들이 너희가 묵을 곳이다. 먹을 것도 충분히 준비해 뒀으니 처먹…… 아니, 맛있게 들고 기운 차려라. 내일부터 바로 공장 돌려야 하니까."

일부러 쌀쌀맞게 쏘아붙였지만, 피난민들의 반응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들은 내 억지 위악을 완전히 무시한 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나를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영주님!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를 인간으로 대접해 주신 분은 영주님뿐입니다!"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갓-현우 영주님!"

"……야, 절하지 마. 징그러우니까 물러서."

나는 소름이 돋아 양팔을 비벼댔다.

귀찮게 충성 맹세 같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조용히 일만 열심히 해 주면 장땡인 것을, 왜 저렇게 감동을 받아서 질질 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역시 인간이란 알다가도 모를 생물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엘리제가 배를 잡고 낄낄 웃어댔다.

"푸하하! 현우야, 네가 아무리 악당인 척 연기를 해도 소용없네! 저 사람들 눈에는 지금 네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보일걸?"

"닥쳐, 엘리제. 저놈들이 감동해서 일을 두 배로 더 열심히 하면 나야 이득이지."

나는 츤츤거리며 가죽 소파를 다시 영지 안쪽으로 옮기라고 백설아에게 눈짓했다.

어쨌든, 이것으로 완벽한 요새화가 완료되었다.

수천 명의 생체 에너지가 영지 장막과 연동되면서, 그레이 가든의 방어력은 이전보다 최소 다섯 배 이상 강해졌다.

이제 원탁 놈들이 기사단을 이끌고 와도, 이 왜곡 장막을 뚫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걸로 은둔 생활의 기틀은 완벽하게 잡혔고……."

나는 따스한 인공 태양 아래에 소파를 놓고 누워 눈을 감았다.

이대로 평생 눕방이나 하면서 꿀을 빨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아카데미 중앙 광장 방향에서, 대지를 울리는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전해져 왔다.

하늘 위로 거대한 황금빛 문양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카데미 총장, 아드리안 폰 발렌시아의 개인 인장인 '질서의 천칭'이었다.

동시에, 아카데미 전역의 마법 확성기를 통해 그의 서늘하고 완벽하게 정제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카데미의 모든 학생과 교수, 그리고 품격 있는 시민들에게 알린다.]

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광기 어린 질서가 담겨 있었다.

[최근 최후방 폐쇄 구역 '그레이 가든'을 불법으로 점거한 불순 분자 강현우가, 제국의 법도를 어기고 정화 대상자들을 무단 은닉하는 반역을 저질렀다.]

하늘 위에 거대한 붉은색 글씨가 새겨졌다.

[이에 본 총장은 즉시 그레이 가든의 영토권을 몰수하며, 광휘 기사단을 직접 이끌고 반역자 무리를 처단하기 위한 정벌을 선언한다.]

[인류의 정화를 방해하는 암적인 존재를 뿌리 뽑고, 완벽한 질서를 재정립하겠다.]

황금빛 갑옷을 입은 수천 명의 기사단이 아카데미 중앙대로를 메우며 행진을 시작하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그들의 최전선에는, 총장 아드리안이 직접 은빛 검을 빼 들고 서 있었다.

그야말로 영지의 존망을 건 진짜 전쟁의 서막이었다.

나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이 새끼들이 결국 내 달콤한 낮잠을 깨우네."

내 입꼬리가 차갑게 비틀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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