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상회가 파산하는 데 정확히 사흘 걸릴 테니까."
이 말을 툭 던진 현우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멍하니 서 있던 엘리제는 삐걱거리는 인형처럼 그의 뒤를 황급히 따랐다.
뒤에서 원탁 기사들의 호탕한 폭소가 광장을 울렸다.
"파산? 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신입생 놈이 허세를 부려도 분수가 있지!"
"쥐새끼처럼 구석진 땅을 얻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군. 어디 사흘 뒤에 굶어 죽어가는 낯짝이나 구경하자고!"
그들의 비웃음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탁 산하의 연금 상회 '골드 휠'은 아카데미 내의 모든 원자재 유통을 독접하는 거대 공룡이었으니까.
특히 무기 제작과 마력 보조 장치의 필수 재료인 '철광목(Ironwood)'의 공급권은 그들에게 철밥통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현우의 머릿속은 이미 완벽한 수학 공식과 시장 설계도로 가득 차 있었다.
"현우 너, 진짜 미쳤어? 철광목은 쟤들이 공급 통제해서 부르는 게 값이라고! 우리 장비도 다 묶였는데 대체 무슨 수로 사흘 만에 파산시켜?"
엘리제가 사색이 되어 소리를 낮춰 물었다.
현우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엘리제, 넌 주식이 왜 무서운지 모르지?"
"주…… 뭐?"
"없는 물건을 미리 팔아치우는 기술이 있어. 그걸 공매도라고 하지. 가격이 떨어질 게 확실하다면, 미리 빌려서 비싸게 팔고 나중에 똥값이 되었을 때 사서 갚으면 그 차액이 전부 내 돈이 되거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철광목 가격이 왜 떨어져? 걔들이 공급을 꽉 쥐고 있는데!"
"그럼 공급을 무한대로 늘려주면 되지."
현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비틀려 올라갔다.
***
그날 밤, 아카데미 지하 던전 '흑철의 광산' 중심부.
이곳은 원탁이 사유지처럼 통제하며 하루에 단 몇 그루의 철광목만 벌채하도록 허가된 철저한 카르텔의 현장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던전 중심부, 거대한 마력 코어 앞에서 현우가 눈을 빛냈다.
이미 회귀 전의 기억을 통해, 이 던전 코어의 깊숙한 곳에 인과의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화에서 미리 확인해 두었던 바로 그 '마력 전도율 왜곡 에러 포인트'다.
"자, 대기업 독점 횡포에 참교육 들어갑니다."
현우가 허공에 손을 뻗자, 푸르스름한 이중 상태창이 안구 전면에 떠올랐다.
[심연의 이중 상태창 활성화] [에드온 해킹 툴 가동 중……] [대상: 흑철의 광산 - 마력 코어 연동 인과율]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던전의 드랍율을 건드릴 수 없다.
하지만 현우의 상태창은 세계의 물리 법칙 자체를 일시적으로 해킹하는 규격 외의 치트키였다.
"던전 코어의 마력 전도율을 99.9%로 강제 고정. 과부하 에너지의 방출 경로를 일반 철광석에서 '철광목 변이'로 100% 우회시킨다."
[인과율 왜곡 에러 적용을 시작합니다.] [경고! 규칙 왜곡에 따른 '심연의 침식도'가 누적됩니다.] [현재 침식도: 15% (임계치 도달 시 일시적 실명 및 정신 오염 발생)]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두통이 스쳐 지나갔다.
현우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손끝을 멈추지 않았다.
"겨우 15% 따위, 아르케 엘릭서로 씻어내면 그만이야. 지금은 저 오만한 기득권 놈들 통장을 털어버리는 게 먼저다."
쿠구구구궁-!
지하 던전 전체가 거대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코어에서 뿜어져 나온 순백의 마력이 광산 벽면에 박혀 있던 평범한 철광석들을 잠식해 들어갔다.
마력 전도율이 극단적으로 치솟자, 흔하디흔한 돌덩이들이 순식간에 짙은 검은색의 단단하고 영롱한 '철광목'으로 역전 변이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라면 한 달 내내 광부 백 명이 매달려야 겨우 몇 그루 찾아낼까 말까 한 초고가 자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던전 전체가 철광목의 노다지로 변해버렸다.
[시스템 에러 강제 주입 성공!] [흑철의 광산 내 철광목 드랍율 및 생성률이 100배로 폭증합니다.]
"세팅 끝. 이제 팝콘이나 튀기면서 구경해 볼까."
현우는 차갑게 웃으며 던전의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
다음 날 아침, 아카데미 중앙 상업 지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원탁 산하의 연금 상회 '골드 휠'의 본부 건물.
"상회주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시장에 철광목이…… 철광목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지배인 장부장이 대머리에 땀을 뻘뻘 흘리며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상회주 말론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다 찻잔을 내려놓았다.
"허둥대지 마라. 매일 나오는 벌채량은 원탁의 기사단이 철저히 통제하고 있거늘, 쏟아져 나와봐야 얼마나 나오겠느냐?"
"그게 아닙니다! 던전에서 광부들이 곡괭이질 한 번 할 때마다 철광목이 무더기로 쏟아진다고 합니다! 길거리 노점상들까지 철광목을 리어카로 실어 나르고 있어요!"
"뭐, 뭐라고?!"
말론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장 시장 가격 방어해! 시중에 도는 철광목을 우리가 전부 매수해서 독점 가격을 유지해라! 원탁의 자금력을 보여주는 거다!"
"하, 하지만 그 양이 너무 많습니다!"
"닥치고 사들여! 철광목 가격이 무너지면 우리 상회의 신용도 끝장이야!"
골드 휠 상회는 자존심과 독점권을 지키기 위해 시장에 풀리는 철광목을 미친 듯이 사들이기 시작했다.
가격 방어를 위한 무제한 매수 선언.
그러나 그것은 현우가 파놓은 거대한 함정의 입구였다.
사흘 동안 던전에서 흘러나오는 철광목의 양은 줄어들기는커녕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루에 1만 개, 이튿날엔 5만 개, 사흘째 되는 날에는 아예 던전 입구에 철광목이 산더미처럼 쌓여 공짜로 가져가라고 해도 아무도 안 가져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회주님! 더 이상 매수할 자금이 없습니다! 금고가 바닥났습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원자재 하나에 우리 상회의 전 재산이 묶인단 말이냐!"
"철광목 가격이…… 개당 150골드에서 지금 1코퍼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냥 길가에 굴러다니는 잡석보다 못합니다!"
말론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들이 가격 방어를 위해 고가에 사들인 수십만 개의 철광목은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현우가 보낸 대리인이 상회의 문을 두드렸다.
"골드 휠 상회주님. 사흘 전에 당사로부터 대여해 가신 철광목 5만 개의 상환 기일이 오늘까지입니다. 물건으로 반환해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당시 시가인 개당 100골드로 정산해 주시겠습니까?"
말론의 턱관절이 덜덜 떨렸다.
현우는 사흘 전, 철광목 가격이 폭락하기 직전에 골드 휠 상회로부터 '대여' 형식으로 철광목 5만 개를 빌려 시장에 비싸게 팔아치웠다.
그리고 지금, 시장 가격이 1코퍼로 떨어진 철광목을 단돈 몇 십 골드에 전부 사들여서 상회에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차익거래, 즉 완벽한 공매도의 성공이었다.
"꺼억- 잘 먹고 갑니다."
현우의 대리인이 건넨 장부에는 골드 휠 상회가 지급해야 할 금융적 손실과 파산 선고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시장에 묶인 자금과 공매도 폭탄을 맞은 골드 휠 상회는 단 사흘 만에 완벽하게 침몰했다.
[보상 획득: 450,000 골드] [원탁 산하 '골드 휠' 상회 파산 상태 도달.] [원탁의 학내 지부 재정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그레이 가든의 개인실에서 이 메시지를 확인한 현우는 침대에 대자로 드러누우며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매운맛이지. 검과 마법으로만 싸우는 뇌가 청순한 놈들이 뭘 알겠어?"
옆에서 돈자루를 세고 있던 엘리제는 괴물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현우를 바라보았다.
"너…… 진짜 무서운 놈이구나. 기사단이 칼 들고 협박하니까 아예 가문을 파산시켜 버리네."
"난 평화주의자야, 엘리제. 내 안락한 눕방을 방해하지만 않으면 아무도 안 건드려."
현우가 기지개를 켜며 웅얼거렸다.
원탁 놈들이 그레이 가든으로 오는 보급로를 막았다고?
그럼 그 보급로를 쥔 놈들의 목줄을 재정적으로 죄어버리면 그만이다.
이제 원탁은 당장 자신들의 군세를 유지할 자금조차 부족해 허덕이게 될 터였다.
***
그날 저녁, 자금을 확보한 현우는 그레이 가든 내부의 방벽을 강화하기 위한 자재를 싣고 마차를 몰아 영지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낙원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고급 마석과 식료품이 마차 칸에 가득했다.
타닥, 타닥.
어두운 숲길을 달리는 마차의 바퀴 소리만이 고요한 밤공기를 갈랐다.
그런데 그레이 가든의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마차 아래쪽에서 미세한 마력의 흔들림과 함께 젖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흡……!"
현우는 즉시 마차를 멈추고 고삐를 잡아당겼다.
"거기 누구냐."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으며 마차 아래를 살폈다.
어둠 속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풍겼다.
마차 밑바닥의 좁은 틈새에 한 소녀가 매달려 있었다.
칠흑 같은 머리칼은 피와 흙먼지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입고 있는 가죽 갑옷은 사방이 찢겨 나가 붉은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검만큼은 서슬 퍼런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백설아였다.
원탁의 이성적이고 잔혹한 '정화 정책'에 의해 가문이 통째로 말살당하고, 홀로 살아남아 쫓기던 멸망의 생존자.
"……방해하면, 죽인다."
백설아는 이가 부러질 정도로 악물며 현우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불신과 독기, 그리고 벼랑 끝에 몰린 짐승의 처절함이 서려 있었다.
현우는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인간 불신과 방조벽으로 똘똘 뭉친 현우의 본능이 경고음을 울렸다.
'귀찮은 일에 엮이지 마라. 그냥 버리고 가는 게 네 안락한 은둔 생활에 이롭다.'
하지만 현우의 머릿속에 있는 회귀 전의 기억이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백설아.
훗날 원탁의 심판관들을 도살하며 '백색의 사신'이라 불렸던 최강의 검사 중 한 명.
그녀의 가문이 숨기고 있던 고대의 유산과 그 무력은, 난공불락의 영지 그레이 가든을 지키는 데 있어 가장 완벽한 방패가 될 터였다.
"죽이겠다고 으름장 놓기엔 너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 같은데."
현우가 픽 웃으며 마차 문을 열었다.
"타라. 내 침대 시트에 피 묻히면 청소비 청구할 테니까 알아서 조심하고."
백설아는 경계 어린 눈빛을 거두지 않았지만, 이내 한계에 다다랐는지 털썩 주저앉으며 마차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마차가 다시 그레이 가든의 경계를 향해 출발하려는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갑자기 거대한 섬광이 숲속을 붉게 물들였다.
귀를 찢는 듯한 폭음과 함께, 강한 폭풍이 불어와 마차를 뒤흔들었다.
말들이 놀라 울부짖으며 앞발을 치켜들었다.
"멈춰라! 그레이 가든의 불법 점거자 강현우, 그리고 반역자 백설아!"
숲속의 어둠을 헤치고 나타난 것은, 은빛 투구 위로 붉은 깃털을 장식한 기사들이었다.
원탁 소속의 최정예 무력 집단, '심판 처단단'.
그들의 중심에는 마력의 불꽃을 뿜어내는 거대한 공성용 마력 대포 두 문이 그레이 가든의 환각 장벽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처단단장이 검을 빼 들어 마차를 가리키며 오만하게 외쳤다.
"원탁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당장 반역자를 넘기고 영지 장벽을 허물어라! 그렇지 않으면 이 대포로 네놈들의 쓰레기더미 영지를 통째로 날려버리겠다!"
장벽을 향해 장전되는 마력 대포의 총구가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