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철컥.

차가운 금속음이 목조 건물로 가득한 청록동 골목의 고요를 깨뜨렸다. 가스총의 검은 총구가 아틀리에 대문 위 쇠기둥에 앉아 있는 네로를 정조준했다.

“비켜, 이 고양이 새끼야. 얌전히 처박혀 있어.”

방탄조끼를 입은 사내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나는 이성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삐걱거리는 나무 문턱을 박차고 나가 네로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내 등 뒤로 녀석의 팽팽하게 긴장한 털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것처럼 쿵쾅거렸지만, 목소리만큼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금 내 집 앞마당에서 무슨 짓이죠?”

사내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흉터 많은 사내가 침을 뱉으며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시큼한 땀 냄새와 거친 살기가 풍겼다.

“비키쇼, 아가씨. 안 보입니까? 이 동네에 공수병 바이러스가 돌아서 구청 지시로 긴급 포획 중이니까.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로 처넣을 줄 알아.”

사내가 흔들어 보인 것은 도희가 뜯어왔던 붉은 글씨의 포스터였다.

공수병.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라는 단어를 무기로 삼아, 그들은 청록동의 길짐승들을 합법적으로 쓸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내 손끝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이 얄팍한 거짓말 뒤에 숨은 추악한 낯짝이 누구인지, 모를 줄 알고.

“공무집행방해?”

백은우가 내 옆으로 다가서며 차가운 실소를 흘렸다. 언제나 능글맞은 미소를 짓던 그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해 있었다. 그는 어깨에 메고 있던 가죽 가방을 고쳐 매며 사내들을 쏘아보았다.

“구청 지시라고 하셨습니까? 구청 방역과에 정식으로 발령된 공문 번호 대 보시죠. 그리고 공수병 의심 동물이 발생했다면, 동물보호법과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지정된 수의사의 확진 판정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청록동 구역 담당 수의사는 바로 접니다만, 저는 그런 보고를 올린 적이 없는데요.”

은우의 단호한 어조에 사내들의 기세가 살짝 꺾였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억지스러운 고함을 질렀다.

“우린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방역업체야! 저 고양이 놈들이 미쳐서 날뛰기 전에 싹 다 치워야 주민들이 안전하다고! 방해하지 말고 비켜!”

사내가 다시 가스총을 치켜들려는 순간, 송도희가 가죽 재킷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며 오토바이 앞을 가로막았다.

“쏴 봐, 이 새끼들아! 이거 지금 실시간 라이브 방송으로 다 나가고 있으니까! 공수병 유포라는 개소리로 멀쩡한 고양이들 잡아가려는 꼬락서니, 전 국민이 다 보게 해 줄 테니까 쏴 보라고!”

화면 속에서 깜빡이는 붉은색 녹화 표시를 본 사내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물러설 기색이 아니었다. 강준환의 돈을 받고 움직이는 사설 용역들이 분명했다. 그들의 등 뒤로, 철창이 가득 실린 트럭들이 골목 어귀를 꽉 막아서고 있었다. 철창 안에서는 두려움에 떠는 유기견들과 길고양이들의 애처로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내 코끝으로 묘한 냄새가 스쳐 지나갔다.

시큼하면서도 코를 찌르는, 마치 상류층 전용 반려동물 병원에서나 쓰일 법한 고급 소독약 냄새.

그것은 며칠 전, 유기견 깜이가 물고 있던 특수 플라스틱 뼈 장난감에서 나던 냄새와 완벽히 일치했다. 내 뇌리 속에서 흩어져 있던 단서들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깜이가 물고 있던 그 장난감. 그리고 이 동네 동물들이 갑자기 겪고 있는 발작 증세. 이것은 전염병이 아니다.

나는 은우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우 역시 내 눈빛을 읽고는, 가방 안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냈다.

“공수병이라고 우기기 전에, 이 분석 성적서부터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은우가 사내들의 코앞에 서류를 들이밀었다. 하얀 종이 위에는 붉은색 공인 직인과 함께 복잡한 화학식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이게 뭔지 알아? 며칠 전 실종되었다가 구출된 유기견 깜이가 가지고 있던 장난감, 그리고 청록동 골목 곳곳에 뿌려진 의문의 사료에서 검출된 성분 분석표야.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사설 화학 분석 연구소 두 곳에서 교차 검증을 마친 정식 성적서지.”

흉터 많은 사내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이, 이딴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아주 많지.”

내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며 사내의 말을 잘랐다. 내 목소리는 차가운 아틀리에의 돌바닥처럼 단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거기 적힌 성분명 중 ‘G-102’라는 물질이 보이나요? 그건 강준환 대표가 이끄는 골드 디벨롭먼트 산하, ‘프리미엄 메디컬 펫 빌리지’에서 극비리에 개발 중인 미등록 임상 신약의 원천 화합물입니다. 동물에게 투여했을 때 일시적인 중추신경 마비와 침 흘림, 극도의 공격성을 유발하는 독극물성 화학 물질이죠.”

골목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도희의 라이브 방송 시청자 수가 폭발적으로 치솟는 소리가 골목의 정적 속에서 미세하게 울렸다.

“강준환은 청록동을 강제 수용하기 위해 명분이 필요했던 겁니다.”

나는 서류를 받아 쥐고 사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응시했다.

“멀쩡한 동물들에게 이 약물을 묻힌 장난감과 사료를 살포해 공수병과 유사한 증상을 유도한 뒤, 가짜 전염병 소동을 일으킨 거죠. 그리고 비밀리에 이 불쌍한 아이들을 포획해 자신들의 메디컬 타운 지하 실험실에서 불법 임상 시험 마루타로 사용하려 했던 겁니다. 전염병 발생이라는 구실로 아틀리에와 이 지역 전체를 위험 구역으로 묶어 철거를 앞당기려는 음모와 함께 말이죠!”

“말도 안 되는 소리! 증거 있어?”

사내가 억지를 쓰며 고함을 질렀다.

“증거? 바로 여기 있지.”

은우가 주머니에서 소형 녹음기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녹음기 너머로 익숙한 비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골드 디벨롭먼트의 강준환 대표였다.

[“—이번 공수병 소동으로 청록동 똥개 새끼들은 싹 다 쓸어버려. 어차피 법적으로 유기 동물은 소유주가 없으니 포획해서 안락사 시켰다고 하면 그만이야. 그 아틀리에 년이 들고 있는 수선 장부니 뭐니 하는 헛소리도 이번 기회에 묻어버려.”]

강준환의 목소리가 골목길에 명확하게 울려 퍼지자, 사내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이것은 일주일 전, 도희가 강준환의 사무실 근처에서 잠복하다가 우연히 포착한 결정적인 녹취록이었다. 여기에 오늘 아침 은우가 받아온 깜이 장난감의 성분 분석표가 더해지면서, 그들이 짜놓은 완벽한 덫은 오히려 그들의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되었다.

“자, 이제 누가 감옥에 갈 시간인지 결정해 볼까요?”

도희가 이죽거리며 골목길 저편을 가리켰다.

멀리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청록동 골목을 향해 좁혀오고 있었다. 한 대가 아니었다. 최소 서너 대의 경찰차와 민생사법경찰단의 차량이 붉고 푸른 빛을 번쩍이며 골목 입구로 들이닥쳤다.

“우린 경찰에 신고한 적 없는데?”

사내 중 하나가 당황해 중얼거렸다.

“우리가 했지, 이 머저리들아.”

도희가 헬멧을 툭툭 치며 웃었다.

“불법 약물 유포, 동물보호법 위반, 그리고 유기 동물 무단 포획 및 사기 선동 혐의. 현행범으로 딱 걸린 거야.”

경찰관들이 차에서 내려 순식간에 골목을 포위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서울시 특별사법경찰단입니다. 귀하들을 동물보호법 위반 및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법률의 엄중한 심판대 앞에 사설 방역단 사내들은 가스총과 포획망을 바닥에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철컥이는 수갑 소리가 아틀리에 앞마당을 가득 채웠다. 그들이 끌고 온 트럭의 철창 문이 은우와 도희의 손에 의해 하나씩 열렸다.

“나와, 얘들아. 이제 안전해.”

은우의 다정한 목소리에, 철창 안에 갇혀 있던 강아지들과 고양이들이 꼬리를 흔들며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러나 쏟아져 나온 동물들 가운데, 유독 한 마리의 작은 몰티즈가 제자리에 주저앉아 바르르 떨고 있었다.

녀석의 목에는 낡고 때 묻은 연분홍색 패브릭 칼라가 채워져 있었는데, 사설 방역단 놈들의 거친 손길에 찢겼는지 솜털이 삐져나온 채 대롱거리고 있었다. 녀석은 웅크린 채 연신 맑은 눈물을 흘리며 젖은 코를 낑낑댔다.

—추워, 목덜미를 꼭 쥐어주던 따뜻한 손길이 이제는 느껴지지 않아. 회색 악마들이 내 소중한 끈을 끊어버렸어.—

몰티즈의 왜곡된 인지 필터 속에서, 찢어진 칼라는 주인과의 연을 이어주는 유일한 ‘생명의 끈’이었다. 그것이 끊어지자 녀석은 자신이 영영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온몸을 얼려버릴 듯한 슬픔에 잠긴 것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녀석의 앞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앞치마 주머니 안쪽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은 할아버지의 재봉 보관함 깊은 곳에서 찾아내어 부적처럼 품고 다니던, 정체불명의 찬란한 ‘은빛 바늘 실’ 한 타래였다.

햇빛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은은한 은하수 같은 빛을 내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로운 실줄기.

“괜찮아, 아가. 내가 다시 이어줄게.”

달래는 목소리와 함께 은빛 실을 바늘귀에 꿰어 몰티즈의 찢어진 칼라를 꿰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핑 도는 고열과 함께 지독한 통증이 내 모든 감각을 엄습했다.

‘윽……!’

차가운 쇠창살에 갇혀 느꼈을 극심한 폐쇄공포, 살을 찌르는 듯한 화학 약물의 매캐한 냄새, 그리고 세상에 홀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절망적인 외로움이 내 심장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이가 맞부딪칠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 동물의 고통을 고스란히 나누어 가져야 하는 감각 과부하의 리스크는 언제 겪어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힘껏 바늘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내 고통의 대가로 이 작은 생명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이까짓 아픔쯤은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다.

한 땀, 한 땀.

은빛 실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의 황금빛 햇살을 머금고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찢어진 칼라를 단단히 이어 붙였다. 마지막 매듭을 짓고 가위로 실을 톡 자르는 순간, 내 머릿속을 짓누르던 검은 안개가 거짓말처럼 걷히며 따스한 온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내 시야에 반짝이는 가죽 장부의 환영이 떠올랐다.

[ 영혼 수선 완료! ] [ 온기 지수가 65%로 상승합니다! ] [ 새로운 기적: 아틀리에의 '보호막 영역(기초 단계)'이 각성합니다! ] [ 이제 은빛 바늘 아틀리에의 사설 방벽 내부에서는 외부의 물리적·영적 유해 물질 및 허가받지 않은 악의적 침입자의 기운이 대폭 상쇄됩니다. ]

웅웅거리는 진동과 함께 아틀리에를 둘러싼 쪽빛 향나무 문턱에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하고 포근한 방어막이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것이 온몸의 피부로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봄바람이 골목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듯한 감각이었다.

방역단 놈들이 뿌려둔 불쾌하고 시큼한 약물 냄새가 순식간에 정화되며, 아틀리에 마당은 그리운 할아버지의 옛날 다락방처럼 아늑하고 따스한 온도로 가득 찼다.

“어라? 갑자기 바람이 왜 이렇게 따뜻하지?”

도희가 목덜미를 만지며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떨고 있던 몰티즈는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내 손바닥을 부드러운 혀로 핥아댔다. 녀석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절망의 그림자가 남아있지 않았다.

이웃 주민들이 박수를 치며 골목으로 쏟아져 나와 구조된 동물들을 품에 안았다. 경찰차의 붉은 경광등 불빛 속에서, 청록동 골목 연대는 마침내 가짜 전염병이라는 거대한 음모를 완벽하게 깨부수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우리의 축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달그락거리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 골목 입구에 미끄러지듯 멈춰 선 검은색 최고급 세단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차 문을 박차고 나온 사내의 모습에 주민들의 환호성이 뚝 멈췄다.

헝클어진 머리칼, 핏발 선 눈동자, 그리고 구겨진 명품 수트 차림의 강준환이었다. 평소의 젠틀하고 여유로운 가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그의 얼굴은 광기와 분노로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의 수하들이 수갑을 찬 채 호송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며, 그는 미친 사람처럼 껄껄 웃어댔다.

“하하…… 제법이군, 한여울. 내 약물 실험 증거까지 찾아내서 내 개들을 치워버려?”

그가 비척거리며 아틀리에 대문 앞까지 걸어왔다. 하지만 각성된 보호막 영역의 보이지 않는 힘 때문인지, 그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묘한 저항감에 가로막힌 채 제자리에 멈춰 섰다.

강준환은 품속에서 붉은색 관인이 찍힌 두꺼운 서류 한 장을 꺼내 들며 이죽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야, 법이라는 건 너희 같은 쥐새끼들 편이 아니거든.”

그가 서류를 내 얼굴 앞에 거칠게 들이밀었다.

“이건 법원에서 정식으로 발부받은 ‘합법적 무단 점유 토지 강제 대집행 선고서’다. 너희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이 아틀리에 부지는 내일 아침 09시부로 법적 소유권이 우리 골드 디벨롭먼트로 완전히 귀속된다.”

서류 상단의 굵은 활자가 내 눈을 찔러왔다.

[ 강제 대집행 영장: 은빛 바늘 아틀리에 및 청록동 4공구 전역 철거 승인 ]

“내일 아침, 법원 집행관들과 철거용 불도저가 이 골목을 통째로 밀어버릴 거다.”

강준환이 이가 부러질 듯 이를 갈며 내 귓가에 대고 낮게 읊조렸다. 그의 숨결에서 타들어 가는 듯한 살기가 풍겼다.

“법적인 절차는 끝났다. 내일 아침이 되면, 이 잘난 인형 병원 쪼가리도 너희들의 그 가증스러운 동물 새끼들과 함께 흔적도 없이 흙먼지가 될 테니까. 어디 한번 밤새도록 울부짖으며 기다려 봐.”

핏빛 노을이 청록동 골목길을 붉게 물들이는 가운데, 강준환의 비열한 선포가 아틀리에의 고요한 마당을 차갑게 얼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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