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멀어지는 검은색 세단의 꽁무니에서 뿜어져 나온 매캐한 매연이 청록동 골목의 서늘한 아침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강준환이 황급히 차에 올라타 도망치듯 사라진 자리에는 차가운 아스팔트와 흩날리는 먼지 더미만이 뒹굴고 있었다.

웅성거리던 기자들과 위생과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골목길 끝. 낡은 은빛 바늘 아틀리에의 문틀에 기댄 채, 나는 가쁘게 몰아쉬던 숨을 겨우 가라앉혔다.

옆에 서 있던 백은우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나직하게 웃었다.

“잘했어요, 여울 씨. 아주 멋진 반격이었어.”

그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능글맞음 뒤로 묘한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타인의 호의를 마주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솟구치던 의심의 벽이, 그의 따스한 시선 아래서 아주 미세하게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은 길지 않았다.

바스락—.

발끝에서 아주 작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내리자, 낡은 마루 장판 밑의 비좁은 틈새에서 먼지투성이의 검은 털 뭉치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청록동 골목길의 거친 지배자이자,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부터 이곳을 제 안방처럼 드나들던 길고양이 네로였다.

녀석은 한쪽 귀 끝이 삐딱하게 잘려 나간 험악한 인상으로 나를 불만스레 올려다보았다. 노란 눈동자가 아침 햇살을 받아 날카롭게 빛났다. 네로는 내 신발 앞코를 향해 입을 벌리더니, 물고 있던 무언가를 툭 내려놓았다.

데구르르.

먼지와 마른 흙이 잔뜩 묻은 둥글고 납작한 물체가 마루판 위를 구르다 멈췄다.

그것은 고대의 태엽 열쇠를 닮은 기이한 형상의 황동 단추였다. 두껍고 묵직한 황동의 표면에는 세월의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어 있었지만, 그 틈새로 흘러나오는 둔탁한 금빛만은 숨길 수 없었다.

“야옹.”

네로는 짧고 건조한 울음소리를 남기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어두운 장판 밑 틈새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어라, 저 녀석이 웬일로 선물을 다 주고 간대요?”

은우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허리를 숙이려 했지만, 내 손이 더 빨랐다. 황동 단추를 집어 드는 순간, 손끝을 타고 짜릿한 정전기 같은 자극이 등줄기를 타고 치솟았다.

동시에 품속에 넣어두었던 낡은 가죽 제본의 책, ‘영혼의 수선 장부’가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화끈거리는 열감과 함께 장부의 겉표지가 스스로 열리며 허공에 붉은빛의 상형 문자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오직 내 눈에만 보이는 투명한 글씨들이 아틀리에의 어두운 공기 속에 박히듯 나타났다.

[ 경고: 봉인된 심연의 열쇠가 감지되었습니다. ] [ 이 도구는 아틀리에 지하에 숨겨진 '그곳'을 여는 마스터키입니다. ] [ 동시에, 강준환이 그토록 찾고 있는 청록동의 거대한 비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눈앞에 명멸하는 상형 문자들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격벽으로 가로막힌 지하 동굴의 안전장치이자, 이 아틀리에의 뿌리와 닿아 있는 거대한 설계도였다.

—할아버지는 도대체 이 아래에 무엇을 감추어 두신 걸까.

단추의 묵직한 무게감이 손바닥을 짓눌렀다.

그때였다. 귓가에 웅성거리는 수천 마리 고양이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몰아쳤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찾아왔다. 영혼의 수선 장부가 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감각 과부하의 징후였다. 동물의 상처와 고통을 내 오감으로 고스란히 나누어 가져야 하는 가혹한 제약.

“윽…….”

나도 모르게 이가 부러질 정도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비틀거리는 내 어깨를 은우가 재 빠르게 붙잡았다.

“여울 씨! 괜찮아요? 얼굴색이 갑자기 왜 이래요?”

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내 시야는 이미 청록동의 낡은 아틀리에를 벗어나, 붉은 불길이 이글거리는 가치 전도의 환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 * *

사방이 시커먼 그을음과 매운 연기로 가득했다.

뜨거웠다. 발바닥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화상이 온몸의 신경을 자극했다.

—살려줘. 뜨거워. 왜 날 가둔 거야? 대장?

그것은 네로의 기억이었다. 불탄 폐가 속에서 갇혀 울부짖는 어린 고양이의 공포가 내 가슴을 쥐어짜듯 짓눌렀다. 숨이 막혀 컥컥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연기를 마신 것처럼 목구멍이 칼칼하게 찢어지는 감각이 실재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더 끔찍한 기억.

어둠 속에서 다가온 거대한 인간의 손이 네로의 덜덜 떠는 몸을 붙잡았다. 차갑고 예리한 금속의 감각이 오른쪽 귀에 닿았다.

서걱—.

귀 끝이 잘려 나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내 오른쪽 귀에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사냥꾼이다. 나를 해치려는 괴물 사냥꾼이야. 내 소중한 귀를 잘라갔어. 인간들은 모두 내 적이야.

네로의 왜곡된 오해였다. 녀석에게 그 기억은 자신을 해치려 한 잔혹한 주인의 고문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하지만 수선 장부의 붉은 실선들이 얽히며 네로의 왜곡된 기억 뒤편에 숨은 진실을 비추기 시작했다.

장부의 책장 위로 흘러내리는 푸른 안개 속에서, 한 노인의 눈물 어린 얼굴이 보였다. 노인은 불탄 폐가에서 겨우 구조한 아기 고양이의 귀에 퍼진 악성 종양, 즉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밤새 눈물을 흘리며 메스를 들었던 것이다.

—부디 살아만 다오. 귀는 조금 미워져도 좋으니, 제발 숨만 쉬어다오.

그것은 귀를 잘라내서라도 녀석의 실낱같은 목숨을 붙잡으려 했던 주인의 헌신적인 사랑이자 희생이었다.

그러나 네로는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가두고 귀를 자른 인간을 원망하며 평생을 날 선 야생의 들고양이로 살아왔던 것이다.

“하아, 하아……!”

환상에서 깨어나며 커다란 숨을 들이켰다. 내 오른쪽 귀 끝이 실제로 타들어 가듯 아려왔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끝에서 툭 떨어졌다.

“여울 씨, 정신 차려요. 물 좀 마셔봐요.”

은우가 내민 따뜻한 보리차 컵을 받아 쥐었지만, 손이 덜덜 떨려 물이 출렁거렸다.

그때, 아틀리에 구석의 어두운 벽난로 옆 러그 위에서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스르륵 일어났다. 평소에는 게으르게 코만 골던 우리 아틀리에의 영적 수호자, 은바람이었다.

은바람은 거대한 몸집을 천천히 움직여 내 발치로 다가오더니, 내 손을 덮고 있는 황동 단추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녀석의 푸른 눈동자에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

“그 검은 녀석의 상처는 너무 깊어.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야생의 혼이지.”

은바람의 나직한 음성이 내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졌다. 녀석은 커다란 앞발로 내 발밑의 바닥을 툭툭 쳤다.

“하지만 수선하는 자의 진심이 담긴다면, 그 거친 가시도 부드러운 솜털이 될 수 있는 법. 할아버지의 보관함을 열어라. 네가 찾는 답이 그곳에 있을 테니.”

할아버지의 보관함—.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안쪽 작업실로 향했다. 은우는 조용히 내 뒤를 따르며, 무리하지 말라는 듯 내 등을 살며시 손으로 받쳐주었다.

작업실 구석, 세월의 더께가 앉은 붉은 오크나무 재봉 보관함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자, 오래된 마른 라벤더 향과 가죽 냄새가 섞인 아늑한 공기가 피어올랐다.

그 깊숙한 바닥, 낡은 가위와 단추들 사이에서 유독 이질적인 광채를 뿜어내는 물건이 있었다.

햇빛을 받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은은한 달빛 같은 빛을 흘러 보내는 실 한 타래.

그것은 1화에서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던, 그러나 용도를 몰라 고이 모셔두었던 찬란한 ‘은빛 바늘 실’이었다.

실을 손에 쥐자마자 거짓말처럼 귀의 통증과 머리의 과부하가 씻은 듯이 가라앉았다. 실타래에서 번져나온 온기가 내 차가운 손가락 마디마디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이 실은…….”

“정말 아름답네요.”

은우가 감탄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동시에 은바람이 자신의 털 속에 숨겨두었던 푸르스름한 천 조각 하나를 내밀었다. 은방울꽃 무늬가 정교하게 수놓아진, 전설 속의 치유 원단이었다.

“네로의 상처받은 마음을 감싸 안을 망토를 만들어라. 은빛 실로 꿰맨 망토만이 그 녀석의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을 수 있어.”

은바람의 조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재봉틀 앞에 앉아 은빛 바늘 실을 바늘귀에 꿰었다. 신기하게도 실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듯 부드럽게 바늘구멍을 통과했다.

드르륵, 드르륵—.

아틀리에에 규칙적이고 평화로운 재봉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방울꽃 원단 위에 은빛 실이 지나갈 때마다, 찬란한 은하수 같은 궤적이 그려졌다.

네로가 겪었던 불길의 공포, 귀가 잘려 나갈 때의 외로움과 배신감.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은빛 실이 흡수하여 따뜻한 위로의 에너지로 정화하는 듯했다.

마침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미니 망토가 완성되었다. 은방울꽃 문양이 은빛 실과 어우러져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은은하게 반짝였다.

* * *

망토를 들고 아틀리에 문을 열고 나가자, 신기하게도 네로가 마당 한구석의 낡은 평상 위에서 웅크린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다가가자 즉시 하악질을 하며 날카로운 발톱을 세웠다.

“샤아아아—!”

“네로야, 잠시만.”

나는 녀석의 살기 어린 경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녀석이 느꼈을 평생의 오해와 외로움이 가슴을 아프게 찔러왔기에 두렵지 않았다.

“아프게 하려는 게 아니야. 너를 살리려 했던 그 따뜻한 손길을…… 이제는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조심스럽게 은방울꽃 망토를 네로의 목에 둘러주었다.

녀석이 내 손을 물어뜯으려 이빨을 드러낸 바로 그 순간, 은빛 실의 온기가 네로의 온몸을 감쌌다.

스아아—.

망토에서 흘러나온 은빛 입자들이 네로의 상처받은 오른쪽 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녀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뇌리를 지배하던 불길의 환영이 사라지고, 자신을 품에 안고 밤새 울며 치료해 주었던 주인의 따뜻한 품 온기가 네로의 영혼에 그대로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야옹…….”

네로의 사나운 울음소리가 거짓말처럼 순해졌다. 녀석은 쪼그려 앉은 내 손등에 자신의 뺨을 조심스럽게 비벼왔다.

거칠고 까칠했던 야생 고양이의 털이, 온기를 되찾아 비단처럼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그 순간, 내 품속의 영혼의 수선 장부가 크게 울리며 투명한 알림창을 띄웠다.

[ 영혼 수선 완료! ] [ 온기 지수가 55%로 대폭 상승합니다! ] [ 아틀리에의 '사설 방벽 영토'가 확장되며, 외부의 부정적인 기운을 차단하는 결계가 강화됩니다. ]

망토를 목에 건 네로가 천천히 평상 위에서 일어섰다.

녀석의 몸집은 그대로였지만, 풍기는 기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마치 청록동 골목을 수호하는 거대한 영수(靈獸)처럼, 녀석은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며 아틀리에의 대문 앞 쇠기둥 위에 늠름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나가는 바람마저 녀석의 기세에 숨을 죽이는 듯했다. 이제 그 어떤 침입자도 네로의 허락 없이는 이 아틀리에의 문턱을 넘지 못하리라.

“세상에…… 저 녀석 표정 좀 봐요. 완전히 이 구역의 대장이 되었네.”

은우가 혀를 내두르며 웃었다.

나 역시 오랜만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가 남기신 은빛 실의 기적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 * *

그러나 그 평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다다닥—!

골목 저편에서 거친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고요한 아침 공기를 찢으며 달려왔다. 가죽 재킷을 입은 송도희가 헬멧도 제대로 쓰지 않은 채 붉어진 얼굴로 오토바이를 급정거했다.

“여울 언니! 큰일 났어요! 당장 이것 좀 봐요!”

도희가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리며 내민 것은 방금 동네 전신주에서 뜯어낸 듯한 커다란 포스터였다.

포스터에는 붉은 글씨로 자극적인 문구가 박혀 있었다.

[ 경고: 청록동 유기 동물 공수병(광견병) 의심 바이러스 발생! ] [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즉각적인 살처분 및 포획 실시. ]

“공수병이라니? 이 동네에 그런 전염병이 돌 리가 없는데!”

은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가짜예요! 골드 디벨롭먼트 놈들이 퍼뜨린 찌라시라고요! 지금 저 아래 큰길가에 포획용 철창을 실은 트럭들이 깔렸어요!”

도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골목 어귀에서 둔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색 방탄조끼를 입고, 한 손에는 쇠로 된 포획망과 다른 한 손에는 침묵의 살인 무기인 가스총을 든 사내들이 떼를 지어 골목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들의 조끼에는 ‘유기 동물 특별 방역단’이라는 정체불명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저기 한 마리 있군. 쏴!”

사내 중 하나가 아틀리에 대문 위의 네로를 가리키며 가스총의 노리쇠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철컥—.

차가운 금속음이 골목의 정적을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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