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전부 그 불법 임상 시험 목록이라고?" 도희의 거친 손끝이 깜이의 낡은 인형 속에서 나온 푸른색 서류 모퉁이를 거칠게 구겼다. 분노로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눈동자가 종이에 적힌 글자들을 훑어 내리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찰랑—
아틀리에의 깨진 유리창 너머, 밤의 정적을 깨뜨리는 기분 나쁜 액체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차갑고 비릿한 등유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낡은 목조 건물의 틈새로 스며들었다. 여울은 코끝을 찌르는 독한 석유 향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창문 틈새의 어둠 속에서 둔탁한 플라스틱 용기를 내려놓는 검은 실루엣이 번뜩였다. 칙, 치익—. 어둠을 가르고 피어오르는 작은 불꽃이 괴한의 일그러진 얼굴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가솔린 통에 불을 붙여 아틀리에 안으로 던져 넣으려는 찰나였다.
"어떤 새끼가 감히 어디다 불질이야!"
송도희의 몸이 고수풀처럼 날카롭게 튀어 올랐다. 그녀는 재고를 정리해 두던 선반 위에서 묵직한 도자기 화분을 망설임 없이 움켜쥐었다. 흙이 가득 담긴 붉은 황토 화분이 허공을 가르며 창틀의 낡은 쇠창살 사이로 정확하게 날아갔다.
쨍그랑! 콰창!
단단한 도자기가 괴한의 안면을 그대로 강타하는 파열음이 청록동의 고요한 새벽하늘을 찢었다. "아악!" 짧고 비명 섞인 외마디 소리와 함께 괴한이 뒤로 고꾸라졌다. 가솔린을 머금은 불꽃이 시멘트 바닥 위에서 힘없이 사그라졌다. 도희는 깨진 유리 파편이 흩어진 창틀을 아무렇게나 짚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녀의 라이더 재킷 깃이 거칠게 펄럭였다.
"거기 안 서? 이 방화범 새끼야!" 탈탈거리며 도망치는 발소리가 골목길 모퉁이로 빠르게 멀어졌다. 도희는 사냥감을 발견한 삵처럼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도희야! 위험해!" 여울이 다급하게 외치며 아틀리에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은우 역시 이미 한발 앞서 도희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또다시 빼앗길 수는 없어.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이 따뜻한 온기를, 내 유일한 도피처를 저 탐욕스러운 손아귀에 불타 사라지게 둘 순 없다. 여울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달렸다. 가슴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호흡이 하얀 김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청록동의 골목길은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가로등 불빛조차 제대로 닿지 않는 어두운 모퉁이마다 버려진 가구와 낡은 화분들이 발걸음을 방해했다. 하지만 이 동네를 손바닥 보듯 꿰고 있는 도희의 추격은 매서웠다.
"은우 씨, 오른쪽 골목으로 돌아서 막아요! 거긴 막다른 길이야!" 달리는 와중에도 도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골목 벽에 부딪혀 울렸다. "알겠습니다!" 은우가 긴 다리로 담벼락을 가볍게 딛고 회색빛 시멘트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라 지름길로 향했다. 매사 유쾌하던 그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완전히 가셨고, 사냥을 시작한 맹수처럼 매서운 안광만이 번뜩였다.
"헉, 헉……!" 도망치던 괴한의 거친 숨소리가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다. 미로 같은 골목 끝, 붉은 벽돌담이 가로막은 막다른 길목이었다. 괴한은 뒤를 돌아보다가 은우가 통로를 막아서자 당황하며 쥐고 있던 검은색 가죽 가방을 휘둘렀다.
"비켜! 안 비키면 진짜 죽여버린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사내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남의 일터에 불을 지르려던 솜씨치고는 꽤나 어설프군요." 은우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상체를 숙여 사내의 둔탁한 주먹질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도희가 뒤에서 사내의 오금계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억!" 사내가 무릎을 꿇으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 반동으로 사내가 품고 있던 가방이 엎어지며 내용물들이 청록동의 차가운 보도블록 위로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울은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흩어진 물건들 사이로 붉은색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두꺼운 서류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사내는 다급하게 바닥을 기며 서류를 챙기려 했다. "이거 놔! 놔 달라고!"
"어디서 발버둥질이야?" 도희가 사내의 팔을 등 뒤로 꺾어 누르며 차갑게 읊조렸다. 사내의 얼굴에서 모자가 벗겨지며 드러난 민낯은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청록동 재개발 현장 주변에서 자주 서성이던 무단 철거 용역업체의 현장 책임자, 배 씨였다.
여울은 몸을 숙여 흩어진 서류들 중 가장 두꺼운 파란색 폴더를 슬쩍 낚아챘다. 겉장에는 [골드 디벨롭먼트 극비 — 청록동 지구 무단 매립 및 불법 배수로 건설 계획서]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이게 바로 그들이 숨기려던 진짜 더러운 비밀이구나. 여울은 서류를 품 안 깊숙이 밀어 넣었다. 심장이 요동쳤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배 씨 아저씨, 얼굴이 참 많이 상하셨네." 은우가 주머니에서 은색 펜라이트를 꺼내 사내의 눈앞에 갖다 대며 나직하게 물었다. "누가 시켰습니까? 강준환 대표인가요?" "내, 내가 무슨 말을…… 난 그냥 시키는 대로……!" "방화 미수는 형량이 꽤 무겁습니다. 특히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주거 지역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여기서 순순히 불지 않으면, 방금 주운 이 가방 속 서류들과 함께 경찰서로 바로 직행할 겁니다." 여울이 한 걸음 다가서며 차가운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과거 자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었던 배신자들을 대할 때의 단단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배 씨는 여울의 기세에 눌려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강, 강 대표가 시켰소! 아틀리에에 불을 질러서 쓸 수 없게 만들면, 안전진단 등급을 최하로 떨어뜨려 강제 수용할 명분이 생긴다고……! 이번 주 안에 무조건 비우게 만들라고 했단 말이오!"
"개자식들, 아주 작정을 했구나." 도희가 사내의 어깨를 더 세게 누르자, 배 씨가 비명을 질렀다. "살려주시오! 난 그냥 돈 몇 푼에……!" "더러운 돈에 영혼까지 팔아넘기진 말았어야지." 여울은 서류의 감촉을 손끝으로 느끼며 배 씨를 내려다보았다. "돌아가서 강준환에게 똑똑히 전해. 우리가 이 계획서를 가지고 있다고. 섣불리 움직이면 이 불법 도면들이 내일 아침 당장 언론사 데스크로 날아갈 거라고 말이야."
도희가 배 씨를 거칠게 밀쳐냈다. 사내는 널브러진 가방을 황급히 챙겨 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비틀거리며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도희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언니, 진짜 멋졌어. 아까 서류 채 가는데 손놀림이 완전 타짜 같더라니까?" "타짜라니…… 그냥 눈에 보였을 뿐이야." 여울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품에 안은 서류를 꽉 움켜쥐었다.
싸늘한 새벽바람이 골목길을 휩쓸고 지나갔다. 돌아가는 길, 음침한 쓰레기 수거함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울이 걸음을 멈추자,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자그마한 길고양이 서너 마리가 잔뜩 겁에 질린 채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방금 전의 소동과 매캐한 등유 냄새에 놀란 모양이었다. 녀석들의 털이 뾰족하게 서 있었고, 보라색 눈동자들이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울은 주머니 속을 만지작거렸다. 손끝에 닿은 것은 낮에 깜이의 인형을 수선할 때 쓰고 남은, 은빛 실이 수놓아진 부드러운 보호 천 조각이었다. 할아버지의 재봉 보관함 깊숙한 곳에서 발견했던 그 신비로운 '은빛 바늘 실' 한 타래—.
그 찬란한 은빛 실로 꿰맨 천 조각을 꺼내어 고양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괜찮아, 이제 무서운 사람은 갔어." 여울이 조심스럽게 천 조각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은빛 실이 수놓아진 천 조각에서 은은하고 온화한 청록색 빛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더니, 길고양이들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잔뜩 긴장해 있던 녀석들의 귀가 순해지며, 가르릉거리는 소리가 골목길에 퍼졌다. 녀석들은 여울이 놓아둔 천 조각 주변으로 모여들어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 시작했다.
—인간은 서로 믿지 못하고 상처를 주지만, 이 작은 생명들은 이토록 쉽게 온기를 나누는구나. 여울의 마음속에 굳게 닫혀 있던 방어벽의 틈새로 따스한 눈물이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아틀리에 방향에서 나직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우웅—. 따뜻한 봄바람 같은 파동이 청록동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영혼의 수선 장부가 각성하며 아틀리에의 숨겨진 힘이 깨어난 것이었다.
아틀리에의 낡은 목조 문턱이 쪽빛 향나무의 은은한 향을 풍기며 단단하게 변했고, 벽면 한쪽에 먼지 쌓여 있던 바구니가 은은한 황금빛을 뿜어내며 '안식의 바구니'로 거듭났다. 내부 공간 역시 한 평 남짓 조용히 넓어지며 포근한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은빛 실의 신비한 마력이 아틀리에를 진정한 안식처로 확장시킨 순간이었다.
"어……? 가게 안이 왜 이렇게 넓어진 것 같지?" 도희가 아틀리에 문을 열고 들어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분 탓이 아닐 겁니다. 이곳은 원래 아주 특별한 곳이니까요." 은우가 여울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여울 역시 가슴속에 차오르는 든든한 온기를 느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평화는 길지 않았다.
몇 시간 뒤, 붉은 아침 해가 청록동의 지붕 위로 떠오르자마자 아틀리에 앞마당이 요란스러운 소음으로 가득 찼다.
타이어가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은색 대형 세단들과 구청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승합차들이 아틀리에 입구를 이중삼중으로 포위했다. 파란색 제복을 입은 구청 행정위생과 위생 서기관들과 대규모 기동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고급 맞춤 정장을 매끄럽게 차려입은 강준환이 카메라를 든 기자들을 대동한 채 서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가 있었다.
여울이 급히 문을 열고 나가자, 강준환이 확성기를 든 채 차가운 목소리로 선언했다.
"본 시설은 불법 유기 동물 무단 수용 및 전염병 매개 위험 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구청 행정위생과 권한으로 금일부로 은빛 바늘 아틀리에의 전면 격리 및 강제 폐쇄 처분을 공포합니다. 누구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내부의 모든 물건은 압류 처분됩니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여울의 얼굴을 향해 무자비하게 터지기 시작했다. 강준환의 얼음장 같은 미소가 아침 햇살 속에서 잔인하게 빛나고 있었다.
눈앞이 하얗게 번지는 플래시 불빛 속에서 차가운 새벽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물러서세요! 촬영 협조해 주십시오!"
구청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아틀리에의 낡은 나무 울타리를 거칠게 밀치며 진입로를 확보했다. 붉은 벽돌담 너머로 아침을 준비하던 청록동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위생 전염병이라니? 저기가 무슨 전염병 온상지야!" "우리 집 강아지도 저기서 고쳐줬는데, 저게 무슨 소리래?"
이웃들의 웅성거림을 비웃듯, 강준환은 단상에 오른 배우처럼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여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반질반질한 가죽구두가 할아버지가 정성스레 깔아둔 쪽빛 향나무 문턱을 거칠게 밟아 뭉개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한여울 씨, 오랜만입니다."
강준환이 확성기를 내리고 오직 여울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의 숨결에서는 비릿하고 차가운 민트 향이 풍겼다.
"얌전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이런 수치스러운 꼴은 면했을 텐데 말이죠. 청록동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시설물로 전락한 기분이 어떻습니까?"
—결국 이 비열한 방법으로 나를 끌어내리겠다는 뜻이구나.
여울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분노를 억누르려 주먹을 꽉 쥐자, 품 안에 숨겨둔 배 씨의 파란색 폴더—[청록동 무단 매립 및 불법 배수로 건설 계획서]—가 단단한 감촉으로 손끝에 닿았다. 아직 이 카드를 보여줄 때는 아니었다. 완전히 그들의 발목을 꺾어놓을 결정적 순간을 잡아야 했다.
그때였다.
쿵, 쿵, 쿵!
갑자기 여울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무겁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품속에 있던 가죽 제본의 '영혼의 수선 장부'가 서서히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그녀의 살을 지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다.
"아……!"
여울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머릿속이 핑 돌며 사방의 소음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이 마치 늪처럼 발목을 잡아끄는 착각이 들었다.
—동조율이…… 강제로 상승하고 있어.
이것은 감각 과부하의 징후였다. 장부가 활성화되면서, 아틀리에 주변에 숨어 있던 길짐승들의 극심한 공포와 억압감이 여울의 오감으로 날것 그대로 들이치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히고, 목구멍 안쪽에서 쇠비린내가 훅 끼쳤다. 차가운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여울 씨!"
옆에 서 있던 은우가 재빨리 그녀의 허리를 단단한 팔로 감싸 안았다. 그의 손길에서 전해지는 묵직하고 따뜻한 온기가 고통에 비틀거리던 여울의 정신을 간신히 붙잡아 주었다. 은우는 이미 품속에서 청진기와 긴급 처방 약물이 든 작은 가죽 가방을 꺼내 쥐고 있었다. 그의 서늘한 눈빛이 강준환을 향해 쐐기처럼 박혔다.
"강 대표님, 아무리 사유지 수용 절차라 하더라도 공무원을 동원한 이런 막무가내식 강제 격리는 명백한 직권남용입니다. 역학조사 결과서도 없이 전염병 운운하는 것은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합니다."
"허위사실?"
강준환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위생과 서기관 중 한 명이 철제로 된 묵직한 격리 케이지 하나를 앞으로 들고 나왔다.
철창 틈새로 보이는 것은 잿빛 털이 군데군데 빠진 채 벌벌 떨고 있는 어린 믹스견 한 마리였다. 녀석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충혈되어 있었고, 입가에는 마른 침이 허옇게 묻어 있었다.
"이 동네 유기견들이 단체로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마침 이 아틀리에 주변에서 포획된 녀석이죠. 이래도 역학조사가 필요 없다고 우기실 겁니까, 백 원장님?"
철제 케이지가 바닥에 험하게 내려앉는 순간, 여울의 코끝으로 싸한 냄새가 스며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동물의 분변 냄새가 아니었다. 찌르는 듯한 락스 향과 섞여 있는, 묘하게 들치근하면서도 인공적인 화학 약품의 냄새—.
—이 냄새는……!
여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2화에서 깜이가 물고 있던 특수 플라스틱 뼈 장난감에서 나던 바로 그 '상류층 전용 메디컬 센터의 소독약 향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냄새였다.
강준환이 운영하는 메디컬 센터에서 흘러나온 미등록 신약의 흔적. 저 불쌍한 믹스견은 전염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불법 임상 시험에 이용당하고 버려진 피해자였다.
"이 사기꾼 자식들이 어디서 약을 팔아!"
도희가 시끄러운 배기음을 울리며 아틀리에 마당 한가운데로 오토바이를 거칠게 몰고 들어왔다. 그녀는 오토바이를 기동대원들의 저지선 바로 앞에 급정거시키더니, 헬멧을 벗어 던지며 소리쳤다.
"저 개가 어디서 잡혔는지 내가 똑똑히 봤어! 강준환 네놈 부하들이 어제 밤중에 골목 구석에서 억지로 자루에 담아 가던 녀석이잖아! 위생 검사는 핑계고 증거 인멸하려는 거지?"
"무슨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겁니까. 공무집행 방해로 즉각 연행하기 전에 비키세요."
강준환의 지시에 기동대원들이 붉은 완장을 찬 채 도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극에 달해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굳어졌다.
여울은 은우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똑바로 섰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장부의 온기 지수가 급격히 요동치며 머릿속에 새로운 글자들을 띄우기 시작했다.
[ 새로운 영혼의 기록이 감지되었습니다. ] [ 대상: 시험견 7호 (일명 '누리') ] [ 동조율: 75% — 고통 동조 수치 급증 ] [ 동물의 인지 상태: '주인이 나에게 매일 밤 달콤한 하늘색 사탕을 주며 비밀 놀이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사탕을 먹을 때마다 온몸이 뜨거운 불덩이가 된다.' ]
하늘색 사탕—. 그것은 강준환의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미등록 임상 약물의 형태였다.
여울의 오감이 누리의 고통과 연결되자, 뼈마디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작열감이 그녀의 전신을 덮쳤다. 여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품 속의 계획서를 움켜쥐었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 저 불쌍한 녀석도, 이 아틀리에와 청록동도 전부 저 악마 같은 자의 손에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여울이 떨리는 걸음을 내딛어 강준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가 아침 햇살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강준환 대표님."
여울의 목소리는 비록 가늘었으나, 그 안에 담긴 힘은 주위의 소음을 단숨에 잠재울 만큼 단단했다.
"그 케이지 안에 있는 강아지, 전염병이 아니라 '하늘색 사탕'을 먹은 거 아닌가요?"
강준환의 미소가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에 난생처음으로 깊은 당혹감과 균열이 이는 것을 여울은 똑똑히 목격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당신이 청록동 지하 배수로에 몰래 방류하고 버린 그 더러운 약물들의 진짜 이름 말이에요. 지금 당장 이 아이를 데려가겠다면, 나도 이 자리에서 구청 서기관들과 기자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도면과 서류를 공개하죠."
여울이 품 안의 파란색 폴더 모퉁이를 슬쩍 내비쳤다. 강준환의 시선이 그 서류에 닿는 순간, 그의 뺨 근육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어젯밤 배 씨가 잃어버린 그 극비 계획서가 여울의 손에 있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사방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기자들이 낌새를 채고 카메라 렌즈를 강준환의 얼굴로 일제히 돌려 밀착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르릉—!
아틀리에 뒤편, 이제껏 굳게 닫혀 있던 할아버지가 생전에 쓰시던 지하 보관고의 무거운 철문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안쪽에서부터 거칠게 덜컹거리며 기괴한 마찰음을 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골목길 사방에서 수십 마리의 길고양이들이 아틀리에 지붕 위로 몰려들어 일제히 붉은 아침 하늘을 향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재앙이 청록동을 향해 밀어닥치고 있음을 알리는 기괴한 전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