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윽……!"
팔뚝을 꿰뚫는 송곳니의 감촉은 얼음송곳처럼 차갑고도 예리했다. 살점이 사정없이 짓이겨지며 솟구친 피가 여울의 하얀 셔츠 소매를 순식간에 붉은 얼룩으로 물들였다. 하지만 육체적인 찢김은 시작에 불과했다. 여울의 망막 위로 아틀리에의 아늑한 노란 전구 빛이 파르르 흔들리더니 이내 암전되었다.
비린내 나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하얀 소작 연구실의 환영이 뇌리를 헤집으며 해일처럼 덮쳐왔다. 사방을 에워싼 차가운 타일 벽면, 허공을 가르는 은빛 주사바늘의 서슬 퍼런 예리함, 폐부를 찌르는 매캐한 황색 독가스, 그리고 등 가죽을 잔혹하게 내리치는 가죽 채찍의 고통이 여울의 모든 신경 세포를 마비시켰다.
—아파! 뜨거워! 온몸이 타들어 가고 있어! 제발 그만해!
깜이의 뇌리에 깊숙이 박힌 학대의 기억이 여울의 영혼을 잠식해 들어왔다. 숨이 턱 막혀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가 부러질 정도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턱 끝으로 비어져 나온 핏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여울 씨! 손 놔요! 녀석이 완전히 이성을 잃었어요!"
백은우가 다급하게 여울의 어깨를 붙잡아 당겼다. 평소의 능글맞은 웃음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의사로서의 매서운 다급함이 그의 목소리에 실려 있었다.
하지만 여울은 은우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지금 손을 놓으면, 깜이의 찢어진 영혼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터였다. 여울의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빛 가죽 장부가 허공에 떠올랐다.
[동조율: 75%... 80%... 85%] [경고: 동조율이 임계점을 돌파하고 있습니다. 시술자의 정신적 과부하가 우려됩니다.]
머릿속이 깨질 듯이 아파왔다. 관자놀이가 쿵쾅거리며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여울은 오히려 깜이의 머리를 두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나는 도망치지 않아. 더는 소중한 것을 잃고 숨지 않겠어.
이것은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마지막 안식처를 지키기 위한 여울의 첫 싸움이었다. 타인의 호의를 의심하고 벽을 세우던 방어 기제 너머로, 오직 이 가여운 생명을 구하겠다는 집념이 솟구쳤다.
"괜찮아…… 괜찮아, 깜이야. 내가 다 알아줄게. 네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전부 다."
여울의 떨리는 목소리가 아틀리에의 차가운 정적을 깨뜨렸다. 신기하게도 여울의 손바닥에서 피어오른 미약한 온기가 깜이의 이마를 타고 스며들자, 미친 듯이 으르렁거리던 녀석의 몸짓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여울은 깜이의 왜곡된 기억의 심연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
소작 연구실의 하얀 벽 너머, 깜이의 진짜 상처가 보이기 시작했다. 녀석의 기억 속에서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신체적 학대의 통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버려졌다는 비참한 고독이었다.
깜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이 여울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청록동의 낡은 단칸방, 늘 따뜻한 손길로 밥을 챙겨주던 백발의 할아버지. 그런데 어느 날 대장 고양이가 사춘기 털갈이를 하러 아주 깊은 굴속으로 숨어버렸다.
—대장 고양이가 나를 두고 가버렸어. 내가 쓸모없어져서, 늙고 병든 털을 버리러 혼자서 예쁜 굴로 피난을 간 거야. 나만 이 차가운 골목에 남겨두고…….
그것은 깜이의 생태적 본능이 만들어낸 서글픈 오해였다.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주인의 부재를, 녀석은 자신을 버려두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수장의 사춘기 탈출'로 인지한 것이다.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에 휩싸여 골목을 방황하던 깜이는 결국 강준환의 하수인들에게 붙잡혀 차가운 철창에 갇혔던 것이었다.
"아니야, 깜이야……."
여울이 핏기가 가신 입술을 열어 속삭였다.
"주인님은 털갈이를 하러 간 게 아니야. 너를 버린 게 아니라고. 몸이 아파서 잠시 쉬러 간 것뿐이야. 너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알아?"
깜이의 핏발 선 눈동자가 흔들렸다. 덥석 물고 있던 여울의 팔뚝에서 서서히 송곳니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툭, 하고 깜이의 고개가 여울의 소매 위로 떨어졌다. 녀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젖은 눈으로 여울을 올려다보았다.
"도희야, 할아버지 재봉 보관함 제일 밑바닥에 있는 은빛 실타래 좀 가져다줘. 빨리!"
여울이 외쳤다. 송도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틀리에 구석의 낡은 오동나무 함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이거? 이 반짝거리는 실 말하는 거야, 언니?"
도희가 꺼내 든 것은 찬란한 은빛 광채를 뿜어내는 정체불명의 실타래였다. 1화에서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깊숙한 비밀 칸에서 발견했던, 밤하늘의 은하수를 그대로 자아낸 듯한 신비로운 실이었다.
"은우 씨, 지혈 좀 도와줘요."
여울이 떨리는 손으로 바늘귀에 은빛 실을 꿰었다.
"이 미련한 사람아, 제 몸뚱이 피 흐르는 건 보이지도 않나 보네."
은우가 혀를 차면서도 신속한 손놀림으로 구급상자에서 지혈 가루와 압박 붕대를 꺼냈다. 그의 따뜻한 손길이 여울의 찢어진 팔뚝을 감싸 안았다. 은우가 상처를 지혈하는 동안, 여울은 깜이가 품고 있던 찢어지고 더러워진 가죽 솜 인형을 작업대 위에 올렸다.
그것은 깜이가 길거리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던, 한쪽 귀가 뜯겨 나간 강아지 모양의 낡은 가죽 인형이었다.
여울은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바늘을 찔러 넣었다.
한 땀, 한 땀.
은빛 실이 가죽 인형의 찢어진 틈새를 통과할 때마다, 아틀리에 내부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바느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깜이의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고 영혼의 상처를 봉합하는 기적의 의식이었다.
"주인님은 곧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너도 상처를 치료하고 기다려야 해."
여울의 나직한 음성이 은빛 실의 궤적을 따라 빛의 파동으로 퍼져나갔다. 바늘 끝이 움직일 때마다 영롱한 은빛 광채가 가죽 인형의 주름진 표면을 타고 흐르더니, 이내 솜이 삐져나왔던 옆구리와 뜯겨 나간 귀가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매끄럽게 이어 붙여졌다.
스아아아—.
바느질이 완성되는 순간, 가죽 인형 전체가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한 치유의 빛을 뿜어냈다.
"컹……!"
깜이가 나지막이 울부짖었다. 녀석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붉은 악의와 독가스의 환영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짓무르고 찢어졌던 깜이의 털 가죽 위로 건강한 윤기가 돌기 시작했고, 광기로 가득했던 눈동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순수한 갈색빛을 되찾았다.
깜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여울의 무릎 위로 조심스럽게 머리를 밀어 넣었다. 킁킁거리며 여울의 피 묻은 소매를 핥는 녀석의 콧등이 따스하고 촉촉했다.
—고마워, 내 마음을 알아줘서. 대장 고양이가 나를 버린 게 아니었다니 정말 다행이야.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져 오는 깜이의 촉촉한 속마음에, 여울의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타인에게 배신당해 굳게 닫아걸었던 여울의 마음의 벽 한 귀퉁이가 부드럽게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허공의 영혼의 수선 장부가 격렬하게 빛나며 글자를 써 내려갔다.
[수선 완료: 유기견 깜이의 영혼 인형] [온기 지수: 25% 도달] [아틀리에 1차 공간 확장 기능이 해금됩니다.]
구구구구궁—.
낮은 진동음과 함께 아틀리에의 사방 벽면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낡은 목조 벽이 뒤로 밀려나며 먼지 쌓여 있던 쪽빛 향나무 문턱 너머의 공간이 넓어졌고, 굳게 닫혀 있던 이층 계단 위의 자물쇠가 스르륵 풀리며 위로 솟구쳤다.
"어, 어라? 벽이 움직여! 언니, 이거 지진이야?"
도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자 다리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재앙이 아닌 기적이었다. 좁고 허름했던 1층 단층 건물이 순식간에 드넓고 아늑한 이층 구조의 마법 작업실로 탈바꿈했다. 천장에는 은은한 연갈색 참나무 대들보가 모습을 드러냈고, 벽난로에서는 따스한 붉은 불꽃이 스스로 피어올라 공간의 온도를 포근하게 데웠다. 은은한 라벤더 향과 참나무 타는 냄새가 아틀리에 내부를 가득 채웠다.
벽난로 옆 러그 위에서 뚱한 표정으로 누워 있던 거구의 차우차우 믹스견, 은바람이 귀찮은 듯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녀석은 커다란 꼬리를 툭툭 치며 여울의 곁으로 다가와 은근슬쩍 온기를 나눠주었다.
—제법이군. 낡은 장부를 이 정도로 부릴 줄이야. 할아범의 안목이 틀리지는 않았어.
여울은 은바람의 츤데레 같은 속삭임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비로소 이 공간이 자신을 지켜줄 온전한 안식처로 성장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줄 사람 없나?"
은우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아틀리에 구석구석을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살폈다.
"나중에요. 일단 이것부터 봐요."
도희가 깜이의 수선된 가죽 인형을 만지다가 흠칫 놀라며 손을 멈췄다. 인형의 꿰맨 봉제선 사이, 방금 여울이 수선한 은빛 실 틈새로 낡고 노랗게 바랜 종이쪽지 모서리가 빠져나와 있었다.
"인형 솜 사이에 뭐가 들어있었어. 언니, 이거 편지 같은데?"
도희가 조심스럽게 종이를 잡아당겼다.
여울과 은우의 시선이 동시에 도희의 손끝으로 향했다. 낡은 종이쪽지에는 삐뚤빼뚤하지만 간절한 필체로 무언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쪽지가 아니었다. 깜이가 갇혀 있던 골드 디벨롭먼트의 비밀 실험실 내부 구조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음모의 단초가 적힌 내부 고발자의 비밀 편지였다.
"이건…… 강준환의 제약 연구소 비밀 도면이잖아?"
은우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깜이가 물고 있던 특수 플라스틱 뼈 장난감의 소독약 냄새, 그리고 이 비밀 편지. 모든 단서가 청록동을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음모를 가리키고 있었다.
독자들이 숨을 죽이고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쨍그랑—!
아틀리에 뒷마당으로 통하는 유리창이 날카로운 파편을 뿌리며 무참하게 깨져 나갔다. 차가운 밤바람과 함께 시큼하고 독한 석유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누구야!"
도희가 거칠게 소리치며 깨진 창문 쪽으로 뛰어갔다.
어두컴컴한 마당의 음영 속에서,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정체불명의 괴한이 창문 틈새로 붉은색 플라스틱 가솔린 통을 세워두고 성냥불을 켜는 실루엣이 번뜩였다.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성냥의 작은 불꽃이 어둠을 붉게 물들였다.
"안 돼!"
도희가 비명을 지르며 깨진 창틀 쪽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닿기도 전에, 시커먼 어둠 속에서 타오른 성냥의 작은 불꽃이 포르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의 가솔린 통을 향해 떨어졌다. 유증기가 가득 찬 싸늘한 밤공기를 찢고 순식간에 화염이 치솟을 절대적인 절망의 찰나였다.
—안 돼, 이곳은 할아버지의 온기가 남은 유일한 집이란 말이야.
여울의 심장이 얼어붙는 듯 차갑게 내려앉았다. 방금 전 깜이와의 감각 동조율 한계를 무리하게 돌파한 대가로, 그녀의 이마는 이미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전신을 짓누르는 극심한 고열과 오감의 마비 속에서도, 여울은 본능적으로 품에 안은 장부를 꽉 움켜쥐었다.
스아아아—!
그 순간, 아틀리에의 확정된 경계선이자 새로 해금된 '쪽빛 향나무 문턱'이 푸르스름한 은빛 비를 뿌리듯 은은한 향기를 뿜어냈다. 바닥을 적시던 시큼한 가솔린의 기화 가스가 쪽빛 향나무의 청량한 기운에 닿자마자 거짓말처럼 하얀 연기로 변하며 흩어졌다. 떨어지던 성냥불 역시 가솔린 통에 닿기도 전에 틱, 소리를 내며 얼음물에 잠긴 듯 허무하게 꺼져 버렸다.
"어……? 왜, 왜 불이 안 붙어!"
어둠 속에서 괴한의 당황한 목소리가 거칠게 터져 나왔다.
"이 개자식이 감히 어디다 불질이야!"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희가 창틀 너머로 길쭉한 쇠 자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깡! 하는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괴한의 손목이 꺾였고,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커르릉—!"
벽난로 옆에 엎드려 있던 은바람이 거대한 몸을 일으켜 맹수처럼 포효했다. 차우차우 특유의 묵직한 울림이 온 아틀리에를 흔들자, 겁에 질린 괴한은 가솔린 통마저 내팽개친 채 어두운 골목길 너머로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희가 창문 밖으로 상체를 쑥 내밀며 소리쳤다.
"거기 안 서? 이 잡놈의 새끼야!"
"도희야, 쫓아가지 마! 함정일 수도 있어!"
은우가 도희의 옷자락을 잡아채며 만류했다. 그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은우는 서둘러 창틀에 남은 가솔린 통을 멀리 치우고, 여울의 상태를 살폈다.
여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문턱을 짚고 겨우 서 있었다. 머릿속이 수천 개의 바늘로 찔리는 듯한 감각 과부하의 통증이 아직 가시지 않아, 시야가 자꾸만 흐려졌다.
"여울 씨, 정신 차려요. 상처가 깊어요."
은우의 다정한 손길이 여울의 떨리는 어깨를 부축했다. 여울은 신음하며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아요…… 그것보다, 방금 그놈이 떨어뜨린 걸……."
여울의 시선이 깨진 창틀 아래, 괴한이 도망치며 흘린 검은 가죽 수첩으로 향했다. 도희가 잽싸게 그것을 주워 올려 먼지를 털어냈다. 수첩의 낡은 표지에는 금박으로 선명하게 쓰인 글자가 박혀 있었다.
[골드 디벨롭먼트 개발 기획팀]
"역시 그 개자식들이었어."
도희가 이를 부득 갈며 수첩을 펼쳤다. 수첩의 첫 장에는 청록동 일대의 지도와 함께, 몇몇 낡은 건물들에 붉은색 가위표가 처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굵은 붉은 동그라미가 쳐진 곳은 바로 이곳, '은빛 바늘 아틀리에'였다.
단순한 철거 협박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틀리에를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 주민들의 구심점을 없애고, 강제로 개발 사업을 밀어붙이려 했던 것이다.
—추악한 탐욕이 이 작은 평화를 통째로 불태우려 하는구나.
여울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분노와 함께, 이 안식처를 기필코 지켜내겠다는 단단한 의지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언니, 이것 좀 봐. 수첩 뒤쪽에 편지랑 비슷한 도장이 찍혀 있어."
도희가 수첩 사이에 끼워진 서류 한 장을 빼내어 여울에게 건넸다. 그것은 조금 전 깜이의 인형 속에서 나온 비밀 쪽지와 정확히 일치하는 푸른색 메디컬 센터의 직인이 찍힌 '임상 시험 대상견 폐기 목록'이었다. 목록의 가장 첫 줄에는 '믹스견, 깜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갑자기 아틀리에 바깥 골목길에서 웅장한 기계음이 울리며 사방의 대지를 흔들었다. 눈부시게 밝은 대형 헤드라이트 불빛이 깨진 창문 틈새로 쏟아져 들어와 아틀리에 내부를 차갑게 노출시켰다.
"이 새벽에 대체 무슨 소리야?"
은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골목길 어귀에서 거대한 노란색 불도저 한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서서히 아틀리에 전면을 향해 전진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 고급 세단의 열린 창문 너머로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한 강준환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확성기를 들어 올렸다.
"청록동 주민 여러분, 본 구역은 금일부로 안전 등급 미달에 따른 긴급 철거 및 지반 보강 공사가 시작됩니다. 은빛 바늘 아틀리에 점거자는 즉시 대피하십시오. 법적 강제 집행 권한에 의거해 불도저를 진입시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괴한의 방화 실패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들이닥친 철거반의 거대한 궤도차량이 아틀리에의 낡은 나무 외벽을 향해 무자비하게 돌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