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제국 임시 세무조사국 및 영지 공증관의 이름으로 명한다! 에일린 엘도라도, 너를 심각한 조세 포탈 및 마족과의 불법 밀거래 혐의로 체포한다!”

매서운 눈보라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제과점 안의 온기를 가차 없이 찢어놓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영지의 하늘 아래, 오직 ‘안식의 단향’ 주변만이 비현실적인 은빛 꽃가루로 가득 차 있었다. 제과점 유리창에는 방금 만개한 성빙초의 잔향이 맑은 격자무늬 서리꽃을 그리며 미세한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침입자들의 거친 발소리는 그 평화로운 음률을 사정없이 뭉개버렸다.

금빛 견장을 찬 제국 공증 서관들이 들이민 압류 집행장의 조잡한 붉은 인장이 에일린의 눈동자에 붉게 반사되었다.

에일린은 카운터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성빙초를 만개시키고, 그 은빛 꽃잎을 우유 크림에 개어 ‘구원의 레시피’를 완성하느라 생명 마력을 한계까지 쏟아부은 직후였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지독한 오한이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위조 장부 속 ‘추적 술식’이 제과점의 정화 결계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결계 안정도: 42%… 38%… 급격히 저하 중!]

진열장 틈새, 잭이 숨겨두고 간 가짜 세무 장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마력이 제과점 바닥을 뱀처럼 기어 다니며 공증관들의 발밑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척 봐도 짜고 치는 판이었다. 가문의 적녀이자 자신을 이곳으로 내쫓은 릴리안 엘도라도가 보낸 하수인들이 분명했다.

“조세 포탈이라니요.”

에일린은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억누르며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곳은 제국 세법에 따라 매달 영지 세무관의 검수를 거쳐 단 한 닢의 동화도 빠짐없이 정직하게 납세하고 있습니다. 마족과의 거래 역시, 영지 방위 조약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합법적인 물품 교환일 뿐입니다.”

“닥쳐라! 천한 서녀 년이 감히 제국의 공문서 앞에서 주둥이를 놀리느냐!”

우두머리 공증관이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에일린의 뺨을 내려칠 기세로 손을 치켜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두머리 공증관의 손목이 허공에서 뚝 멈췄다.

에일린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분홍색 레이스가 앙증맞게 달린 앞치마를 두른 사내였다. 칼릭스 벨베데르. 제국의 영웅이자, 현재 에일린에게 450골드의 빚을 지고 시급 동화 5닢에 잡역부로 부려지는 대공이 그곳에 서 있었다. 그의 입꼬리는 늘 그렇듯 장난스럽게 올라가 있었지만, 반쯤 가려진 눈동자 깊은 곳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라, 공무 수행 중인 건 알겠는데 말이지.”

칼릭스가 아주 가볍게 공증관의 손목을 비틀었다.

드드득, 뼈가 맞물리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공증관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어디서 감히 귀한 파티시에의 얼굴에 손을 대려고 할까. 빵 굽는 손만큼이나 소중한 게 얼굴인데. 흉이라도 지면 자네들이 내 디저트 값을 대신 지불할 건가?”

“이, 이놈이 미쳤나! 공무집행방해로 감옥에 처넣어라!”

뒤에 서 있던 서관들이 품속에서 마법 지팡이와 호신용 단검을 꺼내려 했다.

스아앗.

찰나의 순간, 제과점 내부의 공기가 문자 그대로 ‘얼어붙었다’.

칼릭스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푸른빛 서리의 고리가 파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공할 만한 살기가 고리 모양의 파동이 되어 서관들의 전신을 관통했다.

“억……!”

단 한 마디의 신음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서관들은 단검을 뽑지도 못한 채, 사지가 단단히 얼어붙어 바닥에 고정되었다. 무릎 아래가 완전히 투명하고 단단한 빙결에 갇혀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들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서리처럼 얼어붙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제국의 무신이 뿜어내는 가공할 살기 앞에서는 마법 주문을 외우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제야 구석에서 턱을 괴고 상황을 관전하던 바르바토스가 콧방귀를 뀌며 의자를 뒤로 젖혔다.

“쓸데없이 시끄럽군. 꼬맹이, 저 버러지들을 그냥 내가 태워 죽여도 되나? 마침 방금 구운 시트 냄새가 저놈들 땀내 때문에 망쳐지고 있어서 아주 불쾌한데.”

마왕군 2군단장의 붉은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 공증관들은 이제 자신들이 마주한 존재들이 누구인지 깨닫고 공포로 이가 맞부딪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에일린은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지금 이들이 무력으로 공증관들을 쓸어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제과점은 정말로 ‘반역자의 소굴’이라는 누명을 쓰고 완전히 폐쇄될 것이다. 릴리안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합법적인 공권력을 동원해 자신을 쭝겨내고 이 비옥해진 영토와 제과점의 이권을 통째로 삼키는 것.

‘그렇게 둘 순 없어.’

이곳은 가문에서 쓰레기처럼 버림받은 에일린이 처음으로 손에 쥔, 온기와 단내가 가득한 자신만의 영원한 안식처였다. 단 한 평의 영토도, 단 한 닢의 마진도 저 사악한 가문에게 빼앗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에일린은 떨리는 손으로 품속의 ‘영혼의 제과 장부’를 꺼내 들었다.

장부의 책장이 거친 바람에 펄럭이듯 스스로 넘어가며 눈부신 황금빛을 내뿜었다.

[보유 정화 포인트: 15,200 Pt] [보유 골드: 4,500 Gold]

그동안 영민들에게 따스한 디저트를 팔아 차곡차곡 모아둔 영혼의 기금이었다. 에일린은 망설임 없이 장부의 가상 화면을 휩쓸었다.

‘제과 장부, 영지 정화 영역을 확장한다. 지금 당장, 2단계 연속 레벨업!’

[경고: 영지 정화 영역을 2단계 연속 격상하려면 막대한 정화 포인트와 골드가 소모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진행해. 당장!’

[승인되었습니다. 정화 포인트 12,000 Pt 및 3,000 Gold가 차감됩니다.] [엘도라도 영지 정화 결계 단계 격상: Level 2 -> Level 4] [특수 효과 ‘성역의 장막’이 활성화됩니다. 영지 내의 모든 부정 마력 및 위조된 마력 술식이 강제로 정화·환원됩니다.]

투웅-!

제과점 바닥에서부터 웅장한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진열장 구석, 잭이 숨겨두었던 가짜 세무 장부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붉은 추적 술식이 비명을 지르며 하얀 연기로 변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장부 가득 적혀 있던 위조된 세출 내역들이 빛의 입자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더니, 이내 달콤한 설탕 가루가 되어 진열대 위로 가볍게 내려앉았다.

오염되던 결계가 찬란한 은빛으로 복구되는 것을 넘어, 제과점을 중심으로 정화의 파동이 거대한 해일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스아아아아-!

제과점 문밖, 척박하고 얼어붙어 있던 엘도라도의 대지가 들썩였다. 일 년 내내 눈보라에 파묻혀 죽어 있던 흙이 검붉은 빛을 벗어던지고 비옥하고 따스한 갈색 빛을 되찾았다. 얼어붙은 침엽수림의 가지마다 은빛 성빙초의 꽃망울들이 기적처럼 돋아나며 공기 중의 마기를 깨끗하게 씻어냈다.

정화 영역이 순식간에 영지 경계면을 넘어 대규모로 팽창했다.

“이, 이게 무슨……!”

사지가 얼어붙어 있던 공증관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들이 들고 있던 압류 집행장의 붉은 인장이 정화의 빛에 닿자마자 스르륵 녹아내리며,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릴리안의 탐욕스러운 마력 서명이 허공에 선명한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위조 공문서라는 명백한 증거가 제과점 한복판에 박제된 것이다.

“아윽!”

에일린은 순간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과 함께 무릎이 꺾였다.

단숨에 영지를 두 단계나 정화하고 결계를 격상시킨 대가는 혹독했다. 심장이 얼음 송곳에 찔린 듯 차갑게 식어갔고, 시야가 흐려졌다. 생명 마력의 과부하였다.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 뜨겁고 단단한 온기가 그녀의 허리를 굳건하게 받쳐 올렸다.

“욕심쟁이 점장님 치고는 제법 무모한 짓을 하는군.”

칼릭스의 목소리였다.

그는 에일린을 품에 안아 올리며, 자신의 손바닥을 그녀의 등에 대고 부드러운 마력을 흘려보냈다. 차가운 얼음 마력인 줄 알았으나, 신기하게도 에일린의 몸속으로 들어온 그의 마력은 가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게 그녀의 얼어붙은 혈관을 녹여주었다.

“칼릭스…… 씨…….”

“쉿, 말하지 마. 내 보증비가 꽤 비싸다는 건 알고 있겠지?”

칼릭스는 능글맞게 웃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그의 단단한 팔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가게는 내가 평생 저당 잡은 걸로 할 테니까, 영주님은 마음 놓고 내 접시나 닦게 만들 준비나 하라고. 빚쟁이가 파산하는 꼴은 눈 뜨고 못 봐주니까.”

그의 뻔뻔하면서도 묵직한 신뢰가 에일린의 가슴속 깊은 곳에 닿았다. 타인의 호의를 결코 믿지 않고 오직 손익계산서로만 세상을 보려던 에일린의 결벽증적인 방어 기제에 잔잔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의 품 안에서 심장의 온기가 서서히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에일린은 주머니 속에서 만개한 성빙초 씨앗을 꺼내 들었다.

은빛 찬란한 광채를 뿜어내는 씨앗은 이제 완벽한 ‘최상급 빙설당’의 결정체가 되어 있었다. 성빙초를 우유 크림과 섞자, 제과점 안 가득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맑은 단내가 피어올랐다.

아린 듯 시원한 청량감이 코끝을 스치고, 뒤이어 혀끝에 닿는 순간 눈꽃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며 마음속 깊은 슬픔과 트라우마를 깨끗이 씻어내는 고결한 단맛. 이슬을 머금은 박하와 깊은 숲의 향기가 섞인 듯한 투명한 내음이 공증관들의 거친 숨소리마저 정화하는 듯했다.

[레시피 완성: 구원의 성빙 무스 케이크] [성공적으로 결핍 치유용 마법 디저트를 제조했습니다. 영지 정화율이 추가로 5% 상승합니다!]

그때였다.

정화의 파동이 영지 전체를 휩쓸며 결계가 팽창하자, 제과점 앞마당에 대기하고 있던 화려한 금빛 대형 마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정화 마력의 부흥을 느낀 마차 안의 주인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타악.

사치스러운 모피 코트를 두르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제국 사교계의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여인이 마차에서 내렸다. 에일린의 이복언니이자, 엘도라도 가문의 적녀 릴리안 엘도라도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정화의 빛에 노출되자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이 보낸 위조 장부의 마력 추적술식이 완벽하게 정화되고, 오히려 역풍을 맞아 자신의 마력 서명이 허공에 폭로된 것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 비천한 년이 감히 귀족의 공문서를 위조해?”

릴리안이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제과점 문을 향해 걸어왔다.

그녀의 등 뒤로, 마차 주변을 호위하고 있던 엘도라도 가문의 정예 사설 기사 수십 명이 일제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차가운 쇠붙이가 마찰하는 서슬 퍼런 소리가 눈보라를 뚫고 제과점 안으로 무겁게 내리앉았다. 기사들의 살기 어린 눈빛이 앞치마를 두른 에일린과 칼릭스를 향했다.

릴리안이 제과점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손에 든 채찍을 바닥에 내리쳤다.

“전원 발검하라! 이 반역의 소굴을 단 한 조각의 벽돌도 남기지 말고 완전히 쓸어버려라!”

수십 자루의 검끝이 일제히 에일린의 안식처를 향해 겨누어졌다. 폭력의 일보 직전, 제과점 내부의 공기가 다시 한번 팽팽하게 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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