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창가 너머로 몰아치는 북녘의 칼바람은 시린 겨울의 끝자락을 노래하듯 처량한 울음소리를 내었고, 제과점 한구석에 놓인 벽난로의 장작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붉은 불씨를 튕겨 올렸다. 평화롭던 공기를 깨뜨린 것은 문에 달린 황동 종의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쟁그랑, 쟁글랑!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실내였음에도 종은 미친 듯이 좌우로 흔들리며 불길한 경고음을 흘렸다. 동시에 화덕 안에서 타오르던 정겨운 주황빛 불꽃이 사나운 푸른색으로 변하더니,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닥 타일 틈새에서 검붉은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발목을 감싸 안았다.

“윽…….”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날카로운 한기가 에일린의 폐부를 찔렀다. 영지의 정화 결계와 연결된 그녀의 영혼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방금 전 의심스러운 태도로 가게를 나간 세무 관원 잭이 장식장 구석에 밀어 넣은 가짜 장부, 그 가죽 표지 밑바닥에서 피어오르는 검붉은 기포들이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경고: 외부의 악의적인 추적 술식이 감지되었습니다.] [영지 정화율이 급격히 잠식되고 있습니다. 현재 오염도: 7%]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영혼의 제과 장부’가 붉은색 경고등을 깜빡이며 경보를 울려댔다. 가짜 장부에 숨겨진 마력 추적술식은 악랄하게도 가게의 온기를 빨아먹으며 영지 전체를 다시 혹한의 파멸로 되돌리려 하고 있었다. 에일린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차가운 한기가 발끝부터 타고 올라와 심장을 얼려버릴 것만 같았다.

“어이, 사장님. 얼굴색이 왜 그래? 꼭 덜 익은 밀가루 반죽 같잖아.”

카운터 너머에서 밀가루 포대를 나르던 칼릭스가 헐렁한 제과점 앞치마를 펄럭이며 다가왔다. 늘씬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 앞치마를 두른 채, 그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에일린의 안색을 살폈다. 그의 겉모습은 영락없는 한량 잡역부였으나, 에일린은 알고 있었다. 그가 감추고 있는 강대한 마력의 크기를.

“칼릭스 씨, 농담할 시간 없어요.”

에일린은 떨리는 손으로 카운터를 짚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잭이 남겨둔 가짜 장부의 오염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이대로 가다간 공들여 쌓아 올린 정화 결계가 무너지고, 영지는 다시 사채업자들과 혹한의 손아귀에 떨어질 터였다.

그녀의 머릿속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손실을 최소화해야 해. 이 오염을 정화하는 데 필요한 마력은 내 생명 마력만으로는 부족해. 그렇다면…….’

에일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제 앞의 피고용인을 바라보았다. 칼릭스 벨베데르. 대출금 450골드를 갚기 위해 시급 동화 5닢짜리 계약서에 서명한 나의 합법적인 채무자이자 일꾼. 그의 몸속에 흐르는 빙계 마력은 이 더러운 저주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순수하고 거대했다.

“계약 조건 제4조를 이행해 주세요.”

“응? 무슨 조항이었더라? 사장님이 원하면 언제든 기쁘게 안아준다 같은 건가?”

“피고용인은 고용주의 신변 안전과 영업장 보존을 위해 물리적, 마법적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위반 시 일당 몰수 및 위약금 발생.”

에일린은 주저 없이 손을 뻗어 칼릭스의 커다란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손가락 끝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안에서 요동치는 마력은 태양보다 뜨겁고 정교했다. 칼릭스는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얽어맸다.

“오호, 사장님이 먼저 손을 다 잡아주고. 오늘 일당은 안 받아도 배가 부르겠는데?”

“조용히 하고, 제 손을 통해 마력을 흘려보내세요. 제 제판 장부가 지시하는 경로대로만.”

에일린은 제과 장부의 ‘자동 계산 기능’을 활성화했다.

장부의 황금빛 책장이 거세게 넘어가며, 칼릭스의 순수한 서리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에일린의 손끝을 타고 흐르는 은빛 마력이 푸른 불꽃을 그리며 장식장 틈새로 뻗어 나갔다. 검붉은 오염의 기포들이 은빛 마력의 그물망에 갇혀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추적 술식의 구조 분석 완료.] [해당 마력 반응: 황실 공인 세무 위조 낙인.] [영혼의 제과 장부 ‘레시피 전환 시스템’ 가동—불순물을 무해한 식재료로 환원합니다.]

에일린은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렸다.

중앙 귀족의 음모가 담긴 저주의 낙인을 그대로 두어 누명을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는 장부의 가상 터치패드를 강하게 내리눌렀다.

스스스스슥!

장식장 틈새에서 비명 같은 바람 소리가 일더니, 붉게 타오르던 위조 장부의 추적 술식이 은빛 마력에 휩싸여 하얗게 탈색되기 시작했다. 저주를 품은 마력의 입자들이 잘게 쪼개지고, 재배열되며 공기 중으로 흩날렸다.

바닥을 더럽히던 검붉은 연기는 간데없고, 제과점 내부에는 달콤하고 사각거리는 하얀 가루들이 눈송이처럼 흩날려 내렸다.

툭, 투둑.

장식장 틈새에서 흘러내린 것은 저주의 잔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이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달콤한 백설탕 가루였다. 중앙 귀족이 일 년 동안 공들여 새겨 넣은 최고급 추적 술식이, 에일린의 손끝에서 단돈 몇 닢짜리 제과용 설탕 가루로 전락해 버린 순간이었다.

“어라?”

칼릭스가 흩날리는 설탕 가루를 손가락 끝으로 찍어 입에 넣더니,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진짜 설탕이네? 사장님, 연금술사도 울고 갈 재주를 가졌잖아? 영지 침입자의 마력을 빵 재료로 바꾸다니, 정말 무서운 장사꾼이야.”

“쓸데없는 낭비를 줄이는 것은 경영의 기본입니다. 저들이 보낸 저주는 훌륭한 무상 식재료 공급원이 되었을 뿐이죠.”

에일린은 옷자락에 묻은 설탕 가루를 털어내며 싸늘하게 일갈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자신을 위협하려던 중앙의 음모를 단숨에 무력화시킨 통쾌함이 그녀의 가슴속을 시원하게 관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에일린의 주머니 속에서 기이한 요동이 느껴졌다.

두근, 두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심장 소리 같은 박동이 주머니 안쪽에서 전해졌다. 에일린은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손을 넣어 사막처럼 메마른 감각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제과점 오븐 깊숙한 틈새에서 발견했던, 완전히 얼어붙어 죽은 줄만 알았던 별 모양의 ‘성빙초(星氷草) 씨앗’이었다.

지금, 그 얼어붙은 씨앗이 은빛 마력의 잔해를 빨아들이며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광채가 씨앗 표면의 갈라진 틈새 사이로 번져나갔다.

“음? 그건 뭐야?”

칼릭스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이 에일린의 어깨너머로 다가오자, 은은한 스피어민트 향과 차가운 눈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

“성빙초 씨앗이에요. 오랫동안 얼어붙어 발아하지 못했는데, 방금 전 당신의 마력 반응에 응답한 것 같아요.”

“내 마력에? 흠, 그럼 내가 한 번 더 도와줄까?”

칼릭스는 뻔뻔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에일린의 손바닥 위에 얹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빛을 띤 투명한 서리 꽃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씨앗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파지직!

작은 스파크가 튀는 소리와 함께, 씨앗의 겉껍질이 보석처럼 사방으로 깨져 나갔다. 그 안에서 자라난 줄기가 에일린의 손가락을 타고 빠르게 뻗어 나가더니, 순식간에 눈부신 은빛의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것은 전설 속에서만 전해지던, 차가운 설산의 정수를 머금은 성빙초의 만개였다.

꽃잎은 마치 정교하게 세공된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게 빛났고, 그 중심에서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그대로 녹여낸 듯한 은빛 가루들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제과점 안이 달콤하면서도 온몸의 뼈마디를 시원하게 식혀주는 청량한 향기로 가득 찼다.

싸늘하면서도 달콤한 박하 향, 그리고 깊은 설산의 계곡물처럼 맑고 깨끗한 아로마가 코끝을 스치며 머릿속을 맑게 깨웠다.

[복선 회수: 성빙초 씨앗의 완벽한 발아!] [최상급 재료 ‘성빙초 빙설당’을 수확했습니다.] [새로운 전설 레시피 ‘한 겨울밤의 별빛 양갱’이 해금되었습니다.]

에일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장부에 기록된 레시피의 정화 수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 재료라면…… 가게의 결계를 완벽하게 복구하고도 남겠어.”

그녀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칼릭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그녀는 발아한 성빙초의 꽃잎을 조심스럽게 채취해 작업대로 향했다.

탁, 탁, 탁.

밀가루와 설탕이 섞이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에일린의 손놀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분란했다.

그녀는 먼저 잘 여문 팥을 가마솥에 넣고 뭉근한 불로 푹 삶아내기 시작했다. 고소하고 묵직한 팥의 단내가 가마솥의 하얀 김을 타고 제과점 천장으로 퍼져나갔다. 팥 알갱이가 부드럽게 으깨질 때쯤, 체에 걸러 고운 앙금만을 남겼다.

여기에 맑은 계곡물로 우려낸 한천을 섞어 굳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수확한 성빙초 빙설당을 녹인 은빛 시럽을 그 위에 천천히 부었다.

투명하고 푸른빛이 감도는 시럽이 팥 앙금 위로 흘러내리자, 마치 칠흑 같은 밤하늘 위에 푸른 은하수가 내려앉는 듯한 환상적인 그라데이션이 완성되었다. 그 위에 성빙초의 은빛 꽃가루를 흩뿌리자, 영락없는 겨울밤의 별밭이 그릇 속에 담겼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감촉의 앙금과, 입안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리며 혀끝을 알싸하게 적실 시원한 성빙초의 단맛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레시피 제작: 한 겨울밤의 별빛 양갱 (★★★)] [제작 완료율: 100%] [효과: 복용자의 체내 마기 및 오염을 100% 정화. 영지 정화율 폭발적 상승.]

에일린은 완성된 양갱 한 조각을 접시에 담아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푸른빛과 밤하늘의 흑색이 조화를 이룬 양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 같았다.

“와, 이건 정말 예술인데. 사장님, 나 한 입만 주면 안 돼?”

칼릭스가 눈을 반짝이며 입맛을 다셨다. 에일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판매용이자, 가게의 결계를 강화하는 매개체입니다. 눈독 들이지 마세요.”

그녀는 양갱의 중심부에 자신의 생명 마력을 주입해 매장의 결계석과 공명시키기 시작했다.

웅-!

양갱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의 파동이 제과점 바닥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잭이 남겨두었던 미세한 저주의 흔적들이 그 빛에 닿자마자 눈 녹듯 사라졌다.

[영지 정화율 급상승: 1.2% -> 15.4%] [제과점 결계 정화 수치 320% 기록! 영구적인 정화 결계가 고착화됩니다.]

“됐다…….”

에일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게를 감싸던 불길한 푸른 불꽃도 다시 따스한 오렌지빛으로 돌아왔고, 흔들리던 황동 종도 침묵을 되찾았다. 공기는 이전보다 훨씬 맑고 따뜻해졌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엄청난 피로감이 해일처럼 에일린을 덮쳤다.

“아…….”

성빙초를 발아시키고 최고의 레시피를 단시간에 구현해 내느라 그녀의 생명 마력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었다. 머릿속이 핑글핑글 돌며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다리의 힘이 풀리며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몸바닥이 차가운 타일 바닥에 부딪히기 직전, 단단하고 따뜻한 품이 그녀의 몸을 거칠게 낚아챘다.

“에일린!”

늘 장난기 넘치던 칼릭스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쓰러지는 에일린을 품에 안아 올렸다. 그의 가슴 안쪽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 따뜻한 심장 박동이 에일린의 귓가에 울렸다.

칼릭스는 품에 안긴 가냘픈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매사 계산기만 두드리며 자신을 쫓아내려 안달이던 그녀가, 지금은 밀가루 인형처럼 하얗게 질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지독한 한기가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깊은 어둠과 마기를 정화하느라 제 몸을 갉아먹은 대가였다.

스스스슥.

칼릭스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가운 검빛으로 변했다. 평소의 유쾌하고 능글맞은 청년의 가면은 온데간데없고, 전장을 피로 물들였던 전쟁 영웅으로서의 잔혹한 살기가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는 에일린을 소중하게 침대에 뉘어놓은 뒤, 그녀의 이마에 닿은 차가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제과점의 굳게 닫힌 문 너머, 멀리 제국의 수도가 있는 방향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의 입술이 비틀려 올라갔다. 그것은 미소가 아니었다. 포식자가 먹잇감을 사냥하기 직전에 짓는 차가운 칼날의 번뜩임이었다.

“감히 내 사장님의 가게에 손을 대?”

칼릭스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 서리 마력이 스며 나와 방 전체의 공기를 얼려버릴 듯이 소용돌이쳤다.

“누구든 이 따뜻한 불씨를 끄려 하는 놈들은, 내 손으로 영원한 겨울 속에 묻어버리지.”

그의 낮고 서늘한 음성이 어두운 제과점 안을 무겁게 내려앉았다. 침묵 속에서, 칼릭스의 검은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칼날처럼 날카롭게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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