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의식이 흐릿해지는 찰나, 차가운 대리석 바닥의 감각마저 멀어졌다.

목구멍을 옥죄는 가혹한 무호흡의 고통. 쇄골 아래 새겨진 흑장미 인장이 살을 지지는 인두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붉은 진액을 토해내고 있었다. 숨을 쉴 수가 없다. 허파가 쪼그라들고 심장이 멎을 듯한 극통 속에서, 엘디아는 문고리를 향해 겨우 손을 뻗었다.

딸칵, 바르르 떨리는 손끝끝에 걸린 걸쇠가 힘겹게 풀렸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앞으로 툭 쓰러졌다.

그녀의 몸이 차가운 복도 바닥에 닿기 직전, 굳건하고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채 가로챘다.

“엘디아!”

낮고 거친 음성이 귓가를 때렸다.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적색의 눈동자. 유제스 카르텐이었다. 그는 마치 그녀의 방 앞을 떠나지 못하고 맹수처럼 서성이고 있었던 것처럼,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를 받아 안았다.

유제스의 거친 숨결이 엘디아의 뺨에 닿았다. 뼛속까지 시린 북부의 밤공기 속에서, 그의 품은 기묘할 정도로 뜨거웠다. 그가 걸친 가볍고 묵직한 검은 벨벳 코트의 부드러운 촉감이 엘디아의 얇은 살구색 실크 슬립 위로 스쳤다. 슬립의 가장자리를 장식한 섬세한 발랑시엔 레이스가 그의 거친 손가락끝에 쓸려 바스락 소리를 냈다.

“이게 무슨…… 몸이 왜 이렇게 뜨거운 거지?”

유제스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사지를 결박당한 야수처럼, 그의 눈동자에 어린 혼란과 두려움이 짙게 소용돌이쳤다.

그는 가벼운 깃털이라도 들어 올리듯 한 손으로 엘디아의 몸을 번쩍 안아 올렸다. 시트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침대 위로 그녀를 부드럽게 눕히는 그의 손길은, 평소의 난폭한 태도와 달리 지독할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경고: 고통 동조율 48% 돌파!] [공작 유제스의 내면의 흑장미 저주가 급격히 요동치고 있습니다. 동조 통증이 강화됩니다.]

“아, 윽……!”

침대에 닿았음에도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엘디아는 가슴을 움켜쥐며 침대 시트를 짓이겼다. 땀에 젖은 밀빛 머리카락이 하얀 베개 위로 흩어졌다.

유제스는 그녀의 곁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말해라. 내 내정관이 왜 내 방이 아닌 곳에서 내 발작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거지?”

그의 시선이 엘디아의 쇄골 아래로 향했다. 얇은 실크 슬립이 흐트러지며 드러난 하얀 피부 위, 기괴할 정도로 검고 붉게 타오르는 흑장미 인장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인장의 가시덤불이 실시간으로 꿈틀거리며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유제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의 심장이 한 번 크게 요동칠 때마다, 엘디아의 쇄골에 새겨진 장미 문양 역시 맥박 치듯 붉은 빛을 뿜어냈다. 그의 폐부가 찢어질 듯한 갈증을 느낄 때마다, 엘디아의 입술에서 밭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의 호흡이, 심장 박동이, 그리고 영혼을 갉아먹는 저주의 극통이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동조(同調)인가.”

유제스의 입술 사이로 마른 침묵이 새어 나왔다. 충격으로 굳어버린 그의 얼굴은 마치 얼어붙은 대리석 조각상 같았다.

자신이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지옥. 황실의 간계로 가문 전체가 몰살당하고 남은 유일한 생존자에게 내려진 저주받은 낙인.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오직 스스로를 불태워 소멸해야만 끝날 줄 알았던 그 지독한 고통을, 이제 겨우 며칠 같이 보낸 가짜 부인이 나누어 짊어지고 있었다.

“어째서…… 왜 이런 미련한 짓을 한 거지?”

그의 손가락 끝이 엘디아의 뺨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은 차가웠지만, 그 아래 담긴 열기는 당장이라도 그녀를 집어삼킬 듯이 뜨거웠다.

“살기 위해서요.”

엘디아가 겨우 입술을 열어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도 유제스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득이 되지 않는 호의는 믿지 않는다. 그것이 전생에서 배신당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 나간 그녀가 얻은 유일한 진리였으니까.

“당신이 죽으면, 내 계약도, 내가 얻을 막대한 위자료도 전부 물거품이 되니까요. 그러니까 멋대로 감동하지 마세요, 공작님.”

“하, 이 상황에서도 돈 타령이라니.”

유제스가 헛바람을 들이켜며 실소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이전의 싸늘한 불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괴할 정도의 소유욕과 집착이 그 안에서 아주 깊고 어둡게 태동하고 있었다.

그때, 유제스의 가슴팍에서 거친 마력의 파동이 다시금 요동쳤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섰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유제스는 고통을 억누르기 위해 품 안에서 은색의 작은 물약을 꺼내 들었다.

“이걸 마시면…… 마력이 좀 가라앉을 거다. 그럼 네 통증도 조금은……”

그가 약병의 마개를 열려던 찰나였다.

엘디아의 눈앞에 번쩍이는 적색 경고창이 떠올랐다.

[!위험: 아이템 정보 감지!] [물약 이름: 레테의 눈물 (황실 특제 만성 독약)] [상태: 유제스가 마력을 억제하기 위해 매일 복용하는 진통 촉진제. 실상은 마력을 일시적으로 가라앉히는 대신 신경계를 영구적으로 괴사시키고 우울증과 광증을 극대화하여 자멸을 촉진하는 독물.] [경고: 은식기에 닿을 시 변색하기 직전의 미세한 보랏빛 파동이 검출됩니다.]

엘디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복선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유제스가 매일 밤 복용하던 그 유일한 진통제가 실은 그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고 가던 황실의 덫이었다니.

“마시지 마……!”

엘디아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어 팔을 뻗었다.

탁!

그녀의 손끝이 유제스의 손을 쳐내자, 은색 약병이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렀다. 쏟아진 투명한 액체가 침대 옆 은제 협탁의 다리에 닿았다.

치이익―!

기괴한 소리와 함께 은제 다리가 순식간에 검붉은 보랏빛으로 부식되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독한 연기가 피어오르자 방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이게…… 무슨.”

유제스의 눈동자가 가차 없이 가라앉았다.

바로 그 순간, 닫혀 있던 침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한 사내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공작가의 전속 주치의이자, 베르제 백작가와 황실의 연줄을 타고 들어온 가짜 의사 바벨이었다.

“공작 전하!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급히…… 어, 전하?”

바벨은 바닥에 쏟아진 보랏빛 독액과 녹아내린 은제 협탁을 보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려 했다.

“바벨.”

유제스의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낮고 평온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살기는 방 안의 온도를 영하로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이것이 내가 매일 밤 마시던 '마력 안정제'의 진실인가?”

“전, 전하! 오해이옵니다! 그것은 단지 마력의 충돌을 막기 위한 강한 약초 성분이 은과 반응하여……!”

“입 닥쳐.”

엘디아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녀는 흘러내린 실크 슬립의 어깨끈을 치켜올리며 바벨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황실의 사냥개 냄새가 여기까지 진동하는군요. 은을 부식시키는 마력 안정제라니, 제국의 어떤 연금술사가 그런 해괴한 약을 조제합니까? 당신이 매달 베르제 백작가로부터 거액의 송금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보지?”

“비, 비비, 비 부인! 무슨 당치도 않은 모함을……!”

바벨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르나르!”

유제스의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호위대장 르나르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 바벨의 양팔을 뒤로 꺾어 제압했다. 바벨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처박혔다.

“이 자의 수하들과 방을 샅샅이 뒤져라. 베르제 백작가와 주고받은 밀서가 하나라도 나온다면, 그 가문 전체를 반역죄로 다스릴 명분이 될 테니.”

엘디아의 지시에 르나르가 경외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존명, 공작비 전하.”

가짜 주치의 바벨이 비명을 지르며 질질 끌려 나갔다. 원작에서 유제스를 서서히 미치게 만들어 자멸하게 했던 가장 큰 독가시가 마침내 완벽하게 뽑혀 나가는 순간이었다. 가슴속이 뻥 뚫리는 듯한 통쾌한 해소감이 엘디아의 전신을 감쌌다.

* * *

소란이 잦아들고, 창밖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어스름한 새벽녘의 푸른 빛이 성벽의 서리를 타고 창가로 스며들었다. 그 차가운 빛 속에서,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공작가의 성벽을 둘러싸고 있던 고대의 수호 정령들—검은 나비의 형상을 한 어둠의 파편들이 창문 틈새로 소리 없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유제스의 주변을 맴돌다, 이내 침대에 누워 있는 엘디아의 뺨과 어깨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차가운 서리 정령들이 그녀의 낙인을 어루만지듯 감싸 안자, 타오르던 흑장미 인장의 통증이 눈에 띄게 완화되기 시작했다.

[알림: 수호 정령들이 당신의 존재를 '진정한 반려'로 인정합니다.] [동조 부작용이 일시적으로 억제됩니다.]

유제스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가문의 정령들은 오직 카르텐의 피를 이은 자, 혹은 그들의 영혼이 선택한 반려 외에는 결코 곁을 허락하지 않는 오만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정령들이 엘디아를 지키듯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이미 이 성의 거부할 수 없는 여주인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유제스가 천천히 침대 가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묵직하고 정교한 검은 열쇠가 들려 있었다. 순수한 오리하르콘과 어둠의 마정석을 벼려 만든, 카르텐 공작가의 심장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이게 뭐죠?”

엘디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카르텐의 수호 그림자 가문을 총괄하는 지하 보물 창고의 마스터 열쇠다.”

유제스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부드러운 손바닥 위에 그 차갑고 묵직한 열쇠를 쥐여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열쇠를 꼭 쥐게 만들었다.

“네 가치관대로 이야기해 주지. 이건 네가 내 고통을 대신 짊어진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자, 내 목숨값의 일부다. 이 성에 있는 모든 금은보화, 마도서, 그리고 군자금의 전권을 네게 넘긴다.”

그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으며 이채를 띠었다.

“이제 이 성에서 내 결재를 거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너뿐이다. 베르제 백작가든 황실이든, 감히 너를 건드리는 자가 있다면 이 열쇠의 권한으로 공작가의 모든 그림자 군대를 움직여 도륙해도 좋다.”

엘디아는 손바닥에 닿는 열쇠의 묵직한 감각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단순한 물질적 보상이 아니었다. 이것은 북부의 절대적인 지배권을 그녀에게 완전히 양도하겠다는 맹세이자, 그녀의 신분을 공작가의 가짜 부인에서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 격상시키는 선언이었다.

“……이렇게 큰 걸 주면, 내가 다 들고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엘디아가 일부러 삐딱하게 물었다. 그러나 유제스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서늘한 숨결이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도망쳐 봐라. 네가 어디로 가든, 내 심장이 뛰는 한 나는 너를 찾아낼 테니까.”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술이 엘디아의 하얀 이마 위에 아주 조심스럽고, 동시에 지독할 정도로 깊게 내려앉았다. 닿은 곳마다 불꽃이 일듯 짜릿한 감각이 전신을 관통했다.

“감히 나와 육신을 나누어 가진 대가다.”

귓가에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는 차가우면서도 애절했고,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로웠다.

“날 위해 절대 죽지 말거라, 엘디아.”

그것은 구원인 동시에, 평생을 서로에게 얽매여 살아가야 할 가장 비뚤어지고 아름다운 맹약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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