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년……!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느냐? 기뻐하긴 이르다……!”
단두대 아래로 굴러떨어진 베르제 백작의 잘려 나간 머리통이 기괴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핏빛 바람 소리가 고요한 성채의 공기를 찢발겼다.
“네 목을 휘감고 있는 그 흑장미는…… 가문의 저주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결국 네 영혼을 황실 제단의 제물로 삼아 태워 죽일…… 전대 황제의 잔혹한 저주식이다! 너는 그 괴물과 함께…… 가장 비참하게 타 죽을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백작의 눈동자가 완전히 뒤집히며 탁한 회색빛으로 굳어 들어갔다.
동시에, 내 왼쪽 쇄골 아래가 미친 듯이 뜨거워졌다. 불에 달군 쇠붙이를 연약한 살결에 사정없이 짓누르는 듯한 극통이었다.
“아, 윽……!”
나도 모르게 무릎이 꺾였다. 비틀거리는 몸을 단단하고 서늘한 품이 거칠게 낚아챘다.
“엘디아!”
유제스의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그의 커다란 손이 사르르 떨리며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은빛 머리칼이 내 뺨을 스치며 파르르 흩날렸다. 그가 나를 부서져라 끌어안았지만, 내 시선은 오직 허공에 둥실 떠오른 반투명한 푸른빛 창에 고정되어 있었다.
[★ SYSTEM INFO ★] - 경고! 유제스 카르텐의 저주 심박수 급상승! - 동조율: 51% (위험 단계 진입) - 쇄골의 '연리의 흑장미' 낙인이 목덜미를 타고 급속도로 만개하기 시작합니다.
“하아, 하……”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뱉어내며 유제스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그의 심장 역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그의 심장과 내 쇄골을 관통해 단단히 묶어버린 것처럼, 옥죄는 듯한 통증이 신경계를 타고 찌르르 흘러내렸다.
전대 황제의 저주식. 그리고 황실 제단의 제물이라니.
이 빌어먹을 각인의 진짜 정체가 겨우 그런 음모였단 말인가. 내 목숨을 담보로 잡은 이 거지 같은 생명 연장 게임의 배후에 제국의 가장 높은 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 * *
그날 밤.
슈바르츠발트의 혹한은 흑장미 성의 장엄한 유리창을 성에꽃으로 하얗게 뒤덮었다.
나는 집무실의 커다란 소파에 기대앉아 붉은 장미 자수가 정교하게 놓인 검은색 실크 드레스의 옷깃을 매만졌다. 부드러운 실크의 촉감이 닿을 때마다 쇄골 아래의 낙인이 따끔거렸다. 불과 반나절 전에 겪은 극통의 여운이 아직도 척추를 타고 말랑말랑한 긴장감으로 남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은빛 찻잔과 함께, 정교하게 세공된 유리 약병이 놓여 있었다.
“이것이 당신이 매일 밤 복용하던 마력 안정제의 실체예요.”
내가 찻잔 옆의 은숟가락을 집어 약병 안의 투명한 액체에 살짝 담갔다.
치이익―!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은숟가락의 표면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타들어 가며 부식되었다. 그을린 금속 향이 코끝을 찔렀다. 소파 맞은편, 어둠 속에 몸을 묻고 있던 유제스의 눈동자가 짐승처럼 번뜩였다.
“……바벨이 가져오던 진통 촉진제군.”
“안정제라는 허울 좋은 이름 뒤에 숨겨진 만성 독약, ‘레테의 눈물’이죠. 황실에서 당신의 마력을 억제해 준답시고 보낸 이 약물은 실상 당신의 뇌 신경을 천천히 갉아먹어 광증을 유발하는 덫이었어요.”
나는 은숟가락을 가볍게 내던지며 유제스를 똑바로 응시했다.
“당신이 미쳐 날뛸 때마다, 황실은 카르텐 가문의 어둠을 통제 불능의 괴물로 몰아세울 명분을 얻었겠죠. 그리고 그 끝은…… 당신의 완벽한 자멸이었을 테고요.”
유제스의 입꼬리가 기괴하리만치 비틀려 올라갔다. 분노로 인해 그의 몸 주변으로 검붉은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황실의 개들이 내 입안에 직접 독을 들이붓고 있었군. 그것도 모른 채 나는 가문의 어둠을 탓하며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고.”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어요. 이미 그 가짜 주치의 바벨은 르나르가 지하 감옥에 처넣었으니까요. 이제 당신의 몸을 망치던 첫 번째 독가시는 완벽하게 뽑아낸 셈이에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제스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부드러운 실크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쓸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그의 눈앞에 서서, 나는 품 안에서 조심스럽게 비취색으로 빛나는 물건을 꺼내 들었다.
베르제 백작부인 베아트리스가 내게 억지로 쥐여주었던 ‘비취 흑장미 빗’이었다.
“그리고 이것도요.”
내 손끝이 빗의 정교한 빗살 틈새를 덧그렸다.
“친애하는 내 계모가 내게 준 혼수품이에요. 겉보기엔 화려한 장신구 같지만, 이 빗속에는 아주 미세한 작동 장치와 함께 치명적인 신경 가스 침이 숨겨져 있죠. 내가 당신의 침소에 들 때, 혹은 신뢰를 얻어 가장 가까이 다가갔을 때 당신의 눈을 멀게 하고 기도를 막아버릴 비장의 무기였답니다.”
유제스는 내 손에 들린 비취 빗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내 손등 위를 조심스럽게 덮어왔다. 그의 살결은 차가웠지만, 그 아래에서 느껴지는 고동은 터질 듯이 뜨거웠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지?”
“유용한 무기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써야 제맛이니까요.”
내가 생긋 웃으며 빗을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이 가스 침의 마비 성분은 아주 독특해요. 황실의 마법사들이 제조한 특수한 제어식 가스죠. 이걸 역으로 이용하면, 우리를 습격할 황실의 사냥개들의 눈과 귀를 완벽하게 멀려버릴 수 있어요. 사냥꾼의 덫을 사냥꾼 자신에게 돌려주는 것만큼 통쾌한 일도 없잖아요?”
유제스의 붉은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그는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꼭 쥐며, 낮게 속삭였다.
“그대의 머릿속엔 도대체 몇 수 앞의 판이 짜여 있는 건가, 엘디아.”
“글쎄요. 적어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욕심이 많답니다. 난 절대로 그 단두대 위에서 목이 잘려 죽을 생각이 없거든요. 그리고 당신 역시 마찬가지여야 해요.”
나는 그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 기묘하게 울리는 미세한 진동이 내 손바닥을 타고 느껴졌다.
징― 징―
아주 미세하지만, 일정한 주기를 가진 마력의 공명.
내 눈앞에 다시 한번 상태창의 푸른 텍스트가 깜빡이며 새로운 경고를 띄웠다.
[★ SYSTEM QUIZ ★] - 분석 완료! 유제스 카르텐의 심장에 각인된 저주의 원천이 외부의 '특정 파동'과 비선형 공명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 공명 유발 체계: 전대 황제가 은밀히 걸어 잠근 '황혈의 지하실 족쇄'. - 현재 흑장미 성 지하 보루 깊은 곳에 숨겨진 황실의 '소리 호각' 전 공명 기계 장치가 유제스의 광증을 실시간으로 자극하고 있습니다.
“……들려요?”
내 질문에 유제스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엇이 말이냐?”
“당신의 심장을 찌르르 떨리게 만드는 기분 나쁜 기계음이요. 흑장미 성 지하 깊은 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숨죽여 울리고 있는 쇠붙이의 소리가 있어요. 황실이 당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언제든 미치게 만들기 위해 성의 보루 지하에 박아둔 공명 장치예요.”
나는 유제스의 손을 꽉 쥐었다.
“가요, 유제스. 우리 가문의 ‘진짜 쥐새끼’들이 남긴 마지막 잔재를 완전히 파내어 짓밟아버릴 시간이에요.”
* * *
어둡고 침침한 흑장미 성의 지하 보루.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 같은 차가운 안개가 계단 아래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호위대장 르나르가 횃불을 높이 치켜들며 우리 앞을 인도했다.
“부인, 이 아래는 수십 년간 폐쇄된 구역입니다. 공작가의 역대 가주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한 음습한 마력의 귀속지입니다.”
르나르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내 쇄골 아래의 장미 문양이 뜨겁게 박동하며 나를 지하 깊은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동조율이 올라갈수록, 내 감각은 유제스의 마력 흐름과 완벽히 동조되어 성채 구석구석의 이물질을 감지해 내고 있었다.
지하 3층의 무너진 석벽 뒤편.
정교하게 숨겨진 철문이 나타났다. 유제스가 손을 뻗어 마력을 주입하자, 묵중한 굉음과 함께 철문이 열리며 기괴한 지하 제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제단 중앙에는 은색으로 빛나는 기묘한 호각 형태의 기계 장치 여러 개가 쇠사슬에 묶인 채 허공에 떠 있었다. 장치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기괴한 소리를 내며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귀를 찢는 듯한 이명이 내 머릿속을 강타했다.
“으윽……!”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에 내가 관자놀이를 짚자, 유제스가 순식간에 내 허리를 안아 부축했다. 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그의 심장 부근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마력이 제단의 장치들과 붉은 광선으로 연결되어 공명하는 것이 보였다.
바로 그때, 제단의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그림자들이 스르륵 솟아올랐다. 황실이 성 내부의 깊은 지하에 심어두었던 비밀 결사, 혹은 장치를 수호하는 자동 인형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서슬 퍼런 단검들이 들려 있었다.
“침입자 제거. 황혈의 족쇄를 수호하라.”
감정이 배제된 기계적인 목소리와 함께 그들이 우리를 향해 쇄도했다. 르나르가 즉시 검을 뽑아 들었지만, 좁은 통로에서 사방으로 몰려드는 적들의 기세를 완벽히 막아내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엘디아, 내 뒤로―”
유제스가 마력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공명 장치의 영향으로 그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히며 마력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그가 고통으로 신음하는 순간, 나는 단호하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비켜요, 내 장난감을 시험해 볼 기회니까.”
나는 품속에서 베아트리스의 비취 흑장미 빗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빗의 상단에 장식된 붉은 루비를 강하게 내리눌렀다.
타각―!
맑은 파열음과 함께, 비취 빗의 살새에서 미세한 연무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황실의 특제 신경 가스였다. 허공으로 퍼져나간 보랏빛 안개는 순식간에 지하 제단 전체를 가득 메웠다.
“끄아악!”
“눈이……! 코가 타들어 간다!”
달려들던 황실의 습격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가스를 흡입한 그들의 피부가 순식간에 마비되며 단검들이 바닥으로 요란하게 굴러떨어졌다. 신경을 마비시키고 시야를 완벽히 차단하는 가스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와아, 정말 효과가 말랑말랑하게 직관적이네요. 어머니가 주신 혼수품이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이야.”
나는 가벼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스 마스크 대용으로 젖은 실크 손수건으로 코를 막은 채 제단 앞으로 걸어갔다.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적들을 가볍게 즈려밟으며, 나는 은색 공명 호각 장치 바로 앞에 섰다.
“유제스, 이제 저 흉물스러운 것들을 부셔버려요. 당신을 묶고 있던 마지막 사슬을요.”
내 목소리에 유제스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눈동자는 붉은 광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고 올곧았다.
그가 제단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파자작―!
폭발적인 검은 마력이 은색 공명 장치들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전대 황제가 걸어 잠갔다던 기괴한 쇠사슬과 호각들이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이 났다. 은빛 파편들이 허공에 사방으로 흩날리며 빛바랜 먼지로 변해 흘러내렸다.
순간, 내 쇄골을 찌르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유제스의 거친 호흡 역시 한결 편안해지며 그의 주변을 감돌던 살벌한 마력이 부드럽고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자신의 가슴을 감싸 쥐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공명이, 사라졌다.”
“말했잖아요. 당신을 옭아매던 건 가문의 저주가 아니라, 황실이 심어둔 야비한 장치들이었다고.”
나는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유제스는 흩날리는 먼지 속에서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거칠게 내 손목을 잡아끌어 자신의 가슴팍에 뺨을 묻게 했다.
두근, 두근.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단단한 심장박동이 내 뺨을 타고 흘러들었다.
“엘디아 베르제.”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낮게 울렸다.
“그대는 진정 내 구원자이거나, 혹은 나를 가장 완벽하게 부수러 온 천사군.”
“천사라니, 저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네요. 전 그저 제 자유와 당신의 막대한 위자료를 원할 뿐인 지극히 속물적인 계약 아내랍니다.”
“그 위자료가 이 제국 전체라 해도, 기꺼이 그대 발밑에 바치지.”
그의 뜨거운 맹세가 차가운 지하 공기를 덥혔다.
바로 그때, 내 눈앞에 화려한 황금빛 시스템 창이 번쩍이며 떠올랐다.
[★ SYSTEM ALARM ★] - 메인 퀘스트 [황혈의 족쇄 파괴] 성공! - 공작 유제스의 무조건적 헌신율: 95% 돌파! - 특수 조항 발동! '연리의 흑장미' 낙인의 만개 패널티가 변경 조건에 도달했습니다. - [흑장미의 만개 조항]이 생명을 갉아먹는 피학적 동조에서, 서로의 생명력을 공유하고 보존하는 '생명 부양 계약'으로 개편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환 조건: 황실 제단의 완벽한 전복)
가슴 속에서 짜릿한 승리감이 샘솟았다. 생명을 갉아먹던 가혹한 페널티가, 오히려 우리를 지켜줄 강력한 방패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타다닥―!
지하 계단을 급하게 뛰어 내려오는 발소리와 함께, 르나르의 부하 기사가 사색이 된 얼굴로 제단 방에 들이닥쳤다.
“공작 전하! 부인! 지상에…… 지상에 대변란이 일어났습니다!”
* * *
지상으로 올라온 우리를 맞이한 것은 차가운 겨울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피비린내였다.
성채의 테라스로 나서자, 저 멀리 슈바르츠발트의 침엽수림 너머로 기괴한 붉은빛 장막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르나르?”
유제스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르나르가 무릎을 꿇으며 보고했다.
“주변 영지들이 움직였습니다. 황태자 줄리안의 선동에 넘어간 인접 영주들이 우리 카르텐 영지를 향해 전면적인 ‘무역 봉쇄령’을 선포했습니다. 식량과 생필품, 특히 북부의 생존과 직결된 ‘소금’의 유입을 완벽히 차단하겠다는 황실의 칙령이 내려졌습니다.”
“소금이라.”
나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주변 영주들이 황태자의 개가 되어 우리를 고사시키려 드는구나. 북부의 혹한 속에서 소금이 끊기면 군사들은 물론 영민들까지 단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아주 뻔하고도 야비한 지연책이자 말라 죽이기 작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내가 괜히 이 성의 내정 전권과 지하 창고의 마스터 열쇠를 손에 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르나르.”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바람에 흩날리는 은빛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기며, 나는 우아하고도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일주일 전에 내가 북부 기사단을 시켜 은밀히 장악하라고 지시했던 ‘동부 소금 지맥’과 ‘지하 염도 광산’들의 소유권 서류는 어떻게 되었죠?”
“……이미 부인의 명에 따라, 카르텐의 이름으로 완벽히 매입을 완료하고 기사들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주변 영지들이 사용하는 소금 유통로의 80%가 그 지맥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좋아요.”
나는 턱을 치켜들며 차갑게 선언했다.
“그들이 우리를 봉쇄하겠다고 선언했으니, 우리는 그들의 숨통을 끊어놓죠. 지금 당장 동부 지맥을 통과하는 모든 소금 마차를 억류하세요. 그리고 역으로 그 주변 영지들을 향한 소금 보급을 완벽히 통제하는 거예요. 가격은 열 배로 올리고, 오직 우리 카르텐의 허가를 받은 상단만 통과시키도록 하세요.”
“……!”
르나르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렇게 되면…… 도리어 저들이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폭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맞아요. 황태자의 말 한마디에 부화뇌동해 우리를 굶겨 죽이려 한 대가치고는 아주 저렴하죠. 저들이 먼저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식량과 소금을 구걸하게 만드세요. 제국 법률상 영지 간의 사적 거래 제한 구역 법안을 교묘히 이용하면 황실조차 사법적으로 개입할 명분이 없으니까요.”
유제스가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내 영리한 아내로군. 황태자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어.”
단 일주일 후.
내 예상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졌다.
우리 영지를 봉쇄하겠다며 기세를 올리던 주변 영지들은, 소금 공급이 완벽히 차단되자 영지 내부에서 폭동이 일어나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영주들은 서로 앞다투어 흑장미 성으로 사죄의 서한과 함께 막대한 배상금, 그리고 식량 마차를 공물로 바치며 무릎을 꿇었다.
황태자 줄리안이 야심 차게 준비했던 경제적 봉쇄 작전은, 내 손끝 하나에 완벽히 역전되어 황실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간 것이다.
* * *
그러나 황태자 줄리안은 그렇게 쉽게 물러설 인간이 아니었다.
자신의 야비한 음모가 연이어 박살 나고, 도리어 주변 영지들까지 카르텐의 손아귀에 놀아나자 격노한 그는 마침내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쿠구구구구―!
대지가 비명 지르듯 요동쳤다.
흑장미 성의 성벽 너머, 영원한 어둠이 깔린 슈바르츠발트의 전방 지평선이 붉은색 군장과 황금빛 황실 문양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철갑을 두른 군마들의 말발굽 소리가 대지를 짓눌렀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군세가 흑장미 성을 겹겹이 포위해 들어왔다. 그 수만 해도 무려 만 명이 넘는, 황실 중앙 군대의 정예 병력이었다.
그리고 그 군대의 선두에는, 화려한 황금빛 갑옷을 입은 황태자 줄리안 드 엘마르가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성문 바로 앞까지 압송되어 온 기괴한 마법 장치들이 붉은 광폭의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황실이 자랑하는 최종 파괴 주술, ‘신성 격화 광풍’의 발부 단계가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장치들이 울부짖을 때마다 슈바르츠발트의 침엽수들이 뿌리째 흔들리며 꺾여 나갔다.
“유제스 카르텐! 그리고 내 어리석은 장난감이었던 엘디아!”
줄리안의 확성 마법을 타고 흐르는 목소리가 성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반역죄를 지은 괴물들을 처단하기 위해 황실의 이름으로 엄벌을 내리노라! 지금 당장 성문을 열고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이 성의 모든 생명체를 단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만 명의 대군이 뿜어내는 살기와 주술의 광풍이 성벽을 사정없이 때렸다.
창백하게 질린 북부 기사들이 검자루를 꽉 쥐었고, 내 왼쪽 쇄골 아래의 흑장미 낙인이 다시 한번 기괴한 붉은빛을 발하며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최악의 무장 대립. 황실의 모든 전력이 우리 대문 앞을 포위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유제스는 천천히 검자루를 쥐어 잡았다. 그와 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히며, 피할 수 없는 전면전의 서막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