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붉은 점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가슴팍과 미간에 들러붙었다.

어두컴컴한 비상계단 통로, 그 비좁은 콘크리트 벽면 위로 수십 개의 붉은 안광이 벌집처럼 뒤엉켜 넘실거렸다. 살을 찌르는 듯한 레이저 포인터의 미열이 피부를 타고 조용히 스며들었다.

"거기까지다, 무법자."

어둠을 찢고 걸어 나오는 유지혁의 그림자는 사뭇 육중했다. 그의 등 뒤를 메운 특수 제압 부대원들의 방탄복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룬 문자들이 기괴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미세한 먼지조차 그 차가운 이능력 장비의 압박에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품속에서 손소독제를 꺼내 손바닥에 듬뿍 짰다.

스윽. 스으윽.

척척한 알코올 액체가 손가락 사이사이를 매끄럽게 문지르며 증발했다. 비화회 교주의 머리채를 잡았을 때 묻었던 더러운 땀과 핏자국이 희석되어 씻겨 내려갔다. 싸늘한 알코올 향이 사방으로 퍼지며 코끝을 찔렀다.

"유지혁 팀장님."

진우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여전히 법과 질서를 참 좋아하시는군요……."

그의 주머니 속에는 지하철 물품보관함에서 회수했던 녹슨 구리 열쇠가 들어 있었다. 그 낡은 구리 조각이 지금, 무너져 내리는 이 그랜드 디스토피아 호텔 13층의 붕괴하는 물리적 균열과 공명하며 지르르, 기분 나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공간의 잔해들이 완전히 지상으로 무너져 내리지 않고 일시적인 루프 속에 묶여 있는 것은, 바로 진우의 손안에 쥐어진 이 열쇠가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진우. 네놈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는 있나?"

유지혁이 은빛 권총의 총구를 진우의 이마에 정확히 겨누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의 이빨 틈새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비화회의 제단을 제멋대로 때려 부수고, 격리 구역의 인과율을 걸레짝으로 만들었어. 지옥의 시스템 규율을 이따위로 해킹하고 다니면 도심 전체가 어떻게 될지 생각은 해봤나? 네놈은 괴담보다 더 위험한 해충이다."

"해충이라……."

진우는 천천히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 화면의 푸른 빛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기괴하게 비추었다. 화면에는 '도시괴담록'의 관리 장부 페이지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그동안 진우가 포획하고 길들인 원혼들의 목록이 붉은 잉크처럼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보관 중인 괴담 자원: '소리 귀신', '장님 노파' 외 14종] [일괄 방출 버튼 활성화 상태]

"그럼 이 해충이 여기서 발을 헛디디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드릴까요?"

진우의 검지 손가락이 화면 위의 '일괄 방출' 버튼 위에 살포시 올려졌다. 아주 미세한 힘만 주어도 손가락 끝은 액정을 누를 터였다.

유지혁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진우의 손끝에 고정되었다.

"미친……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이 장부에 묶여 있는 원혼들이 한꺼번에 이 좁은 비상계단으로 쏟아져 나온다면 말입니다."

진우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두려움도 섞여 있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결함은 이럴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죽는 상황조차 단지 하나의 손실 계산서로 취급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당신들이 입고 있는 그 잘난 은빛 슈트와 부적들이, 수십 마리의 굶주린 괴담을 동시에 막아낼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이 그랜드 디스토피아 호텔을 넘어, 저 아래 강남 한복판까지 피바다가 되겠지요……."

"네놈은…… 네놈 목숨은 아깝지 않다는 거냐!"

유지혁의 목소리에 난생처음으로 짙은 공포가 묻어났다.

"아깝지 않느냐고 물으셨습니까?"

진우가 서늘하게 웃었다.

"제 목숨의 가치는 오직 제가 결정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제 가치는 당신들의 안전보장 기금보다 훨씬 비쌉니다. 쏠 테면 쏘십시오. 트리거를 당기는 순간, 이 화면의 버튼도 함께 눌릴 테니까요."

침묵이 통로를 지배했다.

뚝. 뚝.

어디선가 천장에서 떨어진 더러운 물방울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을 때렸다.

유지혁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의 검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도심 전체의 인과 결계가 통째로 터져 나가 지옥의 문이 열릴 수도 있었다. 진우의 눈빛은 결코 허풍을 떠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진짜로 버튼을 누르고도 남을 광인의 눈빛이었다.

"으, 윽……."

유지혁은 결국 권총을 쥔 손의 힘을 슬그머니 풀었다. 그의 등 뒤에 선 대원들도 서로 눈치를 보며 총구를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다.

완벽한 굴복이었다.

"역시 똑똑하시군요, 유지혁 팀장님."

진우가 조소하듯 중얼거렸다.

그때, 진우의 등 뒤에 서 있던 한채희가 가볍게 구두 굽 소리를 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매혹적이면서도 뱀처럼 비열한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

"어머어머, 두 분 다 너무 살벌하게 왜 그러실까나? 유지혁 팀장님, 굳이 그렇게 힘 빼실 필요 없어요."

한채희가 자신의 전용 태블릿 단말기를 들어 올렸다. 화면에는 붉은색 계약 인장이 선명하게 박힌 공식 문서가 번쩍이고 있었다.

"방금 판데모니움 사법부에서 정식 가처분 집행 영장이 발부되었거든요. 확인해 보실래요?"

유지혁의 시선이 그녀의 화면으로 향했다. 문서를 읽어 내려가는 그의 미간이 흉측하게 찌푸려졌다.

"이건……."

"네, 맞아요. 이 호텔 13층의 비화회 제단과 그 내부에서 수확된 모든 영적 자원은, 판데모니움의 '우선 물류 자산 회수 구역'으로 지정되었답니다. 즉, 지금 이 순간부터 이곳의 모든 처분 권한은 저희 판데모니움에 귀속된다는 뜻이죠. 관리국 소속인 당신들이 여기서 무력을 행사해 자산을 훼손하면…… 아시죠? 아주 골치 아픈 계약 위반 소송에 휘말리게 될 거라는 걸요."

한채희는 얄밉게 생글거리며 단말기를 흔들었다.

"명분도 없고, 이득도 없는 싸움은 그만두시는 게 서로의 정신 건강에 좋을 텐데요?"

유지혁의 이빨이 거칠게 맞물리며 빠드득 소리를 냈다. 판데모니움 사법부의 가처분 영장은 관리국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절대적인 법적 구속력을 지니고 있었다. 무장 수사 집단의 명분이 단 한 장의 전자 서류에 의해 완전히 조각나 버린 것이다.

"강진우…… 한채희……."

유지혁은 씹어뱉듯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는 법의 테두리 뒤에 숨어 빠져나갈지 몰라도, 다음은 없다. 너희 같은 무법자들의 끝은 결국 스스로가 만든 지옥에 처박히는 것뿐이니까."

유지혁이 거칠게 손짓하자,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특수 제압 부대원들이 일제히 길을 열었다.

"비켜라."

진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유지혁의 어깨를 툭 치며 그 사이를 유유히 걸어 나갔다. 한채희 역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지상으로 빠져나오는 길, 무너져 내리는 13층의 잔해 속에서 진우의 주머니 속에 있던 구리 열쇠가 마지막으로 강하게 요동치더니, 이내 차갑게 식어 내렸다. 13층 공간의 인과적 잠금장치와의 공명이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 * *

호텔 인근에 마련된 판데모니움의 안전 가옥.

사방이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밀실 안에는 희미한 백열등 하나만이 켜져 있었다.

진우는 테이블 안쪽에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화면 속에는 아까 제단에서 흡수했던 비화회 교주의 영혼 조각들이 정렬되어 있었다.

[비화회 교주의 훼손된 영혼 조각 (등급: 희귀)] [정산 가치: 4,500 포인트 또는 특정 정보 교환 가능]

진우의 머릿속에 '도시괴담록'의 이용약관 최하단에 적혀 있던 미세한 독소 조항이 스쳐 지나갔다.

'제3자의 귀속 소속 영혼은 양도 시 우선 면책권이 부여된다…….'

자신의 영혼과 감정이 깎여 나가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시스템의 규율을 우회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타인의 영혼을 제물로 바쳐 자신의 면책권을 사는 것. 진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조항의 법적 효력을 계산했다.

"채희 씨."

진우가 테이블 너머의 한채희를 불렀다.

"어머, 왜 그렇게 정색하고 불러요? 설마 데이트 신청은 아닐 테고."

한채희가 다리를 꼬며 생글거렸다.

"이 영혼 조각, 판데모니움에서 꽤 탐낼 만한 물건일 텐데."

진우가 스마트폰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 교주의 영혼 조각이 푸른빛을 내며 명멸하고 있었다. 비화회의 핵심 의식에 참여했던 간부의 영혼인 만큼, 그 안에는 막대한 오컬트적 정보와 가치가 내재되어 있었다.

한채희의 눈동자가 순간 청색 빛으로 탐욕스럽게 물들었다. 그녀는 침을 삼키며 상체를 테이블 쪽으로 숙였다.

"세상에…… 이 등급의 영혼 조각을 정말로 넘기겠다고요? 조건이 뭔데요?"

"우대 단가로 넘겨드리지요. 대신, 내가 원하는 물건을 내놓으십시오."

"원하는 물건이라니요?"

"천도윤이 숨어 있는 '망각의 대성당'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

한채희는 잠시 고민하는 듯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자신의 가슴팍 안쪽 주머니에서 정교하게 세공된 황동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 기괴한 나침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늘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검은색 액체가 소용돌이치며 특정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티어 4 등급의 '심연의 나침반'이에요."

한채희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일반적인 지도나 GPS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왜곡된 공간의 좌표를 실시간으로 추적해 주죠. 망각의 대성당은 인과율의 무덤 속에 숨겨져 있어요. 이 나침반이 없다면 그 근처에 가기도 전에 공간의 루프에 갇혀 영원히 헤매게 될 거예요."

진우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나침반을 가져왔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나침반의 검은 액체는 진우가 쥐자마자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서쪽, 즉 도심 깊숙한 곳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거래 성립입니다."

진우는 스마트폰을 조작해 교주의 영혼 조각을 한채희의 계정으로 전송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비즈니스였어요, 진우 씨."

한채희는 영혼 조각을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 귀한 자산을 등록하러 가볼게요. 몸조심해요. 천도윤은…… 비화회의 그 어떤 간부보다도 지독한 인간이니까."

그녀가 방을 나가고, 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방 안에는 다시 정적만이 남았다. 창밖으로는 밤을 잊은 서울 도심의 네온사인 불빛들이 빗줄기에 씻겨 흐릿하게 번져 가고 있었다.

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스마트폰을 다루느라 더러워진 손을 다시 한번 씻기 위함이었다. 그는 결벽증 환자처럼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고 차가운 물에 손을 비볐다.

촤아아아…….

거친 물소리가 욕실의 침묵을 깨뜨렸다.

손을 다 씻은 진우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았다.

"……!"

진우의 움직임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

그의 입술에서 붉은색 핏기가 완벽하게 증발해 있었다. 마치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시체처럼, 입술은 희고 푸석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눈동자에서도 인간 특유의 생기와 온기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플의 대가였다.

괴담의 규칙을 조작하고 시스템의 빈틈을 파고들 때마다, 그의 소중한 기억과 감정,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본질이 영구적으로 깎여 나가고 있었다.

진우는 천천히 입술을 어루만졌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민아……."

여동생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그토록 소중했던 이름이, 이제는 낯선 단어처럼 혀끝에서 맴돌 뿐이었다. 가슴속에서 피어올라야 할 슬픔도, 분노도, 그 어떤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공동(空洞)만이 그를 맞이했다.

자신이 완전히 소멸하기 전에 천도윤을 찾아내야 했다.

거울 속 창백한 사내의 눈동자가, 깊고 어두운 심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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