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전부 깨어나라! 이 더러운 벌레 놈과 함께 이 성당째로 짓뭉개 버려라! 찢어 죽여라!"

천도윤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온 비명은 인간의 음색이 아니었다… 찢겨 나간 성대 사이로 뿜어져 나온 검붉은 피가 제단 바닥의 기하학적 문양들을 적시자, 성당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콘크리트 바닥이 쩍 갈라지며 뿜어내는 공기는 지독하게 차가웠고, 동시에 썩은 가죽과 유황의 냄새를 짙게 풍겼다.

비화회가 이 거대한 오컬트 랜드마크를 짓기 위해 지하 깊숙한 곳에 가두고 짓눌러 두었던 가증스러운 원혼들… 통제력을 잃은 마물들이 마침내 속박에서 벗어나 진우를 향해 검은 아가리를 벌리며 솟구쳐 올랐다.

쿠구구구궁!

대성당의 기둥들이 비틀리며 천장에서 대리석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아비규환의 한복판, 진우의 발밑마저 꺼져 내려가기 직전이었다.

콰아아앙!

성당 서쪽의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거친 폭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며 흩날렸다. 사방으로 튀는 유리 파편들 사이로, 자욱한 백색 연막이 성당 내부를 빠르게 잠식해 들어왔다.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성수가 섞인 특수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가 마물들의 기괴한 울음소리를 일시적으로 억눌렀다.

"강진우! 이 미친놈아, 당장 뛰어!"

연막 너머에서 가죽 재킷을 입은 유지혁이 특수 군용 소총을 난사하며 소리쳤다. 그의 뒤로 전술 방패를 든 부대원들이 대열을 갖추며 사방에서 밀려드는 마물들의 시야를 차단하고 있었다.

진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자신의 주머니 속에서 무섭게 진동하는 물건으로 향해 있었다.

꺼내든 것은 지하철 신설동역 물품보관함에서 얻었던, 때가 잔뜩 탄 녹슨 구리 열쇠였다…

그랜드 디스토피아 호텔의 감춰진 13층 물리 공간을 열어젖혔던 그 열쇠가, 지금 이 붕괴하는 대성당의 차원적 균열과 공명하며 손바닥이 타들어 갈 듯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열쇠에서 뻗어 나온 미세한 붉은 광선들이 무너져 내리는 공간의 이음새를 억지로 붙들고 있었다. 이 열쇠가 없었다면, 성당의 차원은 진작에 왜곡되어 진우를 포함한 전원을 우주의 미아로 만들었을 터였다.

진우는 열쇠를 꽉 쥐었다. 날카로운 금속 모서리가 손바닥을 파고들어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의 얼굴에는 고통의 기색조차 없었다.

"유지혁, 엄호나 똑바로 해."

"뭐? 이 새끼가 진짜……!"

유지혁이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 소총을 발사했다. 괴수들의 검은 피가 연막 속에서 사방으로 튀었다.

진우는 주머니에서 또 다른 물건을 꺼냈다. 비화회 조직원의 시체에서 회수했던 작은 라일락 향수병이었다… 병 표면에 조잡하게 음각된 이니셜 'M.A'. 그것은 여동생 강민아가 납치당하던 날 몸에 지니고 있던 소지품이 분명했다.

진우는 향수병의 스프레이를 강하게 눌렀다.

칙— 칙—

피비린내와 화약 연기, 그리고 썩은 가죽 냄새가 진동하는 아수라장 속으로 싱그럽고 이질적인 라일락 향기가 퍼져 나갔다. 그 순간, 진우의 스마트폰 화면 속 '도시괴담록' 어플이 푸른빛을 발하며 반응했다.

[인과율 추적 프로토콜 가동…] [매개체: 납치 피해자 강민아의 잔류 영적 파동.] [경로 생성 완료. 살해 안개 너머의 안전 루트를 표시합니다.]

공기 중에 분사된 라일락 향수 입자들이 스스로 빛을 발하더니, 기괴하게 소용돌이치는 마물들의 그림자 사이로 가느다란 보랏빛 실선 궤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지적인 우아함 그 자체였다. 괴담이 지닌 잔혹한 인과의 사슬을, 동생의 유류품이라는 감성적 매개체와 어플의 계약 역공학을 통해 완벽한 내비게이션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진우는 망설임 없이 보랏빛 궤적을 향해 도약했다.

스스스슥!

양옆으로 마물들의 날카로운 손톱이 스치고 지나갔으나, 진우가 디디는 발걸음은 정확히 인과의 사선(死線)을 피해 갔다. 획기적인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승리의 예감도 잠시, 진우의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며 붉은 경고등을 켰다.

[WARNING! 지옥 장부 긴급 정산 명령 집행.] [남은 시간: 10분 00초.] [기한 내 미정산 시, 계약자의 영혼은 어플의 영구 소유물로 귀속됩니다.]

붉은 글씨가 액정 위에서 피처럼 흘러내렸다.

동시에 진우의 이명 속에서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들려왔다. 감사관 No.04가 품고 다니던 그 금색 회중시계의 기분 나쁜 소리였다… 정각보다 항상 4분 빠르게 움직이며 주변 괴담의 살해 주기를 극단적으로 도달하게 만들던 그 저주받은 시계의 마력이, 지금 진우의 영혼을 조여오고 있었다. 실제로 진우에게 남은 시간은 10분이 아니라 고작 6분일지도 몰랐다.

파아앗!

공중에서 비산한 날카로운 돌 가루가 진우의 왼쪽 뺨을 깊게 긋고 지나갔다. 선홍색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강진우!"

뒤에서 따라붙던 한채희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눈동자는 공포와 탐욕으로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 피 흘려! 어플 화면 안 보여? 정산 시간이 다 됐다고! 이대로 가다간 네 영혼이 먼저 갈려 나가서 먼지가 될 거야!"

진우는 달리는 와중에도 품속에서 손소독제를 꺼내 손을 싹싹 닦아냈다. 알코올의 화한 냄새가 상처의 고통을 덮었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한채희를 흘겨보며, 피 묻은 입술을 일그러뜨려 냉정하게 웃어 보였다.

"한채희 씨."

"이 미친 상황에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지금 내 스마트폰 화면을 봐."

진우가 스마트폰을 그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계약서 양식이 빠르게 갱신되고 있었다.

"내가 사망할 시, 내 명의의 사후 계약 보험금과 이 성당의 주술 대장 소유권 전량을 당신에게 양도한다는 특약서야. 서명은 이미 끝났어."

한채희의 숨결이 턱 막혔다. 수십, 수백억 가치의 괴담 자원이 자신에게 굴러들어 온다는 서류. 하지만 진우의 눈빛은 패배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진우는 화면의 가장 아래쪽, 일반적인 인간의 시력으로는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인쇄된 이용약관의 초소형 독소 조항을 가리켰다.

[제3자의 귀속 소속 영혼은 양도 시 우선 면책권이 부여된다.]

"이게…… 무슨……?"

한채희가 멍하니 되물었다.

진우가 차갑게 속삭였다.

"난 천도윤의 주술 대장 소유권을 갈취하면서, 이 성당에 묶인 비화회 신도들과 마물들의 영혼을 '제3자 귀속 자산'으로 등록해 뒀지. 내가 정산 기한을 넘겨 영혼 소멸의 위기에 처하는 순간…… 시스템은 내 영혼 대신, 이 더러운 신도들의 영혼 수천 개를 면책 대납물로 삼아 강제 집수색 정산을 집행할 거라는 뜻이야."

"아……!"

한채희는 전율했다. 지옥의 계약서가 가진 법적 맹점을 완벽하게 파고들어, 도리어 지옥의 세무 감사 시스템을 역수확하려는 사기극. 그녀의 얼굴에 경외에 가까운 뒤틀린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 지독한 인간이네, 당신은."

"비즈니스는 확실하게 해야 하니까."

진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보랏빛 라일락 향기가 멈춰 선 대성당 중앙 예배실의 육중한 철문 앞으로 도약했다.

철문 너머에서 기이한 고음의 울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철문 중앙에는 구리 열쇠의 홈과 정확히 일치하는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진우는 주저 없이 녹슨 구리 열쇠를 홈에 찔러 넣고, 온 힘을 다해 비틀었다.

콰르릉! 콰아아앙!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안쪽으로 터져 나가듯 부서졌다. 사방으로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예배실 중심부, 그곳에는 거대한 유리관 형태의 마력 용기가 기괴한 푸른빛을 내뿜으며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용기 속, 액체처럼 일렁이는 마력의 흐름 한가운데에 한 소녀가 사슬에 묶인 채 갇혀 있었다.

창백한 안색, 고통으로 일그러진 미세한 미동.

"……민아."

진우의 감정이 메마른 눈동자가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그 순간, 용기 속의 소녀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입술이 열리며, 귀를 찢을 듯한 초고음의 비명 소리가 예배실 전체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유리관을 투과해 터져 나온 초고음의 비명은 단순한 음파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막을 찢고 들어와 뇌수 자체를 뒤흔드는 인과율의 쐐기였다.

귓구멍에서 미지근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손가락으로 훔쳐보니 검붉은 피가 묻어났다. 진우는 미간을 좁히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비명 소리가 대기의 진동을 타고 뇌리에 박힐 때마다, 머릿속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유실되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시스템 경고: 특수 괴담 영역 '처녀의 통곡'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피해 대상은 매초마다 제물과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1%씩 영구 망각합니다.] [현재 망각 진행도: 3%…… 4%……]

비화회가 설계한 가장 가학적인 안전장치였다. 제물을 구하러 온 자의 뇌 속에서 제물의 존재 의의 자체를 지워버리는 저주. 여동생의 얼굴을 보고도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면, 구출이라는 목적 자체가 인과적으로 소멸한다.

"이…… 미친…… 저주가……!"

뒤따라온 유지혁이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을 굴렀다. 그의 코와 눈에서 동시에 핏줄이 터져 나왔다. 특수 부대원들도 소총을 떨어뜨린 채 귀를 막고 비틀거렸다.

하지만 진우는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도 스마트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바닥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액정 화면을 적셨다.

"망각이라……."

진우의 입술 사이로 마른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결벽증적인 인격.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의 정신적 결함이, 역설적으로 이 인지 왜곡 저주에 대한 강력한 저항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진우는 주머니에서 손소독제를 꺼내 피 묻은 손에 들이부었다. 알코올이 상처에 닿으며 타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지만, 그 자극 덕분에 흐려지던 정신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깨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도시괴담록'의 자산 관리 탭을 빠르게 탭했다.

"천도윤에게서 갈취한 '주술 대장 통제권'…… 그리고 이 성당의 소유권은 현재 내 장부에 등록되어 있다."

진우가 피비린내 나는 침을 바닥에 뱉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이 유리 용기 역시 내 자산의 일부로 취급되어야 마땅하지."

[시스템 검증 중……] [해당 용기 '마력 추출기 No.01'은 대성당의 핵심 부속 설비로 식별됩니다.] [소유권자: 강진우.]

"그럼 규칙을 적용해."

진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자산 소유자는 자신의 관리하에 있는 설비의 '강제 오작동 및 유지 보수'를 명령할 권리가 있다. 용기의 마력 추출 기능을 즉시 중단하고, 내부 압력을 제로(0)로 감압해."

[경고: 강제 감압 시 내부 제물의 생명 신호가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상관없어. 내 여동생의 신체는 어플의 '임시 보존 자원'으로 재등록한다. 소유권 이전과 동시에 면책 조항을 가동해."

스마트폰 화면이 미친 듯이 점멸하며 붉은색과 푸른색의 광원을 번갈아 뿜어냈다.

파지직! 파직!

유리관을 감싸고 있던 붉은 마력의 사슬들이 진우의 명령에 통제권을 잃고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민아의 목을 죄고 있던 쇠사슬이 힘없이 풀려났고, 그녀를 감싸고 있던 푸른 액체의 수위가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지며 잦아들었다.

"하, 하하…… 진짜로 멈췄어……."

한채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안도감은 찰나에 불과했다.

째깍. 째깍. 째깍.

갑자기 예배실 구석에서 불길한 기계음이 고요한 정적을 깨뜨렸다. 무너진 제단 더미 사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던 천도윤의 오른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 쥐어진 금색 회중시계가 기괴한 속도로 회전하며 금빛 광륜을 뿜어냈다.

정각보다 항상 4분 빠르게 움직이는, 감사관 No.04의 저주받은 유물.

"크…… 크흐흐…… 강진우……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지옥의 정산 시간은 피할 수 없다……."

천도윤이 이빨 사이로 피를 흘리며 기괴하게 웃었다.

"그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왜곡하지. 네놈의 정산 기한을…… 지금 당장 완료 상태로 끌어당기마!"

태엽이 풀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회중시계의 초침이 한 바퀴를 거꾸로 돌았다.

콰아아앙!

진우의 스마트폰 액정이 강렬한 붉은 빛을 토해내며 경고음을 울렸다.

[WARNING! 정산 기한 초과!] [남은 시간: 00분 00초.] [최종 정산 프로세스를 강제 집행합니다.] [계약자의 영혼 회수 절차를 개시합니다.]

"윽……!"

진우의 왼쪽 어깨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영혼이 육체에서 뜯겨 나가는 듯한 극심한 작열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결벽증적인 이성마저 마비시킬 정도의 고통에 진우의 무릎이 바닥으로 꺾였다.

"진우 씨!"

한채희가 비명을 지르며 다가오려 했지만, 진우의 주변으로 펼쳐진 검은 중력의 막이 그녀를 가차 없이 밀쳐냈다.

[특약 조항 '제3자 우선 면책권'을 가동합니다.] [대납 대상으로 지정된 비화회 신도 및 마물들의 영혼을 수확합니다……]

화면 위에 푸른빛이 감돌며 진우의 어깨에서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가 멈추는 듯했다. 성당 지하에서 기어 나오던 마물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재가 되어 스러지기 시작했다. 대납 정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순간.

공간의 온도가 영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예배실 중앙의 허공이 마치 먹지를 찢어발기듯 가로로 길게 찢어졌다. 그 틈새 사이로, 검은 정장을 입고 얼굴 없는 기계 가면을 쓴 존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지옥의 추심원, 감사관 No.04였다.

그는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장부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기계적인 음성으로 선언했다.

"이의 제기(Objection). 해당 대납 자산들의 소유권에 결격 사유가 발견되었습니다."

No.04의 가면 너머에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비화회 신도들과 마물들의 영혼은 이미 3년 전, 비화회의 교주 천도윤이 지옥의 다른 금융 지출 건에 대해 '사전 담보(Collateral)'로 설정해 둔 자산입니다. 우선변제권 법칙에 의거, 담보 설정이 선행된 자산은 계약자 강진우의 채무 변제 대납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진우의 눈이 날카롭게 좁혀졌다.

"따라서 제3자 면책 조항은 기각됩니다."

No.04가 냉혹하게 선언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정산 실패에 따른 패널티를 즉시 집행합니다. 계약자 강진우의 영혼 소유권을 회수합니다."

스스스스스—!

진우의 왼손 끝이 서서히 회색빛 재로 변하며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손가락의 감각이 밑바닥에서부터 사라져 가고 있었다. 영혼의 영구 소멸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강진우! 안 돼!"

유지혁과 한채희의 절규가 들려왔지만, 진우의 시선은 오직 하나, 유리관 속에서 천천히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여동생 강민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지옥의 감사관이 비웃듯 진우를 내려다보았다.

"포기하게, 필멸자여. 자네의 정교한 법적 사기극도 결국 진짜 지옥의 율법 앞에서는 한낱 장난질에 불과했네."

재로 변해가는 손을 보며, 진우는 심호흡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의 입꼬리가 기괴할 정도로 비틀려 올라갔다. 고통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광기 어린 지성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장난질……?"

진우가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No.04. 네놈들은 항상 계약서의 '글자 그대로'만을 맹신하지. 하지만 진짜 자본주의의 소송전이 어떤 건지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진우는 재로 변해가는 오른손으로 스마트폰을 꽉 쥐며, 최후의 카드를 화면 위로 드래그했다.

그것은 천도윤이 들고 있던, 여전히 째깍거리며 시간을 앞당기고 있는 '금색 회중시계'의 이미지였다.

"내가 이 성당의 주술 대장 소유권을 갈취했을 때, 성당 영역 내에 존재하는 '모든 종속 유물'의 소유권 역시 나에게 귀속되었다. 즉, 저 기분 나쁘게 째깍거리는 회중시계 역시 지금 내 자산이다."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시계는 오히려 자네의 파멸을 앞당겼네만."

"상관이 아주 많지."

진우의 눈에 핏발이 섰다.

"저 시계는 강제로 정산 기한을 4분 앞당겼다. 하지만 '도시괴담록' 이용약관 제14조 2항에 따르면, '외부 요인에 의한 강제적 시스템 시간 왜곡 및 오류 발생 시, 해당 정산 건은 오류가 해결될 때까지 임시 보류(Suspension) 처리된다'고 명시되어 있어."

No.04의 가면이 미세하게 떨렸다.

"게다가……."

진우가 피 묻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시간이 4분 빨라졌다는 건, 내가 아직 지불해야 할 '이자 계산 기간' 역시 4분 단축되었다는 뜻이지. 채무자가 기한 전에 조기 상환할 권리를 박탈하고 임의로 기한을 상실시킨 행위는…… 지옥 금융 위원회 표준 약관 제72조 위반이다. 이 거래는…… 원천 무효야!"

[시스템 분석 중……] [경고! 정산 프로세스 내 심각한 법적 모순 감지!] [시간 왜곡 유물 'No.04의 회중시계'와 '도시괴담록 내부 타이머' 간의 인과율 충돌 발생!] [정산 집행이 일시 중단됩니다. 시스템 재부팅을 개시합니다……]

"이…… 이 교활한 벌레 같은 놈이……!"

No.04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기계적인 노여움이 실렸다.

그 순간, 진우의 영혼이 타들어가던 회색 재가 멈추고, 다시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시스템의 재부팅 여파로 대성당 전체를 지탱하던 차원의 축이 완전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콰르릉! 천장이 통째로 내려앉으며,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민아가 갇힌 유리 용기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민아 안 돼!"

한채희의 비명과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잔해 너머로 용기 속 민아의 몸이 균열과 함께 차원의 틈새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새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검은 손들이 민아의 사지를 붙잡고 끌어내리는 모습이 진우의 눈에 들어왔다.

시스템이 재부팅되는 단 30초의 공백기.

어플의 보호도, 지옥의 규칙도 적용되지 않는 완전한 무법지대 속에서, 여동생의 몸이 심연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진우는 주저 없이 무너져 내리는 심연의 구멍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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