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바벨의 다락방.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밤바람이 유난히 시렸다. 아드리안 레온하르트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다 못해 재가 될 지경이었다.

‘미친, 진짜 미친 거 아냐?!’

아드리안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방금 전, 크로이츠 상회의 연락망을 통해 들어온 첩보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았다. 이복형 데미안이 눈이 뒤집혀서 아카데미 내부에 대형 마공 포탄 폭파 조를 침투시켰단다. 그것도 자신이 머무는 이 북동쪽 탑, 바벨의 다락방을 통째로 날려 버리기 위해서.

‘아니, 형님? 아무리 돈을 잃었다고 해도 그렇지, 교육 기관 한복판에서 테러를 모의하는 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잖아! 나 마법도 없는 초짜 엑스트라라고! 그 포탄 스치기만 해도 내 시한부 수명은 3초 만에 0이 된다고!’

머릿속에서는 이미 짐가방을 대여섯 번은 싸고 풀었다.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남부 온천 영지까지 축지법이라도 써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극심한 대인기피증과 불안 장애가 한꺼번에 몰아치며 전신 근육이 돌처럼 굳어 버린 탓이었다.

쿵, 쿵, 쿵.

불안하게 고동치는 심장 소리가 귓전을 때릴 때, 다락방의 묵직한 목조 문이 거칠게 열렸다.

"아드리안 님!"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 것은 엘리시아 크로이츠였다. 평소의 차갑고 이성적인 가면에 균열이 간 채, 그녀의 눈동자는 다급함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데미안이 보낸 폭파 조가 이미 탑 하단 지하 수로에 당도했습니다. 황실 기사단에 연락은 취했으나, 아카데미 결계의 간섭 때문에 진입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당장 피하셔야 합니다!"

엘리시아의 다급한 외침이 귀를 찔렀다.

하지만 아드리안의 몸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극도의 공포는 도리어 그의 안면 근육을 완벽한 무표정으로 굳혀 버렸다. 동공은 초점을 잃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가라앉았고, 굳게 다물린 입술은 오만하리만큼 냉소적인 호선을 그렸다.

"피하라니."

아드리안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그의 속마음과 달리 소름 끼치도록 차갑고 가라앉아 있었다.

"엘리시아. 고작 그런 조잡한 불장난에 내 발걸음을 움직여야 한단 말인가?"

"예……?"

엘리시아가 멍하니 되물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아드리안은, 당장 탑이 무너져 내릴 위기 앞에서도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는 절대적인 강자의 모습이었다. 죽음의 위협조차 그의 머릿속 체스판 위에 놓인 사소한 변수 하나에 불과하다는 듯한 태도.

사실 아드리안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서 찻잔을 꽉 쥐고 버티는 중이었다.

‘살려줘, 제발! 발이 안 떨어져! 누가 나 좀 안아서 대피시켜 주면 안 되냐?! 진짜 터진다고! 마공 포탄이라며!’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굳어 버린 혀는 제멋대로 가장 냉혹한 반어법을 뱉어냈다.

"데미안이 자신의 마지막 밑천을 털어 무대를 마련했으니, 관객으로서 그 성의는 봐주어야지. 하지만 그 무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막이 내린다면…… 그 또한 꽤 우스운 희극이 되지 않겠나."

"막이 내린다니요? 저들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어둠의 용병들입니다. 마공 포탄이 터지면 이 탑은 흔적도 없이……."

"돈이 없는 용병이, 과연 불꽃놀이를 시작할 수 있을까?"

아드리안이 차갑게 웃었다.

그는 떨리는 손을 숨기기 위해 품 안에서 가죽 양장본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책상 위에 툭 던졌다. 그것은 그가 예전에 크로이츠 상회의 회계 장부를 ‘심측의 기록서’로 꿰뚫어 보며 발견했던 결정적인 취약점이었다.

"엘리시아. 너는 리브라 시길이 왜 제국의 신용을 지탱한다고 생각하지?"

"그야…… 황실과 7대 상회가 보증하는 마력 인장과, 위조가 불가능한 국산 특수 잉크 덕분이지요."

"그래. 위조가 불가능하지."

아드리안이 손가락으로 노트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시간'마저 이길 수는 없다. 7년 전, 중앙 조폐청에서 발행한 리브라 시길의 청색 인장. 마력 전도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부 영지의 '청람석 가루'를 섞어 썼지. 그 귀한 광물이 지닌 치명적인 결함을 숨긴 채 말이야."

엘리시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계산기처럼 정교한 그녀의 머리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청람석 가루는…… 공기 중의 활성 마나와 장기간 접촉하면 서서히 산화되어 기화합니다. 설마?!"

"정확하군."

아드리안이 음산하게 미소 지었다.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금고 깊은 곳에 처박아 둔 그 지폐들의 마력 인장은 이미 형태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뿐이지. 가벼운 마나 자극 한 번이면 물리적인 마력 증명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쓰레기 종이에 불과해."

그것은 ‘심측의 기록서’가 아드리안의 수명을 깎아가며 보여준 명확한 진실이었다.

[ 7년 전 발행된 리브라 시길(일련번호 L-7000번대)의 청람석 성분 열화율: 98.4%. 작은 마나 파동에 노출 시 인장 즉시 소멸. ]

"데미안에게 무제한 금리로 자금을 대부해 주던 중앙 귀족 금고의 주력 자산이 무엇인지 알고 있겠지?"

"……L-7000번대 리브라 시길이 보관된 제3 황실 예비 창고의 채권이군요."

엘리시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아드리안이 보고 있는 거대한 판 그림을 마침내 깨달았다.

아드리안은 무력으로 데미안의 폭파 조를 막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돈'을 없앰으로써,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상회의 정보망을 풀어라. 제국 증권가와 중앙 귀족 금융 연합에 단 하나의 속삭임을 흘려라."

아드리안이 낮게 읊조렸다.

"L-7000번대 리브라 시길의 인장이 기화하고 있다. 귀족들의 금고에 든 황금이 먼지로 변하기 전에, 당장 실물 마석과 교환하라고."

"……알겠습니다."

엘리시아는 깊이 숙여 절했다. 그녀의 척추를 타고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물리적인 검과 마법이 지배하는 이 아카데미에서, 오직 정보와 신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타래만으로 제국을 뒤흔드는 남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경외심에 숨을 삼키며 빛의 속도로 다락방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아드리안은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헉, 헉…… 죽는 줄 알았네, 진짜!"

그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제발 통해라!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저 폭탄마 새끼들이 스위치 누르는 속도보다 빨라야 한다고! 안 그러면 나 진짜 뼈도 못 추려!"

아드리안은 떨리는 손으로 약탕기를 바라보았다.

너무 긴장한 탓에 목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는 며칠 전 끓여 먹다 남은, 지독하게 쓰고 시큼한 한방 약탕 찌꺼기가 담긴 도자기 그릇을 들고 창가로 향했다.

"에잇, 맛도 더럽게 없는 거."

창문을 열고,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창밖 아래의 어두운 수풀 속으로 약탕 찌꺼기를 확 쏟아버렸다. 검붉고 끈적한 약탕 찌꺼기가 허공을 날아 북동쪽 탑 뒤편의 깊은 음지로 떨어졌다.

그리고 아드리안은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 벌벌 떨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북동쪽 탑 뒤편의 은밀한 공터.

칠흑 같은 로브를 뒤집어쓴 중년의 남자가 어둠 속에서 마법진의 궤적을 확인하고 있었다. 벨하르트 아카데미의 저명한 교수이자, 실상은 고대 사신을 부활시키려는 광신도 집단의 우두머리, 베르무트 베인이었다.

그는 아카데미 지하에 봉인된 마신의 심장을 깨우기 위해, 수개월 동안 이 탑 주변에 은밀한 마력 간섭 레일라인을 교차시켜 두고 있었다. 오늘 밤이야말로 그 의식의 마지막 인을 맞추는 날이었다.

"드디어…… 오늘 밤 모든 준비가 끝난다. 이 레일라인의 마력 흐름만 완벽히 통제하면……."

베르무트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툭. 철퍽.

하늘에서 정체불명의 검붉고 끈적한 액체와 찌꺼기 덩어리가 그의 머리 위를 지나, 마법 레일라인의 가장 핵심적인 교차점 위로 정확히 떨어졌다.

"이, 이게 무슨?!"

베르무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그 검붉은 물질을 찍어 코끝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순간,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 이 냄새는?! 극도로 정밀하게 조율된 마력 억제용 고대 비약의 성분?!"

베르무트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가 정밀 분석 마법을 시도하자, 그 찌꺼기 내부에서 잔존하는 특수한 마력 인자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레일라인의 마력 흐름을 완벽하게 교란하고 차단하는, 그야말로 마신 소환 마법의 극상성이자 완벽한 카운터 물질이었다.

베르무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설마…… 들킨 건가? 아니, 들킨 수준이 아니다! 이 위치는 내가 결계로 몇 겹이나 감추어 둔 마력의 급소일 텐데!"

그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우뚝 솟은 북동쪽 탑의 꼭대기. 바벨의 다락방 창문이 아주 살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로 보이는 것은, 차가운 달빛을 등진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아드리안 레온하르트의 실루엣이었다. (실제로는 그냥 이불 속에서 덜덜 떨고 있는 아드리안의 그림자였다.)

"아드리안 레온하르트……!"

베르무트의 이빨이 딱딱 맞부딪쳤다.

"그는 이미 나의 모든 계획을 간파하고 있었던 거다. 일부러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가장 모욕적인 방식—약탕 쓰레기를 던지는 행위로 내 마법진을 무력화시키다니!"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통찰력이며, 소름 끼치는 오만함인가.

베르무트는 온몸을 휘감는 공포에 전율했다. 아드리안이라는 남자가 버티고 있는 한, 이 탑 근처에서의 소환 의식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계획을……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그 괴물이 완전히 눈치를 채기 전에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해!"

광신도의 우두머리는 그렇게 혼자만의 파멸적인 오해와 공포에 휩싸인 채, 헐레벌떡 어둠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아드리안은 그저 약이 써서 버렸을 뿐인데, 고대 사신의 부활 음모가 그렇게 허망하게 뒤로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 * *

한편, 제국의 금융 중심가와 아카데미를 잇는 통신망은 그야말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L-7000번대 리브라 시길이 썩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크로이츠 상회의 말단 정보원들이 퍼뜨린 작은 지라시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갔다.

특히 상인들과 귀족들은 자산의 가치 하락에 극도로 민감했다. 누군가 금고에서 꺼낸 7년 전 리브라 시길을 마나 측정기에 넣자, 실제로 마력 인장이 흐릿해지며 종이가 바스러지는 현상이 목격되었다.

"진짜다! 마력 인장이 증발하고 있어!"

"내 돈! 내 황금 채권이 휴지가 된다고?!"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데미안 레온하르트의 뒤를 받쳐주며 무제한 대부를 약속했던 '중앙 귀족 금고'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당장 내 리브라 채권을 실물 마석과 황금으로 바꿔라!"

"출금해 줘! 당장!"

"돈을 내놓지 않으면 이 건물을 불태워 버리겠다!"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이었다.

중앙 귀족 금고의 은행가들은 사색이 되어 금고 문을 걸어 잠갔으나, 몰려드는 성난 군중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단 몇 시간 만에 금고의 보유 현금은 바닥을 드러냈고, 도미노처럼 연결되어 있던 데미안의 금융 동맹 은행들이 차례대로 파산 선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아카데미 북동쪽 탑 하단 지하 수로.

"빌어먹을, 왜 연락이 안 되는 거야?"

폭파 조의 대장인 흉터 많은 용병이 초조하게 마법 통신구를 두드렸다.

그들의 손에는 붉은빛을 내뿜는 마공 포탄이 들려 있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위쪽의 탑은 형체도 없이 날아갈 터였다.

그때, 통신구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철수하십시오! 계약이 깨졌습니다!]

"뭐라고? 잔금이 수천만 리브라야! 이제 와서 철수라니, 무슨 소리냐!"

[데미안 레온하르트가 파산했습니다! 그에게 대출을 해주던 금융 연합이 뱅크런으로 완전히 무너졌어요! 데미안의 개인 계좌는 동결되었고, 저희에게 주기로 했던 은행 수표는 전부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어?"

용병 대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잔금은커녕, 이미 받은 착수금 계좌도 묶였습니다! 지금 황실 기사단이 데미안의 투매 자산과 비밀 금고를 압수 수색하러 움직이고 있습니다. 거기 계속 있다간 잔금 한 푼 못 받고 국가 반역죄로 목이 잘릴 겁니다!]

뚝.

통신이 끊겼다.

지하 수로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용병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장……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이 미친놈들아!"

용병 대장이 마공 포탄을 바닥에 팽개치려다, 깜짝 놀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돈도 안 주는 테러를 왜 해?! 우린 자선사업가가 아니야! 당장 무기 버리고 투항해서 감형이라도 받아야지!"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임무를 포기했다.

아카데미 정문 기둥 아래로 기어 나온 폭파 조는, 마침 도착한 아카데미 경비대와 황실 기사단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었다.

"우린 강요받았습니다! 데미안 그 새끼가 시킨 겁니다! 여기 폭탄도 그대로 반납할 테니 감형해 주십시오!"

아카데미 최강의 폭력단이자 어둠의 용병들이, 단 한 발의 마법도 쓰지 않은 채 스스로 무기를 반납하고 자수하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오직 위조 화폐의 결함 폭로와 신용 경제 시스템의 파괴라는, 고등한 심리 통제만으로 이루어낸 완벽한 승리였다.

* * *

바벨의 다락방 창가.

엘리시아는 경비대에게 끌려가는 폭파 조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드리안을 바라보았다.

"……경외스럽군요, 아드리안 님."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헌신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무력도, 군대도 쓰지 않고 오직 시장의 흐름과 인간의 탐욕만으로 적의 무기를 스스로 내려놓게 만들다니. 당신의 혜안은 진정 대륙의 모든 부를 쥐고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속으로 ‘살았다아아아아!’를 외치며 만세를 부르고 있던 아드리안은, 엘리시아의 극찬에 급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겨우 이 정도로 놀라다니, 엘리시아. 갈 길이 멀군."

아드리안은 차갑게 읊조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돈이란 결국 믿음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 믿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보여주었을 뿐이지."

‘와, 나 방금 대사 좀 멋있었던 듯. 완전 주인공 같았어.’

스스로의 연기력에 감탄하며 내심 뿌듯해하는 아드리안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카데미 정문 앞, 데미안의 투매 자산과 압수된 비밀 금고 상자들을 정리하던 황실 기사단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이, 이게 뭐지?"

"데미안 레온하르트의 개인 인장이 찍힌 중형 목재 상자입니다. 이중 결계가 걸려 있어서 강제로 개방했습니다만……."

기사단장과 셀레나 황녀가 그 상자 앞으로 다가갔다.

셀레나 황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자 내부를 응시했다. 기사들이 조심스럽게 상자 내부의 붉은 비단 천을 걷어내자,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이고 불길한 마력에 주변의 모든 기사가 숨을 멈추었다.

"……!"

상자 중심부에서 드러난 것.

그것은 검붉다 못해 진한 보랏빛을 띠고 있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불길하게 고동치는 거대한 유물이었다.

두근. 두근.

기괴한 박동 소리가 지하 수로와 아카데미 정문 앞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이것은……."

셀레나 황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마신의…… 완전한 심장?!"

데미안이 가문의 지하에서 숨겨두고 기회를 노리던, 그리고 고대 광신도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금단의 성물이 유유히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고동 소리는, 북동쪽 탑 꼭대기 바벨의 다락방에 있는 아드리안의 귓가에까지 무겁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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