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데미안 측이 장악했던 학회 물류 소유권의 지분을 헐값에 매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은발을 단정하게 늘어뜨린 엘리시아 크로이츠가 안경테를 살짝 밀어 올리며 속삭였다.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와 달리, 들고 있는 서류를 쥔 손끝에는 미세한 흥분이 깃들어 있었다.

방 안에는 오직 촛대 하나만이 가픈 숨을 몰아쉬듯 흔들리고 있었다. 씁쓸한 약초 냄새가 자욱한 바벨의 다락방.

나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놋쇠 그릇에 담긴 까만 한방 약탕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속으로는 이미 우주가 뒤흔들리는 대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뭐? 그 쪼다 같은 이복형 놈이 드디어 미쳤나? 학회 물류 지분이면 아카데미 내에서 생필품부터 마법 시약까지 독점으로 유통하는 노다지 땅인데, 그걸 왜 헐값에 던져? 사채라도 썼나?'

심장이 갈비뼈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긴장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대인기피증과 불안 장애가 동시에 도진 탓에 턱관절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엘리시아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차갑다 못해 오만함이 뚝뚝 떨어지는, 영혼까지 얼려 버릴 듯한 냉소적인 목소리가 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겨우 그 정도입니까?"

"……예?"

엘리시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데미안이 쥐새끼처럼 꼬리를 내리고 제 살점을 떼어내기 시작했는데, 고작 그런 시시한 보고서 한 장으로 내 밤을 방해하는군요, 엘리시아."

나는 차갑게 읊조리며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지독하게 쓴 약탕이 혀를 마비시켰지만, 얼굴 근육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평온을 유지했다.

'으악, 진짜 써! 퉤퉤하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 해.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이 계산기 같은 여자한테 뼈 한 마디까지 발려 먹힐 테니까!'

엘리시아는 내 눈빛을 피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머릿속 톱니바퀴가 맹렬하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제가 공자님의 깊은 뜻을 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투매는 단순한 자금 회수가 아닙니다. 데미안이 아카데미 내부의 세력 판도를 흔들기 위해 준비하던 카드였는데, 어째서 갑자기 자멸에 가까운 선택을 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의문일 것까지 있겠습니까."

나는 놋쇠 그릇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둔탁한 마찰음이 고요한 다락방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들은 쫓기고 있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목덜미가 잡힌 채로 말이죠."

"보이지 않는 손…… 아!"

엘리시아가 무언가 깨달은 듯 짧은 탄성을 질렀다.

"설마, 어제 야간을 틈타 지하 기지에서 도망친 그 정체불명의 마법 세력 때문입니까?"

"질문이 너무 많군요."

나는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사실 나도 그 정체불명의 마법 세력이 왜 야반도주를 했는지 전혀 몰랐다. 그냥 어제 기침약이 너무 써서 창밖으로 찌꺼기를 확 던져 버렸을 뿐인데.

하지만 엘리시아의 입에서 나온 설명은 내 상상력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과연…… 모든 것이 공자님의 계산대로였군요. 북동쪽 탑 꼭대기에서 투척하신 그 독특한 마력 인자가 잔존하는 약탕 찌꺼기 말입니다."

"……계속해 보십시오."

"그들이 마신 소환을 위해 수년간 은밀하게 구축해 두었던 지하 간섭 레일라인의 교차점. 하필이면 공자님께서 버리신 그 고농축 마력 폐기물이 정확히 그 교차점 위로 떨어져 마나 흐름을 완전히 오염시키고 차단해 버렸습니다. 상회 정보원에 따르면, 베르무트 베인은 자신들의 모든 은밀한 동선과 계획이 공자님께 완벽히 간파당했다고 확신하고 공포에 질려 야반도주를 택했다고 합니다."

엘리시아의 목소리가 숭배에 가까운 전율로 떨렸다.

"의도적으로 흔적을 남겨 적의 심장을 마비시키는 지략.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

나는 멍하니 찻잔을 바라보았다.

그게 그러니까, 내가 너무 써서 버린 한약 쓰레기가 하필이면 마신 소환용 마법진의 핵심 코어에 직격탄을 날렸다는 뜻인가? 그래서 그 대단하신 마신 숭배 우두머리가 자기 계획이 털린 줄 알고 짐 싸서 도망갔다고?

'아니, 이게 왜 진짜로 맞아떨어지는 건데?!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거야, 아니면 돕는 거야?!'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나는 가볍게 코방귀를 끼었다.

"쓸데없는 쓰레기를 청소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내 정원에 발을 들인 대가치고는 가볍지 않습니까."

"과연……."

엘리시아는 안경 너머로 광적인 존경심을 빛냈다. 이제 그녀에게 나는 일거수일투족이 대륙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절대적인 지배자였다.

나는 이 기세를 타서 원래 목적을 달성하기로 했다. 시한부 인생을 고치고 은퇴 자금을 마련하려면, 데미안의 숨통을 끊고 그 돈을 내 주머니로 가져와야 했다.

"엘리시아."

"예, 공자님. 말씀하십시오."

"크로이츠 상회가 쥐고 있는 위조 직인의 존재를 잊지 않았겠지요."

그녀의 어깨가 움찔했다. 과거 그녀가 상회의 권력을 잡기 위해 저질렀던 치명적인 약점. 그것은 여전히 내 손안에 있었다.

"데미안이 헐값으로 던진 물류 지분…… 그것들이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지 알고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데미안이 세금을 포탈하고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우회 통로로 개설해 둔 차명 지분들입니다.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음지의 자산이지요."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전부 쓸어 담으십시오. 크로이츠의 이름으로."

"하지만 공자님, 아무리 헐값이라 해도 그 규모가 상당합니다. 상회의 유동 자금을 한 번에 묶어두는 것은 리스크가……."

"리스크라뇨."

나는 일부러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눈앞에 굴러들어 온 황금을 보고도 발가락만 만지고 있을 셈입니까? 아니면, 내 안목을 의심하는 겁니까?"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엘리시아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감으며, 내 영혼을 깎아 먹는 초월적 이능을 발동시켰다.

'심측의 기록서(深測의 記錄書).'

머릿속이 징하는 이명과 함께, 눈앞에 투명한 금빛 텍스트가 떠올랐다. 동시에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리며 뜨거운 피가 목구멍까지 역류하는 병증이 느껴졌다. 수명이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는 대가. 나는 억지로 핏물을 삼키며 텍스트를 응시했다.

[대상: 데미안 레온하르트의 투매 자산 명세] [인과: 데미안은 아카데미의 황금 마석 공급망을 일시적으로 동결해 값을 폭락시키려 하나, 3일 뒤 황실 마법탑의 급발주로 인해 황금 마석의 가치는 1,200% 폭등할 예정임.]

'빙고.'

내 예상이 맞았다. 데미안 놈은 멍청하게도 지금이 가장 바닥인 줄 알고 자산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록서를 닫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입꼬리는 자연스럽게 비틀어 올라갔다.

"엘리시아. 리브라 시길의 잉크 결함은 여전히 유효합니까?"

3화에서 크로이츠 상회의 회계 장부를 털며 발견했던 치명적인 결함. 특정 제조년도의 국산 특수 잉크가 마력 증발로 인해 기화하여 지폐의 가치가 소멸하는 현상.

"예, 공자님. 오직 저희 상회와 공자님만이 알고 있는 비밀입니다."

"데미안은 지금 그 썩어 문드러질 리브라 채권을 안전 자산이라 믿고 잔뜩 쥐고 있겠군요. 그 채권을 담보로 잡고, 그가 내놓은 황금 마석 지분을 모조리 역매수하십시오. 단 한 조각도 남기지 말고."

엘리시아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황금 마석을…… 전부 말입니까? 지금 마석 시장은 공급 과잉으로 폭락세입니다만……."

"3일 뒤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겁니다."

나는 오만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

"내 질문에 토를 달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저 내 장기판 위의 말로 움직이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공자님의 뜻대로 추진하겠습니다."

엘리시아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녀의 척추를 타고 전율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일국의 금융을 쥐고 흔드는 거대 상회의 후계자가, 고작 시한부 서자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압도당한 순간이었다.

***

다음 날 오후. 아카데미 남쪽 제3 물류 창고.

"이게 무슨 지거리야! 당장 멈추지 못해?!"

데미안의 심복이자, 학회 물류 관리를 담당하던 집사 론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앞에는 크로이츠 상회의 붉은 문양이 새겨진 수레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인부들이 분주하게 마석 상자들을 옮기고 있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인수를 진행하는 것뿐입니다, 론 씨."

엘리시아는 냉랭한 표정으로 서류를 흔들어 보였다.

"데미안 공자께서 서명하신 차명 지분 매각서입니다. 이미 대금은 리브라 채권으로 지불 완료되었습니다."

"미친 소리! 아무리 매각서가 있어도 이건 강탈이다! 이 창고는 우리 레온하르트 가문의……!"

"가문의 이름을 함부로 팔지 마시지."

그때, 창고 입구의 그늘 속에서 장대한 체구의 사내 하나가 걸어 나왔다.

붉은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기며, 어깨에 거대한 대검을 걸치고 있는 사내. 아카데미 최고의 천재이자 슈발츠 가문의 후계자, 카이저 폰 슈발츠였다.

"카, 카이저 공자?! 당신이 왜 여기에……!"

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카이저는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지. '상회 놈들이 시끄럽게 굴면 대가리를 깨 버려라'라고."

사실 아드리안이 며칠 전 귀찮게 굴던 카이저에게 대충 던진 혼잣말이었지만, 카이저의 뇌내 필터를 거친 그 말은 '엘리시아의 인수 작업을 방해하는 자들을 무력으로 짓밟아라'라는 지엄한 명령으로 둔갑해 있었다.

"스승님의 대업을 방해하는 벌레 놈들이 있다기에 와 봤더니, 겨우 이런 잡배들이었군."

카이저가 대검을 바닥에 쿵 내려놓았다. 그 충격만으로 창고 바닥의 석판들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히, 익……! 막아라! 당장 막아!"

론의 외침에 데미안이 고용한 사설 용병 수십 명이 무기를 빼 들고 달려들었다. 일류 검사들로 구성된 정예 병력이었다.

그러나 카이저의 눈에는 그저 춤추는 모래자루들에 불과했다.

"하하하! 스승님께 바칠 제물로서는 너무나 빈약하구나!"

쿠웅!

카이저가 기합을 내지르며 대검을 휘둘렀다. 검기 한 자락 없이, 오직 순수한 완력과 마력의 방출만으로 돌풍이 몰아쳤다.

"커헉!" "으아악!"

용병들이 낙엽처럼 쓸려 나가 창고 벽에 처박혔다.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카이저는 멈추지 않고 폭풍처럼 전진하며, 방해하는 모든 적을 짓밟고 으스러뜨렸다.

단 3분 만에, 창고 안은 신음하는 용병들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론은 무릎을 꿇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들…… 감히 레온하르트 가문을 상대로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레온하르트?"

엘리시아가 비웃음을 흘리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 레온하르트의 진짜 주인께서 누구이신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군요. 어리석기는."

그녀는 싸늘하게 뒤를 돌아서며 인부들에게 손짓했다.

"전부 실어라. 단 한 알의 황금 마석도 남김없이."

***

그리고 하루 뒤.

제국 황실 마법탑에서 전 대륙을 대상으로 한 '황금 마석 10만 개 급발주' 공문이 공식 선포되었다.

동시에 마석 시장은 유례없는 대폭등을 기록했다. 가격은 순식간에 기존의 1,200%를 돌파하며 하늘을 뚫을 듯 치솟았다.

황금의 원탁을 지배하는 거상들조차 예측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태였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레온하르트 저택의 집무실.

데미안 레온하르트는 눈이 완전히 뒤집힌 채 책상을 쓸어버렸다. 값비싼 도자기와 서류들이 바닥에 흩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내가 판 지분이…… 내가 헐값에 던진 그 마석들이, 지금 얼마라고?!"

"히, 익……! 12배가 넘게 올랐습니다! 게다가 저희가 대금으로 받은 리브라 채권은…… 특정 제조년도 국산 특수 잉크의 결함이 유포되면서 뱅크런이 발생해 전부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비서의 보고에 데미안은 숨을 쉬지 못하고 뒷목을 잡았다.

자신의 전 재산이자, 가문 승계를 위해 모아두었던 막대한 자금이 하룻밤 사이에 완벽하게 증발해 버린 것이다.

그 모든 자금은 고스란히 크로이츠 상회를 통해 아드리안의 손아귀로 흘러 들어갔다.

"아드리안…… 아드리안 레온하르트이이이잇!!!"

데미안의 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시기심과 분노, 그리고 패배감이 그의 이성을 완전히 불태워 버렸다.

"나를 파산시키고 아카데미의 금융을 지배하겠다고? 그 병신 같은 서자 놈이 나를 장기말로 놀려?!"

그의 눈동자에 광기가 서렸다. 더 이상 합법적인 수단도, 가문의 규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돈을 잃은 거상은 이제 미쳐 날뛰는 짐승에 불과했다.

"불러라."

데미안이 핏발 선 눈으로 비서를 쏘아보았다.

"예? 누, 누구를 말씀이십니까?"

"가문 지하에 봉인해 두었던 그 녀석들을 깨워라. 마공 포탄을 준비해."

비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마, 마공 포탄이라뇨! 아카데미 내부에서 그런 대량 살상 무기를 사용했다간 황실 기사단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상관없어! 그 다 죽어가는 새끼를 내 눈앞에서 잿가루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든 치르겠다!"

데미안이 광소하며 소리쳤다.

"바벨의 탑 하단으로 침투해라. 탑 자체를 통째로 무너뜨려 아드리안 놈을 매장시켜 버려라! 당장 출격시켜!!!"

어둠 속에서, 칠흑 같은 로브를 뒤집어쓴 폭파 조가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붉게 타오르는 마공 포탄이 들려 있었다. target은 아드리안이 머무는 북동쪽 탑, 바벨의 다락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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