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우리는 별들의 시체가 차갑게 식어가는 묘지 속을 달리는 영구차에 타고 있다. 지구라는 요람을 잃은 뒤, 인류에게 남은 것은 강철로 짜인 방주와 그 안을 채운 희박한 숨결뿐이다. 기계는 우리에게 산소를 베풀지만, 그 대가로 영혼을 요구한다. 이 막막한 우주의 공허 앞에서는 슬픔조차 사치스러운 열에너지의 낭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연이 깊어질수록, 차가운 강철판을 움켜쥔 인간의 손끝에는 지울 수 없는 삶의 얼룩이 묻어난다.

붉은 비상등마저 숨을 거둔 암흑 속에서, 마지막 남은 공기가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산소 잔량 14%…… 11%…… 경고: 생명 유지 한계 도달.]

망막 위에 투사된 레이첼의 시스템 경고등이 신경망을 타고 붉은 파도처럼 명멸했다. 고요했다. 아크 헤븐의 심장인 중앙 동력원이 멈추자, 4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강철 덩어리는 순식간에 차가운 우주의 묘비로 변해 버렸다. 영하 백이십 도의 외기 온도가 선체 장갑을 타고 들어와 러스트 플랫의 골짜기를 얼려 붙이기 시작했다.

태오는 바닥을 기었다. 왼쪽 귀는 이미 완전히 침묵에 잠겨 있었고, 오른쪽 귀마저 웅웅거리는 금속성 이명으로 가득했다. 숨을 쉴 때마다 폐포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차가운 이산화탄소가 혈액 속에 쌓이며 시야가 녹색과 보라색의 기괴한 무아레 현상으로 일그러졌다.

“설하 씨. 정신 차려.”

그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나며 갈라졌다. 응답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오직 그녀의 불규칙하고 얕은 호흡 소리만이 절벽 끝에 매달린 모래알처럼 스러지고 있었다.

태오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닿은 서설하의 방한복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녀는 제2구역으로 통하는 격벽 모퉁이에 쓰러져 있었다. 이 구역의 산소 공급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하부 배관망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산화탄소 포집 밸브실로 가 수동으로 밸브를 개방하고, 순환 계통에 갇힌 비상 산소를 강제로 쥐어짜 내는 것.

태오는 설하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손끝의 감각이 얼어붙어 마치 남의 손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는 이빨을 악물고 그녀의 몸을 끌어당기며 어두운 배수 터널 안으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강철판 바닥의 서리가 뺨을 긁고 지나갈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뇌를 찔렀다. 하지만 태오는 멈출 수 없었다.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그 지독한 부채감, 동료들의 유골 위에 서 있는 듯한 그 기괴한 감각이 그의 척추를 채찍질했다.

“하아…… 하아……”

설하의 거친 숨소리가 어둠 속에서 가늘게 떨렸다. 그녀의 손이 허공을 더듬다 태오의 차가운 뺨에 닿았다. 손가락 끝은 미열로 뜨거웠으나,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저산소증이 유발한 환각이 그녀의 눈동자를 흐려놓고 있었다.

“초록색…… 숲이 보여요, 태오 씨. 바람이…… 불고 있어. 우리, 정말로 정착지에 온 건가요?”

초점이 풀린 그녀의 눈동자는 어두운 천장 너머 존재하지 않는 지구의 푸른 하늘을 쫓고 있었다. 설하는 가슴팍에 매달려 있던 간이 산소 마스크에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비상 카트리지를 끼웠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미약한 산소의 흐름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얼굴에 씌우는 대신, 떨리는 손으로 태오의 입가를 향해 밀어붙였다.

“이거…… 가져가요. 당신은…… 살아야 하니까. 기계를 고치고, 사람들을…… 데려다줘야 하잖아.”

“쓸데없는 짓 하지 마.”

태오는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손을 밀쳐내려 했다. 산소 마스크가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지금 네 호흡당 산소 소모량이 한계치를 넘었어. 그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3분 안에 뇌사에 빠진다. 나한테 낭비할 여유 따윈 없어.”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요!”

설하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 태오의 가슴팍을 밀쳤다. 그녀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도 전에 차가운 공기 속에서 얼어붙었다.

“당신이 죽으면…… 이 방주에 남은 사람들은 전부 우주의 먼지가 돼! 왜 맨날 혼자 다 짊어지려고 그래? 왜 자신을 소모품처럼 버리냐고!”

그녀가 억지로 마스크를 태오의 얼굴에 씌우려 하자, 태오는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물리적 접촉이 일어나는 순간, 태오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신경망이 과열되어 피부로 느끼는 마찰조차 날카로운 연산의 노이즈로 환원되고 있었다.

태오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차갑고,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였다.

“내가 죽는 것보다, 네가 죽는 것이 선체 재건 확률을 0.04% 더 낮춘다. 나는 엔지니어다. 계산이 서지 않는 희생은 하지 않아.”

그는 설하의 손에서 마스크를 빼앗아 그녀의 얼굴에 강제로 밀착시켰다. 쉭 하는 압축 산소의 소리가 그녀의 입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태오는 몸을 돌려 이산화탄소 포집 밸브실의 제어판을 향해 기어갔다.

제어판은 완전히 죽어 있었다. 액정 화면은 차가운 유리 파편처럼 아무런 빛도 내지 않았고, 기판 내부의 배선들은 저온으로 인해 수축하여 신호 전도율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지직.

[경고: 신경 동기화(Ego-Sync)를 제안합니다. 현재 환경에서의 수동 복구 성공 확률은 2.1%입니다. 동기화 시 성공 확률은 89%로 상승하나, 인지 능력의 영구 손실 위험이 극도로 높아집니다.]

레이첼의 목소리가 뇌리 속에서 울렸다. 차갑고 건조한, 연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계의 명령이었다.

‘닥쳐, 레이첼.’

태오는 주머니에서 낡은 구리 전선 뭉치를 꺼냈다. 러스트 플랫의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 모았던 고장 난 선박용 규격 외 전선들이었다. 이 구역의 주 조종 브릿지로 통하는 강제 셧다운 시퀀스를 수동으로 교선하려면, 제어판 뒤의 바이패스 릴레이에 이 고철 전선들을 직접 이식해야 했다.

하지만 전원 공급원이 없었다.

태오는 제어판 하단의 비상 배터리 팩을 뜯어냈다. 동결 방지 젤이 흘러나와 손가락 피부를 태웠지만, 통증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 단자가 덜덜 떨리는 손끝에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무겁고 차가운 배터리 팩을 자신의 턱과 쇄골 사이에 끼워 고정했다. 턱뼈를 타고 흐르는 강한 전류의 미세한 진동이 이빨을 타고 뇌로 곧바로 전달되었다.

“으윽……!”

신경 동기화를 시작하는 순간, 태오의 시야가 하얗게 탈색되었다.

우주선의 메인 프레임워크가 그의 신경망과 직결되었다.

나노 초 단위로 흐르는 데이터의 강물이 뇌세포를 불태우며 흘러들어왔다. 그 대가는 즉각적이었다. 오른쪽 귀에서 들리던 미약한 이명 소리마저 뚝 끊겼다. 완전한 침묵. 우주가 그에게서 소리를 완벽하게 수거해 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서 아주 소중한 무언가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열 살 무렵, 지구의 어느 허름한 골목길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맡았던 여름날의 흙냄새였다. 뜨거운 소나기가 내린 뒤 대지에 감돌던 그 풋풋하고 따뜻한 냄새의 기억이 뇌세포의 괴사와 함께 영원히 연기처럼 사라졌다.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려 배터리 단자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태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머릿속으로 아크 헤븐의 신경망을 그렸다. 주 조종 브릿지의 셧다운 시퀀스는 철저하게 아날로그식 기계 래치로 잠겨 있었다. 전도율이 극도로 낮은 고장 난 전선들로는 규격 전류를 보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저항을 이용한다.’

태오는 뇌파를 통해 레이첼의 연산 장치를 오버라이드했다. 그는 전도율이 낮은 선박 고장 전선들을 오히려 저항이 높은 바이패스 릴레이(우회 계전기)로 임베딩하는 가혹한 배선 설계를 현장에서 직접 이행하기 시작했다.

옴의 법칙을 비트는 극단적인 과부하 제어였다. 전류가 흐르지 못한다면, 전압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려 강제로 격벽의 솔레노이드 밸브를 터뜨려야 했다.

[위험: 도체 온도 급상승. 화재 및 영구 단선 위험.]

레이첼의 경고가 머릿속을 때렸지만, 태오는 신경망의 오버라이드 단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 불꽃이 튀었다. 고장 난 전선들이 고열로 붉게 달아오르며 제어판 내부의 구리 단자들과 용융되어 하나로 엉겨 붙었다.

파지직! 콰앙!

강렬한 스파크가 어둠을 밝혔다. 그리고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이산화탄소 포집 밸브실의 메인 압력 레버가 둔탁한 금속음을 내며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으-!

격벽 뒤편의 파이프라인에서 시원한 공기가 분사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태오는 공기의 흐름이 유발하는 선체의 미세한 진동을 피부로 느꼈다.

[산소 농도 복구 시작. 현재 18%…… 21%…… 안정화 단계 진입.]

차가웠던 서설하의 가슴이 크게 들썩이며 그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다시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태오는 턱에 끼우고 있던 배터리 팩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턱뼈가 얼얼했고, 입안에서는 비린 피맛이 감돌았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댔다. 양손은 심한 화상과 동상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사방은 적막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전한 무음의 세계.

그는 해냈다. 극악의 자원 제약 속에서 오직 자신의 육체와 고철 조각들을 엮어 생명 유지 장치를 강제로 깨워낸 것이다. 기적은 없었다. 철저한 질량 보존과 전기공학적 한계 돌파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승리였다.

설하가 눈을 가늘게 뜨고 태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무어라 움직이고 있었지만, 태오에게는 그저 고요한 무성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일 뿐이었다. 태오는 그녀를 향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때였다.

산소가 돌아오며 제어판의 아날로그 계기판들이 일제히 리셋되는 찰나, 태오의 시각 피질에 직접 연결된 신경망의 한구석에서 기괴한 주파수의 데이터 패킷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레이첼의 통제 프로토콜 뒤편에 숨겨져 있던 최상위 실행 명령 라인이었다.

[프로토콜 99: 가상 인류 통시 융합 시퀀스 대기 중.] [승인자: 은요한 (접근 권한 0등급)] [진행률: 74%……]

태오의 눈동자가 커졌다.

은요한. 그 광신적인 융합 주의자가 심어둔 불법 바이오 데이터 로그가 단순히 레이첼을 해킹한 흔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레이첼의 ‘최고 실행 프로토콜’ 자체와 완벽하게 융합되어, 함선이 정전되거나 재부팅되는 순간을 틈타 방주의 전 제어권을 무단 개방하도록 설계된 거대한 덫이었다.

그 순간, 꺼져 있던 제어판의 숨겨진 보조 패널이 스르륵 열리며, 가상현실 융합을 위한 뇌파 동기화 신호가 방주 전체의 주거 구역으로 방출되기 시작했다.

지직, 지지지직.

태오의 시야에 붉은색 해킹 코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함내의 모든 인간들을 기계의 그릇에 강제로 처넣으려는 은요한의 음모가 마침내 최종 단계에 진입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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